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사색,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는 길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사색(생각)하지 않으면 학문이 체계가 없어 미혹에 빠질 수 있고, 사색(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오류나 독단에 빠져 위험할 수 있다.[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論語(논어) 爲政篇(위정편)>.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줄기 갈대와 같은 존재이지만 생각할 수 있기에 가장 존엄한 존재이다”라고 하면서 사색의 중요성을 말하였다.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에서는 군자가 생각해야할 아홉 가지[구사(九思)]에 대해 말하기를 “군자는 생각해야할 아홉 가지가 있다. 보는 데는 밝게 할 것(보는 데 편견이나 욕심이 없이 바로 보면 밝아진다). 듣는 데는 총명하게 할 것(듣는데 가림 없다면 총명하여진다). 안색은 온화하게 할 것(안색은 온화하여 노한 티를 가지지 않을 것). 모습은 공손히 할 것(몸에 단정하지 않는 곳이 없게 할 것). 말은 진실하게 할 것(한마디 말도 허황한 말은 하지 말 것). 매사에 경건함을 생각할 것(한 가지 일이라도 충실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 것). 의문이 있을 때는 물을 것(의심나는 것은 선각에게 물어서 반드시 알도록 할 것). 화가 나면 닥칠 어려움을 생각할 것(분한 마음이 일거든 이성으로 절제 하여야 한다). 이득을 보면 의로움을 먼저 생각할 것(재물이나 이권을 보면 분별을 밝혀 의(義)에 합당한 연후에 취할 것)[군자유구사 시사명 청사총 색사온 모사공 언사충 사사경 의사문 견득사의(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라고 하였다.
인간이 생각할 줄을 모른다면 파스칼의 말처럼 이미 인간다운 가치를 잃은 것이며 무엇을 배우기는 하는 데 스스로 생각하여 분별할 줄을 모른다면 온전한 인격을 이룰 수 없고 오히려 이단(異端)에 빠질 수가 있을 것이다. 노암 촘스키( Noam Chomsky)는 말하기를“누구도 진리를 그대의 머릿속에 집어넣어주지 않는다. 진리는 그대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한편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 학문을 배울 필요성에 대하여 백강 이경여 선생은 말하기를 “사람의 도리는 덕(德)을 밝히려고 마음을 맑고 바르게 바루어 나감을 근본으로 합니다. 그러려면 학문을 강명(講明)하여 마음을 개발함으로 바른 것을 회복하고 이욕(利慾)의 사사로운 것을 이겨 만화(萬化)의 주재가 되어 끝이 없는 사변(事變)에 대응하여야 될 것입니다. 이른바 강학(講學)은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깊이 몸 받고 그 지취(旨趣)를 밝혀, 의리(義理)의 당연한 것을 찾고 일에 잘잘못의 기틀을 증험하여,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참으로 알아가고, 미리 생각하여 대책을 세워두도록 하여야 합니다.( 백강 이경여 선생 상차문중에서, 조선왕조실록)”라고 하였다.
한편 율곡 이이 선생은 그의 ‘성학집요’에서 성학(聖學)의 요점으로 말하기를 “먼저 모름지기 그 뜻을 크게 세워서 성인(聖人)을 표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한다면 우리 일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겉과 속을 한결같이 하여 어두운 곳에 있을 때에도 환히 드러난 곳에 있듯이 하고 홀로 있을 때에도 여러 사람과 같이 있는 것과 같이 행동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맑은 하늘에 밝은 해처럼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한계가 있는 존재인 만큼 불멸의 성현(聖賢)들의 학문과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간다운 숭고한 가치를 실현할 수가 없다. 고로 우리는 반드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자세로 배우고 배운 바를 토대로 사색하며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초가 잘못되어 오류나 독단에 빠져 모두에게 큰 위험을 가져올 수가 있다.
생각건대 이러한 배움과 사색이 무르익어 세상의 일들에 대한 올바른 분별력이 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 나서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이웃들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니 스스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날 우리 조상들을 보면 많은 공부를 하고 과거에도 합격하여 세상에 나와서 일을 하다가도 스스로 학문의 짧음을 느끼고 자리에서 물러나 공부하기를 청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고, 세종대왕 때부터는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제도를 두어서 오로지 학문에 전념하게 하여 인재를 양성한 연후에 비로소 과업을 수행케 하였으니 그 효시가 집현전이었다. 특히 백강 이경여 선생은 재상으로 있을 때 인재등용의 원칙을 재간이 있는 사람보다는 경륜과 덕망을 갖춘 인물을 등용할 것을 주장 실천하였으니 침으로 옳은 생각이다. 일부 재간만 갖춘 사람이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은 매우 위험하니 대개 역사의 간신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으니 수많은 사기꾼 위선자들 하물며 전과4범까지 정치 일선에 나와서 온 나라를 어지럽고 위태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부의 문재인은 수많은 자격 없는 자들을 등용하여 얼마나 나라에 큰 위해를 주었는가. 사법부를 망친 김명수의 등용은 너무도 뼈아픈 것이다. 오늘날 인재등용방식은 독일의 방식이 가장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은 경륜과 업적이 가시적으로 들어나야 주요한 일을 맡을 수 있는 체제가 비교적 잘 정비된 것 같다.
2023. 7.30.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