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3. 물날. 날씨: 봄 햇살이 따사로워 걷기에 적당한데 바람이 잠깐 불 때면 겉옷을 여미게 된다.
[옹달샘 보조 교사]
옹달샘 어린이들이 아침 산책으로 남태령 망루까지 갔다. 조금 늦는 시환이를 기다려 둘이 손을 잡고 뒤따라갔다. 손을 잡고 가는 동네 골목길에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가 정겹다. 남태령옛길을 따라 올라가며 옛날 학교로 쓰던 집도 알려주고, 철쭉이 예쁘게 피는 길도 알려주었다. 중간쯤 올라가니 아이들이 내려오고 있어 크게 이름을 부르니 달려온다. 넘어질까 걱정하지만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달리는 모습은 늘 고맙고 감동스럽다.
아침나절 옹달샘 어린이들이 공책을 만든다. 스스로 만든 공책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도록 노학섭 선생님이 앞뒤 채비할 게 많다. 지난번에 한 차례 지민지완어머니 도움을 받아 만들고, 그때 배운 차례와 방법으로 어린이들이 바느질로 공책 묶는 일을 잘 마무리했다. 바늘귀에 실 넣기가 참 어려운데 다들 잘한다. 눈이 침침해도 실 꿰는 경험이 있어서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었다. 2학년 수준에서는 아무래도 교사 손길이 많이 가는 교육 활동이라 노학섭 선생님 손이 쉴 새가 없다. 보조교사인 교장도 열심히 도왔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만든 공책을 자랑스럽게 펼치며 선을 그리고 글을 쓸 상상을 하니 흐뭇하다.
3월 둘째 주가 되니 보조 노릇이 없어도 될 만큼 어린이들이 잘 지내는 것 같다. 본디 2학년으로 올라가며 편입학한 어린이들이 있어 교장이 오전에 모둠 선생을 돕는 보조 노릇을 하기로 해서 함께 지내서 좋지만, 막상 아이들 사는 모습을 보니 노학섭 선생님과 알콩달콩 옹달샘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영어, 설장구 수업과 급한 일 처리 때문에 못 들어가는 때가 있지만 옹달샘 어린이들을 줄곧 볼 수 있어 즐겁다. 이번 주와 다음 주는 선련이가 일본에 다녀오느라 없긴 한데 다들 외계인에서 지구인으로 탈바꿈 되어가는 멋진 2학년이 되어갈 거다.
[글모음이 왔다]
아침에 글모음이 왔다. 지난주 인쇄소에 넘기고 많이 기다린 선물이다. 글모음을 좋아하는 2학년 해솔이가 바로 펼쳐서 읽는 모습이 참 예쁘다. 김수정 선생님과 강당쪽으로 나르는 걸 도와주셨다. 글모음 사진을 찍어 식구들에게 알리고, 글모음을 훑어보았다. 역시 눈에 들어오는 오타가 있다. 4차례 걸쳐 살피는데도 오타는 늘 나온다. 지난해 표지를 따로 디자인하지 않고 넘긴 게 아쉬워서 올해는 시환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는데, 정말 멋진 작품을 만들어주셨다. 여러 해 동안 표지를 만들어주신 졸업생 최시우어머니가 PSD파일을 보내주셔서 큰 도움을 받았다. 시환어머니 덕분에 다시 멋진 표지의 글모음이 나와서 정말 고맙다.
어린이들의 한 해 삶을 담고, 부모와 선생이 함께 애쓴 글모음은 맑은샘학교의 역사요, 어린이 성장기록이며, 교사와 부모를 성장하게 한다. 선생들은 겨울방학과 2월까지 글모음을 읽으며 울고 웃으며 어린이 삶을 들여다보며 선생의 삶을 성찰한다. 그 덕분에 글 다듬기과 편집 일로 힘든 몸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마법을 부린다. 어린이 글을 읽고 글 속에서 선생의 삶을 성찰하는 것은 언제나 똑같이 긴 시간과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 늘 아쉬움은 있다. 더 어린이 이야기를 하고, 더 어린이 글 속에서 선생의 삶을 성찰하고, 더 우리 말과 글 공부를 하며 스스로를 채워가는 일이야 부족하지 않을 때가 없다. 더 애쓰려는 우리 마음이 있어 어린이 삶 속에 푹 빠지며 사는 행복을 누린다. 이제 또 다시 우리들의 글모음에 다시 푹 빠져 아이들과 읽고 나누고 다시 올해 삶을 쓰고 나누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글모음 속에 빠져 살고 글모음의 삶을 가꿔가는 맑은샘교육공동체가 자랑스럽고 고맙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하는 까닭대로 삶을 북돋고, 삶을 가꾸는 일에 온 힘을 다하는 게 선생과 어른이 할 일이다. 글모음 갈무리 글을 다시 읽으며 늘 부족한 선생의 생각과 삶을 떠올린다.
글모음을 마무리하며 쓴 글---맑은샘 어린이 여러분! 고맙습니다. (2023년 교장 전정일)
맑은샘 어린이 여러분! 고맙습니다.
글모음을 마무리할 때마다 많이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민간의 힘으로 교육공동체를 꾸리고 가꿔가는 일에 애쓰시고 땀 흘리신 식구들의 실천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선생의 스승인 우리 어린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교사로서 부족함을 깨닫기에 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수천 쪽에 달하는 어린이들의 글을 읽으며 때마다 들어주고 알아줘야 했을 어린이 마음이 떠올라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교사들을 품어주고 안아주는 어린이들과 교육공동체 학부모님들이 있어 교사들의 삶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기 위해 모인 교사들이기에 미안함과 고마움은 해마다 켜켜이 쌓여 갑니다. 선생의 길을 성찰하게 하는 나침판이 우리 어린이들입니다.
늘 그렇듯 지난 한해도 학교와 나라 안팎으로 여러 일들이 있었고, 맑은샘교육공동체 처지에서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꿈꾸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급식 정책이 바뀌었던 게 먼저 떠오릅니다. 18년간 아이들과 선생들 반찬을 해주었던 학부모님들의 몫을 대신하는 밥 선생님을 모시는 과정에서 보여준 식구들의 토론과 정성 속에 학교의 모든 식구들이 크게 만족하고 행복한 급식이 실현될 수 있었습니다. 또 정들었던 식구가 떠나고, 휴학하는 어린이도 있었지만, 맑은샘교육공동체를 선택한 많은 식구들이 있었어요. 학교 생일잔치, 단오잔치, 학교설명회, 모내기와 벼베기, 김장, 네 차례 자연속학교에서 보여준 맑은샘교육공동체의 힘은 그야말로 미래교육과 교육자치의 보기였습니다. 20주년을 한 해 앞둔 2024년은 또 얼마나 많은 정성과 헌신이 가득할지 설렙니다.
교사와 교장, 마을활동가 노릇을 하는 처지에서 2023년은 많은 축복이 있었습니다. 식구들의 배려로 덴마크에서 한 달 연수를 잘 마쳤고, 네팔IDEC을 다녀왔습니다. 학교 전체로는 안타깝지만, 개인으로는 여름학기 누리샘 5학년 선생으로 산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대안교육을 대표하는 조직인 대안교육연대의 대표 노릇을 맡아 전국의 교육 현장과 포럼 자리에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배움과 나눔의 자리를 열 수 있었던 원동력 또한 맑은샘교육공동체에 있었음에 늘 고마워하며 살고 있기에, 맑은샘에 도움되는 법인과 학교 행정 일과 바깥연대 일, 마을 일에 나서는 일상이 일로 다가오지 않았답니다. 새 해를 시작하며 설레는 일, 마무리해야 할 일, 함께 따로 할 일들을 떠올립니다. 언제나 교육의 길을 만들어가는 서로를 자랑스러워하며 또 행복하게 살아가요. 고맙습니다.
[공익법인과 예비사회적기업]
드디어 국세청에 공익법인 재지정 서류를 등록했다. 법인모임과 넓힌운영모임에 그 소식을 알렸다. 2월부터 줄곧 애써서 작업한 서류들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재지정 신청서, 5개년 사업계획서, 예산서, 공익활동 실적보고서를 비롯한 여러 서류들을 쓰느라 많은 시간을 썼다. 재무제표 작성을 위해 주말에 세무사와 같이 작업을 하고, 여러 학교 일과 행정 일 처리를 하면서 진행하는 터라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끝마치면 별거 아닌데 한 건의 일 처리에 쏟은 정성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실감하며 긴 숨을 뱉어내곤 한다. 2월에 몰린 교육청 관련 사업 신청과 여러 학교 행사와 일들 틈에 만들어내는 서류라 특별하다.
2020년 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인가를 받고, 2021년 공익법인과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을 받는 데에도 몇 달에 걸친 서류 작성과 밤늦게까지 컴퓨터와 씨름한 이야기가 한 아름이다.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은 뒤 2022년 사회적경제기업 재정지원사업 참여해 일자리창출지원사업과 사업개발비 지원을 동시에 받아내는 것을 사회적경제기업 활동을 하는 분들이 놀라워했던 것도 생각난다. 서류 작성과 면접, 현장 실사까지 정말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들어낸 영역이었다. 덕분에 행정팀장을 모셨고,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벌이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2023년 예비사회적기업 재정지원사업 2차 일자리창출지원사업을 신청해 첫 지원보다 더 많은 과정을 다시 밟았다. 서류와 면접을 거쳐 지정을 받고 재정지원을 받는 과정은 해본 사람만이 일의 무게를 어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처음 가는 길이 그렇다. 처음이라 뭐든지 도전이고 그만한 열정과 정성을 담아야 한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교육의 공공성을 실천한 많은 보기 가운데 하나이겠지만, 우리는 또 다른 처지에서 교육의 앞날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믿는다.
공익법인 지정 신청이 마무리되었고, 이제 해마다 하는 경영공시 서류를 채비해야 한다. 국세청과 협동조합 두 곳에 의무로 경영공시 자료를 올려야 한다. 모두 서류다. 다행히 공시 서류는 해마다 해온 경험이 쌓여 그나마 낫다. 경영공시가 마무리되면 출연재산 관련 서류 채비를 해야 하고, 법인 관련 많은 등기 업무, 예비사회적기업 활동 보고서가 다음 차례다. 또 큰 고민인 게 예비사회적기업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진입 여부다. 본디 사회적기업으로 진입할 밑그림을 세우고 예비사회적기업이 되었지만 현재는 여러 사정이 생겨서 사회적기업 신청을 숙고하게 된다. 늘 그렇듯 열정과 책임이지만 정체성과 앞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할 때다. 역시 호흡과 실력을 생각하고 함께 할 때 가능한 일이다.
첫댓글 네~! 서로 자랑스러워하며 또 행복하게 살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