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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살곶이벌 말목장 터의 경계 흔적.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아차산장성 추정 구간의 땅속에서 확인됐다. 일종의 토성 구조물인 돌무더기 석렬로 목장 터의 경계를 짓기 위해 쌓은 것으로 보인다.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서울 어린이대공원 땅 밑에서 조선시대 관청에 딸린 말들을 먹여 길렀던 목장 흔적이 발견됐다.
국가유산청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소장 김지연)는 지난 11~12월 서울 동쪽 외곽 아차산에 있는 옛 장성 실체를 밝히기 위해 최근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안 성터 구간에 대해 시굴 조사를 벌인 결과 조선시대 나라에서 운영했던 말 목장의 자취가 일부 드러났다고 22일 발표했다.
연구소 쪽이 낸 자료를 보면, 확인된 말 목장의 실체는 조선시대 서울 지역 고지도에 나오는 ‘살곶이 목장성’으로 판명됐다. 이 목장성은 조선시대 궁궐·조정에 딸린 말과 수레 등에 관한 업무를 맡았던 사복시에서 아차산 인근 살곶이 지역에 15~16세기 닦은 국영 목장 일부였다. 목장 경계를 짓기 위해 돌과 흙으로 둘레에 토성을 쌓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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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박물관에 소장된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司僕寺箭串牧場圖). 살곶이 목장의 영역과 지세가 표시되어 있다.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조사에서 확인된 목장성 성벽은 높이 약 3m에 너비는 11m에 이른다. 흙을 층 지어 쌓은 아랫부분을 중심으로 일부 석축을 덧댄 얼개가 드러났다. 자연 지형을 활용해 흙성벽을 먼저 쌓고 한차례 이상 덧대어 쌓은 뒤, 마지막 단계에 성 안쪽 방향으로 돌들로 축벽을 쌓아 목장 안에 있는 말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발굴 내용은 ‘비가 내리는 철이면 토성이 무너지면서 말이 도망해 이를 막으려고 한 면에 석성을 쌓았더니 말이 빠져나가는 일이 줄었다’는 ‘조선왕조실록’(명종 10년, 1555년)의 기록과도 들어맞는다. 성벽의 아래 기층 부분과 석축 부근에서는 조선시대 도기와 자기의 조각들도 수습돼 성벽을 쌓은 연대도 가늠할 수 있게 됐다. 연구소 쪽은 “시굴 조사 성격상 유적 전모를 밝히지는 못했으나, 살곶이 목장성과 아차산장성의 실체를 고고학적으로 규명한 첫 시도여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국가보물 ‘목장지도’의 ‘진헌마정색도’.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살곶이 목장성’은 국가보물인 조선시대의 ‘목장지도’(牧場地圖,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에 실린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와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司僕寺箭串牧場圖, 서울시립대박물관 소장) 등에 영역이 표기돼 서울 동대문구, 중랑구, 성동구, 광진구 일대에 자리했던 것으로 추정해왔다.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에는 목장 일부 경계 부분에 돌로 쌓은 성벽이 그려져 ‘목장성’ 명칭을 붙인 근거가 됐으나, 세부 위치와 축조 기법에 대해서는 그동안 밝혀진 것이 없었다.
아차산장성 어린이대공원 구간 성벽 조사 현장 전경.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제공
목장 터 발견의 단서가 된 아차산장성은 광진구 아차산과 동대문구 배봉산 능선을 따라 길게 둘러쌓은 성으로, 중랑천 일대 들판인 살곶이벌을 에워싼 모양새다. 장성 유적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이 처음 찾아내 백제시대 성곽 또는 조선시대 목장성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후 장성의 실체를 놓고 논란이 거듭됐지만, 발견한 지 100년이 지나도록 발굴 조사가 진행되지 않아 구체적인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지난해 3월부터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가 서울어린이대공원 안 장성 추정 성벽터 두곳에서 시굴 조사를 벌이면서 조선시대 지도와 사서에 나오는 ‘살곶이 목장성’의 실체를 처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노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