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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706
■ 3부 일통 천하 (29)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4장 병법가 오기(吳起) (4)
장축(張丑)이 떠나자마자 오기(吳起)는 전 장수들을 불러 모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결연한 표정으로 명했다.- 군사를 삼로(三路)로 나누어 장축의 뒤를 몰래 따르라!
노(魯)나라 병사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장축(張丑)은 전기(田忌)에게 보고했다.
"노(魯)나라 군사는 늙고 병든 약졸들 뿐이었습니다. 오기(吳起)는 진심으로 우리와
화평하기를 갈망할 뿐 싸울 뜻은 전혀 없습니다. 추격군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되겠습니다."
전기(田忌)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린 후 전군에 철군 명령을 내렸다.
제(齊)나라 군사들이 기쁜 마음으로 회군할 준비를 할 때였다.둥, 둥, 둥, 둥!
영문 밖에서 난데없는 북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 들려왔다.
모두들 놀라 바라보니 이게 웬일인가.어느새 삼면으로 노(魯)나라 군사가 새카맣게 포진하고
있지 않은가.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기습이었다.
"속았다!"
전기(田忌)는 대경실색(大驚失色)했다.집으로 돌아갈 꿈에만 부풀어 있던 병사들도
어쩔 줄을 몰라했다.노군(魯軍)의 공격은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듯 거셌다.
반면, 제(齊)나라 군사는 병차에 말을 맬 여가도 없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 이후로 벌어지는 광경은 전투라고 할 수 없었다.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전기(田忌)는 병차에 올라타 겨우 영채를 빠져나왔다.장수 장축(張丑)이 호위하지 않았더라면
노군의 발에 짓밟혀 벌써 죽었을 것이다.달아나는 제군의 뒤를 노군(魯軍)이 추격했다.
남비(南鄙)의 넓은 들은 제나라 군사의 시체로 가득했다.내는 핏물로 붉게 물들었다.
오기(吳起)는 국경을 넘어 제나라 평륙(平陸) 땅까지 몰아붙인 후에야 개선가를 부르며
곡부성으로 돌아갔다.약한 노(魯)나라가 강한 제(齊)나라를 대파하다.
이것이 오기(吳起)의 이름이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된 첫 승전의 전말이다.
- 대승(大勝).노목공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컸다. 친히 동문 밖까지 나와
개선해오는 오기를 맞이했다.그 날로 오기에게 상경(上卿)벼슬을 내렸다.
싸움에 대패하고 겨우 목숨을 구해 임치로 돌아간 전기(田忌)는 재상 전화(田和)를 대할
면목이 없었다.그는 장수 장축(張丑)을 불러 책망했다."이번 싸움에 진 것은 다 그대 책임이다."
"제가 노군 영채에 갔을 때 그들은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그것이 오기의 계략인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두 사람으로부터 패배의 원인을 들은 재상 전화(田和)는 길게 탄식했다.
"오기(吳起)는 손무나 사마양저에 손색이 없는 장수로다. 오기가 노(魯)나라에 있는 한
우리 제(齊)나라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오기(吳起)에게 속아 패전에까지 이른 장축(張丑)은 약이 올랐다.자리에서 일어나
전화에게 말했다."오기(吳起)만 없어지면 노나라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듣자하니 오기는 재물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제가 비밀리 잠입하여 오기를 노(魯)나라에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좋다. 그대는 무엇이 필요한가?""미녀 두 명과 황금 1천 일(鎰)을 내려주십시오."
장축(張丑)은 장사꾼으로 변장했다.
그러고는 전화에게서 받은 미인 두 명과 황금 1천 일(鎰)을 수레에 싣고 노(魯)나라로 들어갔다.
한밤중에 오기의 집을 찾아간 그는 두 미인과 황금을 바치며 정중하게 말했다.
"우리 나라 재상께서 장군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앞으로 친밀하게 지내자는 뜻이니
거절하지 말고 받아주십시오."
오기(吳起)는 전화(田和)가 제(齊)나라 공실을 차지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에 대한 포석(布石)으로 노나라 장군인 자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밀사를 파견한 것으로 판단했다.오기(吳起)는 기분이 좋았다.
"감사하오. 나는 앞으로 제(齊)나라 일에 관여하지 않겠으니 안심하라 전하시오."
다음날이었다.장축(張丑)은 곡부성을 떠나면서 시장 거리로 들어가 닥치는 대로 떠들어대었다.
- 오기(吳起)는 제나라 재상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齊)나라와는
싸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제(齊)나라라면 노(魯)나라의 주적(主敵)이었다.
노나라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한결같이 격분하며 오기를 비방했다.노나라 대부들의 대부분은
유가(儒家)출신이었다.그들은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장군에 오른 오기(吳起)를 매우 미워했다.
더우기 그는 유가를 버리고 떠난 배신자가 아닌가.탄핵이 일기 시작했다.
-오기(吳起) 같은 자가 있다는 것은 우리 노(魯)나라의 수치입니다.
- 제(齊)나라와 내통한 자를 대장직에 머물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오기는 위(衛)나라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쳐온 죄인입니다. 위나라는 우리 노나라와 형제국인데, 그 나라의 죄인을
우리가 중용하는 것은 형제국을 배신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연이은 탄핵에 노목공(魯穆公)은 공의휴를 불렀다.
"내 본시 오기(吳起)가 측량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소. 공공연히 제나라의 뇌물을
받는 자를 어찌 그냥 둘 수 있으리오. 경(卿)은 그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소?"
공의휴(公儀休)는 오기를 천거한 사람이었다.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오기(吳起)가 제(齊)나라로 가면 우리 노(魯)나라는 위험해진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노목공에게 말했다.
"그를 쓰지 않을 요량이시라면 차라리 죽여 없애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기(吳起)는 병법의 대가였다.첩자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환관을 매수해 틈틈이 궁중의 일을 염탐하고 있었다.
그 날로 노목공과 공의휴 사이에 오고 간 대화 내용은 오기에게 전달되었다.
"나를 죽인다고?"오기(吳起)는 두렵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한편으로는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일단 노(魯)나라에서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공연히 앉아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
그 날 밤, 오기(吳起)는 재물을 챙겨 수레에 싣고 곡부성을 떠났다.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제(齊)나라가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제(齊)나라는 조만간 큰 변란이 일어날 것이다. 어찌 그런 나라에서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문득 위(魏)나라 군주 위문후가 능력 있는 인재를 아낀다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 위(魏)나라로 가자.'
707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707
■ 3부 일통 천하 (30)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4장 병법가 오기(吳起) (5)
오기(吳起)는 드디어 위(魏)나라에 당도했다.그러나 그는 곧바로 도성인 안읍(安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6개월여에 걸쳐 위(魏)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위나라 실정을 살폈다.
'적황(翟璜)이라.......'
위문후에게 여러 인재를 천거하여 큰 공을 세우게 한 인물이 상경 적황임도 알아냈다.
마침내 그는 안읍으로 들어가 적황의 집을 불쑥 찾아갔다.
"저는 오기라고 합니다. 저를 쓰시면 위(魏)나라는 강성해질 것이요, 저를 쓰시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그는 이렇게 자신을 추천했다.이때 오기(吳起)의 나이 30세.
60대의 노대신 적황(翟璜)은 당돌하리 만큼 패기 넘치는 오기가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철저한 능력 지상주의자인 적황으로서는 그런 따위의 과거는 하등 관계가 없었다.
이런 면에서 오기(吳起)는 사람을 정확하게 찾아온 셈이었다.
"좋네. 잠시 내 집에 머물며 기다려보게."그러고는 때마침 악양을 대신할 장수감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위문후(魏文侯)를 찾아가 오기(吳起)를 천거한 것이었다.
적황(翟璜)은 다음날 오기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위문후(魏文侯)는 오기를 쓸 것인가 아닌가를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었다.
오기의 능력을 시험해본 후 판단할 작정이었다.<손자병법>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널리
읽혀오는 <오자병법(吳子兵法)>은 바로 이 날의 위문후와 오기의 대면 장면부터 시작하고 있다.
오기(吳起)가 유생 차림으로 병법을 진언하고자 위문후를 배알하였다.
위문후(魏文侯)가 말했다."나는 전쟁에 관한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소."
그러자 오기가 대답했다."저는 겉으로 드러난 것을 보고 속에 숨겨진 것을 짐작할 수 있으며,
과거의 일을 돌아보고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어찌
속마음과 다른 말씀을 하십니까?"풀어보면 이러하다.
오기(吳起)는 일반인의 의상과는 다른 유가(儒家)의 옷차림을 하고 위문후를 배알했다.
물론 그가 이러한 데에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문후(魏文侯)는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의 문하생이다.
그 신하들 또한 대부분이 자하로부터 경서와 예를 배웠다.오기(吳起) 자신은 어떠한가.
- 나 또한 공자의 제자인 증삼(曾參)의 문하생입니다. 그러므로 주공과 나는 동문인 셈입니다.
학연(學緣)을 앞세워 자신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게 하려는 오기다운 처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문후로서는 오기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자리였다.
유학보다는 병학(兵學)을 논하기 위해 오기를 만나는 것이 아닌가.
거두절미하고 병학에 관한 물음을 던졌다.그런데 위문후(魏文侯)의 물음은 다소 음흉했다.
- 나는 전쟁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나는 그대와 아무 할말이 없다. 차라리 유학(儒學)에
대해서라면 얘기할 바가 많다.유가에서 파문당한 오기에 대한 일종의 비아냥거림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기(吳起)는 이미 위나라 실정을 익히 살핀 바 있었다.
각 고을마다 병장기를 제작하고 군사 훈련에 전념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역시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제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주공께서 군사부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응대한 후 오기(吳起)는 그 증거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지금 주공께서는 사시사철 짐승의 가죽을 벗겨 옻칠하고, 채색하고, 문양을 그려넣고 있습니다.
이것이 갑옷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또 주공께서는 2장(丈) 4척의 장창(長槍)과 1장 2척의 단창(短槍)을 만들게 하였으며, 수레에
가죽을 덧씌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병장기와 병차를 제작하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기(吳起)의 이러한 지적에 위문후(魏文侯)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는 그것을 어찌 알았는가?""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신(臣)은 겉을 보고 속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씩씩하고, 거리는 활기에 차 있습니다. 이는 곧 그들이 군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아무리 병장기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군사가 약하면 그 병장기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또한 군사가 강하다 하더라도 그 군사를 지휘할 장수가 없으면
그 군대는 백전백패(百戰百敗)일 것이 뻔합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돌이켜볼 때 영명한 군주는 덕과 아울러 군대를 함께 길러왔던 것입니다.
주공께서는 위(魏)나라를 부국강병(富國强兵)한 나라로 만들고 싶지 않으십니까?"
위문후(魏文侯)는 어느새 오기의 말에 빨려 들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 수 있겠소?""과거는 미래의 거울입니다.
옛날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룬 군주들은 먼저 반드시 백성을 교화시키고 만민과 친화를 이루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이는 인화(人和)가 부국강병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인화(人和)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하지 말아야 할 것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사불(四不)'이라고 합니다. 주공께서는 이 사불을 들어보시겠습니까?"
"듣고 싶소."
"첫째, 나라가 하나로 결속되어 있지 않으면 군대를 출정시켜서는 안 됩니다.
둘째, 군(軍)이 하나로 뭉쳐 있지 않으면 부대를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셋째, 진영(陣營)이 단합되어 있지 않으면 나아가 싸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전투에 임하여 일사불란(一絲不亂)하지 않으면 결전(決戰)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 네 가지 해서는 안 될 것 때문에 옛날 영명한 군주는 가장 먼저 백성과 나라의 화합부터
다졌던 것입니다."오기의 청산유수(靑山流水)와 같은 말과 해박한 병학의 지식에
위문후(魏文侯)는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그는 일단 오기(吳起)를 돌려보낸 후 정책 고문인 이극(李克)을 불러 물었다.
"경(卿)이 보기에 오기(吳起)는 어떠하오?"이극(李克)이 대답했다.
"오기(吳起)는 탐욕스럽고 여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의 용병 능력만큼은 사마양저(司馬穰苴)도
따를 수 없겠습니다."
마침내 위문후(魏文侯)는 오기(吳起)를 장군 겸 서하 태수로 삼아 서쪽 국경으로 내보냈다.
70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