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레의 시민(Les Bourgeois de Calais) '
로댕(Rene-Francois-Auguste Rodin; 1840-1917)
1889, Bronze, 231 x 245 x 203 cm, 로댕미술관, 파리
1300년대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이 벌어지던 때
프랑스 지방의 칼레는 1347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의 공격에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의 필립 6세는 칼레를 지키는 것을 포기했고 결국 11개월 동안
영국군의 전면 포위에도 끝까지 저항하던 칼레는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저항하던 칼레에 대해 에드워드 왕은 격노하여 모든 백성을 처형할 것을 선포한다.
항복을 조건으로 협상을 하고자 하던 칼레의 사람들에게 영국의 에드워드 3세 왕은
항복을 받아주되 적어도 6명의 대표자만은 반드시 본보기로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선언한다.
맨발로 목에 밧줄을 걸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에드워드 왕은 그 6명을 지명하지는 않았다.
칼레 시민 스스로가 6명을 지명하라고 말한다.
칼레 시민들은 6명의 죽을 사람을 자기들끼리 골라내야 했다.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알 수 없지만 처형 전날 여섯명이 시민대표로 칼레의 광장에 나타났다.
그런데 전승에 따르면 전날 저녁에 7명이 나왔다는 것이다.
시장이 나오자 그 아들도 함께 따라 나섰다고 한다.
한명이 더 나오는 바람에 제비를 뽑자는 의견을 생 피에르가 말했다고 한다
내일 아침 영국군의 진지로 교수형을 받으러 가기 위해서
선착순으로 오는 사람을 정하고 마지막에 오는 사람은 제외하자고...
다음 날 아침 생 피에르는 나타나지 않았다.
6명이 모인 가운데 궁금해하는 시민들 앞에 생 피에르는 관 속에 누워 나타났다.
결심이 흔들릴까봐 미리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훗날 이 내용에 감동하여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 1878~ 1945)의
희곡 『칼레의 시민들(1914년에 발표, 1917년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초연)』에 잘 나타나 있다.
(이날 시민대표로 7명이 나왔고 상 피에르가 죽었다는 것은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의 해석이라는 견해가 있다.)
500년이 지나 1884년, 칼레 시청에서는 당시의 위대한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에게
이 6명의 영웅적인 모습을 담은 조각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이 선조들의 사건에 감동했던 로댕은 1895년, 이 6명의 조각을 10년에 걸쳐 만들어낸다.
그런데 로댕은 이 조각들을 영웅적인 모습으로 조각해내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고뇌하고 눈물을 흘리고 체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냈다.
칼레 시청 측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선조들의 당당한 모습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로댕은 10년 동안 한 인물 인물을 생각하면서 상 피에르를 포함한 6명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며 그들의 고민을 절실히 생각하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
칼레시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며, 가장 연장자이다.
장 데르(Jean d'Aire)
항복의 표시로 영국왕에게 증정해야 할 칼레시의 열쇠들을 들고 서 있다.
피에르 드 위쌍(Pierre de Wissant)
걸어가며 동생 자크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다.
자끄 드 위쌍(Jacques de Wissant)
삐에르 드 위상의 뒤를 따르고 있는 동생 자끄 드 위쌍
쟝 드 피엥스(Jean de Fiennes)
두려워보입니까?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까? 강해보입니까?
앙드리에 당드르(Andrieus D'Andres)
머리를 감싼 채 걷고 있다.
두려워서 그러는 것일까?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이 사진의 방향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결국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두려웠지만 주어진 책임을 따라 갔다.
로댕은 진정한 영웅은 인간이기에 두려움에 떨며 고민하면서도
그러나 결국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회피하지 않았던 점에 있는 것이지
겉으로 보기에 담대함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래서 로댕은 말한다.
이 작품을 자세히 보면 그들은 두려움으로 당황하고 거부하고 반발하고 고민했지만
결국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는 그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들은 고민하면서도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왜 하필 내가 이 죽음을 당하는 가 생각했을 법 하면서도
그들은 뒤돌아서지 않고, 교수대를 향해 나아갔다.
결국 이들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해 모든 칼레의 시민들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이것이 가진 자의 의무를 상징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가 탄생된 배경이다.
단 6명의 지도자가 칼레를 구한 것처럼 세상을 밝히는 등불은 아주 작은 불빛에서 시작된다.
희생과 나눔을 의무로 여긴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
원래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주는 ‘달걀의 노른자’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노블레스 오블리주” 는
닭의 사명이 자기의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레스) 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 해야 한다 는 의미이다.
초기 고대 로마시대에서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고 많이 희생됐던 전통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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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로댕에 의해 작품화된 '칼레의 시민'
로댕의 이 작품은 전 세계에 12개가 있는데 모두 진품이다.
이 작품들은 청동주조 작품이기 때문에 생전에 로댕의 허락을 받은
프랑스 정부의 철저한 관리 하에 여러 작품을 찍어낼 수 있었는데
12개까지만 진품으로 인정해준다고 한다.
한국 삼성(호암) 갤러리에도 있다.
그래서 어디에서 이 작품 사진을 찍었느냐에 따라 배경이 조금 다르게 나오곤 한다
[칼레의 시민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는 곳]
1. 프랑스 칼레-시청광장
2. 덴마크 코펜하겐-니 칼스버그 조각관
3. 모랑벨츠-마리몽 미술관
4. 영국 런던-국회의사당
5. 미국 필라델피아-로댕미술관
6. 프랑스 파리-로댕 미술관
7. 일본 도쿄-국립 서양미술관
8. 스위스 바젤-쿤스트하우스
9. 미국 워싱턴-허쉬혼 미술관
10. 미국 로스엔젤레스- 노턴 사이먼 미술관
11.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12. 한국 서울-로댕 갤러리(삼성)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은 1809~1810년에 작곡된 곡으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의 희곡 '에그몬트'를 위한 서곡이다.
이 음악은 단순한 서곡이 아니라 자유와 저항, 그리고 혁명의 상징이다.
'에그몬트'란?
'에그몬트'는 스페인의 압제에 저항했던 네덜란드의 귀족 람발트,
에그몬트 백작의 이야기로, 그는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우다 결국 처형당한 인물이다.
괴테는 그의 삶을 바탕으로 희곡을 썼고, 베토벤은 이에 감명을 받아 음악을 만들었다.
강렬한 도입부: 혁명의 불꽃이 일어나는 듯한 긴장감
장엄한 전개: 고통과 투쟁의 선율이 점점 고조
승리를 상징하는 피날레: 압제자를 무너뜨리고 자유를 쟁취하는 듯한 폭발적인 클라이맥스
이 곡은 단순한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하는 저항의 메시지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영화, 드라마, 광고 등에 사용되며
강렬한 감정과 감동을 선사하는 명곡으로 남아 있다.
물론,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필요한 시대 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 한 건... 진정한 '국민의 의무 (the duty of the people)'가 더 절실한 시대 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시는 허브님,나그네님이야 말로 국민의 의무를 다 하시는 아름다움의 모습입니다.
첫댓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브리주가 필요한 시대!
잘 읽었습니다~걷자님 ^^
물론,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필요한 시대 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 한 건...
진정한 '국민의 의무 (the duty of the people)'가 더 절실한 시대 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시는 허브님,나그네님이야 말로
국민의 의무를 다 하시는 아름다움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