전파사(電波社)

전자제품의 수리를 하는 가게. 이 전자제품이 주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 전파를 수신하는 기계였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하나씩 꼭 있었던 필수요소였으나, 전자제품의 값이 싸지고 AS센터가 늘어나면서 사양산업이 되었다. 품목에 따라선 수리 하느니 새로 사는 게 나은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도 나름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니, AS센터에서 '이 부분을 통째로 갈아야 돼요'판정을 받은 경우라도 전파사에선 더 작은 단위의 부품을 교체하는 식으로 수리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팅이 안 되는 컴퓨터 메인보드를 되살리는 작업으로 몇 군데가 성업중이다.
수리 방식은 증상을 참고 & 테스터를 이용해 문제가 되는 부품을 노가다로 찾아낸 후 해당 부품을 교체. 요즘은 기계를 다루는 데에 대한 정보가 흔하지만 예전에는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파사에 취직 후 도제식으로 배우거나, 안 가르쳐 주면 어깨 너머로 훔쳐(…)배웠다.
노트북은 내가 매일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이다. 얼마 전 오 년 전에 구입한 노트북이 또 말썽을 일으켰다. 그동안 하드디스크가 두 번이나 고장이 나서 해당 업체 서비스센터에서 유상으로 교체를 해야 했다.
이상하지? 컴퓨터 부품은 대부분 수리가 아니고 교체를 해야 한다. 다른 전자제품도 고장이 나면 수리를 하는 대신 통째로 교체를 해야 한다. 예전에 선풍기나 라디오가 고장이 나서 전파사를 가면 콘덴서나 저항, 다이오드만 갈면 말끔히 수리를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왜 업체에선 수리가 안 될까? 기술은 발전하고 부품은 정교해지고. 아마도 안 해주는 거겠지. 하긴 그 많던 전파사도 이젠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전자과를 전공했고 이십대엔 전자회사에서 두루두루 부서를 옮겨 다닌 경험으로 보자면 충분히 수리가 가능할 텐데 말이지. 고장난 하드디스크는 두 번 다 보증기간이 지났다. 제품을 만든 업체의 기막힌 상술일까? 우연일까? 아니면 나만 재수가 없는 걸까? 두 차례 하드디스크 교체 비용만 삼십만 원이다. 동네 정육점에서 삼겹살 600g을 스물다섯 번은 살 수 있는 돈이다.
이참에 노트북을 새 걸로 확 바꿔버릴까 싶었지만 그러자니 노트북의 다른 부품들은 멀쩡하고 백만 원에 달하는 가격이 부담스럽다. 이래저래 고쳐서 쓰긴 해야 하는데. 인터넷에서 구입하면 부품은 싸지만 다음 주까지 기다려야 한다. 저녁에 노트북을 써야 한다. 기다릴 여유가 없다. 좀 비싸지만 서비스센터에서 부품을 구입했다.
그런데 서비스센터 기사는 불친절하다. 불량 원인도 잘못 알려주더니 급기야는 당일 수리가 안 된단다. 아침 일찍부터 기다렸는데 한시가 넘어서 퇴근해야 한단다. 난 어쩌라고. 언짢은 마음에 수리기사와 말다툼을 했다. 서비스센터. 깔끔한 시설과 과한 친절과 웃음 뒤에 감춰진 표정의 그늘이 짙다. 디지털화한 강박 때문일까? 기분이 좋아야 할 토요일 아침에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난다.
겨우 노트북을 수리 한 후 집에 왔다. 쓸모가 없어진 하드디스크를 버리기도 뭐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똑같은 하드디스크가 두개다. 저 네모난 잿빛 금속성 물체 안에는 나와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이야기와 추억이 무려 500기가바이트로 담겨있다.
0과1. 매트릭스처럼. 텍스트와 사운드와 이미지들이 0과 1로 압축된 물리적 공간. 하드디스크.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가 0과 1로 변환된 물리적 공간. 한동안 두개의 하드 디스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별도의 외장하드에 백업을 해놓지 않았다면 그 추억을 복구하는 데 또 수십만원이 들었을 것이다.
0과1. 디지털은 휘발성이 강하고 돈도 많이 든다. 왜 요즘 나오는 전자제품들은 대부분 수리가 안 되고 통째로 갈아야 하는걸까? 숫자 0과 1이 아닌. 달달거리는 선풍기와 더운 바람이 나는 골드스타 에어컨. 목이 늘어난 흰색 메리야스를 입고 뜨겁게 달궈진 인두기를 잡고 숨결과 호흡이 먼지 가득한 공간을 휘감던 전파사의 사장님, 수리기사의 땀과 여유. 그 많던 골목의 전파사는 다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첫댓글 오늘 DVD 플레이어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해서 뜯어보니 뭐가 고장났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콘덴서 하나가 살짝 불량인 것 같아서 내부 푸품을 뜯어서 불량인듯 싶은 콘덴서를 제거하고 새로운 콘덴서를 달았습니다.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놈으로 교체했습니다. 다시 조립해서 전원을 넣었는데 노력도 허무하게 원인을 못 찾고 계속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합니다. 예전에는 라디오 고장나면 전파사에 맡기곤 했는데 요즘은 고치나 새로 사나 얼마 차이도 나지 않아 버리고 새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년전 아파트에 살 때는 고장나서, 또는 오래되서 가전제품을 많이들 내다 버리곤 했습니다. 종류도 너무 많았는데 그래도 돈이 좀 되는 것은 컴퓨터, 전자밥솥 등이 있습니다. 컴퓨터는 버린대로 가져와서 점검하고 수리해서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나눠주곤 했습니다. 밥솥은 몇 번을 뜯어 봤는데 원인을 찾아 고치기 어렵습니다. A/S 센타에 가면 전자변이 나갔다고 8만원을 청구하기도 합니다. 새로 사면 16만원이면 되는데.... 수리를 요구하면 부품을 교체하고 조립해서 물을 넣고 동작해 본 다음 고쳤다고 줍니다. 뚜껑 고무패킹도 교체해야 된다면 1만원 추가로 받기도 합니다. 이후로 밥통도 주워와도 크게 도움이 못된다는.....
제가 진공관 오디오를 만든다고 맨날 좋은 소리 듣고 사는 줄 아시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공관 오디오 소리는 듣기에 참 좋지만 울림이 크기 때문에 가끔 청취하고 일상에서는 남이 쓰다가 버린 싸구려 컴퓨터 액티브 스피커를 주로 듣습니다. 볼륨도 적고 소리도 형편없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듣는다는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