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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덕혜옹주 눈물꽃 The rose of tears 눈물꽃 (덕혜옹주.허진설) 바람아 스치듯 내 아련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랑아, 나를 지나가네 꽃 되어 내 가슴에 피네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사랑아, 나를 지나가네 꽃 되어 내 가슴에 피네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의 원작 소설 주제곡으로 알려진 '눈물꽃'이 영화 흥행과 더불어 주목 받고 있다. 조선 예조판서 허조의 통보
족하가 성심으로 회오하고 신복이 되고자 포로를 송환 하며 예물을 진헌하면서 알리는 바가 상세하여 왕께서도 모두 이를 윤허하셨으니 한 섬의 복이로다. 대마도를 경상도에 예속 했으니 모든 보고는 반드시 경상도 관찰사에 알려서 시행하고 예조에 직접 전할수 없다. 잎으로는 족하가 친서한 서계를 가지고 와야 예접을 허락할 것이니 도장을 종씨도도웅환이라 하라. --------------------------------------------------------------------- ---------------------------------------------------------------------
1486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1765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와 1822년에 편찬된 ‘경상도읍지’ 등에 면 대마도는 부산 동래부의 부속도서로 되어있으며 12세기말 일본의 대마도에 대해 기술된 '산가요약기’에서는 ‘대마도는 고려가 말을 방목하여 기른 곳이고 옛날에는 신라 사람들이 대마도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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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우리의 땅이었기에 옛날 우리 지도에는 대마도를 일본 본섬보다 더 크게 그려넣었다. 또한 일본보다 대한민국에 매우 가까이 있다. 여기에 일본인이 살았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 조상중 경상도에 살던 일부가 대마도에 살았고 고구려와 신라가 다스렸던 영토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 중국 대륙쪽으로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대마도 관리에 소홀해졌고, 그 틈을 타서 왜인들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일본 땅이 돼버렸다는 것.
일본 역대 장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반쇼인(万松院)의 감나비(부도)는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사리탑으로 우리나라 의정부에 있는 무학대사 것과 닮았다.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5개의 도리(문)를 세워 용왕의 신화를 연상케해주는 와타즈미신사의 뒷 숲에 있는 남근석도 일본 것이 아닌 우리 고유의 문화 유산. 대마도에는 또 우리 역사속의 인물들의 발자취도 진하게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특히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섬을 왕래했던 조선통신사들은 끊을 수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1703년엔 우호사절로 부산을 떠났던 108명의 통신사들이 대마도를 바로 눈앞에 두고 모두가 조난당하기도 했다. 부산이 가깝게 보이는 한국전망대 옆에는 그 당시의 조선통신사들의 순국을 기리는 위령비가 서 있다.
구한말 면암 최익현 선생도 일본군에 의해 대마도 이즈하라에 연금당해 있던 중 단식으로 항거하다 순국했다. 그를 기리는 순국비는 백제 스님이 건너와 창건했다는 이즈하라시내의 스이젠지(修善寺)에 서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신음했던 조선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기구한 삶도 대마도에 뿌리가 내려져 있다. 1912년에 태어난 덕혜옹주는 쓰시마 도주인 쇼다케시백작과 정략 결혼을 했으나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해 끝내 신경질환까지 앓고 이혼당했다. 이즈하라시 반쇼인에는 덕혜옹주와 대마도주의 결혼 기념비도 이들의 비극을 상징하듯 쓰러져 있으며, 대마역사민속자료관 입구에는 덕혜옹주의 남편이었던 대마도주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이밖에도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사고마을엔 신라때의 충신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백악산 고려산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지명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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