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미국이 더 높은데"...집값은 왜 우리가 더 떨어졌나
가계, 국가채무 급증세...이자부담 '허리 휘어'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눈덩이처럼 커진 가계와 정부 빚이 고금리와 맞물리면서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속 고금리 태풍으로 전셋값이 급락하자 역전세를 두려워한 개인들이 매물을 내놓으면서 집값 하락폭이 커졌다.
금리인상 행진에 부채부담을 이기지 못한 가계가 집을 내놓으면서 지난해 수도권 집값은 20% 이상 하락했다. 이는 우리보다 금리인상이 더욱 가팔랐던 미국 등 주요국 보다 집값 하락이 더 높은 수준이었다.
■부채 부담 주요국 최고수준
6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부채(전세보증금 포함) 2925조3000억원, 국가채무 1067조원으로 급증하면서 '부채 공화국'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에 시달리면서 기준금리가 우리보다 더 가파르게 오른 미국 등 주요국보다 자산가치 하락이 더 가파르다. 높은 이자에 시달린 가계가 집값과 전셋값 하락이 이어지자 버티지 못하고 매물을 잇달아 내놓는 것이다.
은행 수석전문위원은 "가계부채에 전세보증금을 합치면 3000조원에 달하고, 주택담보대출 상당부분이 변동금리 대출이어서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며 "고금리 태풍이 불면 한국 주택시장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수년간 갭투자가 극성을 부린 것도 변동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전문위원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아파트 갭투자가 유행했는데, 고금리 태풍으로 전셋값이 급락하니 역전세난이 무서워 매물로 내놓았다"며 "갭투자는 증시의 신용융자 거래와 같다. 호황기에는 가격을 쉽게 부풀릴 수 있고, 침체기에는 낙폭을 키우는 뇌관이 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한국은 고금리 충격을 미국 등 주요국보다 더 크게 받았다. 세계 부동산을 분석하는 글로벌퍼라퍼티가이드에 따르면 한국 주택가격은 1년새 5.28% 하락했다.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전환했지만, 상반기 상승으로 연간 집값은 오히려 8.41% 상승했다.
한국부동산원 기준 2022년 전국 주택가격은 전년말 대비 4.68% 빠졌다. 같은 기간 수도권은 6.48% 하락했다. 실거래가는 더 크게 하락했다. 아파트 실거래가로 보면 같은 기간 전국 17.0%, 수도권 22.4% 하락했다.
서울 시내 은행 창구 모습.
■가계 이자부담 감당 어려워
고금리 행진으로 우리나라 가계 이자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전세보증금 포함 156.8%(한국경제연구원 기준 2925조3000억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높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 이상인 국가는 우리나라와 스위스 호주 캐나다 덴마크 네덜란드까지 6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전세보증금을 제외하더라도 2021년 2·4분기 처음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세계 1위를 올랐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2022년 10월말)을 보면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2년 2·4분기 세계 35개 나라 중 102.2%로 가장 높았다. 2021년 2·4분기(105.2%) 대비 3.0%p 낮아졌다. 뒤이어 홍콩(94.5%), 태국(88.7%), 영국(83.2%), 미국(77.7%), 말레이시아(69.4%) 순이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계 자산의 64%(금융투자협회 2022년 8월 기준)가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에 묶여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비금융자산 비중은 미국(28.5%), 일본(37.0%), 영국(46.2%), 호주(61.2%)보다 높다. 반면 한국 금융자산(35.6)은 미국(71.5%), 일본(63.0%), 영국(53.8%) 등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는 자산의 3분의 2를 주택에 묻어 두고 살아가는 꼴이다. 이에따라 요즘같은 고금리가 지속될 경우 이자부담이 높아지면서 가처분소득이 낮아지고 소비 부진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올리면 실질 주택 매매가격이 하락하고, 민간 소비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소비가 줄어드는 '역자산 효과' 탓이다. 또 고금리로 주담대가 줄면서 주택 매매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전경련은 2003년 2·4분기부터 2022년 4·4분기까지 분기별 자료 분석에서 2개 분기 전 기준금리가 1%p 높아지면, 당해 분기 주택 매매 가격 상승률은 0.17%p 낮아진다고 했다. 또 주택매매 가격 상승률이 1%p 내리면 민간 소비 증가율은 0.16%p 하락했다.
■정부, 기업 채무도 급증세
우리나라 국가채무 증가속도도 가파르다.
재정건전성은 뒤로 한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각종 포퓰리즘 정책이 기승을 부린다. 윤석열 대통령은 쌀 과잉생산을 부추기는 '양곡관리법'을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규정하고 4일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정부가 재정 통제 수위를 높이는 재정준칙 관련 국가재정법 통과를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의 발목잡기로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1년 46.9%(세계 24위)에서 2022년 49.6%로 2.7%p 높아져 증가속도가 가파르다. 1년새 국가채무는 100조원 가량 증가했다.
기업도 부채도 높은 수준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재를 겪으면서 부채를 대폭 축소했지만, 최근 증가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GDP 대비 비금융기업 부채 비율은 2022년 2·4분기 기준 117.9%였다. 홍콩(279.8%), 싱가포르(161.9%), 중국(157.1%)에 이어 네 번째였다. 비금융기업 부채 비율 증가세가 가팔라 2022년 1·4분기 7위에서 3개월 만에 4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