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113]孟浩然5율-望洞庭湖贈張丞相
望洞庭湖 贈張丞相<臨洞庭> 孟浩然
八月湖水平(팔월호수평),涵虛混太清(함허혼태청)。
氣蒸雲夢澤(기증운몽택),波撼岳陽城(파감악양성)。
欲濟無舟楫(욕제무주즙),端居恥聖明(단거치성명)。
坐觀垂釣者(좌관수조자),空有羨魚情(공유선어정)。
〈洞庭湖를 보며 張丞相께 올리다〉
팔월이라 호수 물,
언덕까지 넘실넘실 허공을 머금어 하늘과 하나 됐네.
수증기는 운몽택(雲夢澤)에 자욱하고
물결은 악양성(岳陽城)을 흔드는데
물을 건너려 해도 배와 노가 없고
평소의 삶은 명철한 임금에 부끄럽구나.
낚시질하는 이를 앉아서 보니
공연히 고기 부러워하는 마음 생기네.
역주1> 望洞庭湖贈張丞相(망동정호증장승상) :
장승상(張丞相)은 장구령(張九齡)을 가리킨다.
≪新唐書(신당서)≫ 〈宰相表(재상표)〉에 “개원(開元) 21년(733) 복상(服喪) 중인
장구령을 기용하여 중서시랑(中書侍郞)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로
삼았다.”고 하였다.
이 시의 제목은 ≪四部叢刊(사부총관)≫本에는
‘臨洞庭(임동정)’으로 되어 있고,
≪全唐詩(전당시)≫에는 ‘望洞庭湖贈張丞相(망동정호증장승상)’으로 되어 있다.
역주2> 涵虛混太淸(함허혼태청) :
맑고 파란 하늘과 호수가 서로 맞닿아 혼연일체가 되었다는 뜻이다.
태청(太淸)은 하늘이다.
역주3> 雲夢澤(운몽택) : 옛날 초(楚)나라의 못 이름이다.
운몽(雲夢)은 본래 두 개의 못으로 동정호의 북안(北岸)에 있는데,
지금의 호남(湖南)과 호북(湖北) 두 성(省)에 걸쳐 있다.
강북(江北)에 있는 것이 운택(雲澤)이고 강남(江南)에 있는 것이
몽택(夢澤)인데 합쳐서 운몽택이라 부른다.
면적은 약 8, 9백 리인데,지금은 대부분 토사(土砂)가 침적(沈積)하여 육지가 되었다.
여기서 운몽택(雲夢澤)은 동정호를 가리킨다.
역주4> 岳陽城(악양성) :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岳陽市)인데동정호의 동안(東岸)에 있다.
역주5> 端居恥聖明(단거치성명) : 단거(端居)는 평상시에 거처함을 말한다.
성명(聖明)은 명철(明哲)한 임금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성명한 임금 밑에서 벼슬하지 못하는 것은내가 무능한 탓이니
부끄럽다는 뜻이다.
역주6> 坐觀垂釣者(좌관수조자) 空有羨魚情(공유선어정) :
자신이 출사(出仕)를 희망하고 있음을 비유한 말로,
장구령이 자신을 이끌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淮南子(회남자)≫ 〈說林訓(설림훈)〉에 “강물을 보며 고기를 부러워하느니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그물을 짜는 것이 낫다.[臨河而羨魚 不如歸家織網]”고
한 것을 이 시에서 변용시킨 것이다.
‘垂釣者(수조자)’는 장구령처럼 이미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시인 자신도 장구령처럼 벼슬을 하여 功을 세우고 싶다는 뜻을
이 구절에 담았다.
空이 ‘徒(도)’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이하 동아일보=완곡한 청탁[이준식의 한시 한 수]〈212〉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3-05-12 03:00
팔월 호수 물이 언덕까지 넘실대고,
허공을 머금은 채 하늘과 섞여 있네요.
수증기는 호면 위로 피어오르고,
물결은 악양성을 뒤흔들 듯.
건너려 해도 배와 노가 없으니,
한가로운 내 삶이 임금님께 부끄럽다오.
앉아서 낚시꾼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일어나는 물고기 욕심.
八月湖水平, 涵虛混太清.
氣蒸雲夢澤, 波撼岳陽城.
欲濟無舟楫, 端居恥聖明.
坐觀垂釣者, 空有羨魚情.
― ‘동정호를 바라보며 장승상께 올리다
(望洞庭湖贈張丞相)’·맹호연(孟浩然·689∼740)
호수 언덕과 수평을 이룰 정도로 물이 불어난 8월의 동정호.
물과 하늘이 맞닿은 채 광활한 천지를 이룬다.
수면 위로 증기가 자욱하고 물결은 호반에 인접한 성곽을 뒤흔들듯 넘실댄다.
이 넓고 활기찬 세상으로 대차게 달려나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배도 노도 없는 시인.
재능과 포부를 펼치지 못한 채 한가로이 숨어 지낸다는 게 영 마뜩잖다.
낚시질에 전념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부질없이 물고기를 탐내고만 있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시는 무심한 듯 동정호의 장대한 풍광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시인은 활기차게 돌아가는 세상,
이 태평성대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숨기지 못한다.
나이나 지위에서는 시인이 승상 장구령(張九齡)에게 못 미치지만
둘은 이미 시로써 친밀하게 교유해온 사이.
시인이 대놓고 청탁하기는 거북살스러웠을 테지만 시를 지어 권력자에게
스스로를 천거하는 건 당 사대부 사회에서는 관행처럼 통용되었다.
이를 간알시(干謁詩)라 했다.
‘자신만은 청탁을 부끄러이 여긴다’라 했던 두보도 여러 차례
고위층에게 간알시를 올렸다. ‘늙은 천리마는 천 리 내달릴 생각만 하고,
굶주린 매는 한 번 불러주기만을 기다리지요.
그대가 조금만 마음 써 주신다면,
초야의 이 사람에겐 충분히 위로가 되지요.’
(‘좌승 위제(韋濟)에게 드린다’) 조바심이 컸던 만큼
자존심마저 팽개치게 만든 게 간알시였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