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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의 기술]
변명과 성찰은 별개의 개념이다. ‘성찰’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살펴서 자기의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라면, ‘변명’은 어떤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당시의 상황이나 환경적 구실을 대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이다. 변명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진정성’과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숙대와 국민대에서 김건희의 학위 논문을 취소하겠단다. 김건희의 남편이 탄핵 재판을 받고 본인도 구속될 처지에 놓이자 이제 와 칼을 빼든 것이다. 과연 누가 이들의 진정성을 믿겠는가? 불량 지성인을 양산하는 비도덕적 학위 공장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짓이다. 육사에서는 철 지난 사상논쟁으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한동안 그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슬그머니 존치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단다. 이런 기회주의적 처사야말로 해방되고 나니 독립운동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 보이는 짓이다.
수일 전 문재인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너무나 수준 낮은 사람들에게 정권을 넘겨줬다는 자괴감이 아주 크다. 그 순간이 조금, 두고두고 이제 후회가 된다.”라며 국민에게 사과했단다. “윤석열 발탁은 조국 민정수석의 추천으로 했고, 윤석열을 정치적으로 키운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해임을 매끄럽게 하지 못하여 역풍을 맞았다.”라고도 하였다. 윤석열이 칼춤을 출 때 그 위세에 눌려 말 한마디 뻥끗 못 하고 눈만 껌벅껌벅하다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주었던 양반이 이제 와 윤석열 탄핵이 확실시되고 또 자기 처의 재판도 확정이 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윤석열에게 눈치 볼 일이 없어진 것일까?
이것은 ‘진정성’도 ‘타이밍’도 어긋난 변명의 덫일 뿐이다. 사과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참으로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자기의 과오를 인정하기는커녕 부하와 측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윤석열식 화법과 동일한 어법이다. 인사권자로서 윤석열의 만행을 제어하기는커녕 그 위세에 가위눌려 쩔쩔맬 때, 여장부 추미애는 혈혈단신 홀로 싸웠다. 당시 윤석열은 검찰총장으로 공무원들을 동원해 특정 법관과 그 가족들의 사생활을 사찰하였다. 명백한 범죄행위였다.
그러나 문재인은 총장을 처벌하고 문책은 못 할망정 끝까지 싸우겠다며 사표를 못 내겠다는 추 장관을 경질시키고 오히려 윤석열에게는 ‘우리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추켜세웠다. 게다가 검찰총장의 지위를 이용해 자기 정치를 하는 윤석열에게 ‘나는 총장이 정치를 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라는 망발조차 시전하였다. 촌로도 우려하고 있는 일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그는 그토록 정무 감각이 안일하고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였다. 맞다. ‘정치’도 ‘법’도 모두 사람을 위한 일이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사람’이 우선이다. 그러나 자신의 임기 중 정경심 교수와 조민 양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은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정치인 이전에 인간적으로도 낙제이다. 재임 시 문재인에 대한 진보 진영의 응원은 거의 우상화, 신격화에 가까웠다. 팬덤 정치의 수혜를 가장 크게 입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 성원과 지지를 사유화했고 스스로 도취 되어 자신의 본모습을 잃고 말았다. 이제 와 모두 참모들의 잘못이라고 탓을 돌려대기까지 하니 그의 위선적 인품만 여실히 드러나고 만 셈이다.
이재명이 오랜 고통과 수모를 당할 때도 끝까지 외면하던 사람이 오히려 그에게 ‘통합’과 ‘포용’의 행보를 당부하고 있다. 통합과 포용을 해야 소위 중도층의 표를 끌어들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낙연이나 설훈, 이상민, 조응천, 이원욱 등이 통합의 대상이란 말인가? 김경수와 김부겸 김동연 등을 포용하라는 것은 필시 대선 시에 한자리 주고 기득권을 양보하라는 말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들은 먼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백의종군이 선행되어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야 그들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훗날이 보장될 것이다. 선거철이 되어 밥상 차리면 표를 미끼로 숟가락 들고 달려드는 구태의연한 ‘알박기 행보’는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문재인은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가결 시키겠다고 두 번씩이나 협박을 일삼던 해당 행위자들에게 이재명을 도와 화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 권력분점과 이권에만 영합하는 ‘선택적 화합’과 ‘선택적 포용’이야말로 기회주의적인 망국병이다. 이 땅에 당이 존재한 이후로 언제나 주류와 비주류의 세 대결은 존재해 왔다. 앞으로도 세 대결은 끝없이 존속이 될 것이다. “외계인과 싸울 때는 일본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라는 노회찬 전 의원의 말처럼 윤석열이라는 거악과 싸울 때는 내부 총질을 할 것이 아니라 전열을 단일대오로 갖추어야 한다. 윤석열이 탄핵 되고 난 뒤 당당히 후보 경쟁을 하고 결과에 승복하며 대의를 따르는 것이 정도이다.
이른바 ‘중도 표’ 확장을 위해 그들에 대한 비난을 중단하라는 소리에도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선거나 정치를 공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표를 구걸하는 정치인들의 몫이고 유권자인 나는 이런 민심의 소리도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표의 향배에 대한 유불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이라면 올곧은 신념을 갖고 정도를 가기를 바랄 뿐이다. 벌써 잊었는가? ‘바보 노무현’ 말이다.
떨어질 줄 뻔히 알면서 종로구를 버리고 부산을 택하였던 그의 정치적 소신과 꼬마 민주당을 사수하면서도 정도를 걷고자 했던 그의 정치적 여정을 말이다. 그가 언제 유불리에 좌고우면하였던가? 입만 열면 노무현 정신 운운하며 노무현의 단물만 빨아먹는 정치 기생충들에게 노무현의 명언을 들려주고 싶다.
‘기회주의자는 포섭의 대상이긴 해도 지도자로 모시지는 않는다는 것이, 내 철학이다.’
통합과 포용을 운운하며 정치적 권리금을 주장하기 전에 자기의 과실에 대한 성찰과 사과가 우선되어야 한다. 문재인은 ‘총장을 잘못 임명’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실패한 대통령의 반면교사’가 되었음을 두고두고 후회해야 한다. 자신과 같이 무능한 대통령이 다시는 이 땅에 탄생 되어서는 안 된다는 참회가 선행되어야만 했다.
문재인 씨를 대통령으로 찍었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마천의 명언을 여기에 남겨 둔다.
“지나간 앞일을 잊지 않아야 훗날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전사지불망 후사지사야 - 前事之不忘 後事之師也
문재인 그는 실패한 권력의 교과서이다.
霞田 拜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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