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22. 큐티
마태복음 10:34 ~ 42
주님을 위하여 살라
관찰 :
1) 내가 온 것은
- 34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주님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하십니다.
- 35절.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 주님이 오신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서 불화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36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가 될 것이라는 말씀은 어려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어려운 이유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평화를 주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시라고요? 주님이 오심으로 가족 간의 평화도 깨어진다고요? 이런 것이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다음 구절에 나오게 됩니다.
- 37절.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 주님이 화평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시는 화평입니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가족 간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화평이 아닙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평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대상도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공경하고 사는 것은 옳으나 그것이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한 아버지요 어머니이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육신의 부모만을 사랑하는 것이 질서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 모든 존재를 창조하신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합당한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 주님 말씀의 의도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진짜 평화가 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 아버지를, 어머니를, 아들을, 딸을, 시어머니를, 며느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거짓이거나 할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진실한 사랑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 인간의 정욕에 따른 사랑의 대상을 극대화시키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한계가 있고 위험이 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만, 영원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만 영원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의 사랑의 영역은 결국 필연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지적하시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사랑의 대상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 잘못된 도리를 바꾸시고자 검을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목숨을 걸어라
-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 “또”라는 표현을 통해 이것이 위에 언급한 것과 병렬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평화가 아닌 검을 던지는 이유를 이 말씀을 통해서 부연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의 ‘짐’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틀입니다. 죽음이 없는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역사상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는 사형도구입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성도는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제자의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가 과연 무엇인가? 사서 고생하는 것을 십자가라 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의 실체를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 39절.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 사랑이 많으셔서 문둥병자의 몸에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라” 말씀하시는 주님이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으로,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3) 주님 받으실 영광의 위임
- 40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주님의 제자를 영접하는 것을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여겨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야말로 주님이 받으실 영광을 제자들에게 나눠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진실한 제자들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그런 놀라운 영광을 누리는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더불어 주님의 제자들을 섬기는 자들의 축복은 하나님을 영접한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 41절.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 섬기는 자가 받는 상급의 크기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곧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상을 받기를 원하심으로 상 받는 길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 42절.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냉수 한 그릇을 베푸는 조그만 선의에 대해서도 주님은 그 상을 베푸시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다 채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복주시기 위해 주님의 제자들을 대접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다 후사해 주시겠다고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넉넉히 채워주시는 분으로서 상벌을 다루실 때 상에 대해서 매우 폭넓은 잣대로 채워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르침 :
1) 주님의 제자는 이 세상의 무엇도 주님보다 더 사랑하여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이라 할지라도 무엇도 예외가 없습니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결국은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을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을 지으신 분을 사랑해야 그분이 지으신 존재들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진실로 주님을 따르는 종을 섬기는 손길에 복이 있습니다. 주님이 그 섬기는 손길에 대해서 책임져 주시고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섬김을 받는 이들도 지나치게 겸양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당연할 줄 알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행위는 문제가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많은 사람들을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는 위치에 서는 경우를 주의하고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이 땅에서 아무리 유명하게 사역을 한다고 해도 하늘에서 얻을 상급이 없습니다. 가련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자칫하면 천국에 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적용 :
1)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주님은 이 때 왜 나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인가? 다시금 나의 마음을 다잡게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 앞에서 나의 모습이 벌거벗겨지는 느낌입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주님을 따르고 싶은 나의 욕구가 주님 앞에서 다시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드는 상황에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기를 위해 다시금 간절히 주님께 구합니다. 왕을 부르는 소리로 하나님의 솔루션을 구합니다.
2)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섬김을 받는 자보다 섬기는 자가 하늘에서 더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섬김을 받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기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나치게 거부하는 것도 주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역자가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야 당연한 듯이 요구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요구하는 순간 삯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합니다. 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 주님 주시는 것을 감사함으로 받되 겸손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안양샘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몸에 문제가 있는 곳이 발견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심각한 문제는 없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