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바다 날 부르면
쏜살같이 달리구만이
무릎 하나 판에 올려 개펄을 밀다 보면
팔다리 쑤시던 것도 말끔하게 없어져
열일곱에 시작했으니 칠십 년 넘게 탄 거여
징그러워도 인자는 서운해서 그만 못 둬
아 그려, 영감 없어도 이것땜시 외롭잖여
꼬막만큼 졸깃하고 낙지처럼 늘러붙는
맨드란 살결 아닌겨
죽거든 같이 묻어줘
인자는
이게 내 삭신이고
피붙이랑게
- 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가 선정한 2013 좋은시조(책만드는집,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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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서 최불암 아저씨가 나오는 ‘한국인의 밥상’ 같은 프로그램에 눈길이 끌리더니 요즘은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허영만의 백반기행’ 따위에 채널이 자주 붙들린다. 엊저녁 KBS1에서는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가족- 어머니의 널배’가 설 특집으로 방영되었다. 전남 보성 여자만 ‘장도’에서 ‘널배’로 갯벌에 나가 꼬막을 잡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찬바람이 남도의 개펄을 휘감을 때면 널배의 뻘질도 활기를 띈다. 간간하고 비릿하면서 쫄깃쫄깃한 보성 벌교 꼬막이 오동통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늦가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이다.
바구니 한두 개 겨우 얹어 놓을 정도의 공간을 가진 ‘널배’는 한쪽 무릎을 올려놓고 나머지 발로 개펄을 밀고 나가는 스노보드와 흡사한 나무 널빤지이다. 갯벌에서는 매우 유용한 이동수단이자 꼬막 등을 채취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고깃배라 할 수 있다. 시인은 해남출신으로 널배를 이용한 이 일대의 꼬막잡이 풍경이 낯설지 않다. 보성 벌교 앞 ‘여자만’은 다른 펄에 비해 입자가 곱고 부드러워 ‘참뻘’이라 불린다. 그래서 이곳서 자란 꼬막을 참꼬막이라 한다. 자연훼손이 최소화된 생태환경에서 손으로 잡은 싱싱한 꼬막이라 값도 후하게 받는다.
벌교 가서 돈 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지 싶다. 꼬막잡이는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 펄을 헤치며 해야 하는 일흔이 넘은 할머니들로서는 매우 고된 작업이다. 펄은 가만있으면 몸을 그대로 삼켜버리기 때문에 널배를 이리저리 밀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자식들이 펄에 나가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할머니들이 널배 타는 것을 그만 두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짭짤한 수입 때문이다. 꼬막만이 아니라 낙지도 잡히고 자연산 굴도 잡힌다. 그걸로 ‘다섯 남매 갈치고’ ‘어엿하게 제금냈으니’ ‘참말로 귀한 그륵’이고 말고다.
더구나 희한하게 삭신이 쑤시다가도 그 늘배를 타고 개펄을 누비기만 하면 ‘팔다리 쑤시던 것도 말끔하게 없어’지니 효자도 그런 효자가 없다. 뭍에서는 유모차보행기에 의지해야 걸을 수 있지만 개펄에서는 널배만 있으면 먼데 어디까지라도 씽씽 누빈다. 몰캉몰캉한 갯벌에서는 자신만만이란다. 때로는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이지만 널배를 타고 나간 할머니들은 해가 저무는데도 돌아올 줄 모르고 보물찾기 하듯 캐고 또 캐어 바구니에 꼬막이 넘쳐난다. 삭신이 지칠 만도 한데 절로 웃음이 난다. ‘아 그려, 영감 없어도 이것땜시 외롭잖여’
한겨울 남들은 몸을 움츠릴 시기에 장도에서는 오히려 삶의 활력이 넘친다. 그 힘의 원천이 찰진 개펄이고, 널고랑을 종횡무진 미끄러지는 널배이며, 그 널배를 타고서 잡아 올리는 꼬막이며 낙지이다. 장도는 집집마다 널배가 몇 척이나 된다. 이 섬에서 널배를 타지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 살림은 못해도 용서되지만 널배를 못타면 구박받는 곳이 장도다. 해는 뉘엿뉘엿 서녘하늘로 떨어지고 개펄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널배가 낸 치열한 생의 길 위에서 할머니는 유언처럼 말씀하신다. ‘죽거든 같이 묻어줘’ ‘인자는 이게 내 삭신이고 피붙이랑게’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