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스라엘, 관계 악화에 ‘정보전 참패’… 뒤늦게 “정보 공유 확대”
[중동전쟁]
“이란 핵협상에 틈 벌어져 화 불러”
위성사진-감청정보 다시 공유 나서
‘중동정책 후순위’ 바이든 책임론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사전에 포착하지 못해 ‘정보 참사’라는 지적을 받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정보 공유 확대에 나섰다. 미국과 이란 간 핵협상에 이스라엘이 반대하는 등 양국이 갈등하며 정보 공유가 축소된 게 이번 실패로 이어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간) 성명에서 하마스에 구금된 미국인 인질과 관련해 “미 정부 전반에 걸쳐 정보를 공유하고 전문가 배치를 포함해 모든 측면에서 이스라엘 측과 협력하도록 우리 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미 NBC방송은 “미국이 이스라엘 지원을 위해 위성사진과 감청정보 등의 공유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미 정보기관이 정찰위성을 통해 수집한 이민트(IMINT·영상정보)와 시긴트(SIGINT·신호정보)를 이스라엘에 제공하겠다는 얘기다. 세계 최고 첩보기관으로 꼽히는 이스라엘 모사드는 물론 미 중앙정보국(CIA)이 하마스의 전면 공격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커진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에서는 이번 정보전 실패 원인으로 양국 관계 악화를 꼽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 정보기관은 협정을 맺고 도·감청 정보를 정기적으로 공유해 왔다. 이란, 레바논을 비롯한 중동 주요 거점 휴민트(HUMINT·인간 정보망)가 붕괴되자 미국은 현장 정보원이 수집하는 테러단체 움직임 같은 기밀정보를 사실상 이스라엘에 의존하는 대신 광범위한 도·감청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타결 때도 반대했던 이란 핵협상을 2021년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며 복원하겠다고 내세우자 미국과의 정보 공유를 줄였다. 미 정부 당국자는 NBC에 “우리는 하마스 움직임을 추적하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이 공격 임박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를 미국과 공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을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후순위로 미뤘던 바이든 행정부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 미국은 중동 핵심 우방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관계 정상화를 통해 이들이 이란을 견제하도록 하는 역외 균형 전략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사우디의 팔레스타인 지지 선언으로 이 같은 방식의 중동 평화 구상은 수포로 돌아갈 처지다.
특히 미 정치권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둘러싼 이견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중동 ‘최대 화약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길어지면 유럽과 중동 2개 전선을 동시 지원해야 하는 미국은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 야당 공화당이 일제히 바이든 행정부를 비판하며 이스라엘 지원을 촉구하고 나선 만큼 우크라이나 지원이 예산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유럽과 중동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양면 전쟁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라며 “유럽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이번 혼란을 이용하기 위해 이란에 더욱 밀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