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진전에서는 뉴욕에서 물리치료사로 살면서 도시의 일상을 담아낸 이경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어찌 보면 삭막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에 따뜻한 시선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의 옵스큐라로 뽑아낸 도시는 차갑고 딱딱한 뉴욕의 마천루가 아니었다
빛이 담기고 사람의 일상이 담긴 따뜻함이 있어 더 멋지게 보였다
사람 사는 건물 창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건
얼마나 따뜻한가
저 집에 사는 누군가는 이제 집에 돌아와 따뜻한 저녁을 지어먹겠구나
피곤한 직장일을 마무리 짓고 녹초가 되어 귀가했지만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기를 안아 올리며 아빠미소를 짓겠구나
가족이 모여 각자의 방법으로 편안한 휴식을 갖겠구나 하는 상상을 한다
건물에 비친 강렬한 햇살
빼곡한 거물 사이를 날고 있는 비행기 등을 포착하기 위해 얼마나 긴 기다림이 있었을까 짐작할 수 있다
저 비행기는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서 이륙한 걸까 아님 착륙을 시도하는 걸까
빼곡한 마천루들 앞에서 난 자꾸만 건물 이름을 매치시켜 본다
저건 엠파이어 스테이트야
저 이쁜 지붕 장식이 있는 건물은 크라이슬러야
저 네모 반듯한 건물은 파크 에비뉴야 하면서 말이다
뉴욕여행 중 보았던 건물들 이름이 궁금해 여행 후, 한참을 건물과 이름 줄 긋기 놀이를 했었다
루프탑이나 발코니에서 갖는 여유는 얼마나 멋지고 부러운 일인가
부유한 냄새가 난다
우리도 잠시 건물들 사이에서 여유를 부려본다
친구들의 웃음이 이쁘다
건물과 빛을 이렇게 아름다운 이분법으로 포착하다니
이 초록의 공간은 뉴욕의 허파 센트럴파크다
여행 중 센트럴파크의 귀퉁이 만을 거닐어 보았을 뿐인데도
이 공간에 들어오니 괜히 반갑다
그래 내가 여기 어딘가에 서 있었어 하는 마음에 말이다
공원에서 여유와 휴식을 즐기는 사진들에서 우리도 잠시 심호흡을 한다
이 사진을 보면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 수영장 시리즈가 생각난다
보기만 해도 첨벙 뛰어들고 싶어지고 위트 있어 보이는 호크니 그림들의 실사판처럼 느껴진다
그림이 먼저야, 사진이 먼저야하는 징한 주제는 노땡큐
오늘 함께 한 친구 중 한 명이 미국에서 1년을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 친구가 살던 지역에선
눈이 오면 모든 게 마비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며 또 한 친구가 이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문다
마침
이 사진 옆엔 이런 해설이 붙어있다
"늘 소음과 사건 사고로 가득한 뉴욕
눈이 내리면 도시는 잠시 마비되지만 오히려 고요한 평화가 찾아온다
이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강아지의 발자국이 만드는 또 다른 뉴욕을 만나게 된다"
우린 이 그림 한 장으로 미국생활을 했던 친구의 말을 소환해 내고 공감한다
이 눈부신 사진 앞에서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피터 브뤼헐의 그림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이라는 작품이다
내가 이 그림을 처음 책에서 만났을 때
도대체 이 그림 제목이 왜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일까 한참 생각했다
바다 어딘가에 추락한 이카루스가 있을까 하여 떠있는 배들 사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태양에 녹아버린 날개의 흔적 위주로 찾았다)
농부가 일하는 밭 어딘가로 추락하지 않았나 또 한참을 찾았다
하늘 위에서 추락하는 중인가 하여 구름 속이나 눈부신 햇살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나의 관찰력 없는 눈으로는 추락한 이카루스를 찾을 수 없었다
포기하고 이 그림의 설명을 끝까지 읽고 난 나는
에게~~
이게 뭐야! 하곤 웃고 말았다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지는 말거라 하는 당부를 어기고
가까이까지 날아올랐던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태양열에 녹으면서 추락했다
화가는 거창한 제목에 비해 추락한 이카루스를 너무나 하찮은 모습으로 그려놓아 나를 웃게 했다
세상에
풍덩 빠져 다리만 허우적이는 모습 하나로 그리 강렬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제목이라니
브뤼헐이란 화가 참 재미난 사람이네
욕심을 부리는 자의 최후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사라질 뿐이다 하는 경고의 의미일까
위 사진에 담긴 주인공은 이카루스의 후예라고 하면 싫어하겠지
전시관 출구 쪽에는 고민해결방이 있다
자신의 고민을 종이에 적은 후 파쇄기에 넣어 파쇄해 버리는 퍼포먼스를 해보는 방이다
펜을 잡은 나는 갑자기
지금
내 고민이 뭘까?
천천히 생각해 보자
고민을 해서 고민이 없어진다면 고민을 하겠지만....
어쩌구 하는 누군가의 말도 생각난다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절주절 적어서 파쇄기에 얼른 집어넣기
파쇄기는 수동이라서 더 극적 효과가 있다
천천히 돌려가며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을 만끽한다
나의 고민이 산산조각으로 잘려 나온다
고민을 부숴버렸으니 고민이 사라졌으려나
첫댓글 엄마 고민 뭔데?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