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46) - 남은 때를 무엇으로 가꾸랴
어수선한 한 해가 저물어간다. 지성인들은 올해를 어떻게 평가할까? 대학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목숨을 함께하는 새'라는 의미다. 좌우로 갈려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당부를 담았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이번 설문에 참여한 대학교수 1046명 가운데 347명(33%·복수응답)이 공명지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공명지조는 몸 하나에 두 머리가 있는 상상의 새다. 이 새의 한쪽 머리는 밤에, 다른 한쪽 머리는 낮에 일어난다. 어느 한 쪽이 없어지면 자기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만, 사실 두 머리는 한 몸을 공유하는 운명공동체다. 이를 뽑은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지조를 바라보는 것 같다’며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한국 사회에 대해 안타까움이 들어 선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짐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라는 의미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 경종보다 덕담이 오가는 공동체를 가꾸자.
지난 주말(12월 14일, 토), 라마다서울동대문호텔에서 한국체육진흥회가 주관하는 걷기인의 축제가 열렸다. 해마다 이맘때 가지는 행사, 100여명의 동호인이 참여하여 한 해를 건강하고 활기 있게 보낸 것을 자축하고 격려하는 흥겨운 모임이었다. 그간 열심히 걸은 이들 다수가 상을 받고 경품도 골고루 돌아가는 풍성한 잔치마당, 회원 모두 건강사회를 이룩하는데 정진하기를 다짐하며 혼연일체가 되었다.
걷기인의 축제에서 상을 받은 이들
미담 한 토막, 경품 중 특상에 해당하는 자전거에 당첨된 이가 지방까지 가져가기 힘들다며 양보하여 재 추첨에 들어갔다. 이어진 당첨자들 역시 이러저러한 사유로 사양하여 다섯 번째에야 당첨자가 결정되었다. 각박한 세태에 넉넉한 인심이 아름다워라. 일요일(15일)은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 이들 상당수와 함께 망우공원에서 동구능까지(15km) 걸으며 활력과 친목을 다졌다.
올해로 은퇴 10년, 남은 때를 무엇으로 가꾸랴. 건강을 유지하고 보람을 찾는 여러 방안이 있지만 스스로 꼽아보니 두 가지가 큰 활력소다. 하나는 걷기요 다른 하나는 쓰기.
1. 걸으면 해결된다.
정년을 몇 달 앞둔 2009년 봄, 아내가 한 잡지에 실린 행사를 짚으며 참여를 제안하였다. 내용인즉 한국체육진흥회가 주관하는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 우정걷기, 서울-도쿄를 50일간 걷는 이벤트가 흥미로웠다. 마침 이듬해 6∙25 60주년에 즈음하여 가족들과 회상의 피란길 걷기를 계획 중, 그 행사에 유용한 경험을 쌓을 기회이기도 하였다. 이때 일부 구간에 참여하면서 걷는 것이 은퇴생활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매일 한 시간 이상 꾸준히 걸으며 체력을 다지고 틈나는 대로 국내외 걷기행사에 참가하여 건강과 친목을 도모한다.
본격적인 걷기는 2010년 봄 회상의 피란길 되밟기로 시작하였다. 60년 전 전쟁을 피해 서울에서 고향까지 800리 길을 부모님 따라 걸었던 어린이들이 이순을 넘어 같은 길을 다시 걸었다. 소박하게 기획한 피란길 걷기는 가족의 화목과 우애를 증진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넓힌 소중한 이벤트가 되었다.
뒤를 이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조선통신사 옛길(520km), 서울에서 목포~부산~속초~서울의 한국일주(1,700여km), 부산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해파랑길(770km), 서울~순천~합천 이순신 백의종군길(640km), 제주도일주(올레길 340km), 조선통신사 일본구간(630km, 3회), 대만일주(1,150km) 등 장거리 뿐 아니라 1주일 미만의 단기 걷기도 수시로 참여하였다. 덕분에 지구력과 근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전체적인 건강상태도 양호하여 다행이다.
대부분의 걷기에 아내와 동행, 이를 기려 한국체육진흥회는 몇 년 전 부부걷기특별상을 수여하였다. 둘이서 열심히 걷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본이 되다니 감사한 일. 걷기는 건강을 다지고 정신을 맑게 하며 금슬도 좋아지는 일석삼조의 보배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식보(食補)가 약보(藥補)보다 낫고 행보(行補)가 식보보다 낫다는데 꾸준한 걷기가 노쇠한 근육을 강화하고 체력을 기르는 데 한 몫을 한다. 라틴어 Solvitur ambulando, 선철(先哲)의 잠언처럼 걸으면 해결된다.
2. 기록이 기억을 이긴다.
결혼에 즈음하여 사랑과 행복을 기원하며 아내에게 쓴 것을 비롯하여 가족과 지인, 학생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장문의 편지글을 썼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쓴 월드컵 관전기는 나중에‘아들아, 대한의 골키퍼가 되라’로, 해외여행 때마다 학생들에게 쓴 여행기는 정년을 맞아‘여행에서 배우는 삶과 문화’로 출판하기도. 이렇게 이어진 쓰기는 은퇴와 함께 주변의 일상과 특별한 이벤트를 소재로‘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시리즈 글을 매 주 한 번꼴 메일과 카페, 카톡 등으로 지인들에게 송부하였다.(이번으로 746회) 그렇게 쓴 글을 해마다 책자로 편찬하여 지난 9월에 인생은 아름다워 제10권을 간행하였다.
누가 알아주건 아니건 그때그때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스스로 대견하게 여겨진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흔적 없이 사라질 삶의 족적들, 언젠가는 후세들에게 귀중한 유산일 수도 있으리라. 누구나 소중한 삶의 자취, 그 흔적을 쓰기를 통해 나누고 보존하는 것이 더 없는 보람과 기쁨이다. 아들이 알려준 정보,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은퇴 후 다진 걷기와 쓰기가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고 긍정과 웃음의 마인드가 삶의 격을 높여 주었다. 심신의 탄력성을 회복하고 즐거움도 누리는 걷고 쓰기, 남은 때도 지속할 수 있으면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