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을 아내는 감기 몸살로
다른 환자에게 위로를 받는
더 아픈 환자 노릇을 했습니다.
그 바람에 주말 주일을 고스란히 침대를 짊어지고
목욕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보냈습니다.
빨래도 쌓이고 스트레스도 쌓이고...
미루고 미루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열흘만인 수요일, 목욕바구니와 갈아입을 옷들을
샤워실 문 앞에 갖다놓았습니다.
평일은 낮엔 치료받느라 못 씻은 환자, 보호자
간병인들이 저녁 후 줄을 섭니다.
직전 병원에서도 목욕 한번하려면 새벽에 일어나
순서칠판에 기재하느라 씨름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게 없었는데 하도 새치기로 싸우고
서로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병원측에서
예약 기재용 칠판을 설치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곳도 만만치 않게 사람들이 마치 사재기를 하듯
점점 치열해지는 분위기입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묘해서 남을만한 여유도
초조해지면 더 욕심을 부려서 모자라게 됩니다.
기어이 바구니를 갖다놓고 기다리는데도
누군가가 새치기로 들어갔습니다.
문밖에 다음 들어간다고 목욕도구와 옷을 놓아두어도
지켜서서 있지 않으면 나오자마자 새치기로 들어가버립니다.
잠시 비어있는 순간의 틈을 놓치지않고...
시간상으로 뻔히 짐작하는 새치기도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먼저 들어갔던 사람이 계속 있는지, 새로 들어갔는지
현장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또 한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
십분정도 간격으로 나가 확인하고 또 나가보고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바구니 줄선거 무시하고 휠체어를 타고
문앞에 버티고 기다립니다.
‘저기 제가 기다리는 중인데요...’
그딴게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정신이 말짱한 사람이고
상대는 뇌질환을 겪고 나보다 덜 말짱한 사람인 경우
경우를 따지고 순서를 주장하는게 무의미합니다.
‘...에휴~ 그래, 먼저 하세요’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또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리고...
집사람이 덜 아프거나 버티고 기다릴 정도 상태만 되면
휠체어에 태우고 한 삼십분에서 한 시간정도
샤워실 앞에 죽치고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병이 도지라고 학대하는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간신히 두 번 양보후 세 번째 들어가서 목욕을 시키면서
짜증을 있는 데로 애꿎은 아내에게 퍼부었습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염치도 미안함도 모른다며...
그렇게 밀려서 씻기고 침대보를 교체하고 누이고 나니
밤 열시가 되었습니다.
빨래보따리를 들고 빨래방으로 갑니다.
양말도 속옷도 바닥나고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늦은 시간이지만 부득히 다녀왔습니다.
밤 열한시가 넘어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아프면서 쌓인 고단함과 스트레스로
밤늦은 시간이지만 아내를 재우고 다시 거리로 나갔습니다.
도저히 그냥 누워서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아서...
언제부터인가 너무 답답하거나 속이 상하면
먹는 걸로 푸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도
밤 열두시에도 새벽 한시에도 무언가를 먹으며 달랬습니다.
돌아보니 국립암센터 입원기간에 생긴 습관입니다.
새벽 두시 전후로 아내의 용변을 받아낸 후
깨어버린 고단한 몸을 지하1층의 편의점에서 무언갈르 먹고
식곤증으로 잠을 다시 자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힘들거나 막막한 일만 있으면 무조건
마냥 걷다가 시장하고 다리 아프면 먹곤 했습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그런 반복을 합니다.
24시간 영업하는 터미널 주변 음식점에서 콩나물국밥을 먹고
근처 공원에 앉아 소화를 시키는데 사람들이 참 많이다닙니다.
번쩍거리는 무슨 노래방, 모텔, 마사지업소, 야식집들,
그곳에서 나오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갑니다.
갑자기 시간을 뛰어넘은 하나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많이 겪은 익숙한 분위기,
아!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오래전 독학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서울생활을 할 때,
종암동 어느 술집에 지낸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신문광고를 보고 주방보조를 지원했습니다.
밤에 일하고 낮에는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나왔길레...
그러나 곧 주방보조, 과일 깎고 오징어 땅콩, 냉동식품을 데워 내는
단순하고 돈 적은 일에서 술 손님들을 시중드는 홀 웨이터보조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새벽 두 세시까지 술 취한 사람들과 아가씨들을 맺어주며
심부름을 하면 생기는 불규칙한 수입이 눈에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무 보증인도 세우지 못하고 서류도 변변치 않은 사흘 굶은 나를
채용해준 술집사장이 고마워서 열심히 하다보니 인정을 받았습니다.
소위 룸쌀롱인 그곳의 아가씨들이 20명 안팍이 늘 뒤쪽 대기실에서
화투나 수다로 기다리곤 하는 것도 거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입(아가씨들이 손님에게 받아내주는 팁)도 늘고
그럭저럭 적응도 되어갈 무렵 판이 깨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지하 룸쌀롱의 위에는 목욕실이 있고 그 위에는 여관이었습니다.
늘 그곳으로 취객들과 아가씨들의2차, 소위 윤락주선을 해주고
돈을 받아내곤 하는 건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쪽문 하나가 있었고 그 문 뒤에는 큰 보일러실이
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기관실이라고도 부르는 곳인데
그곳 기술자가 지독한 예수쟁이였습니다.
낮이면 서로 오가며 놀고 이야기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기어코 구워삶고 비록 일 잘한다고 칭찬은 받았지만
밤 업소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문란하게 놀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나를 교회로 전도를 했습니다.
외롭고 세상살이에 지쳐가던 내겐 날마다 새벽이면 일이 끝나고
청소를 한다음 교회로 달려가 새벽기도회에서 잠에 떨어져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런 생활이 오래 가지 못하고 쫑났습니다.
신앙의 겉 모습에조차 어울리지 않는 이중생활이
오래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로 발을 들여 놓은 것이 내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을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가장 최악의 음란과 방탕이 판치는 장소에서
나를 뒤집어 돌려 세우신 첫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속상했던 감정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만약 내가 주님을 안 만났더라면,
신앙인이 아니었다면,
급하고 정의감으로 늘 폭탄처럼 터지는 내 성격이
조용히 넘어갔을 리가 없다는 데 미쳤습니다.
비록 아내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못살게 했지만,
그 정도로 참고 용납하며 넘어가는 건 순전히 주님을
만난 결과입니다.
잘난 말 재주와 욱!하는 정의감으로 무지 여러사람에게
칼날을 휘두르고 치받아 상처를 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휘두르는 칼에 나는 안다칠까요?
열 번 날을 세워 공격하면 상대도 한번이상은 내게
찔러대지 않았을까요?
그러고보면 난 주님을 만난게 얼마나 다행이고 복인지 모릅니다.
옹졸하고 급하고 이기적인 내가 이만큼이나 안전한 것은
순전히 주님 닮으려 몸부림치는 덕입니다.
고난주간을 닷새째 지나가는 중입니다.
어쩌면 고통과 위험을 넘어가는 중인지 모릅니다.
이 과정이 아니었다면 성질대로, 욕정대로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거나,
아님 이 세상에서도 남의 보복으로 주검이 되었을지도 모르니...
아이구! 이런 내가 무슨 폼 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혹은 숭고한 행적에 동참이라도 하는 양,
남들의 본이라도 될 것 같이 고난에 동참하겠습니까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도 분에 넘칩니다
하면서 기뻐해야겠습니다.
그저 절 불러주신 그 하나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여기서 더 특별한 무슨 가르침이나 깨달음 안주셔도 됩니다.
감당 못합니다. 주님, 제 받은 복이라도 알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