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따뜻한 봄의 기운이 막 찾아오기 시작하는 어느 날의 일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마치고 막 교정을 빠져 나갈 무렵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민주야, 여민주,”
뒤를 돌아보니 그녀의 과 친구 정화가 그녀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 오는 것이 아닌가.
“무슨일 인데 그렇게 뛰어오니?”
‘헥헥’ 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네 남자친구.”
“내 남자 친구? 석진이?”
“그래”
“걔가 왜?”
‘무슨 일이냐’ 는 듯 묻는 그녀의 눈초리에 정화는 약간의 불안감이 휩쓸면서 우물거리며 말을 했다.
“저기”
“석진이가 동아리방 에서 웬 여자랑 같이 있더래.”
“뭐? 또?”
그녀는 앞뒤 생각할 겨를 도 없이 동아리 방을 향해 전력 질주 했다.
“야, 이석진”
‘쾅’하고 동아리방 문을 여는 그녀의 손길이 매서워 보였다. 엄청 난 스피드로 달려왔는지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가쁜 숨을 내쉬는 그녀는 힘들만도 한데 숨보다도 화가 뻗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데 웬걸. 동아리 방에는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정화가 거짓말 했나 싶어.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쪽 복도 끝에서 남녀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그쪽 끝으로 눈을 돌리니 한 여자는 몇일 전 동아리 방에 가입하겠다던 후배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 옆에는 자신의 남자친구, 석진이와 ‘하하호호’ 입이 찢어 질 것처럼 크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무엇보다도 잔뜩 애교섞인 코맹맹이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만은 없어진 민주는 그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어? 민주야?”
그제야 그녀를 발견했는지 그는 아주 여유로운 목소리와 함께 그녀를 마주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가식적인 목소리다. 그녀의 목소리에 들어나는 목소리는 오직 그녀만이 느낄 수가 있었다.
마치‘ 석진선배 여친구라면서요. 제가 꼬셔도 될까요?’ 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무리 날이 따뜻하다지만 짧은 미니스커트에 짧은 티셔츠까지 완벽하게 꼬시는 듯한 복장이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너 어디 술집이라도 나가니’ 라고 되 받아쳐 주고 싶지만 그녀는 목구멍 까지 올라와 있던 말을 애써 꾹꾹 눌러 담았다.
“어? 웬일이야? 이시간에.”
“왜? 내가 못 올 때라도 온 거니?”
자연스럽게 한다고 한건데 툭 하니 쏘아지는 목소리만은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뭐야? 왜 이렇게 말에 가시가 돋은 건데?”
“아니야, 수업 끝난 거니?”
“응. 그것보다 너도 한잔 줄까?”
실제로 그의 손에 들려진 자판기 커피가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손과 그 여우의 손에 들려진.
“아니야. 그럼 나 먼저 갈께.”
“그럴래? 그럼, 내가 조금 있다 전화 할게”
마치 빨리 가보라는 말투. 그는 우두둑 갈리는 이를 부여잡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아. 짜증나.”
“왜 그러는데?”
어젯밤 잠을 못잔 탓이었는지 눈 밑에 검게 그을린 다크 서클이 눈 아래 까지 축 하니 내려앉아 있었다.
어제 전화하겠다던 석진이는 끝내 전화를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그녀는 휴대폰을 끌어안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석진이 때문에. 그 바람둥이를 어쩌면 좋을까.”
“너 바람둥인 줄 알고 사귄거잖어”
정화의 말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어떻게라도 사귀면 좋을 줄 알았다. 달라 질줄 알았다.
하지만 이 여자 저 여자 마다 다 잘해주니 원.
“그래서 미치겠다. 정말 화라도 내고 싶은데. 속 좁은 여자라고 생각 할 까봐. 질투에 눈이 멀어 돌아가실 지경이다.”
그녀의 말에 정화는 마치 좋은 수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짝 하니 마주 쳤다.
“좋은 수가 생각났어.”
“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에? 그게 뭔데?”
“이 답답아, 일명 맞바람 작전.”
어리둥절한 민주는 지금 얘기 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너도 남자를 만나라 이 뜻이지 ”
“내가 남자가 어디있어? 남자라곤 석진이 뿐인데.”
“그러니까 내가 소개 시켜준다 이 말이지.”
“누구?”
“내 동생”
“뭐?”
그렇게 묻는 여주는 걱정이 됐다. 남자라곤 석진이 뿐인데. 마음 한구석에서 솟구치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순 없었다.
“내 동생인데. 나랑은 하나도 안 닮았다 이 말이지. 넌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응.”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과연 잘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결과는 일주일 안에 확연히 나타났다. 처음 그녀가 정화의 동생 정민을 만났을 때는
무심하던 그가 하루 이틀 삼일째 되던 날 그녀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녀 주위에 하도 남자가 없었던 터라 그러려니 생각하다가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정민에게 적대감을 들어내기도 했다. 전화가 오기만 하면 ‘누구야, 그자식이지?’ 하고 묻는 통에 속에서 뜨끔한 뭔가가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나 보다. 아직 까지 그는 정민을 자신을 쫓아다니는 후배쯤으로 알고 있었다.
정화를 닮지 않아서 인지 들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거봐. 내 말 듣길 잘했지.”
“응, 정말 정말 고마워. 다 네 덕분이야.”
“정 고마우면 나중에 한턱내라.”
“응, 알았어”
그때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석진의 모습이 보였다.
“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난 이만 가볼게 . 오늘 데이트 잘해라.”
“응, 잘가.”
자신의 앞까지 와서 급히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어찌나 멋진지. 민주는 자신의 눈에 콩깍지가 단단이 씌어있음을 느꼈다.
“많이 기다렸어?”
“아니야.”
걸음을 걷는 내내 그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분명 무언가 할말이 있는 듯한데 그렇다고 쉽게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하도 답답해진 민주가 먼저 물었다.
“왜?”
그제서야 그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민주를 향해 눈을 돌렸다.
“아니, 너 요즘 그 녀석이랑 자주 만나는 거야?”
“누구? 아, 정민이?”
“아, 정민이...? 만나는 거야? 응? 그래?”
“글쎄..”
그리고는 저 멀리 그를 피해 냉큼 뛰어가 버렸다. 한참을 뛰어가던 도중 그녀는 뒤를 돌아 그를 보면서 혀를 낼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왜? 만나면 안 되는 거야?”
그녀의 말에 그는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그녀가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 가기 시작했다.
“거기 안서...? 말해봐. 진짜 만나는 거야? 응?”
그의 목소리가 하늘을 향해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녀에게 잡혀 버렸다. 벗어날 수 없을 만큼. 꽉.
모든 여자들이여. 바람둥이를 잡으려면 약간의 거짓말과 내숭은 필수다.
‘석진아, 미안. 널 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단다.’
그녀는 분명 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갈 계획이다. 물론 정화가 입만 뻥긋 안한다면야.
첫댓글 재밋어용!잘보고갑니다~~
매번 저의 글을 봐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하나의 댓글이 저에겐 힘이 된답니다.
재밌게보고가욤!ㅋㅋ 내용이좀더길었음..ㅠㅠ흑흑
재밌게보셨다니 대행이군요.. 감사합니다. 아, 요 내용이 짧은 거였군요..ㅋ 다음엔 좀더 긴 ~글로 찾아뵐께요..
좀만길었으면재밌었을듯ㅠㅠ잘봤어요!
아, 그런건가요? 요 내용이 짧은 거였군요.. 다음엔 길게 써보도록 할께요..
재밌어요 ㅋㅋ
고맙습니다. 다음엔 좀더 좋은 글로 찾아 뵐께요.
재미있게 잘읽었어요..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이네요.. 다음엔 좀 좋은 글로 찾아 뵙겠습니다.
재밋잇엇어요!!! 근데 남주가 질투하는거죠?? 둘이 잘 된건가요??
네, 리플 감사드려요. 잘된거라고 볼수 있겠죠?ㅎㅎ
재밌어요. 잘 읽고 갑니다.^^ 여주가 완전 귀엽다는><
댓글 감사드려요~ 여주가 한 깜찍 하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