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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고종수 판결= 보스만 판결?
글쓴이: 차영일등록일 : 2003-02-21
1990년, 벨기에 리그 'FC리게'에서 뛰고 있던 노장 수비수 예안 마르 크 보스만(Jean-Marc Bosman) 선수는 더 이상 자신이 주전으로 뛸 수 없는 리게를 떠나 FC 둔케르케로 이적하기를 희망했다. 물론, 그의 선 수계약 기간은 만료 되었고, 계약이 만료된 것은 곧 구단과의 관계가 정리되었다는 생각에, 보스만은 자연스럽게 이적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前 소속팀 리게에서는 그의 이적에 대한 이적료를 둔케르 케에게 요구했고, 이미 나이가 찬 노장 수비수에게 이적료를 지불할 의사가 없었던 둔케르케는 당연스레 리게의 이적료 요구를 거절하였 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 것은 보스만 자신이었다. 그의 계 약이 만료되었으므로 그에겐 급여를 주는 클럽이 없었다. 그러나 보스 만의 선수등록은 여전히 리게에 속해 있었고, 그에게는 다른 팀으로 의 이적의 가능성도 없었다.
이 가난하고 볼 것 없는 수비수 보스만을 일약 유명하게 한 것은 이 이후의 일이었다.
보스만은 이적과정에서 피해를 봤다며 선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이적규정에 대해 유럽연합(EU)재판소에 소송을 내었다. 이 송사는 5 년 간의 지루한 법정공방 끝에, 1995년 12월 15일 결론이 내려졌다. 선수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방해하는 이적료 요구는 부당하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이 판결로 계약만료 선수의 자유계약과 EU내 외국인 선수 보유제한 철폐가 이뤄져 세계축구계의 이적질서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클럽중의 하나인 수원삼성 과, J리그의 컵 우승팀(天皇杯) 교토 퍼플상가 사이에서 발생하게 되 었다.
고종수를 둘러싼 교토와 수원의 이적분쟁은 단순한 에이전트의 농간이 나, 수원삼성의 고압적인 태도나, 교토의 선수에 대한 욕심에서 기인 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누구 하나를 희생양으로 만들기에 이 3자의 입장은 모두 옳다.
이 문제의 3주체, 수원삼성 / 고종수 / 교토퍼플상가, 3자의 입장과 주장하는 바는 모두 옳다. 이는 다음의 이유가 있는 까닭이다.
1. 아무도 틀리지 않았다.
수원삼성 수원삼성은 고종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에 입단할 때 거액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그 계약금의 성격은, 구단 측에서 생각하기에는 이후, 해당 선수가 이적을 할 때 이적료로 보전할 수 있는 금액이다. 현재 프로연맹의 규정에 의하면 신인 선수(고졸, 혹은 대졸)의 경우 최고 3억원까지 계약금을 지불할 수 있다. US달러로 환산하자면 25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5만 달러는 유럽의 중위권 클럽들에게도 큰 돈이다. 이런 돈이 만약 선수가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리게 된다 면 어디로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수원삼성의 견해는 계약금은 일종의 가상의 이적료이며, 이적료가 발 생한 선수가 이적료를 지불하지 않고 타 구단으로 옮겨가는 것은 묵과 할 수 없는 일이다. 구단은 선수와의 계약에 있어서의 영속성을 위해 거액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그런데 이적료 없이 교토퍼플상가로 간 다? 수익구조가 불분명한 K리그에서, 그나마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선 수 이적료를 포기하란 의미는 클럽의 운영을 더 어렵게 하지 않는가. 그것이 수원의 고민인 것이다.
교토 퍼플상가 일본엔 "계약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물론 그와 비슷하다 면 "signing fee"라는 개념은 있으나, 이는 전적으로 선수의 보수 (salary)를 보전해 주는 차원이지 계약기간에 대한 보증의 개념으로 지불하는 돈은 아니다. 계약이 만료된 FA선수(자유계약 선수)에게 이 적료를 지불하는 것은 유럽에도, 남미에도, 아프리카에도, 북극에도, 화성에도, 그 어디에도 없는 제도이며 오직 한국에만 존재한다. 고종수가 매력적인 것은 그가 화려한 기교의 왼발 테크니션이기 때문 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적료를 필요치 않는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 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수원삼성이 이적료를 요구한다면 교토가 회신 할 답은 하나 뿐이다.
"웃기지 마라. FIFA에 가서 따져라. 계약이 만료됨과 동시에 선수의 소유권은 당신네 클럽에서 없어진(disappeared) 것이다. 그게 국제법 이다."
고종수 고종수의 에이전트는 보스만 판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다. 그는 아마도 FIFA에 해석을 의뢰 했을 수도 있다. 그는 선수 이적 에 대한 한국의 프로연맹규정을 면밀하게 검토한 다음에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고종수에게 이적을 권유했을 것이다. 이 문제가 FIFA로 넘어가게 된다면 FIFA의 해석은 단 하나이다. "선수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계약만료 후 이적료 요구 는 부당하다." 그렇기에 고종수의 이적요구도,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아무에게도 잘못은 없다. 계약금(계약기간을 보증하는) 을 지불한 클럽. 직업 선택의 자유를 요구하는 한국 최고(?)의 왼발 테크니션. 국제관례에 따라 계약기간이 만료된 선수를 영입하여 다음 시즌을 대비하는 일본의 클럽.
누가 잘못 되었단 말인가? 모두가 정당하다.
2. 보스만 판결이 유럽리그에 미친 영향
그렇다고 보스만 판결이 무조건 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는가는 회의적이 다. 무엇보다도, 선수들의 자의적인 이적이 가능해 지게되어 부자 클 럽 측의 입장에서는 높은 연봉만 제시한다면 언제든지 클럽과의 계약 이 풀린 우수한 기량의 선수들을 스카웃 할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한 반 면, 가난한 클럽들은 상대적으로 선수들의 고액연봉을 보장할 수 없음 으로 해서, 우수한 선수들을 금전보상도 없이 놓아 주어야 하는 문제 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이는 결국 중하위권 클럽들, 혹은 하부리그 의 클럽들에게는 주요 수입원이 원천적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의 미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보다 매출이 약 25% 이상 많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리그임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1부리 그(프리미어 리그의 하위리그)의 팀들은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고 있 다. 이러한 현상은 1995년의 보스만 판결 이후 심화된 현금흐름의 왜 곡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클럽이 선수를 영입하고, 또 유지하는데는 돈이 든다. 이것은 구단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의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이적료(Transfer Fee) 2) 급료(Salary) 이 1)과 2)에 지출하는 비용이 클럽이 1년간 예산으로 쓰는 돈의 90% 를 차지한다.
1)의 경우, 해당 선수를 다시 다른 클럽으로 이적시킬 경우 보전이 가 능했다. 때문에 1)의 항목은 아무리 많은 클럽에서 지출을 하더라도, 다시 클럽으로 순환하는, 즉 리그의 구조 내부에서 순환하는 자금이었 다.
2)의 경우, 선수가 급료를 받으면 그것은 리그의 외부로 유출되는 돈 이다. 구단이 돈을 쓰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현금 흐름이라 하 겠으나, 2)는 절대로 리그의 구조 내부로 돌아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선수를 획득하고, 다시 내보내기 위해 1)과 2)가 동시에 필 요했다. 때문에 1)의 비중은 아무리 커지더라도, 오히려 부자클럽과 가난한 클럽 사이의 현금 흐름이 발생하여 리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이 익 배분이 가능케 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보스만 룰이 적용 되기 시작한 1995년 이후부터 1)의 비중보다는 2)의 비중이 커짐으로 해서, 몇몇 부자 클럽들을 제외한 중하위 클럽들은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할 수 밖에 없었다. 1)은 언젠가 클럽으로 돌아오지만, 2)는 영원 히 클럽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세리에 A의 명문클럽 중의 하나인 파르마조차, 선수들의 샐러리를 감 당치 못하고 다운사이징으로 그 경영방향을 선회하였을 정도로, 작금 의 유럽 제 리그의 재정 상태는 위태로운 것이다. 몇몇 리그들(심지 어 프리미어 리그에서 조차) 샐러리 캡(Salary Cap; 선수 연봉의 상한 선을 제시하는 방안)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이유는 바로 1995년 보스만 판결 이후의 변화하는 세계 축구의 흐름인 것이 다.
3. 보스만 룰. K리그는 수용해야 하는가?
보스만 룰의 아시안 버전이라 할 수 있는 '고종수 분쟁'은 K리그에게 중차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보스만 룰을 적용하는가, 아니면 지 금의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인가. 보스만 룰을 거부하더라도, 해외의 리 그들은 여전히 한국 선수들의 퀄리티와 능력 때문에 한국 선수들에 대 한 러브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플레이어가 FA자격을 획득하게 된다면, 그들은 물론 아무런 제약없이 해외로 진출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국내의 다른 클럽들은 거액의 이적료 때문 에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스카웃 활동이 위축될 수 밖에 없으며, 따라 서 국내 이적시장은 지금의 형태대로 완전히 고착화 될 것이고 오직 해외로의 대탈출 행진이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스타플레이어 부재라는 문제에 봉착할 것이며, 리그 자 체의 질과 인기는 점점 사그러들 것이 명약관화하다.
여기서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고통과 번뇌는 시작된다.
4. 보스만 룰은 국제관례. FIFA로 이관된다면 수원은 필패(必敗)
수원이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제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 다. FIFA는 클럽보다 선수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문제의 해답은 없다. 한국축구는 가속화되는 리그간의 경쟁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에 도착했다. 유럽에서 1995년에 출발한 문제가 이제서야 이 머나먼 극동아시아의 나라, 은둔 자의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이 문제가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실화가 되어, 드디어 희생 자를 찾아내는 것은 내년부터 시작될 것이다.
대전에게 이관우와 김은중은 중요한 자산이다. 그러나, 이관우와 김은 중에게 3억, 4억의 연봉을 책임져 줄 K리그 클럽이 있겠는가? 그렇다 면, 이관우와 김은중은 당연히 그들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할 클럽들 로 이동해 갈 것이다. 그 돈의 근원은 당연히 J리그가 될 것이다. 그 러나, 대전은 J리그 클럽에게 한푼의 이적료도 받을 수가 없다.
2004년도부터, 한국의 FA제도는 끝난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의 경우 관례상 선수계약을 1년 단위로 맺어왔다.(이것은 K리그 클럽들이 국제 환경과 이적시스템의 변화에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 2004년도에는 한국 선수들의 J리그에의 엑소더스 (exodus;대탈출)가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남아 있을까? 현재 의 K리그 연봉 수준은 J리그의 30%에 지나지 않는다. 70%의 격차가 메 워지지 않는 한, 제2의 고종수, 제3의 고종수 케이스가 탄생하는 것 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대안? 대안을 묻는다면 한가지로 대답할 밖에, "K리그 클럽들이여, 돈을 벌어 부자가 되어라."
세계의 축구시장은 적자생존의 치열한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다.
아이피 : 211.43.2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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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스만 사건을 아는 회원이 몇분이나 되실지... 오래된 사건이라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거에요~ 갑자기 생각나네 보스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