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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의병정신선양회,백두대간 의병전쟁 답사회 원문보기 글쓴이: 범털과개털(미산고택,저상일월)
사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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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懲毖錄 1604년 류성룡이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려는' 취지로 임진왜란의 원인 및 전황 등에 관해 기술한 책이다. 초간본 원본은 『징비록』특별전(2015.8.5~9.30) 기간 중 8월 5일부터 8월 31일까지 공개한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국보 제132호 | |
난후잡록 亂後雜錄 16세기 류성룡이 전쟁 중에 겪었던 일과 자신이 지은 글의 초본을 평안도 관찰사가 올린 『진관관병편오책』의 뒷면에 쓴 것이다. 서문과 내용이 대부분 징비록과 중복되는 점 등에서 징비록을 쓰기 위한 초고본으로 보인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160호 | |
한글본 징비록 19세기 한글로 번역한 2권 1책의 징비록으로, 『서애선생문집』과 함께 오리 이원익(李元翼, 1547~1643) 종가에 소장되어 있다. 이원익과 친하게 교류했던 서애 류성룡의 종가에는 『오리선생문집』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충현박물관 소장,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34호 | |
영의정 교지 領議政 敎旨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인 1592년 5월 2일에 류성룡이 영의정에 처음 임명되었을 때 받은 교지이다. 『징비록』에는 ‘저녁에 궁으로 돌아왔는데, 죄로 파직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 후 류성룡은 1593년 10월에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460-3호 | |
유서통 諭書筒 16세기 국왕이 명령하거나 국왕에게 보고하는 문서 등을 넣었던 대나무 통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460호 | |
경상 經床 16세기 류성룡이 사용하던 대나무 경상이다. 판 밑면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1)가 경상의 전승 과정과 본인이 취득한 경위 그리고 수리한 내역 등을 기록한 글이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 |
투구 套具 16세기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투구이다. 류성룡은 1592년(선조 25)에 도체찰사(都體察使 : 전쟁시 최고 군사직)가 되어 임진왜란 당시 현지에서 군사 업무를 총괄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460-1호 | |
당장시화첩 唐將詩畵帖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원군의 장수로 온 이여송(李如松, 1549~1598)이 류성룡에게 보낸 부채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풍산류씨 하회 충효당 기탁), 보물 제160-8호 |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http://nfm.go.kr/Display/disIng_view.nfm?seq=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