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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대화방 스크랩 茶山 丁若鏞의 부자론
언제나~& 추천 0 조회 25 09.12.01 01: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 선생 초상.

 

 

 

[고전에서 배우는 경제] 茶山 丁若鏞의 부자론

 

부자란 자신의 재물이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여기는 사람

 

 

다산은 공부 핑계대고 생활을 거들떠보지 않는 인간들을 혐오했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돈벌이를 비루하게 여겨 군자가 어떻고 성인이 어떻고 하며 입만 살아 나불대는 인간을 다산은 가장 경멸했다. 온 가족을 추위와 굶주림에 떨게 하면서도 학문을 논하고 나랏일을 말하는 자들을 천하고 가증스럽게 여겼다.


⊙ 토지를 믿는 것은 娼妓의 정절을 믿는 것과 다름없어
⊙ 푼돈을 아껴 써야 목돈이 모이고, 목돈을 잘 굴려야 큰 이익을 꾀할 수 있다
⊙ 재물을 잃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베풂과 나눔

鄭珉
⊙ 1961년 충북 영동 출생.
⊙ 한양대 국문과 졸업. 同 대학원 국문학 석·박사.
⊙ 한국한문학회 출판이사, 대만 국립정치대 교환교수,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학과장 역임.
⊙ 저서: <조선후기 고문론 연구> <비슷한 것은 가짜다> <한미시학산책>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미쳐야 미친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다산어록청상> 등 다수.
⊙ 상훈: 2007 간행문 문화대상.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은 합리적인 사고를 강조했던 실학자다. 그는 재테크에도 상당히 능했다. 귀양지 강진에서는 園圃(원포·과일나무와 채소 따위를 심어 가꾸는 뒤란이나 밭)를 직접 경영해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했고, 근처 여기저기의 자투리 땅을 매입해서 그곳의 소출로 생활을 꾸렸다. 귀양지를 떠날 때는 그곳 땅의 관리를 제자들에게 맡겼다.
 
  한양으로 올라와서는 두릉 집 강 건너편 검단산 아래에 五葉菴(오엽암)을 짓고 인삼포를 직접 경영했다.

유실수를 심고 채소밭을 가꾸며 뽕나무를 길렀다. 닭을 치고, 가축을 길렀다. 큰 부자는 아니었어도 맵짠 살림법으로 궁하게 살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재물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가정 경제를 관리하는 방법, 바른 삶의 마음가짐 등에 관한 글들을 소개한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是非(시비)의 저울이고, 하나는 利害(이해)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큰 등급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이 가장 으뜸이다.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다산이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다. 조금 풀어 보면 시비와 이해라는 두 잣대에서 다음 네 가지의 경우가 나온다.
 
  첫 번째는 是而利(시이리)다. 옳은 일을 해서 이롭게 된 경우다. 바른 길을 가서 떳떳한데 결과까지 이로우니 더 바랄 게 없다.
 
  두 번째는 是而害(시이해)다. 옳은 길을 갔는데 손해가 된 경우다. 나는 성실하게 줄을 서 있는데 남들은 다 새치기를 한다. 화가 난다. 옳은 일을 했으니 부끄러움은 없지만, 이 길을 굳이 가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든다.
 
  세 번째는 非而利(비이리)다. 나쁜 일을 해서 이로움을 취한 경우다. 옳지 않은 줄은 알지만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큰 재물이 생기는데 굳이 마다할 것이 없다. 미안한 것은 잠깐이고 이익은 고스란히 남는다.
 
  네 번째는 非而害(비이해)다. 나쁜 짓을 해서 결국 해를 입는 경우다. 조금 빨리 가려다 결국 신호 위반 딱지를 떼인다. 주가를 조작하다가 쇠고랑을 찬다. 원래 목표는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었는데, 나를 기다리는 것은 법의 심판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따지는 匹夫匹婦들
 
  세상 일이 결국 이 네 가지 범주 안에 다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첫째는 드물고, 둘째는 싫어서, 셋째라도 하려다가 넷째가 되고 마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 아닌가.
 
  문제는 늘 둘째와 셋째의 선택을 두고 일어난다. 그것은 시비에 우선 가치를 두느냐 이해에 우선 가치를 두느냐의 선택이다. 내게 이익이 된다 해도 옳지 않다면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내게 손해가 된다면 아무리 옳다 해도 하지 않으려 드니 문제다.
 
  사람들은 과정보다 결과를 따지고, 성실 말고 성과를 중시한다. 돈을 더 많이 벌 수만 있다면 남의 꿈쯤은 짓밟아도 상관없다. 이것저것 다 가리고서 어떻게 더 가질 수 있겠는가? 단숨에 인생역전을 하려니 로또 복권을 사거나, 두 눈을 질끈 감고 불의에 서슴없어야 한다. 그까짓 양심은 언제고 밥을 먹여준 적이 없다.
 
  교육 현장을 보자. 능력 있는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 더 큰일을 하게 하려면 秀越性(수월성·Excellency)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수월성 교육이 학생의 자질보다 부모의 재력에 더 좌우되고, 우수 집단의 人性(인성)이 성적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수월성보다는 인성교육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결국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충돌인 셈이다. 다만 옳고 그름의 분간이 모호하고, 이해의 결과에 대한 해석이 저마다 다르니 말이 서로 얽히고 다툼이 끝나지 않는다.
 
  몇 해 전 MIT 공대 학장이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MIT를 졸업한 학생이 하버드로 진학해서 경영학을 배운다. 그는 뛰어난 수학적 사고를 경영학에 적용해 금세 돈을 벌어 백만장자의 반열에 오른다.
 
  이들에게 도덕과 윤리는 별반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순식간에 돈을 벌어 갑부가 되고, 그와 같은 속도로 파멸한다.
 
  그러니까 부자가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떤 부자가 되느냐가 문제다. 능력을 갖춘 사람이 도덕성이 결여되면 그 전문지식을 가지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해악을 끼친다.
 
  문제는 전문성과 도덕성을 함께 갖추는 것인데, 이 둘이 충돌할 때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여기에 관건이 되는 요인은 행복권의 추구다.
 
 
  가난한 선비와 부자 머슴
 
  사람들은 행복해지려고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세상에는 돈을 벌고 나서 더 불행해지는 사람들의 숫자가 돈을 벌지 못해 불행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행복해지려면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사람은 돼지가 아니니까 배만 불러 행복해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까 수월성의 추구로 인한 무한경쟁이 우수 집단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데는 기여하겠으나, 이걸로는 궁극적인 행복권의 추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어찌하면 퇴직 전에 20억원을 손에 쥘까 고민한다. 어떻게 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니 억지가 나오고 나쁜 짓도 서슴지 않게 된다. 
  


  <영암군에 한 가난한 선비가 있었다. 그 종은 큰 부자였다. 하루는 종에게 말했다.
 
  “네가 내게 돈 1000꿰미를 준다면 내가 마땅히 너를 속량시켜 주마. 네가 비록 죽더라도 맑은 귀신이 될 것이다.”
 
  종이 말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가난한 선비가 말했다.
 
  “네가 귀찮겠지만 내 돈 1000꿰미를 네 집에 두어 두고서 네가 소금을 사면 또한 날 위해 소금을 사 주고, 네가 쌀을 사면 또한 날 위해 쌀을 사 다오. 네 복에 의지해서 나로 하여금 실패하지 않게 해 다오.”
 
  종이 말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몇 달 뒤에 종이 말했다.
 
  “소인이 1000꿰미로 小麥(소맥)을 사서 장차 술을 담그렵니다. 나으리는 어찌 하시렵니까?”
 
  가난한 선비가 말했다.
 
  “오직 네가 사는 대로 나도 소맥을 사서 술을 담그련다.”
 
  종의 집이 돌림병을 앓았는데 몇 달간 낫지 않았다. 종이 들어와 청했다.
 
  “제 집이 이와 같으니, 청컨대 나으리께서 먼저 담그시지요.”
 
  가난한 선비가 이를 허락했다. 이윽고 농사일이 큰 흉년이 들어 밀가루의 귀함이 방아 찧은 쌀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酒禁(주금)이 지엄해서 술 빚는 사람이 없었다. 종의 집은 큰 이익을 네 배나 얻었지만, 가난한 선비는 본전만 겨우 건져 전처럼 도로 가난해졌다. 이에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은 운명이다. 내가 다시는 먹고살기를 꾀하지 않으리라.”> 
  
  

  부자의 그릇은 따로 있다

 


 

전남 강진에 유배온 뒤 다산이 처음 기거했던 四宜齋(사의재).

 


  다산의 이 글은 문집에는 실려 있지 않고, 친필 필첩에 실려 전한다. 조선 후기에는 理財(이재)에 밝은 종이 시원찮은 주인보다 잘사는 일이 흔했다. 이른바 따로 생활하는 外居(외거) 노비가 治産(치산)에 성공한 경우다.
 
  주인은 아예 노비 문서를 불태우는 것을 전제로 그에게 큰돈을 얻었다. 그의 목표는 큰돈이 아니라 큰 부자가 되는 것이었으므로, 재물을 증식하기 위해 그에게 투자했다. 그가 하는 대로 따라서 투자하면 적어도 그와 같이 이익을 남길 게 아닌가? 똑같이 했지만, 돌림병이란 돌발 변수로 인해 주인의 부자 될 꿈은 허망하게 깨지고 말았다.
 
  그는 노비 문서만 잃고, 도로 가난해졌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부자는 운명이다. 타고나지 않고는 부자도 없다. 내가 편안해지는 길은 安貧(안빈)뿐이다. 부자 되자는 꿈을 버려야 마음이라도 편하겠기에 한 말이다.
 
  여기 또 다른 부자 이야기가 있다. 이번에는 洪吉周(홍길주, 1786~1841)가 들려주는 얘기다.
 
  <마을 사람 중에 맨손으로 몇만의 재물을 모은 자가 있었다. 이웃에 살던 인척이 가난을 못 견뎌 그에게 부자가 되는 방법을 물었다. 그 사람이 하인을 부르더니 이렇게 명령했다.
 
  “저 우리 속에서 몇 번째 소를 끌고 오너라.”
 
  끌고 오자 또 이렇게 말했다.
 
  “들어서 집 위에 올려놓아라.”
 
  이른 대로 하자, 조금 있다가 말했다.
 
  “도로 우리 안에 묶어 두어라.”
 
  또 명했다.
 
  “저 부엌에서 몇 번째 솥을 가져오너라. 그 속에 밥이 이제 막 반쯤 익은 것을 가져와야 한다.”
 
  마당에 내려놓자 한참 있다가 다시 부엌에 갖다 놓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돌아보며 말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이 같을 뿐입니다.”
 
  그 인척이 집에 돌아와 하인을 불러서 소를 가져다가 집 위에 두라 하자, 하인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어쩌시려고요?”
 
  또 부엌에 있는 솥을 가져오라고 하자 자식들이 모두 몹시 놀라 다시 물었고, 그 아내는 발끈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 양반이 갑자기 미쳐 버렸네.”
 
  그 인척은 마침내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 사람에게 알리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진실로 부자가 될 그릇이 아닙니다. 내 집의 처자나 하인들 중에 이유를 청해 묻는 자가 있던가요?”
 
  보통 사람의 부유함도 반드시 이 같은 뒤에야 일으킬 수가 있으니, 하물며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것이겠는가? 아아! 어찌해야 나라 안의 사대부와 서민으로 하여금 모두 이 집의 처자나 종과 같게 할 수 있겠는가?>
 
 
  생각을 바꾸면 행복해진다
 
  두 이야기 모두 부자의 그릇은 따로 있다는 얘기다. 부자는 하늘이 내는 것이니, 공연히 안될 일에 목숨 걸면 패가망신이 기다릴 뿐이다. 영암군의 가난한 선비 짝이 안 나려면 그저 노비 문서나 틀어쥐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며 사는 게 대수다.
 
  재물이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은 고금에 다를 까닭이 없다. 부자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되려 해서 부자 된 사람도 없다. 또 어쩌다 운 좋게 된 졸부는 있어도 대를 물리는 부자는 좀체 보기 어렵다. 한 집안도 그렇고 한 나라도 그렇다.
 
  <내게 없는 물건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 한다. 내게 있는 것은 깨달아 굽어보며 ‘이것’이라 한다. ‘이것’은 내가 내 몸에 이미 지닌 것이다. 하지만 보통 내가 지닌 것은 내 성에 차지 않는다. 사람의 뜻은 성에 찰 만한 것만 사모하는 지라 건너다보며 가리켜 ‘저것’이라고만 한다.
 
  이는 천하의 공통된 근심이다. 지구는 둥글고 사방 땅덩어리는 평평하다. 천하에 내가 앉아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이 없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자꾸만 곤륜산을 오르고 형산과 곽산을 오르면서 높은 것을 구한다.
 
  가버린 것은 좇을 수 없고, 장차 올 것은 기약하지 못한다. 천하에 지금 눈앞의 처지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하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높은 집과 큰 수레에 목말라 하고 논밭에 애태우며 즐거움을 찾는다.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죽을 때까지 미혹을 못 떨치고 오로지 ‘저것’만을 바란다. 하여 ‘이것’이 누릴 만한 것임을 잊은 지가 오래되었다.>
 
  다산이 <於斯齋記>(어사재기)란 글에서 한 말이다. 인간은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른다. 이것을 버려두고 저것만 쳐다본다. 더 갖지 못해 안달하고, 다 갖지 못해 애태운다. 이 욕망은 끝내 채워질 줄 모른다.
 
  부자는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자신의 재물이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부자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성에 차지 않아 부족하게 여긴다면 그는 부자가 아니다. 이 가파른 욕망 때문에 자손들 간에 분란이 나고, 재벌 총수가 자살을 하는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진정한 부자의 길은 바깥을 향한 욕망을 잠재우고 내 안에 풍요를 깃들이는 데서 성취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욕망이 잠들지 않으면 나는 가난하다. 비록 가난해도 넉넉함이 깃들면 나는 부자다. 그러므로 부자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 재물의 다과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러면 가난해도 넉넉하면 그뿐인가?

무책임하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처자의 낯빛에 주린 기색이 떠나지 않는데 무슨 넉넉함이 있겠는가? 최소한의 살 도리를 마련하는 것은 사람의 체모와 관계되는 일이다. 다산은 이 최소한의 살 도리에 관한 지침을 많이 남겼다.
 
 
  일하지 않는 자를 가증스럽게 여겨
 
  요즘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도 수입 없이 30년은 더 사는 것이 보통인 세상이 되었다. 퇴직금을 넉넉히 받아도 재테크에 한 번만 실수하면 나머지 인생이 심각하게 꼬인다.
 
  자식에게 기대서 노후를 꾸려 갈 생각은 아예 할 수가 없다. 연금이라도 나온다면 더 부러울 것이 없겠지만, 모든 사람의 형편이 그렇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결국 모험하지 않고 규모 있게 가계를 꾸려 나가는 수밖에 없다.
 
  <星湖(성호) 李瀷(이익) 선생이 젊은 시절 몹시 가난했다. 가을에 거두는 것이 고작 12석이었다. 이것을 나눠 열두 달로 분배하고, 열흘 뒤에 양식이 떨어지면, 즉시 따로 다른 물건을 마련해서 변통해 팔아 곡식을 구해 죽을 끓이게 했다. 새달 초하루가 되어야만 비로소 창고 속의 곡식을 꺼내 먹었다. 중년에는 24석을 거두어 매달 2석씩 썼다. 만년에는 60석을 거두어 다달이 5석씩 썼다. 비록 아무리 군색하고 부족해도 그달 안에는 다음달 양식에 손대지 않았다. 이것은 참 좋은 방법이다.>
 
  다산이 쓴 <爲尹輪卿贈言>(위윤윤경증언·윤윤경에게 주는 말)에 나온다. 성호는 부족한 가계를 일구기 위해 일종의 常平法(상평법)을 썼다. 1년에 12석의 소출이 있다면 한 달에 1석씩 쓸 수 있다. 워낙 대식구였으므로 이 한 석으로는 열흘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다른 수를 내서 죽을 끓여 먹든 굶든 절대 다음달 양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달이 바뀌면 그제야 새로 한 석의 곡식을 헐었다.
 
  이렇게 아끼고 저축해서 중년이 되자 살림 규모가 24석으로 늘었다. 만년에는 다시 60석으로 늘었다. 살림이 처음보다 다섯 배 규모로 는 셈이다. 성호는 철저한 계획경제로 가산을 늘려 나갔다.
 
  다산은 공부를 핑계대고 생활을 거들떠보지 않는 인간들을 혐오했다.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돈벌이를 비루하게 여겨 군자가 어떻고 성인이 어떻고 하며 입만 살아 나불대는 인간을 다산은 가장 경멸했다. 온 가족을 추위와 굶주림에 떨게 하면서도 학문을 논하고 나랏일을 말하는 자들을 천하고 가증스럽게 여겼다.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려면 가족 간에 협조와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러자면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어야 하고,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협동이 이뤄져야 한다. 이때 가장의 권위가 빛을 발한다.
 
 


  사람은 일을 해야


 

초의선사가 1812년 그린 다산초당의 모습.

 


  <집안을 다스리는 법은 위로 바깥주인과 안주인에서부터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형제와 동서 및 아래로 노비의 자식에 이르기까지 나이 다섯 살이 넘으면 각자 할 일을 나눠 주어 한 시각도 놀며 쉬게 하지 않는 데 있다. 이렇게 하면 가난하여 군색한 것을 근심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長?(장기)에 있을 적에, 집주인 성씨는 겨우 다섯 살 난 어린 손녀에게 마당에 앉아 솔개를 쫓게 했다. 일곱 살짜리에게는 손에 장대를 들고서 참새를 쫓게 했다. 그 나머지 한솥밥을 먹는 사람도 모두 직책이 있었으니, 이것은 본받을 만하다.
 
  집에서 늙은이는 칡을 꼬아 노끈을 만들고, 노파는 늘 실꾸리 하나를 들고서 손으로 풀어내 감는다. 비록 이웃에 마실 가더라도 놓지 않아야 하니 이런 집에는 반드시 남는 식량이 있어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
 
  유배지로 왔다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는 둘째 아들 학유에게 써 준 글의 일부다. 일종의 역할분담론이다. 다섯 살 난 손녀에게도 임무를 맡긴다. 한솥밥을 먹는 사람에게 크든 작든 소임을 맡긴다. 힘없는 늙은이는 칡을 꼬아 끈을 만들고, 노파는 실꾸리에 실이라도 감아야지 놀고 먹으면 안된다. 이런 습관이 밴 집에는 가난이 머물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것은 이런 근면의 습관이지 재물이 아니다. 다산은 곡산부사 시절에 고을의 토지 문서 대장을 열람한 일이 있었다. 꼼꼼히 살펴본 결과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100년 사이에 보통 대여섯 번은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심한 경우는 아홉 번까지 주인이 바뀐 예도 있었다.
 
  다산은 토지를 믿는 것은 娼妓(창기)의 정절을 믿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까지 극언했다. 자식에게 토지문서, 집문서를 물려주고 나서 평생 먹고살 밑천을 마련해 주었다고 마음 놓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물려준 재산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고, 재산이 많을수록 탕진하는 속도도 빠르다. 진시황은 만세로 帝業(제업)이 이어질 줄 알았지만, 晋(진)나라는 고작 2대째에 망하고 말았다.
 
 
  규모 경제와 원포 경영
 
  <시골에 살면서 원포를 가꾸지 않으면 천하에 버린 사람이다. 나는 國喪(국상)으로 바쁜 중에도 오히려 만송 열 그루와 노송나무 한 쌍을 심었다. 만약 지금 내가 집에 있었다면 뽕나무가 수백 그루에 접 붙인 배가 몇 그루요, 옮겨 심은 능금도 몇 그루는 되었을 것이다. 닥나무는 이미 밭을 이루었겠지.
 
  옻도 이미 남의 밭두둑까지 뻗어 나갔을 것이다. 석류도 벌써 여러 그루이고, 포도는 몇 시렁은 되었을 게다. 파초도 너덧 뿌리는 되었겠지. 쓸모없는 땅에는 버드나무가 대여섯 그루쯤 될 테고, 酉山(유산)의 소나무는 하마 몇 자는 자랐을 게다.
 
  너희는 이 중 한 가지라도 해 보았느냐? 너희가 국화를 심었다고 들었다. 국화 한 두둑이면 가난한 선비의 몇 달치 양식을 지탱할 수가 있다. 꽃을 보는 것뿐이 아닌 것이다. 생지황·반하·도라지·천궁 등속과 쪽풀과 꼭두서니 따위는 모두 마음을 쏟아야 한다.
 
  채마밭을 정돈할 때는 모름지기 아주 평평하고 반듯반듯하게 해야 한다. 흙손질도 몹시 곱고 깊게 하여 가루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씨를 뿌리는 것은 아주 고르게 하지 않으면 안되고, 모종은 매우 널찍하게 심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된다. 아욱과 배추, 무를 한 구역씩 기르고, 가지와 고추 등속은 각각 구별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마늘과 파를 심는 데 가장 힘을 기울이는 것이 옳다. 미나리 또한 심을 만하다. 한여름 석 달의 농사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 비용을 절약하면서 근본에 힘쓰고, 아울러 아름다운 이름마저 얻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원포를 경영해서 집안을 일으키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이런 것들은 비용이 얼마 들지도 않고, 근본을 북돋워 주며, 삶의 운치도 더해 준다. 그저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벌이는 일이 아니다. 군색하지 않게 삶의 품위를 지켜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다.
 
  다른 글에서 다산은 이렇게 원포를 잘 운영하면 집에서 먹을 수도 있고 내다 팔아 돈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 가정 경제에 큰 보탬이 된다고 했다. 도회지 곁에 과일 나무 열 그루를 심으면 한 해에 엽전 50꿰미의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채소 몇 이랑을 가꾸면 1년에 20꿰미의 이득을 볼 수 있다. 뽕나무 40~50그루를 심어 누에 5, 6칸을 기르면 30꿰미의 소득원이 된다. 이렇게 매년 100꿰미를 얻게 되면 춥고 굶주리는 일은 면할 수가 있다고도 했다.
 
  또 못이나 방죽을 파서 물고기도 기른다. 문전옥답에는 십여 개 두둑으로 구획을 나눠 사계절 채소를 차례로 심어 먹을거리를 공급한다. 약초도 규모 있게 잘 심으면 높은 부가가치로 가계에 큰 도움을 준다.
 
 
  게으른 아내는 敗家의 조짐
 
  다산은 특별히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을 강조했다.
 
  <아내가 게으른 것은 집안을 망칠 근본이다. 4경이 되기 전에 등촉을 끄거나, 창문이 훤해지도록 이불을 개지 않는 것은 모두 게으른 아내다. 타일러서 바뀌지 않는다면 내쫓아도 괜찮다. 뽕나무 400~500그루를 심어, 두 살이 되면 곁가지를 쳐 준다. 뒤엉킨 덩굴을 솎아 내고 옹이 진 것은 베어 버린다. 이렇게 하면 몇 해가 못 되어 담장보다 키가 커진다.
 
  따로 蠶室(잠실) 4~5칸을 지어, 칸마다 사방으로 터진 길을 낸다. 蠶箔(잠박)은 7층으로 만든다. 늘 쇠똥을 태워 준다. 서북쪽은 완전히 틀어막고 동남쪽으로 볕이 들게 해야 한다. 면화는 꼭 많이 지을 것이 없다. 다만 하루갈이 정도로 그친다. 따로 삼과 모시를 심어, 아내로 하여금 봄 여름에는 실을 잣고, 가을과 겨울에는 베를 짜게 한다. 부지런히 하면 실과 베가 가득 차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되면 흡족한 마음이 생겨나, 게으르던 사람도 절로 부지런하게 될 것이다.>
 
  윤윤경에게 준 글의 일부다. 부지런한 아내와 성실한 어머니는 한 집안의 기둥 같은 존재다. 게으른 아내는 敗家(패가)의 조짐이다. 성실과 근면으로 家用(가용)을 충당하고, 집안의 모범이 되어야 그 집안이 일어날 수 있다.
 
  어진 아내에게는 집안일을 내맡겨 두고, 미덥지 못하면 미리 단속하고 예방해서 큰일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다산은 여인네는 깨진 그릇 같아서 새는 구멍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남의 이잣돈을 꿔다 쓰는 여자는 반드시 한 집안을 말아먹을 사람이니 타일러서 말을 안 들으면 내쫓아도 괜찮다고까지 했다.
 
  씀씀이는 어찌해야 하는가? 엽전 열 꿰미 이상은 쉽게 쓰고, 엽전 1문이나 2문은 아껴 쓸 것을 주문했다. 큰돈을 아끼면 큰 이익을 꾀할 수 없고, 작은 것을 우습게 알면 헛된 낭비를 못 줄인다.
 
  이런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푼돈을 아껴 써야 목돈이 모인다. 목돈을 잘 굴려야 큰 이익을 꾀할 수 있다. 사람들은 늘 반대로 한다. 푼돈은 생각 없이 쓰고 목돈은 움켜쥐고 바들바들 떤다. 그러다가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목돈마저 날려 버린다. 재물을 가장 확실하게 보존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나?
 
  <형체 있는 것은 부서지기 쉽고, 형체 없는 것은 없애기가 어렵다. 스스로 자기 재물을 쓰는 것은 형체로 쓰는 것이다. 남에게 재물을 베푸는 것은 마음으로 쓰는 것이다. 형체를 형체로 누리면 다 닳아 없어지기에 이르나, 형체 없는 것을 마음으로 누리면 변하거나 없어지는 법이 없다.
 
  무릇 재물을 비밀스레 간직하는 것으로 베풂만한 것이 없다. 도둑이 뺏어갈까 염려하지도 않고, 불에 타 없어질까 걱정하지도 않는다. 소나 말에 실어 운반하는 수고로움도 없다. 그런데도 내가 능히 죽은 뒤에까지 지니고 가서 아름다운 이름이 천년토록 전해진다. 천하에 이 같은 큰 이익이 있겠느냐? 단단히 잡으려 들면 들수록 미끄럽게 빠져나가니, 재물이란 미꾸라지다.>
 

  역시 두 아들에게 준 글에서 한 말이다. 다산은 베풂과 나눔이야말로 재물을 잃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자못 힘 있는 말씀이다. 자취 없이 스러질 재물에 목숨 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재물이란 미꾸라지다
 
  재물은 미꾸라지 같다. 분명히 꽉 잡고 있었는데 미끌미끌 손가락 사이로 눈 뜨고 보고 있는 사이에 빠져나가 버린다. 차라리 나누고 베풀어서 도둑이 훔쳐갈까 걱정하지도 않고, 불에 타 없어질까 염려하지도 않으며, 그로 인해 아름다운 이름이 길이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부자로 사는 법이다.
 
  이렇게 다산의 부자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에 대해 읽어 보았다. 아파트에 사는 도시인들에게 원포를 경영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으니, 이것을 어떻게 현재에 적용하고 변용해야 할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부자로 사는 것은 남을 짓밟고 그 위에 군림하며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아니다. 재물은 만족이 없으니, 진정한 부자가 되려면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없다. 부자론이라는 제목에서 떼돈 버는 법을 기대했다면 미안한 노릇이지만, 떼돈은 재앙의 출발일 뿐이다. 가까이할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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