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9일 일요일 새벽 3시경, 선잠을 자다 깨서 핸드폰을 들었다.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기다리다 잠들었는데, 마침 ‘발부’ 속보가 떠 있었다. 뉴스를 더 찾아보다가 심상치 않은 정보들을 접했다. 유튜브에 ‘서부지법 현장’ 키워드로 검색해 들어갔더니 충격적인 영상들이 흘러나왔다. 경찰들이 폭행당하고, 법원 건물과 집기들이 깨지고 부서지고 망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시간 영상 밑에 댓글을 달고 있었다. “혁명이다!” “차은경(영장 발부 판사) 살려두지 마라” “백골단분들 처음부터 필요했어요···.”
한밤중의 악몽과도 같았다. 충격과 공포에 꼬박 밤을 새우고 일요일 하루를 통째로 날려먹었다. 방 안에 틀어박혀 노트북을 열고 극우 유튜브들과 온라인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녀 봤다. 그 존재를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정확히 말하면 굳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지 않았던 사람들의 말과 글을 살폈다. 간밤에 서부지법 현장 영상 속에서 마주한 그들의 물리적 실체에 처음 놀랐고, 인터넷에 뿌리 깊게 퍼져 있는 위헌적 폭력 옹호 세력의 규모와 극단성에 압도당했다. 이후 제도권 정치권이라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법원이) 맞을 짓 하지 않았나’ 유의 반응들도 경악스러웠다.
너무 많았다. 내가 영영 화해 못하고 살 것 같은 사람들이. 슬퍼졌다. ‘내 주변에도 혹시 이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까.’ 의심이 피어올랐다. 12·3 비상계엄 이후 정치 이야기가 오가는 단톡방에서 슬그머니 말을 아끼던 (평소 보수 성향) 친구가 생각났다. ‘혹시 그 친구도 이들과 같은 생각일까?’ 지난 명절 때 만나 “너도 대통령 탄핵파냐?”라고 따지던 친척의 얼굴이 떠올랐다. ‘설마, 그 어르신도 이런 폭력을 옹호하는 걸까?’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하던 많은 지인들이 불현듯 미워지거나 두려워졌고, 절망스러웠다. ‘이들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같이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가 있을까?’
이번에 <시사IN>과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5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받고, 떨리는 마음으로 엑셀 파일을 열었다. 지난해 12월3일부터 시작됐고 1월19일 이후 더욱 강해진 의심, 공포, 회의, 기대, 희망의 가설들을 웹조사 문항 255개를 통해 검증해보고자 했다. 조사 결과, 어떤 가설들은 증명되었고 어떤 것들은 반증되었다. 안도감을 주는 결과도 있었고, 실체 있는 위협을 확인시켜주는 통계수치도 있었다. 계엄, 탄핵, 폭동 정국을 거치면서 우리 국민들은 서로 간에 그어져 있(다고 믿었)던 여러 층위의 전선들을 체감했다. 개중 어떤 건 허구였고, 어떤 건 과장, 어떤 건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조사 결과로 알아낼 수 있었다.
지난 설 즈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 하나를 보고 피식 웃다 찡해진 기억이 있다. ‘TK 본가 왔는데’라는 제목의, 아마도 20대 여성이 쓴 듯한 글이었다. “아빠가 이재명 지지자 왔나 그래서/ 응 윤석열 지지자는 잘 있었나/ 이재명 지지자가 좋아하는 잡채 해놨다/ 윤석열 지지자 요리 잘하네/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중”이라는 글을 캡처한 이미지였다.
‘윤석열 지지자’와 ‘이재명 지지자’ 혹은 ‘진보’와 ‘보수’, ‘탄핵 찬성파’와 ‘탄핵 반대파’라 구분되는 이분항 속에 얼마나 많은 세부 갈래가 있는지, 우리는 속한 집단 안의 것은 알지만 반대편의 사정은 점점 모르게 되었다. 내키지 않더라도, 이제는 막연한 경멸과 두려움을 걷어내고 상대편을 들여다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함부로 화해하자는 말은 때로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하지만 따로 떨어져 살 수 없고 그래선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면, 미리 준비해놔야 할 것이 있다. 누구와 화해하고 누구와는 결코 그러지 말아야 할지, 그 기준선을 명확히 정해놓는 일이다.
각자 그 기준선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경우 이번 <시사IN>-한국리서치 공동조사 결과를 보면 그래도 국민 80%와는 함께 잡채를 나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