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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월간현대경영 2022년 9월호)
동반성장연구소 10년_동반성장의 대부(代父) 정운찬 박사 단독 인터뷰
낙관주의는 늙음을 허(許)하지 않는 것 같다. 현대경영이 2018년 처음 인터뷰 이후, 동반성장연구소 10주년 기념으로 4년 만에 다시 만난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4년 전보다 훨씬 더 젊어져 있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 총장을 거쳐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도무지 늙지 않는 만년청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어려서부터 즐긴 야구(운동) 덕분도 있지만, 주변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철없는 낙관자라고 평한다”고 한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천변(川邊)에 소재한 동반성장연구소 입지가 “동반성장과 어울리는 사무소 같다”는 기자의 말에, 정운찬 박사는 “사무소 위치가 가난해 보인다는 뜻이죠”라면서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충남 공주 출신인 정 박사에게 “공주 출신으론 조선시대 김종서(1383∼1453) 장군이 좌의정을 지낸 후 700년 만에 정운찬 박사가 영의정(국무총리)에 오르셨다”고 평하자,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하며 너무나 좋아하셨다. 기자는 오늘 특종을 예감했다. 동반성장연구소 10주년 소감을 비롯, 날로 어두움이 더 깔리는 듯한 한국경제의 앞날에 관한 ‘낙관자’의 견해를 들어봤다. 끝으로 정 박사는, 서울대 경제학 교수 시절 해직교수를 당할 뻔했을 때(1980) 변형윤 교수가 살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2048년 정부수립 100주년_ 세계 3대 강중국(强中國)으로 가자!
박동순 현대경영 대표편집인 정운찬 이사장님! ‘천하’의 정운찬 박사님을 오늘 만나 뵙게 된 것을 감사 올립니다. 박사님은 서울대 교수,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등 여러 화려한 호칭을 갖고 계신데요. 어떤 호칭을 가장 좋아하시는지요.
정운찬 교수(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평생 교수를 했으니 교수가 제일 편해요.
박동순 대표 오늘은 정운찬 교수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먼저 동반성장연구소 10주년을 축하 올립니다.
정운찬 교수 감사합니다. ‘동반성장론’은 제가 평생 고뇌한 주제입니다. 능력주의와 실력주의란 명분으로 적자생존의 법칙이 인간사회에 관철되면서 오직 자본의 이윤추구만이 인간의 삶과 사회를 결정했고,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로 나타났습니다. 바로 여기서 필요한 것이 동반성장(shared growth)입니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는 사회운영의 기본원리 또는 정신을 말합니다. 사회의 여러 지도급 인사들을 만나보면, 동반성장을 두고 형식에 불과하다고 냉소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경제·사회적인 양극화 해소가 우리 시대의 핵심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바로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요즘 ‘ESG’라고 해서 ‘환경, 사회, 거버넌스(지배구조)’ 등을 소홀히 했다가는 세계경영의 표준에서 낙오될 뿐만 아니라 ‘착한’ 글로벌 투자자본 유치에서 소외될 수도 있지요.
박 대표 교수님께서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국내 최초로 ‘동반성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초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동반성장의 아버지’로 불리는데요. 동반성장의 키워드를 말씀해주시면.
정 교수 동반성장의 주요 키워드는 “함께 나누자”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을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 전체의 파이는 크게 하되 분배의 룰을 조금 바꾸자는 것입니다. 부자·빈자 모두 다 성장의 과실을 얻게 하되, 빈자의 증분(增分)이 양극화 시대인 지금보다는 크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박 대표 일부에서는 동반성장 정책이, 당면한 경제문제의 원인을 대기업 탓으로 돌리고 중소기업의 자조, 자립 노력을 희석시킨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정 교수 좋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어느 한 방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경제시스템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지향형 성장 패턴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물론 순차적으로 이 구조를 바꾸어 나가야 하겠지만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대중소기업의 협업 내지는 동반성장으로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또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능력, 곧 혁신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기업들의 혁신 역량은 결코 충분치 않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생길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가격 쪽에만 관심을 돌려, 부품 가격을 인하하는 방법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이런 과정에서 협력기업들은 가혹한 가격조정을 감내하도록 요구받아 왔습니다. 저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대중소기업 간 협상력의 격차와 불공정 거래 관행으로 인해 파생되는 불균형을 현실적으로 보정할 수 있는 수단을 찾고자 했습니다. 이른바 ‘프로피트 셰어링(profit sharing)’, 즉 이익공유제는 “둘 이상의 협력 참가자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이익을 그 기여도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여, 참가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공동 이익을 최대화하는 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대기업과 협력사 간에 판매수입을 공유하는 ‘판매수입공유제도’도 하나의 실행모델이 될 수 있으며, 미국의 경우 스포츠리그 구단 간에 판매수입을 공유하는 방법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역대 어느 정부도 상생과 동반성장 등을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더욱 냉혹합니다. 특히 대기업의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의 기술탈취 등은 범국가적인 과제로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동반성장과 이익공유에 대한 저의 주장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깊은 고심 끝에 나온 충정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 대표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이후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경제 정책기획자 및 기업인들에 대해서 ‘응원’의 한 말씀을 해주시면요.
정 교수 한국은 1948년 8월 15일 근대적 독립국가를 수립한 이후 괄목할만한 경제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또한 50-30클럽(인구 5천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외형적인 성장으로 경제강국의 대열에 올라갔지만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시련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의 생존을 위해 동반성장이 필요한 것이고, 세부적으로 보면 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부 사업의 중소기업 직접 발주 등의 단기정책과, 중소기업 육성, 사회 혁신, 교육 혁신, 사회적 자본의 구축, 남북한 및 동북아 동반성장 체제 등의 중장기정책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강중국가(强中國家)로 가야 합니다. 강중국가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는 민관산학(民官産學) 및 정치권 등 우리 사회 구성원 전부가 참여해야 하는 범국민적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22년 후인 2048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다시 한 번 강력히 제안컨대, 그 시점까지 우리 국민들이 유연하게 사고하고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수행한다면 대한민국을 반드시 강중국가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박 대표 2048년 ‘강중국가 대한민국’의 비전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 교수 저는 정부수립 100주년 목표로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 하나는, 골드만삭스가 낙관적으로 전망했던 ‘2025년 1인당 국민소득 세계 3위국’을, 보다 유연하고 현실감 있게 2048년으로 목표를 수정해 ‘2048년 1인당 국민소득 세계 3위’라는 원대한 꿈을 꾸자는 것입니다. 비전을 성취하느냐 아니냐는 하기 나름입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할 것입니다. 둘은,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더불어 잘사는 사회의 토대를 구축할 것을 제안합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하고 경쟁이 공정하다고 느끼며, 격차를 좁힐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나아가서 더불어 잘사는 사회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자유’도 중요하지만 ‘평등 없는 자유는 없다’는 인식도 필요합니다.
박 대표 멋진 말씀입니다. 1인당 GDP 세계 3위로 가자는 교수님의 비전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교수님의 정부수립 100주년 구상을 하루빨리 추진하기 위하여 교수님께서 다시 한 번 ‘국가’에 봉사하신다면요.
정 교수 아닙니다. 저보다 좋은 사람 많습니다.
박 대표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교수님의 주요저서 ‘거시경제론’에 이어, 가칭 ‘동반성장론’이라는 대망의 저서가 발간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운찬 이사장은
출생 학력 경력 저서 | 충남 공주 경기고·서울대 경제학·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 컬럼비아대·서울대·하와이대·런던정경대·독일 보쿰대·워싱턴대·프린스턴대 교수 제23대 서울대 총장 | 제40대 국무총리 |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 한국경제학회 회장 한국야구위원회 총재·한국프로스포츠협회 회장 거시경제론, 야구예찬, 미래를 위한 선택 동반성장, 가슴으로 승부하라 외 다수 |
동반성장연구소 후원 안내의 말씀
동반성장연구소는 우리 사회의 동반성장에 뜻을 함께하고 동참하시기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경제 각 부문 실태조사, 공동연구, 정책개발 등을 통해 동반성장을 위해 실천 가능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문의: 전화 02-6419-9000 | 팩스 02-888-3100 |이메일 kisg1115@daum.net
한국경제학회 특별연설
다양성 회복과 모두를 위한 정책 기대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한국경제학회 특별연설 (2022.8.12)
정운찬 교수가 한국경제학회 70주년 심포지엄에서 특별연설을 했다. 8월 12일 강릉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신정부 출범 100일, 경제정책의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의 연설문 초안을 수록한다.
경제정책 수립과 집행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취임사는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방향을 제시한다. 나는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아쉬운 점 하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프리드먼 교수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의 신봉자로 보인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기업에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더 나아가 사회주의적인 정책개입이라고 말하며 만일 기업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프리드먼의 주장에 대해 그가 교수로 재직했던 시카고대학의 스티글러 센터(Stigler Center)는 2020년 11월 발간한 ‘밀턴 프리드먼 50년 후(Milton Friedman 50 Years Later)’에서, 시장이 완전경쟁적이지 않고 기업의 생산활동이 부정적 외부성을 초래할 뿐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완전한 계약이 불가능하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이 사회적 책임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은 아담 스미스 이래로 계속 강조되어 왔다. 그가 ‘국부론’과 사실상 한 권의 책이라고 말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에 의하면 인간 본성(human nature)은 ‘현려(賢慮)’의 덕으로 발현되는 ‘자기애(self-love)’ 뿐 아니라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가 존재한다. 이 마음속의 공정한 존재는 각 개인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추구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무한 자유를 제어한다. 스미스는 정부가 개인의 공정한 관찰자 역할을 위임받아 독점 등의 불공정한 사태에 개입해 공정을 유지토록 하는 것을 ‘정의’라 했다. 아담 스미스를 따르면 자유는 외부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실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는 사회제도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30여 차례 언급됐지만, ‘평등’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자유는 좋은 가치다. 우리가 자유라는 가치만이라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면 우리 경제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그의 ‘자유론’에서 밝혔듯이 자유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자유의 기본원리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각자가 자기발전을 추구하는 틀 속에서, 누구든 최대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밀의 자유론의 기본정신이다. 밀이 말하는 자유를 경제정책의 측면에서 시사점을 찾아보자면 윤 대통령이 자유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적 강자와 경제적 약자 사이에 힘의 불균형을 줄여줘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누구나 자유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제적 강자들은 경제적 약자들의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하며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자유를 주창하여도 대기업들에게 하청기업들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기술을 탈취하는 자유까지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불공정 행위는 하청기업들이 정당하게 누려야 할 성과를 빼앗아 감으로써 하청기업 임직원들의 경제적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나는 자유와 평등의 원리가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유가 있으면 평등은 없어지는가? 평등이 있으면 자유가 없어지는가? 자유가 충만한 사회에서 평등은 찾아볼 수 없게 되는가?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가? 이는 조화의 문제이지 양자택일(兩者擇一)의 문제는 아니다.
현 정부에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데이비드 할버스탬의 ‘최고의 인재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이다. 존 F. 케네디 시절의 인사정책에 대해 쓴 책인데, 주로 하버드(케네디 대통령 형제)예일(번디 특별보좌관 형제)프린스턴(공산권 ‘봉쇄정책’으로 유명한 케난) 출신의 ‘우수하고 뛰어난’ 인재들로 행정부를 구성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책, 특히 외교정책은 쿠바의 피그만 침공이나 무리한 월남전 개입 등 형편없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참고로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신뢰 위기에 처해 있다. 그것을 극복하자면 첫째는 정부의 전문성을 높여야 하고, 둘째는 인재풀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정책의 기술적인 전문성뿐만 아니라 정책의 관심 범위와 문제 해결 방향에도 크게 의존한다. 특정 집단에 편향된 정부 구성은 몇 가지 제한된 사안의 전문적 해결에서는 부분적으로 강점을 보일지 몰라도, 국정 전반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국민들의 서로 다른 이해를 균형 있게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모색하는 데에는 커다란 제약이 될 수 있다.
다양성의 회복과 모두를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
* 자세한 내용은 월간현대경영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2022.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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