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응의 원리(2)
이 1, 2장의 사건이 3장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면, 그 울타리를 벗기자 욥이 울타리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잘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보응의 원리를 욥이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보응의 원리대로 욥에게 복을 주셨고 욥은 그 신앙을 지키고 있었는데 사탄의 도전을 받고 하나님이 그 울타리를 허물기로 합니다. 하나님은 헐었지만, 욥은 붙들고 늘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그런 보응의 원리 외에는 다른 길을 알지 못하니까 그것을 붙잡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장의 결론이고 2장의 결론입니다.
욥이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인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당신, 이래도 참고 견디겠는가?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게 뭡니까? 드디어 보응의 원리 가지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응의 원리를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현실에서 자기가 믿는 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의 범주 사고의 틀이 깨졌습니다. 그러자 그것이 깨지고 없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느냐. 그러니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욥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합니까?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 3:1).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 틀이 깨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차마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갖고 있던 것은 보응의 원리고 그 보응 원리의 최고 꼭대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 불경한 소리는 못 하겠고, 자기가 알고 있던 그들은 다 깨졌습니다. 그 틀은 인간이 붙잡아서는 유지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틀을 유지하고 계셔야 그 들이 유용한데, 하나님이 그 틀을 깨버렸다는 것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할 수밖에 없습니까? 신앙은 지켜야겠는데, 자기가 아는 신앙의 원칙은 지켜지지도 않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으니까 욥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욕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안 태어났으면 됐을걸. 나는 왜 태어나 가지고 하나님도 곤란하게 만들고 나도 곤란한 인생이 되었는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이 유일하게 잘난 점입니다.
~ 박영선, 《욥기 설교》, p.45~6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