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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개를 촉구함
호 10:9-15
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호 10:9-15 / [타락은 전쟁을 초래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오, 이스라엘 백성들아, 기브아의 그 끔찍한 밤이 지난 뒤 오늘날까지도 너희는 음행과 타락의 죄악을 범하고 있구나! 너희는 옛날과 다름없이 지금도 나를 거역하고 있구나. 기브아의 그 극악무도한 무리들에게 전쟁이 닥쳐왔듯이 너희 반역자들에게도 전쟁이 닥쳐오리라. 10) 이제 내가 가서 너희를 치리라. 세계 만방의 군대를 모두 이끌고 가서, 너희들이 예전에 지은 죄와 지금 저지르고 있는 죄를 한꺼번에 징벌하리라.' 11)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설명한 비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에브라임은 곡식을 밟아 떠는 일에 익숙한 젊은 암소와 같았다. 그 일은 쉽고, 또 그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 곁을 지나가다가 그 목덜미가 힘있게 생긴 것을 보고 좀더 어려운 일을 시키고 싶었다. 유다에게는 쟁기질을 시키고 이스라엘에게는 써레질을 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12) 너희는 선한 행실의 씨를 뿌려라. 그러면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너희는 묵은 땅을 가는 농부처럼 다시 시작하여라. 이번에는 나 여호와에게 물어 보고 시작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가서 온갖 좋은 복을 쏟아 부어 주겠다.' 13) [이제는 끝장이 났다] 그러나 너희는 부정과 불법을 심어 온갖 범죄의 열매를 무성하게 키워 냈다. 또한 거짓을 신뢰하여 전쟁 무기와 막강한 병력만이 나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바란대로 이제 그 보상을 온전히 받게 되리라! 14) 네 나라의 모든 도시에서 전쟁이 터지고, 산성들이 무너져서 모두 ㄱ) 살만왕이 파괴한 벧아벨처럼 될 것이다. 그때에는 어미와 자식들이 함께 던져져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ㄱ. BC 740년 경 길르앗을 침입한 모압 족속의 왕 살만으로 보인다) 15) 이스라엘 백성아! 타락할 대로 타락한 너희들에게 내가 이같이 벌을 내리리라. 전쟁이 시작되는 날 동이 트기가 무섭게 이스라엘 왕이 죽어 없어지리라.
호세아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 돌아와 슬퍼하며 애통하고 진실된 회개를 촉구합니다.
징계를 선언하시는 하나님(9-11)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기브아 시대부터 범죄하였다고 말하는데, 기브아 시대의 일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레위 사람의 첩을 강간하여 죽게 한 사건을 말합니다(삿 19:22-30). 이렇게 시작된 도덕적 타락이 끊어지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내려왔습니다. 호세아 선지자 당시까지 기브아 시대와 같은 흉악한 심판(삿 20:1-21:25)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참으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때가 되어 징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10; 벧후 3:9).
하나님께서 참고 기다리신 것은 에브라임이 마치 처음 길들이는 암소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받아 훈련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시간이 지나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가증한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아름다운 목에 예속과 메임의 상징인 멍에를 지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교만히 죄 가운데 행하면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어려움을 주십니다(신 8:5; 요 15:2; 계 3:19).
호세아의 권면(12-15) 호세아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선포합니다. 백성들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이기 때문입니다(전 3:1-8).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하는 시간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어 왔습니다(13).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으며,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지금이라고 호소합니다. 모든 죄악된 행동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을 위해 하나님을 찾고, 그 앞에서 서로 변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사 1:18-19). 그렇지 않으면 살만이 벧 아벨(아벨의 집, 성읍)을 무너뜨린 것처럼 산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합니다. 살만은 이스라엘 정복한 앗수르 왕 살만에셀 5세나 사마리아 함락 전이라면 살만에셀 3세를 말합니다. 이처럼 세상 권력을 의지하는 우상 숭배는 결국 멸망을 가져 옵니다.
적용: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 권력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세속적인 우상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죄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으로부터 끊임없이 인류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를 진정한 구주로 영접한 후에도 영, 혼, 육, 심장, 폐 부분까지 여지없이 침투합니다. 때문에 복음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회개의 복음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죄를 철저하게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을 깨닫게 하십니다. 또한 그 아들을 속량의 제물로 내놓으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과감하게 드러내 주시는 또 다른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진정한 회개를 기다리십니다. 공회에서의 죄는 공개적 회개, 은밀한 죄는 골방 회개, 관계로는 상대적 회개가 생명 얻는 진정한 회개입니다. 사죄의 은총이 얼마나 유쾌한지 우주를 얻은 것과 같은 기쁨입니다.
< 설 교 >
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세아 10:9-15
죄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은 반드시 보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아래 지금 세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눈에는 죄에 대한 보응이라는 원칙이 가볍게만 보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이 없이도, 죄에 거하면서도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9-10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시대로부터 범죄하였거늘 무리가 기브아에 서서 흉악한 족속을 치는 전쟁을 거기서 면하였도다 내가 원하는 때에 저희를 징계하리니 저희가 두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저희를 치리라”는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이 기브아 시대부터 범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지내왔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이스라엘을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가 되면 분명히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마치 심판이 없는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죄에 대한 심판을 말하면 단지 엄포로만 듣는 분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잘 지내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죄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보응하실 때를 기다리고 계심을 선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죄는 무엇입니까? 12-13절을 보면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의를 심어 긍휼을 거둘 존재로 삼으셨는데, 정작 그들은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한 고발이고, 오늘 우리를 향하신 고발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다는 것은, 그들이 엄청난 악행을 향하였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엄청난 악행이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살인 강도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악행은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둔 것인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길과 자신의 용사의 많음을 의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 자신들의 길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힘을 의지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악행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의 이 악행의 길에서 벗어나 있지를 못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입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긍휼이 거두어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 자기를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그들에게 의를 심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에게서 긍휼을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심으신 의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약속에 의해 존재하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심으신 의를 바라봤다면 자기들의 많은 용사를 의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사의 많음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들을 굳게 세우는 것이며 결국 자신들이 의지할 것도 약속임을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범죄하는 자신들이 존재하는 것이 곧 약속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에는 긍휼이 담겨 있기에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앎으로서 하나님의 긍휼을 높이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야 말로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악을 밭갈았습니다. 의가 아니라, 약속이 아니라 용사를 바라본 것입니다. 용사의 많음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둔 것은 죄입니다. 긍휼이 아니라 용사의 많음을 의지한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으신 의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심으셔서 긍휼을 거두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심으신 의를 바라보는 신자는 자연히 하나님의 의가 오셔서 자신을 살렸음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에는 자신의 힘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 역시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긍휼과 자비의 결과임을 알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을 거두는 것이고 이것이 참된 신자에게서 거두어지는 열매입니다.
그런데 의를 보지 않을 때 자신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행하는 것을 신앙으로 여기게 됩니다. 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을 밭 갈고 죄를 거두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거두고자 하는 긍휼이 아닌 자신의 능력과 열심을 내보이는 것이 악이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새로움은 나의 의 없음을 알고 주님의 의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묵은 땅이 새롭게 될 때 여호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의를 내 속에 두심으로써 내가 주님의 긍휼 아래 살고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긍휼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의 열매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려면 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의 없음을 애통해 하면서 하늘의 의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묵은 땅이 기경되는 것입니다.
묵은 땅 그대로라면 하늘의 의를 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필요성을 느끼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 없음에 대한 애통이 없기에 하늘의 의 역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세상 것이 있기에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만 여길 뿐입니다. 이것이 묵은 땅의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악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오늘도 묵은 땅과 같은 우리의 심령을 갈아엎으면서 회개케 하시고 내 속에 의가 비처럼 내리게 하십니다. 의가 비처럼 임하는 것은 곧 주 예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의 것으로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애통하는 것이며 세상의 것으로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시기 위해 날마다 묵은 땅을 기경하시는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밭을 갈라
호세아 10:9-15 / 박조준 목사
한번은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을 향해서 여러 가지 진리를 가르치시면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러 들에 나갔습니다. 더러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얼마 안되어 새가 와서 그 씨를 주워 먹었습니다. 더러는 돌작밭에 떨어졌습니다. 곧 싹이 나서 자라기는 했는데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에 햇빛이 쬐니까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습니다. 싹이 나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만 가시덤불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숨이 막혀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옥토에 떨어졌습니다.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잘 자랐습니다.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사람의 마음을 비유해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말하자면 밭과 같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유대 땅에 가보면 밭이랑이 좁고 길며, 밭과 밭 사이에는 작은 길이 있습니다. 길에 서서 씨를 뿌리기도 하는데 씨가 길에 떨어져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씨 뿌리는 법이 있는데, 나귀 뒤에다 씨자루를 싣고 자루 모퉁이를 잘라 구멍을 내고 나귀를 끌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씨를 뿌립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길가에도 씨가 뿌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씨가 길가에 뿌려지면 얼른 새들이 날아와서 주워 먹어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마음은 기독교의 진리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대시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기독교는 우리 인간 생활에 적응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기독교 없이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독교를 귀찮게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의 사는 것이 언제나 평탄하기만 하다면, 어려움이 없고 눈물이 없다면 몰라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래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힘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리고 흙이 얇은 돌작밭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이 밭은 모두가 돌은 아닙니다. 흙이 얇은 밭에 돌이 깔려 있습니다. 갈릴리지방의 땅이 그렇습니다. 여기 저기 밭 가운데 바위가 나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씨가 떨어지면 싹이 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땅이 너무 얇기 때문에 뿌리가 내리지 못해서 양분을 땅에서 흡수하지 못하므로 결국 해가 나면 얼마 안가 말라죽고 맙니다.
무슨 일이나 시작하는 것이 끝내는 것보다 쉽습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대개가 도중에 포기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도중에 실패할 때 그것이 뜻하는바가 무엇이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를 생각지 못했을 때 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생활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서 너무 쉽게만 생각하다가 당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팔레스틴의 농부들은 퍽 게을러서 가시넝쿨을 윗부분만 잘라 불살라 버립니다. 얼른 겉으로 보면 퍽 깨끗해 보이지만 땅 속에는 아직도 가시넝쿨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가시넝쿨이 다시 무성해집니다. 그런데 가시넝쿨은 곡식보다 더 빨리 자라기 때문에 씨의 생명을 막아버리고 맙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의 염려와 근심, 걱정의 넝쿨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부드럽고, 돌도 없고, 가시덤불도 없어서 씨가 떨어지면 움이 나고 싹이 자라 열매를 맺게 하는 땅입니다. 그런데 갈릴리와 같이 아주 메마른 땅에서 이런 결실을 얻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언제나 삶을 통해 나타나야만 합니다. 기독교는 사색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길가와 같이 딱딱한 마음, 많은 사람이 내왕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돌작밭과 같이 겉은 부드러운 흙이 있지마는 속에는 돌이 많은 옅은 마음이 있습니다. 가시덤불이 덮인 흙과 같이 여러 가지 세상의 염려와 자기의 욕심으로 싸인 험한 마음이 또한 있습니다. 그리고 옥토와 같이 부드러운, 돌도 없고 가시넝쿨도 없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을 보니까 이 네 가지 마음 이외에 다른 한 가지 종류의 마음 밭이 있습니다. 그것은 묵은 밭과 같은 마음입니다. 호세아 10장 12절 말씀을 보세요.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했습니다. 예레미야 4장 3절에 보면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했습니다.
여러분, 묵은 땅은 어떠한 땅입니까?
요사이 도시 변두리에 나가 보면 밭은 밭인데 오랫동안 농사를 하지 않고 버려 둔 땅이 있습니다. 본래는 부드럽고 좋은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돌보지 않고 그냥 버려 두어서 땅은 굳어지고 잡초가 무성한 묵은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땅에 그냥 씨를 뿌려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너희 묵은 땅을 갈라"고 하나남이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나가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네 가지 종류의 마음 밭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안에 들어오면 이 네 가지 밭 이외에 묵은 땅과 같은 마음 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묵은 땅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이 묵은 땅은 본래부터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본래는 부드럽고 기름진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쟁기도 대지 않고 그냥 버려 두니까 이렇게 땅이 굳어지고 잡초가 우거지게 되었습니다. 묵은 땅에 비가 내리고 햇빛이 쪼이면 세월이 갈수록 땅은 더 굳어만 갑니다. 이 묵은 땅에는 본래 아름다운 곡식이 자라 많은 열매가 맺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묵은 땅에는 곡식은 별로 보이지 아니하고 여러 가지 보기 싫은 잡초만 우거져 있습니다. 하도 오랜 세월 묵은 땅으로 내버려 두어 돌보지 않으니까 이제는 가시 같은 것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곡식으로 덮인 옥토야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묵은 땅, 잡초로 우거진 땅은 보기도 싫습니다.
물론 묵은 땅에 열매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 곡식 씨앗을 뿌려서 싹이 난다고 해도 무성한 잡초 때문에 숨이 막혀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묵은 땅은 버려진 쓸모 없는 땅입니다.
묵은 땅도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을 매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밤마다 주시는 이슬도 받고 있습니다. 때로는 흠뻑 땅을 적셔 주는 비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묵은 땅은 받기만 하지 거기에 대한 아무런 보답이 없습니다. 햇빛도 그저 받습니다. 이슬도 그저 받습니다. 비도 그저 받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쓸모 없는 땅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쓸모 없는 것만 아니고 장해가 되는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묵은 땅 옆에 밭이 있으면 묵은 땅에 자라는 잡초의 씨가 날아와서 좋은 옥토에 떨어져 옥토에도 잡초가 자라게 만듭니다. 묵은 땅은 쓸모 없을 뿐더러 많은 곡식을 내는 좋은 밭에 지장을 주고, 더럽히고, 방해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묵은 땅은 마귀를 위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옥토 같은 마음에 맺는 열매는 성령의 열매라고 하면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묵은 땅이 되면 육체를 따라 살기 때문에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묵은 땅은 본래는 옥토였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하는 동안에 그 마음이 황무해지고 굳어졌습니다. 좋지 않은 습관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습관이 뿌리가 점점 깊어져서 이제는 어떻게 하기 어려워졌고, 완고해지고 고집만 세졌습니다. 여러 가지 잡초, 그러니까 세상의 생각과 사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교만한 마음, 비열한 생각으로 마음의 밭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묵은 땅과 같은 마음은 하나님의 햇빛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슬도, 단비도 쓸데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없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마음속이나 그 생활에 아름다운 결실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습니다.
열매가 없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묶은 땅처럼 된 마음이 오래 되면, 좋지 못한 지식, 좋지 못한 씨를 옆에 있는 옥토와 같은 마음에 퍼지게 해서 좋은 곡식을 맺는 옥토까지 더럽혀서 쓸데없고 방해가 되는 묵은 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묵은 땅과 같은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지 말라" 했습니다. 먼저 묵은 "땅을 갈라"고 하십니다. 무슨 씨를 뿌리기 전에 묵은 땅을 예리한 부삽으로 깊이 갈아엎어야 합니다. 잡초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가시덤불도 뿌리까지 뽑아 불태워버려야 합니다. 얕게 갈면 안됩니다. 깊이 갈아서 속에 있는 뿌리까지 뽑아서 얼른 불살라 버리고, 혹은 땅에 깊이 파묻어 썩혀 버려야 합니다.
밭을 가는 것을 농경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을 심경(心耕)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마음의 밭을 부지런히 가는 인생의 신실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 국민의 마음 밭은 어떻습니까? 묵은 땅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몹시도 거칠고 메마르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고 거칠어졌습니다. 잡초 투성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독버섯과 벌레가 수두룩한 황폐한 마음 밭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하늘도 오염으로 더러워졌습니다. 연기와 해독가스로 하늘의 맑은 공기가 혼탁해졌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독가스와 하수도의 구정물 때문에 맑은 강물이 흐려졌습니다. 대기와 강물의 오염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마음의 오염이요, 정신의 부패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더러워졌고, 양심이 오염이 되었고, 정신이 혼탁해졌고, 심령이 흐려졌습니다. 이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염된 마음을 씻어야 합니다. 부패한 양심을 아름답게 정화해야 합니다. 썩은 정신을 깨끗이 순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을 심어야 합니다. 싱싱한 풀을 가꾸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의 화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형형색색의 화초가 우거지고 깨끗한 향기가 풍기는 마음의 화단을 저마다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갈고 아름다운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의 밭을 어떻게 가꿀까요?
거짓의 독버섯을 뽑아 버리고 진실의 씨앗을 뿌립시다. 우리 마음의 밭도 그냥 내 버려 두면 거짓과 허위의 독버섯이 우리의 생명의 근본을 좀 먹습니다. 거짓과 허위의 독버섯이 무성한 밭을 상상해 보세요. 그것처럼 무섭고 그것처럼 추악한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진리의 씨앗이 싱싱하게 자리는 푸른 마음의 밭을 생각해 보세요. 그처럼 아름답고 그처럼 믿음직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탐욕의 잡초를 뽑아 버리고 사랑의 화초를 심어야 합니다.
이기심과 배타심, 허영의 악취가 가득한 탐욕의 잡초를 우리 마음 밭에서 먼저 뽑아야 합니다. 협동과 친절, 화목의 맑은 향기가 풍기는 사랑의 화초로 가득 찬 마음의 화단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인생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사랑의 화단을 가꾸는 인생의 성실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만의 해충을 다 없애버리고 상록수를 심어야 합니다. 그 넓은 그늘은 우리의 휴식처가 되고, 그 무성한 가지는 시원한 바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합니다. 우리의 마음 밭에 겸손의 나무를 심읍시다. 교만은 불쾌를 낳고 겸손은 화목을 낳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거칠고 황폐해졌습니다. 메마르고 가는 곳마다 악취가 심합니다. 마음의 밭을 버려두면 묵은 땅이 되고, 잡초가 우거지고, 색은 자꾸만 더러워집니다.
우리는 쉬지 말고 마음의 밭을 항상 푸르고 아름답게 갈아야 합니다.
저는 농민화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고갱의 '씨 뿌리는 농부'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한 젊은이가 넓은 밭에서 열심히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의 몸에는 생기가 충만하고, 그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하고, 그의 팔과 다리에는 씩씩한 기운이 넘쳐흐릅니다. 단순하면서도 힘찬 그림입니다. 소박하면서도 뜻이 깊은 그림입니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씨, 말이라는 씨, 행동이라는 씨를 뿌리면서 살아갑니다.
파종에는 시기가 있습니다. 씨앗은 봄에 뿌려야 합니다. 추운 겨울 얼어붙은 땅에 아무리 씨앗을 뿌려도 결코 자라지 않습니다. 딱딱한 콘크리트나 바위에 씨를 뿌리면 돋아나지 않습니다. 씨앗은 봄에 뿌려야 합니다. 봄에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을에는 수확을 거두어들입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인생의 밭을 갈고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사람은 저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우리는 심지 않고 거두려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둡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알아야 합니다. 거두는 시기는 종자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봄에 심어 여름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가을에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의 농사는 일년 후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10년 후에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젊어서 뿌린 씨앗을 늙어서 거둡니다. 당대에 거두지 못하고 그 다음 대에 가서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뿌린 씨를 자식이 거두고, 자식이 뿌린 씨를 손자가 거둡니다. 이 세상에서 뿌린 씨를 저 세상에서 거둡니다.
오늘의 세대가 열심히 일하면 다음 세대가 번영의 결과를 거둡니다. 과거의 세대가 게으르고 방탕했으면 오늘의 세대가 불행과 파멸의 결과를 거둡니다. 현재는 과거의 아들이요 미래의 어머니입니다. 지난날의 나의 행동이 오늘의 나를 결정하고, 오늘의 나의 행동이 내일의 나를 지배합니다.
개인이건 가정이건 국가이건, 흥망성쇠는 우리가 어떤 씨앗을 뿌리느냐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너희 묵은 땅을 갈라."
묵은 땅을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갈아야 합니다. 아파도 오랫동안 사랑해 오던 죄악의 깊은 뿌리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기 전에는 씨를 뿌려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복음을 전할 때 제일 먼저 부르짖은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습니다.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는 복음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을 볼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왜 전에는 열매를 맺었었는데 요사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묵은 땅에는 아무리 씨를 뿌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묵은 땅이라도 갈아엎어 부드러운 땅이 되면, 잡초를 뿌리째 뽑아 버리면, 그 다음에는 옥토가 되어 씨를 받을 수 있고,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옛날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선지자 중에 요나를 기억하시지요? 요나는 본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마음이 옥토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자기 생각과 고집이 강퍅한 마음으로 굳어졌습니다. 묵은 땅처럼 되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명령도 어기고 반대 방향으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배 밑창에 내려가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이 큰 풍랑의 원인이 누구 때문인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걸려 바다에 던지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큰 고기 뱃속에 들어가 그의 굳은 마음이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기 뱃속에서 묵은 땅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주셔서 옥토에 씨를 뿌려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외치게 되었고 니느웨 온 국민이 회개하는 큰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묵은 땅이라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래 열매 맺지 못했다고 실망할 것 없습니다.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성령의 모습으로 내 마음 밭을 갈게 하면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임어당(林語堂)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은 중국에서 나서 오래 미국과 유럽에 여행하고 영어와 중국어로 많은 책을 쓴 분입니다. 그 분은 목사의 아들입니다. 샹하이에서 기독교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베이징에 가서 교수로 있을 때 점점 딴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철학을 기독교 철학보다 더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곁으로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이성대로, 자기 힘으로 살면 되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하게 되고, 인본주의 사상이 점점 들어가 결국 유물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자기 부인을 따라 뉴욕에 있는 메디슨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다가 그 목사의 설교에 감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 번 가고, 또 가고, 여러 번 가는 중에 그 마음에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온전히 과거를 청산하고, 그 교회에 입교해서 교인 생활하다가 일년 후에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온 세계에 자기는 다시 기독교로 돌아왔다는 것을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밭이 묵어 있었고 잡초가 났었습니다. 그러나 그 묵은 땅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씨앗이 그 땅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임어당 박사는 온 기독교는 물론 온 인류에게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된 것입니다.
"너희 묵은 땅을 갈라." 묵은 땅은 갈아엎어 옥토가 되게 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그냥 두는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묵은 땅이라도 다시 갈면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농사해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묵은 땅을 갈고 곡식을 심으면 특별히 농사가 잘됩니다. 묵은 땅이 다시 은혜를 받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우리가 묵은 땅을 갈면 하나님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충만히 내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묵은 밭을 갈기를 바랍니다.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이게 주님을 찾는 길이다
1. 정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라.
* 지금은 너희가 주를 찾을 때이다.
* 우리는 두 말씀이 딱 붙어 있는 것을 통해 “주님을 찾는 것 =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라고 말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부분에서 좀 더 다양한 면이 있겠지만, 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을 때는 벧엘과 길갈과 단에서 금송아지 세워놓고 제사드릴 때, 수많은 산당과 깎아 만든 석상들 앞에서 풍성한 추수를 빌 때였는데...
* 하나님은 그걸 다 때려 부수고(묵은 땅을 갈아엎고), 여호와를, 진짜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시는 거라!
* 또한 하나님을 찾는 것을 ‘정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는’ 것이라고 딱 붙여서 말씀하셨으니...
* 호세아와 동일한 시대에 똑같이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한 아모스서를 보면, 하나님의 이 말씀이 정말 깊이 공감됩니다. 경제, 사법, 정치, 도덕 어느 것 하나 타락하지 않은 게 없는 모습이 쫘~악 펼쳐지는데요...
* 부정청탁, 저울 속이기, 부익부 빈익빈이 심각했고, 재판정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일반화 된 지 오래였고, 심지어 가난한 자는 없는 죄도 덮어쓰게 마련이었고, 부자들의 사치와 향락은 극에 달했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창녀에게 들어가는 도덕적 타락도 심각했던 시절이라...
* 이런 시대에 주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 = 정의와 사랑을 행하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아모스가 고발하는 그때랑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요? 거의 판박이죠..
* 이런 시대를 살면서 우리역시 “주님을 찾는 것 = 정의와 사랑을 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마음에 새기고, 행동으로 일상의 현장에서 주님을 찾아야 할 거라는...
* 분명 작년 가을과 겨울이 촛불 현장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났구요, 지난 봄 세월호 인양 현장에 계신 하나님을 만났고, 지난 5.18 기념식에서 유족을 따뜻하게 안아주던 문대통령 모습, 그 등 뒤에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죠. 양대 방송사의 노조파업에서 공의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역사를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정의와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내가 정의를 비처럼 내려주겠다”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아하! 하고 깊이 다가오게 되는 거라는~~
* 그래서 내 일상에서 매주일 교회를 찾아오시는 노숙자분들을 위해 겨울 옷가지라도 챙겨서 예배드리러 가고, 일상에 만연한 불의의 현장을 바로잡기 위한 시민감시활동을, 죽어가는 지구를 위해 내 생활 쓰레기를 다시 돌아보기도 하고, 경제정의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입법청원과 시민단체 활동 등등... 암튼 눈에 띠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그것보다는 쬐끔 더 힘을 써서^^) 정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는 일을 함으로써 거기에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또 예배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2. 그러나 너희는 밭을 갈아서 죄악을 심고 반역을 거두고, 거짓의 열매를 먹으니
* 지난 한 달간 호세아가 지속적으로 얘기하던 일들.. 또 제 묵상나눔에서도 지속적으로 언급했던 한국교회의 현재 모습들은 이러허니....ㅠㅠ
* 하나님은 오늘도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 살만이 침공해서 벳아벨을 파괴했던 사건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 때 사람들은 다 알아들었을 큰 사건이었겠죠.. 그 때 처럼 너희들도 꼭 같이 당하게 될 거다는 말씀...ㅠㅠ
*** 하나님이라고 진짜 이러고 싶어서 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이스라엘이 워낙 말해도 말해도 듣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진짜 어쩔 수 없이 매를 드신 건데요...
* 하나님의 진짜 마음은 바로 다음 11장8절에 절절히 흘러나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너를 버리려 하여도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하실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
* 지금 우리나라 우리 교회를 향해서도 하나님은 똑같이, 똑같은 어조로, 감정으로, 다가오시는 중임을 새겨봅니다.
* 지금 나가도 한참 잘못 나가있는 우리 한국교회가, 그 문화 속에 젖어서 호세아서의 말씀을 완전 딴 나라 얘기로 듣고 있는 수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이, 지도자들이 이제라도 제발, 묵은 땅을 갈아엎고, 여호와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동시에 나부터라도, 우리 가정, 우리 교회부터라도 지금 여호와를 일상에서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되길, 정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는 사람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세아 10장 12-15절
가. 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른다.
14절,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며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가 왕으로 있을 때에 선지가 호세아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죄에서 돌이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결국은 무서운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성도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의 말씀을 가벼이 보면 안 된다. 여기서 “살만이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초토화)와 “어머니가 자식이 함께 부셔졌도다”라는 말은 심판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요나 시대의 니느웨는 모범적인 사례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 15절에서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는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여기서 ‘벧아벨’과 ‘벧엘’ 그리고 ‘새벽’은 단순히 교인이 아니라 참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나. 문제는 교만이다.
13절,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직접적 또는 간접적 이유를 말하고 있다. 물론 심판의 직접적 이유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간접적인 이유는 교만인데 이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여기서 하나님은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는 말씀을 통해 교만이 죄의 원인임을 밝히신다.
* 사람이 자신의 길을 의뢰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자신의 길(데레크, 삶의 방식)을 의뢰하는(바타흐, 확신하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몰두하여 하나님보다 앞서 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법궤를 앞세우고 그것의 뒤를 따르라고 하셨다(수3:3참조). 그러나 사사시대에는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고, 그때는 결국 암흑시대가 되었다(삿17:6참조). 사탄의 타락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한 것에 있었음을 참조하라(사14:12-14참조).
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
12절,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 교만은 죄를 가져오고, 죄는 심판을 불러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공의를 심어 인애를 거두라고 말씀하신다.
* 여기서“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땅을 갈아엎으라”라는 것이다. ‘기경하다’(니르)는 ‘땅을 쟁기로 갈아엎다’라는 뜻이다. 땅을 쟁기로 갈아엎어야 잡초의 뿌리가 죽는다.
* 묵은 땅(니루)은 단순히 ‘오래 묵은 땅’이나 ‘길가와 같이 딱딱한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마13:19참조). 묵은 땅은 ‘기경한 땅’이지만 지금까지 계속하여 악을 심고 죄를 거두어들이던 땅을 의미한다. 따라서 묵은 땅은 악을 심고 죄를 거두는 일에 만성이 된 사람의 마음을 비유하는 것이다.
* 죄를 짓는 일에 만성이 되면 결국은 감각을 잃는다. 바로가 강퍅하게 되는 단계는 첫째 ‘고집하다’(하자크 칼형)이고, 둘째는 ‘둔감해지다’(카베드 히필형)이며, 셋째는 ‘강퍅하게 하다’(하자크 피엘형)이다. 즉 고집부리다 보면 둔감해지고 결국 강퍅하게 되므로 계속 갈아엎어야 한다.
라. 공의를 심으면 인애를 거둔다.
12절,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는 상당히 부유한 시대였다. 백성들은 자신의 신념에 차 있었으며, 풍요로 인해 자만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었다.
* 그래서 하나님은 돌이켜 회개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악을 심어 죄를 거두고 거짓을 먹던 사람들에게 마음의 밭을 갈아엎고 이제는 공의를 심어 인애를 거두라고 말씀하신다. 공의를 심는 것이 사는 길이다. 또한 하나님은 공의를 심는 사람들에게 공의를 비처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공의를 행하기가 어려운 일이므로 공의를 행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리시겠다는 약속이다.
* 여기서 ‘인애’(헤세드)는 ‘사랑’과 ‘질책’이라는 다른 뜻을 갖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공의를 심는 사람들은 사랑하시고, 악을 심어 죄를 거두는 사람들은 질책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이 될 것인지, 증오와 질책의 대상이 될 것인지는 어떤 것을 심느냐에 달려 있다.
죄악의 근원을 제거하라
호세아 10장 12-15절
가. 죄악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른다.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14절).
본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큰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호4:6참조). 선지자는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요란함’(솨온)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 황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끔찍하고 무서운 전쟁으로 인한 참상을 상기시킵니다. 여기서 ‘벧아벨’은 ‘하나님이 숨어계신 집’이란 뜻입니다. 전쟁의 날에는 마지막 보루까지도 처참히 무너진다는 암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를 그냥 넘어가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난 모든 것들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으십니다(출20:7). 예수님께서도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5:29). 죄악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릅니다.
나. 죄의 만성화가 심각한 문제이다.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13절).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여기서 ‘갈았다, 거두었다, 먹었다’는 모두 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죄에서 돌이킴이 없이 만성적으로 죄를 지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노아 시대에는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였습니다”(창6:11). 시편 1편에서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는” 죄의 점진적이고 만성화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시1:1). 죄가 만연하고 당연하듯이 행해지면 나중에는 죄에 대해 아예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르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양심이 타락한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시인은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고 탄식하였습니다(시11:3). 정의와 공평이 사라진 사회는 의인이 고통 받는 구조가 됩니다. 이처럼 죄가 만연하고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린 상태에서는 심판 밖에 달리 처방이 없는 것입니다.
다. 죄악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2절).
선지자는 심판을 앞두고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지만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살 길이 있다는 회복의 약속입니다. 여기서는 ‘묵은 땅’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묵은’은 의역인데 이는 단순히 ‘오래되고 안 쓰던’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묵은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고도 무감각하고 죄의 만성화로 인해 딱딱해진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살 길은 그런 완악한 마음을 제거하는 데에 있습니다. 기경하는 목적은 나쁜 뿌리를 죽이는데 있습니다. 그냥 놔두거나 적당히 기경하면 다시 독초가 생겨 아무리 좋은 씨를 심어도 자라지 못합니다. 죄악의 밭에는 아무리 공의를 심어도 소용이 없는 법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처럼 강퍅한 마음을 그냥 놔두면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굳은 마음을 철저히 뿌리 뽑고, 부드러운 마음을 심는 것이 진정한 회개요 개혁입니다(겔36:26참조). 하나님은 죄악의 근원을 제거하고 공의를 심으면 모든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큰 은혜를 받는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12절).
하나님은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애’는 ‘헤세드’인데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사랑’과 ‘증오’로 서로 정반대의 뜻입니다. 즉 우리의 열매가 사랑이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만 증오의 열매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5절에서도 “이스라엘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라고 경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망한다’(다마)도 두 가지 뜻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악을 행하는 사람은 새벽에 완전히 멸망한다는 뜻이 됩니다. 새벽은 하나님을 찾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은혜 받을 시간에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경고는 죄악의 결말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다른 하나는 묵은 땅을 철저히 기경하면서 공의를 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찾는 새벽이 기도의 시간이요 평강의 시간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남아있던 돌 같은 완고한 마음을 철저히 기경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왕의 자리를 내어주었던 우상들을 깨버리고 공의를 심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단비가 내릴 것입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 10:12-15 /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자기 결단을 의미합니다.
1872년 10월 8일 시카고의 어느 교회당에서 무디(Dwight L.Moody) 목사님은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가 거의 끝날 즈음에 목사님은 수많은 청중들에게 “집으로 가서 이 중요한 일을 신중히 생각하여 보고, 다음 시간에 와서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결심을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온 도시가 소방차의 요란한 소리로 온통 소란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시카고’는 온통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 대화재로 인하여 전날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 중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불에 타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일이 일평생 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목사님은 그 때를 생각하면서, “나는 큰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께 오늘 결심도록 초청하고 강권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다른 설교를 듣기 전에 재림 하실지, 아니면 주님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 한 순간의 일들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결심한 것은 미루지 말고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끊임없이 변화하고 스스로를 개혁해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결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1:6-8절을 보십시오. 스스로의 결단이 없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결단이란 이처럼 중요합니다. 겸손하면서도 확고부동했던 다니엘의 결심은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응답을 얻어내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숫자와 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본문13절). 만일 이들이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묵은 땅을 기경하는 새로운 자기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 결단을 위하여 현실을 분별해야 합니다.
“묵은 땅”이란?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온갖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땅입니다. 묵은 땅은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서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잡초들이 무성해서 좋은 씨앗이 떨어져도 싹을 낼 수가 없습니다. 설령 싹을 낼 수 있다 하더라도 ꡔ씨 뿌리는 비유ꡕ에서의 돌짝밭이나 가시밭과 같아서 결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묵은 땅을 옥토로 만들기 전에는 결코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묵은 땅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는 묵은 땅의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판단이 올바른 처방을 내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사가 오진을 했다면, 처방 또한 잘못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을 봅시다. 본문 앞 쪽의 호세아10:1-2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경고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13대 왕인 <여로보암 2세> 때에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영적으로는 빈곤의 시대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그들은 오히려 분을 품고 호세아 선지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호세아는 누구보다도 이스라엘에 임박한 파멸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얼마나 큰 번영을 누렸었는가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물질적인 번영은 단지 그들의 영적인 타락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풍요와 번영을 우상의 제단을 꾸미고 우상을 섬기는 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그리고 한국 교회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지만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오히려 어리석은 부자처럼 세상에 도취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핑계 삼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현실의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기경한다.”는 말은, 땅을 깊이 갈아엎고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모든 부패한 사상과 악한 행실을 뒤집어엎어서 좋은 씨앗이 뿌려질 수 있도록 마음의 옥토를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두 마음을 품었으며, 자신의 계획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갈아엎어야 할 묵은 행실들입니다.
1. 마음의 땅을 기경합시다.
호세아10:2절을 봅시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헐으시리라.”라고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은 온갖 잡초들로 무성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섬겼다가, 바알 신도 섬겼다가 하는 마음의 정함이 없었습니다.
신명기6:5절이나 마태복음22:37절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까지 다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전인적(全人的)인 섬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마음을 품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해서 섬겼습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얼마나 더 세상이 복잡해졌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온갖 세상사들로 마음이 얽혀 있어서, 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불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채,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잡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묵은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야고보서4:4절에서,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2. 삶의 땅을 기경합시다.
하나님을 모르던 옛 된 삶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이런 세상적인 삶의 특성은 “약육강식(弱肉强食)”, 즉 강한 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이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로 많은 물질을 모으고 힘을 과시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살려고 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자기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인 <다윗> 왕도 이 유혹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로 자리를 잡아가자, 은근히 힘을 과시하고 싶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력을 점검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심히 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을 의지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너무 타산적으로 변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삼고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세상의 환경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관점과 자기중심적인 의지를 기준으로 한 신앙생활을 청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사람으로서 옛 사람의 묵은 삶의 방식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 벧후3:13-14,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써라.”
3. 기경된 땅에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기경한 땅에는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만일, 마음 밭을 옥토로 가꾸어 놓고 비워 둔다면, 잡초는 더욱 무성하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의를 심는다.”는 것은 마태복음6:33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심는 것’입니다. 긍휼이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할 때 나타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만일 기경한 땅을 비워둔다면 처음보다 더 악한 환경이 될 것입니다.
- 눅11:24-26, 벧후2:20 이 두 곳을 꼭 찾아보십시오.
4. 씨를 뿌릴 때는 적절한 시기를 따라야 합니다.
씨앗은 아무 때나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각종 작물마다 적절한 시기가 있습니다. 파종 시기가 지나가면, 아무리 옥토라 할지라도 경작이 되지를 않습니다.
신앙도 기회가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 기회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비유를 아시지요? 그 부자는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영의 삶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 기회를 간청했지만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에서’도 역시 장자의 권한을 한 그릇 음식과 바꾸었고, 아버지의 축복을 동생에게 빼앗긴 후, 뒤늦게 장자의 축복을 구했으나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5:6절의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는 말씀처럼 믿음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 여호와를 찾을 때며, 믿음의 성장을 나타내야 할 때입니다.
적절한 시기에 기경이 되면, 하나님께서 의를 비처럼 내려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적절한 때의 적절한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묵은 땅의 기경은 은혜를 누리기 위한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잘 돌아보고 묵은 마음과 삶을 기경하고 좋은 씨를 뿌립시다. 그리하여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듯, 때를 따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
호세아 10:12-15 / 크로스교회
본문 12절에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같이 너희에게 내리시리라”고 호세아 선지자는 말합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호세아는 외칩니다. “묵은 땅”은 오래 된 땅을 말합니다. 묵은 밥은 밥통에 밥을 넣어두고 잊었습니다. 손을 대지 않은 채, 시간이 많이 흘러갔습니다. 한참 후에 우연히 발견하였을 때 이미 밥은 상해 있습니다. 곰팡이가 서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묵은 밥입니다. 묵은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땅은 오랫동안 그대로 두고 사람들이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 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가시와 엉겅퀴가 마구 자란 돌짝밭으로 아무 쓸모없는 땅입니다. 이 땅 아래에는 쓴뿌리가 크게 뻗어서 곡식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땅입니다.
오늘 본문 호세아에서 “묵은 땅”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13절에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묵은 땅은 자기 길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길을 의지하였고 자기들의 용사가 많은 것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착실히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일예배도 드리고 금요기도회도 참석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나름대로 열심히 믿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 길을 주장합니다. 내 길이란 자기 나름대로 사는 생활 방식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꾀, 자기 욕심으로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갑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무도 손 댈 수 없는 묵은 땅입니다. 나도 손대지 못하고 내 식구들도 손대지 못하고 내 교회 목사도 손대지 못하는 땅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자기 나름의 길을 갑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이사야 53:6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양은 매우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길을 가지만 쉽게 길을 잃는 짐승이 양입니다. 인간은 양과 같습니다. 자기 딴에는 착하게, 바르게 자기 길로 달려가지만 실제로는 잘못된 길로 갑니다. 제 각각 자기 길이 있습니다. 자기가 잘났고, 똑똑하고, 대단합니다. 자기 생애는 자기가 책임집니다. 자기 자신이 최선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꾀이고, 자기 처세술입니다. 이것이 가장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매진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길이냐? 내가 보기에 바른 길이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고 잠언 16:25에서 경고합니다. 자기 보기에 착하고 올바르고 바른 길로 오랫동안 계속 살아왔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바른 길이 아니면 죽음의 길로 끝납니다.
이스라엘이 고집하는 길이란 바로 이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예배도 잘 드립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도 잘 감당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세상은 돈을 좋아합니다. 돈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고, 골프도 치고, 자식 대학도 보냅니다. 세상에서는 돈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세상은 군사력이란 힘을 좋아합니다. 나라가 강해야 튼튼하여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돈을 좋아하고 힘에 굴복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실제 삶에서는 믿지 못합니다. 입으로는 항상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으로 오랫동안 젖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묵은 밭입니다. 오랫동안 마음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상태로 그대로 놓아 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 해도, “I don’t care”라고 말합니다. my way로 달려갑니다. 계속 세상적인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돈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믿지 않고 실제적인 삶에서는 내 잔꾀를 의지합니다. 두 주인을 섬깁니다. 한 주인은 하나님이고 또 다른 주인은 돈입니다. 두 남편을 섬깁니다. 하나님도 섬기지만 자식도 섬깁니다. 천국도 좋지만 이 세상이 너무나 달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계속 찾아와도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 내 계획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디 감히 내 것에 손을 대십니까? 안됩니다.” 내 마음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해 둡니다. 내 생각대로 둡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의 말씀을 듣고도 들은 척도 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을 관통하여 삶의 자세를 바꾸는데까지 나가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는 은혜를 받습니다.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행동은 세상적입니다. 하나님 없는 자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 말씀의 권세를 가로 막습니다. 내 생각과 내 계획으로 그의 말씀을 가로 막습니다. 그것이 바로 묵은 땅입니다. 기경하지 않은 땅입니다.
여기에서 “땅”이란 사람의 마음을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온갖 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들이 내 마음에서 오랫동안 자리 잡았습니다. 더러운 먼저가 뿌옇게 쌓여 있습니다. 그래도 이것을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냥 방치해 둔 것입니다. 딤후 3:2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여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령합니다. 자기 사랑, 돈 사랑, 자기 자랑, 자기 자만,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모욕적인 말을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 앞에 무릎꿇지 않을 장사가 없습니다. 이것들은 내 마음 밭에 뿌려진 잡초들입니다. 그것이 무성하여 가시와 엉겅퀴를 냅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굳어지고 굳어져서 그것이 나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 습관이 쌓이고 쌓여서 나의 기질이 되고 나의 성품이 되고 나의 인격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 몸의 뼈와 살에 달라 붙었습니다. 내 딴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말하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고 몸에 젖어온대로 말합니다. 이 젖어지고 젖어지고, 묵고 묵어서, 찌들고 찌들어서, 곰팡이가 서려 있습니다. 나는 내가 옳다고 하는 나의 사고 방식이 나를 사로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엄청난 교만입니다. 이 교만에서 나오는 고집이 대단합니다. 황소고집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꺾을 수 없습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선합니다. 나 혼자 선하다는 생각이 나를 이끌어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습니다. 나만 옳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왜 간섭이냐 그냥 지나가자, 적당히 넘어가자, 뒤집지 말라, 덮어두자.” 이런 저런 이유로 그것을 당연시합니다. 자기 방어와 자기 합리화, 자기 변명과 핑계로 아무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되어 먹어서, 손대지 마, 이대로 살다가 이대로 죽을래, 버려 둬” 묵은 땅을 갈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회개를 촉구하지만 내가 내 마음을 뒤집어 엎을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속이는 자입니다. 습관이 되었는데 그것을 당연시 하여 나를 속입니다. 묵은 땅은 자동차 운전시 사각지대와 같습니다. 앞을 보고, 옆의 back mirror을 보고, 뒤를 mirror로 보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지대가 바로 사각지대입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지역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묵은 땅입니다.
이렇게 묵은 땅을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됩니까? 13절 전반절에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길로 가는 것이 바로 그들이 악을 밭에다 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죄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은 바로 죄를 범하는 행위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바르게 산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고집하여도 묵은 땅을 그대로 두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리고 거짓 열매를 먹습니다. 무엇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돈도 벌고 자식도 잘 되고 몸도 건강합니다. “내 재주대로 하니 이렇게 맛있는 것 먹고 행복하게 살잖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는 국물도 없어.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스스로 무엇이 잘 된다고 착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거짓 열매라고 말합니다. 지금 잘 되는 것 같지만 거짓된 열매입니다. 마귀는 거짓 성공, 거짓 응답, 거짓 축복을 받게 하지만, 지금 달다고 끝까지 달지는 않습니다. 맨 마지막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 보아야 압니다.
14절에 “그러므로 그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훼파되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훼파한 것같이 될 것이라 그때에 어미와 자식이 함께 부숴졌도다”라고 호세아는 경고합니다. 묵은 땅을 그대로 두면 전쟁의 소용돌이가 그들에게 몰아칠 것입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의지하던 강력한 군사력이 하루 아침에 추풍 낙엽같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튼튼한 진지가 아무런 힘도 없이 다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바알을 숭배하고 돈을 사랑하고 세상의 방식대로 사는 어미가 그 자식과 함께 땅 바닥에 내동댕이 쳐질 것입니다.
마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얼마든지 “주여 주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불렀지만 주님의 대답은 냉담합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23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고집한다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참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그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이고, 예수님을 아는 자입니다. 내가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여도 내 삶과 생각과 말이 주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산다면 그 사람은 결국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고 “나는 너를 모른다”고 말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나를 떠나가라”고 소리지릅니다.
이런 참담한 심판은 경고입니다. 이 경고를 받고 이제 이스라엘은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기경하라”는 말은 “묵은 땅이나 생땅을 갈아 일으켜 논밭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묵은 땅은 내 생각대로 사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그냥 두면 안됩니다. 그 마음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적당히 넘어가면 안됩니다. 나에게 무슨 묵은 땅이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 마음 속을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무엇이 나에게 묵은 땅입니까? 내가 어디에서 어느 부분에서 슬쩍 지나치고 있습니까? 내가 나 자신을 적당히 봐주고 변명하고 핑계하고 합리화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매몰차게 인정 사정 봐주지 말고 예리하게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예수 잘 믿었는데 설마 내가 어떻게 되겠냐? 문제 없다. 괜찮다. 그까지 것 가지고 그러느냐?” 나는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나의 실체를 모릅니다. 나는 나를 적당히 덮으려고 합니다. 주님의 심판하시는 예리한 눈으로 나를 살펴야 합니다. 묵은 땅을 여지없이,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매몰차게 살펴야 합니다. 오랫동안 문제시 하지 않은 것을 들추어 내어야 합니다. 꿰뚫고 꿰뚫어서 반드시 찾아내어야 합니다.
묵은 땅을 찾았다면 거기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제거하고 뒤집어 엎어야 합니다. 내버려 두지 말고 손을 대어 땅을 갈아 엎으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쟁기짓을 하든지, 삽으로 땅을 파든지, 괭이로 단단하게 굳어진 마음을 파서 뒤집어 엎어야 합니다. “말씀은 그렇지만 나는 할 수 없어”라고 단정하고 말씀에 귀를 막아 버렸습니다. 그런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말씀과는 점차 멀어져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행동이나 말이나 생각을 기여코 고쳐야 합니다. 내가 말씀 앞에서 고질적인 병폐를 끊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두어서 좀처럼 버리기 어려운 것이라도 단호하게 버려야 합니다. 떨어졌다가 다시 달라붙고, 떨어졌다가 또 다시 달라 붙는 것도 매몰차게 짤라야 합니다. 내 행동에서, 말에서, 생각에서 도려내어야 할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내어야 합니다. 뒤집어 엎어야 할 부분은 뒤집어 엎어야 합니다. 천국에 가기 위하여 눈을 뽑듯이, 손을 자르듯이,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들을 매몰차게 차단해야 합니다(마 5:27-30).
오늘 우리가 이 높은 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려 찾아왔습니다. 그냥 왔다가 그냥 가면 그 모든 수고가 헛수고입니다. 우리가 죽도록 고생하고도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정말 바보짓을 한 것입니다.
내가 묵혀둔 마음 밭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번에는 꼭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갑시다. 내가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것은 내 부모나 내 조부모도 가지고 있었던 묵은 마음인지 모릅니다. 그 무서운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해방자 예수님입니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관습이나 악습이나 폐단을 생각하면 그것이 묵은 땅이라 가슴이 아프지만 주님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입니다. 벧전 1:18-19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망령된 행실을 주님께 고백하여 그의 피로 깨끗이 씻어서 그것을 고쳐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아 엎어야 합니다. 마음의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말씀은 그렇지만 나는 할 수 없어” 라고 단정하고 말씀에 귀를 막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과 점차 멀어져 가면 안됩니다.
“너의 오래된 악습을 고쳐야지~”라고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소리에 우리는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신경질을 내고 짜증이 나고 화가 폭발합니다. 성령님께서 감화, 감동의 손을 내밀었는데 내가 뿌리칩니다. “더 이상 간섭하지 마세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요.” 그렇게 박대를 받으면서도 성령님은 계속 찾아오셔서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령님의 손을 비틀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묵은 땅을 전혀 기경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14:10에서 “그들(이 백성)은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않았다”고 경고하십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묵은 땅을 더 좋아합니다. 묵은 땅을 갈아 엎을 마음이 없으면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잘 믿는 것은 소용없습니다. 행동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삶에서는 내 고집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신앙입니다. 그것이 바로 묵은 땅을 기경하지 않는 자입니다.
성령께서는 땅이 오랫동안 버려져 있으면 매우 안타까워하십니다. 묵은 땅을 빨리 갈아 엎어서 씨를 뿌리고 곡식이 자라서 소출 얻기를 소원하십니다. 농부에게는 한 평의 땅이라도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 소중한 땅을 그냥 버려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빨리 손을 대서 땅을 개간하고 밭이나 논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들의 마음 밭이 버려져 있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3:7에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밭 주인은 탄식합니다. 3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히 밭이 제대로 밭 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묵은 땅과 같습니다. 땅 주인의 입장에서는 속이 탑니다. 그 땅이 아무 쓸모없이 버려져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버려져 있어도 우리는 아무런 감각이 없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무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굳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데 대하여 가슴 아픔이 없습니다. 생명이 있다면 생명을 낳아야 하는데 생명을 낳지 못하고도 뻔뻔스럽게 있다는 자체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애타는 마음을 모르고 있으니 문제가 더 심각한 것입니다. 위기를 위기로 알지 못하는 불감증이 더 큰 위기입니다. “설마 어떻게 되겠나? 우리가 이만큼 충성하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스스로 만족과 포만감에 젖어 있습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는 것은 12절에서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의를 심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그 언약 성취는 우리에게 한없는 긍휼로 찾아오실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묵은 땅을 파엎는 시간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행위를 실천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를 비처럼 쏟아 주실 것입니다. 언약대로 축복의 장마비를 쏟아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를 쏟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딱딱한 묵은 땅을 성령과 말씀의 곡갱이로 파냅시다.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받는 백성들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거룩하신 아버지, 묵은 땅을 뒤집어 엎어 주옵소서! 옛 행실을 버리고 새롭게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긍휼과 의를 거두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