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사우동 장릉산(150m)과 둘레길. 대망의 2021년 1월 1일(始山) 3,233회 산행.
코스 ; 장릉주차장-장릉 한바퀴-장릉저수지-느티나무집-공원묘지-맨발지압로-장릉주차장. (8.2km/2시간)
2021년도(辛丑年)첫 산행이다.
오늘 산행은 어제에 이어 오늘 역시 금년도 첫 산행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산행이다.
그렇기에 산행을 위한 목적 보다는 첫산행에 의한 산에대한 신고(禮)의 목적이라 할수 있겠다.
그럼 금년도 나의 산행 목표는?
첫째, 20차 백두대간 완주(17구간 남아있음)가 있고.
두번째, 금년도 산행 200회 이상 하는것이 나의 목표다.
오래전에 다녀온 기억의 장릉이지만 긴가민가하다.(2006년8월)
허나 나에게 갔던 산이면 어떻고 처음가는 산이면 어떠냐!
오르면 되지.
아무리 코로나가 우리 인간을 위협해도 2021년의 붉은 태양은 솟아 올랐다.
나라의 안녕도 중요 하지만 우리가정의 幸福이 먼저다.
더도 덜도 말고 몸 건강하며 화목한 우리 가족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남과 함께한 신축년 첫산행을 하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이젠 새해다.
작년까지 서로 으렁거리던 政爭 이것으로 끝냈으면한다.
야이 사람들아!
너무 똑똑한척 하며 너희들끼리 세상을 구하려 하지 말고 너네들 자신부터 먼저 헤아려라 이사람들아.
애매한 실력으로 아는척 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아는 정도로만 살아라.
보통의 존재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니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도 성공의 계단은 낮아지는 것이니 그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것이다.
새해가 밝았으니 정치도 좀 깨끗 투명해지고 코로나도 멀리 사라지며 그야말로 행복의 나래를 활짝편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두서없는 글이지만 훗날 내가 다시 읽어볼 때 후회하지 않은 삶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적어본 것이지 별다른 뜻은 없는 것이다.
내 주변에서 절대 이 이상의 슬픈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앞만 볼것이 아니라 잠깐잠깐 멈추며 주변도 살펴가며 같이 행복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해 아침 김포로(새해 첫 산행) 출발하기 전 간단히 적어본 글이다.
우리부부의 결혼 50주년 기념때 손녀들과의 찍은 사진이다.(오래전 사진)
김포시청.
집사람과 막내는 산행을 하지 않고 장남과 둘이서 함.
장릉을 한바퀴 돌고 산전체도 한바퀴 돌았다.
장릉을 찾는 사람이 약간 있긴 해도 조용해서 좋았다. 뒤에 보이는 장릉산 정상은 공군부대가 있어 올라갈 수 없었다.
역시 소나무는 고궁이나 릉의 운치를 더해주는 약방의 감초같은 나무다.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어 아주 기분 좋은 느낌이다.
릉을 나와 산 둘레길을 한바퀴 돌았다.
둘레길은 릉과 부대철망을 따라 한바퀴 도는것이다.
김포공항이 가깝다 보니 여객기가 많이 지나간다.
둘레길은 공동묘지 둘레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혐오스럽거나 기분 나쁘진 않았다.
맨발 지압로도 있고......
쉼터도 있으며,
멀리 북한산도 보인다.(날씨가 좀 더 맑았더라면......)
장릉 입구 (산행 끝)
약간 늦은 점심이지만 갈비탕으로 해결.
한남정맥때 올랐던 계양산의 통신탑이 선명하게 보이며 철 모르고 다녔던 그때가 그리워 지기도 하는 순간이다.
인천 국제공항 가는 영종도의 높고 긴 다리도 보이며 김포공항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연이어 다가온다.
국내선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다.
약간 미끄럽긴 해도 많은 사람이 오르내린다.
그 중 우리 부자도 포함되어 있지만 집사람이 이제는 종전처럼 못 따라와 불만스럽지만 나이한테이기는 장사는 없는 모양이다.
예전 우리 집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중산리에서 부터 천왕봉을 거쳐 성삼재까지 당일 종주도 했는데 이제는 지난날의 추억에 불과 하리라 본다.
장릉(사적제 202호)이 있는 산 이라 해서 장릉산이라 부르는데 그 정상은 공군기지가 자리하고 있어 올라 갈수는 없었고 그 아래를 도는데 전부 2시간 정도 걸렸다.
옛날 공동묘지였던 곳(지금도 무덤이 그대로 많이 있음) 을 이리 저리 돌아 한 바퀴 돌아가니 서북은 김포시고 동남은 부천시가 있는 市界 인 것 같다.
장릉은
조선 제 16대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과 인헌왕후 구씨의 릉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정원군으로 책봉되었으며(1587)광해군 11년(1619)에 4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그의 맏 아들인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1623)대원군에 추존 되었다가 인조 10년(1632)에 대왕으로 다시 추존 되었고 원종의 諡號(시호)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인헌왕후는 능안 부원군 구사맹의 딸로 13세에 혼인하여 (1950)연주군부인에 봉하여졌고 인조 4년(1626)에 4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장릉은 왕과 왕비의 능이 나란히 자리한 쌍릉을 이루고 있으며 문무석과 호석을 세웠는데 난간은 없었다.
멀리 있는 계양산을 바라보며 수려한 장릉산(구. 북성산)자락 속에 자리한 장릉은 돌맹이하나 풀 한 포기에도 옛 조상의 魂과 숨결이 깃들여있는 김포의 소중한 文化遺産이다.
봉분, 혼유석.장명등.정자각.비각등 조선왕조의 능제가 잘 보존되어있고 주변의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누군가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라 했다.
술도 오래된 술이 좋은 술이듯이 우리 나이를 먹은 사람도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왕 새해에 발을 디뎠으니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하는마음 간절하고 특히 우리 가정에도 웃음 떨어지는 일 없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간단하지만 새해 첫 산행도 무사히 즐거운 마음으로 마쳐 우선 시작이 좋았음에 감사하고 나라의 안녕과 정피파동 없는 그런 대한민국이길 바라면서 새해 첫 산행 후기로 가름한다.
아름다운강산 정병훈 하문자.
첫댓글 장릉은 말로만 들었는데 이번에 사진을 통하여 잘 가보았습니다. 인자한 인현왕후의 묘지이라 정감이 갑니다. 어제 오늘 저는 추워서 문밖에도 못나갔는데 역사의 관광지를 답사하셨네요. 여러 시설물이 잘 보관되어 보기가 좋습니다. 잠시 역사의 장소에서 좋은 역사의 사실을 잘 공부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번 가보아야 하는데 길곳은 많고 체력은 딸리고 하여 백년하청입니다.간접으로 여행 잘했습니다. 신년에도 행운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선생님의 댓글로 인해 오히려 참뜻을 익히는것 같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