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6년 6월 26일 (금) 오후 4시
대상 : 대전 민족사관
내용 : '걸리버 여행기' 외를 읽고
우리 수업은 조금 독특한 구조로 흘러간다.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하나의 책을 동시에 읽고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읽는 책이 제각각인 '순환식 커리큘럼'으로 운영된다. 사정은 다름 아니라 민족사관에 보유 중인 도서가 권당 한두 권에 불과해, 그 많은 녀석이 한 주에 같은 책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사랑의 가족》, 《키다리 아저씨》, 《이솝우화 lights》, 《걸리버 여행기》, 《노트르담의 곱추》, 《안네의 일기》 등을 순차적으로 돌려가며 읽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아이들이 읽은 책의 밑바탕에는 유독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과 우애'를 다룬 서사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이토록 뭉클한 책들을 읽고도 지독하리만치 무미건조한 독후감을 써내려 갔다. 삶에서 받아보지 못한 온기를 활자만으로 공감하기란 역시 무리였던 걸까. 이 녀석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정형화된 글쓰기 수업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에 대한 깊은 대화라는 확신이 들었고, 오늘로 벌써 그 세 번째 시간을 맞이했다.
오늘 수업에서는 한 녀석과 유독 깊은 가족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홀로 남은 아버지와는 모진 갈등과 다툼 끝에 지금은 아예 연락조차 끊고 지낸다는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남긴 채 돌아선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내 마음속에 한 가지 화두가 스쳤다. 원래 준비했던 수업 내용에는 없었지만, 지금 녀석이 겪고 있는 아버지와의 깊은 갈등을 심리적으로 해석하고 치유해 주고 싶다는 간절함이 일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성인 아이(Adult Child)'라는 개념을 꺼내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을 그대로 품고 있는 부모의 나약함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불쑥 꺼낸 이야기가 아이의 마음을 마법처럼 파고들었다. 아이는 숨을 죽이고 내 설명을 듣더니, 이내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듯 눈시울을 붉혔다. "선생님,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아빠가 왜 나에게 그런 왜곡된 반응을 보이셨는지, 왜 그토록 대화가 통하지 않고 갈등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돼요……."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마치 마음속에 꽁꽁 엉켜 있던 거친 실타래가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풀려나가는 듯한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감사하고 먹먹한 순간이었다.
돌아보면 잔인하게도 푸르렀던 6월 한 달은, '가족의 사랑'이라는 아프고도 묵직한 화두를 붙잡고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 주파수를 맞추는 시간이었다. 제한된 수업 시간 탓에 더 오랜 시간 아이들을 안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교실 안에서 이토록 밀도 높은 치유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 같고 놀랍다.
다가오는 7월에도 이 방향성을 잃지 않고 수업을 이끌어가고 싶다. 단순히 읽기 대행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읽은 책을 디딤돌 삼아 삶의 핵심적인 주제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만지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아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본질적이며 의미 있는 진짜 '수업'이 아닐까 확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