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히브리서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像)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라. 라고 했다.
믿을 신(信) 자는,
사람(人)과 말(言)을 합쳐 만든 글자이다.
고대에는 말(言)과 마음(心)의 합자인
현재의 悥(억) 자를 사용해
마음과 말이 모두 진실함을 의미했다.
그러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점차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자
믿음이라는 개념도 분류할 필요가 생겼으며
이에 따라 글자도 세분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믿을 悥(억)으로부터
수평적인 인간관계에서 서로의 믿음을 의미하는 믿음(信)과,
수직적인 인간관계에서 일방적인 충성을 의미하는 충성(忠)의
두 글자가 분화되었다.
신(信)이라는 문자와
가장 근접한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는 Faith 이다.
이는 우리말로
신념 혹은 신앙을 의미하는 Belief 와 거의 구분 없이 사용되며,
형용사형인 Faithful 은 우리말의 “충성스러운”과 대응이 되고
역시 충성의 의미인 Loyal 과 구분 없이 사용된다.
Faith는 르네상스 초기에 신뢰를 의미하는
라틴어 Fidem에서 파생되었는데,
초기에는 지금과 같이 추상적인 의미가 강하지 않아서
현재의 Trust 정도에 해당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실존(Existence)은 본질(Essential)에 우선한다”라는
멋진 말을 했다.
눈 먼 자아가 만드는 눈 먼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상대방과 자신에 의해서 본질이 왜곡된 상태,
즉 실존(實存)만 본다.
믿음이 사회적으로 집약되고 보편성을 가지게 되면,
개인에 대한 숭배,
정치적 이데올로기, 종교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굳게 믿는 마음을 신념(信念)이라 하고,
종교를 믿는 마음은 신앙(信仰)이라고 한다.
내 마음(心)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일단 믿게 되면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우는 어려운 일이라도
결국에는 성공하는 날을 맞이한다.
내 마음이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믿으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 같이 쉬운 일이라도
성공의 날은 결코 오지 않는다.
맨발걷기 역시
성공에 대한 의지와 믿음이 있어야 성공 할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믿지 못해도 참으로 어두운 인생을 산다.
자신을 믿지 못하면 모든 현실을 참담하게 보게 된다.
모든 목표에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고 시련을 견디는 게 필요하다.
그것을 견디는 힘이 바로 믿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사람은 항상 자신을 믿는다. 라고 쑨원이 말했다.
비행기가 뜨는 원리를 확신(確信)하면
비행기가 뜨고 그 믿음으로 비행기가 날게 된다.
종교에 대한 믿음은, 신앙, 신심, 신앙심 등으로도 불리며,
신과 같은 숭배의 대상이나
교리와 같은 종교적 가르침, 계율과 같은 종교적 규범,
성지와 같은 특정한 장소 등이 믿음의 대상이 된다.
대인관계에서도
서로 간에 믿음이 있어야 끈끈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며,
맨발걷기도
황톳길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치유의 효과가 나타난다.
내가 李 0명을 믿으면 0명이가 되고
내가 부처를 부처(覺者)가 된다.
신학대학(Theological Seminary)을 한자로 표기 할 때는,
信學이 아니라 神學으로 표기한다.
불교의 승가대학은 僧伽大學이라 표기하며
중앙승가대학교(김포)의 교훈은
신심(信心) 참학(參學) 보경(普敬) 이생(利生)이다.
<쇳송. 321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