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님에 대해선 잘 아시겠지요. 뛰어난 미국인 항공엔지니어로서 한국의 항공장비 국산화에 기여하신.. 그래서 박대통령으로부터 "화랑" 칭호를 받고 그 후 이를 최고의 영예로 생각하며 사시는 지금은 은퇴해 노년을 보내시는 분입니다. 아시는 분들 많겠지만 혹시 모르는 분들 계실까싶어서.. 가까이에서 박대통령을 보신, 그리고 미군 고위장성 및 관료들과의 친분으로 많은 내밀한 일화들을 아시는 분인데 이런 글을 쓰셨더군요. 이런 얘기들이 있었는지.. 저도 다소 놀랐습니다.. 번역은 제가 아닌 다른 분이 하셨습니다.)
편지를 쓰기 전에 먼저 “고수님”들께서 제 편지를 저보다도 훨씬 멋지게 한글로 번역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싸이트 재방문 시점을 잘못 고른 것 같은데… 유기자님이 안 계시는군요.
열렬한 논의로 이끌 만한 이슈를 갖고 새로 토론을 시작하는 것(그런 이슈도 없지만)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젊은 한국 사람들(청와대 보좌관들도 포함)이 보통 미국 사람들의 솔직 담백한 마음을 모르는 것이 정말 슬픕니다.
그런 젊은 분들을 위해 이 편지를 보냅니다. 하지만 “보리고개”가 어떤 것인지 알만한 나이라면 이 편지로 여러분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 오를 것입니다.
”개-새-끼” 이 말은 내가 그로부터 들은 첫 마디였습니다. 나는 그의 일기장에 적힌 ‘개-새-끼”였고 당시 나는 한국어 실력이 출중하지는 않았지만 이 단어가 어떤 뜻인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말문이 막힌 상태에서 나는 그를 “멍멍이 각하” 라고 응수해 주었습니다.(사실 당시 그런 말을 생각해 낸 것이 정말 부끄러웠고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빈 속에 독주 두 세 잔을 들이키고 나서 바로 내뱉은 말이었지요.) 이렇게 그날 밤 “개-새-끼”와 “멍-멍-이 각-하”가 토의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 “ㄱㅅㄲ”는 비록 욕이지만 “욕” 축에 끼지도 못하는 “양반에 속하는 욕”이라는 것을 얼마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내내 그의 두 가지 관심사는 그가 사랑하는 대한 민국의 “가난 과 국방” 였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주도해서 이룬 경제적 기적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미군 사령관과 맺은 우의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그의 “개-새-끼 다-루-는-법”
당시 미국인들과 회의할 때 그가 얼마나 무례하고 거칠었는지 여러 분 모두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미국 정치인이나 군 사령관들은 그의 만찬에 참석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의 초대장을 받은 미국 사람들은 그 즉시 뱃속의 위경련을 경험하였습니다. 조금 알려드리지요.
저녁 만찬 시간에는 통상 미국 사람이라면 평생 처음 겪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뭐 이런 것들이지요.
재털이가 천장까지 날아갑니다. 숫가락, 젓가락, 빈 그릇 기타 등등 음식이 담겨있지 않은 것은 모두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동물의 몸에서 만든 욕으로 욕을 해댑니다.
우리는 그렇듯 욕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인간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가장 개화된 형태로 발달하여 치밀하게 준비한 무자비한 최고급형 고문실”
어떤 퇴역 주한미군 사령관께서 자신의 경험을 위와 같이 평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많은 미국 사람들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할 바가 거의 없이 빈약하였지요. 군사원조와 차관 등 주한미군에 의존할 때 입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의 힘이 “작은 신”과 비슷했던 당시 그 사람은 그 사령관은 집안의 개처럼 부렸습니다.(진짜 사실대로 말하면 개보다 더 심하게 다뤘지요.) 그런데도 그를 싫어하는 미국 사람이 없는 점이 신기하지요. 왜냐하면 그는 한국 사람들의 가난을 없애는 것 그리고 동시에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전쟁을 막아 보려고 애쓰고 있었으니까요. 모두들 그가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는 목표를 향해 지칠 줄 모르고 끝없이 노력하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더욱더 놀라운 점(특히 백악관에서조차)은 그런 대우를 받은 주한미군 사령관들이 미국 워싱톤에 귀국하여 국회에서 증언할 때는 그들이 백악관의 지휘 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청와대의 지휘 하에 있는 것처럼 한국 대통령과 똑 같은 말을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가 유망한 미군 장성 여러 분이 한국 근무 도중 또는 근무 직후 옷을 벗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이 암살되었을 때 그때 “개-새-끼-들”이 왜 모두들 통곡을 하였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3세계의 모든 지도자 중에서 그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털어도 먼지 안 나는 사람”
20세기를 통틀어서 강력한 미국 장군들에게 호통을 쳤던 유일한 외국 지도자였습니다. … 그런데 미국 대통령도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
김대중 대통령 …
미국사람에게 매우 친절하고 교양있고 … 항상 미국에게(사자님이 언젠가 글을 올렸더군요.) “예,예”거리고… 하지만 미국에 은행계좌을 개설해 놓고, 그 가족은 캘리포니아에 상당히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가 미국에게 “나긋 나긋[nice]”한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잘 알겠지요.
그는 항상 미국 사람들 앞에서 웃지 않은 적이 없고 항상 너무나도 얌전하고 지나치게 비굴[overly friendly]하였지요.
-- 얼마후 노 대통령입니다.
우리는 그가 정치 활동 중에 퍼뜨리고 다닌 그의 뿌리깊은 미국혐오감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그 유명한 반미운동 추종자를 미국 워싱톤에 보내서 그들이 “미국을 좋아한다.”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워싱톤에 와서는 양국간의 긴밀한 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돌아가서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매우 다르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런 젊은 멤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요? 다른 말로 말과 행동이 180도 다른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요?
내 편지를 계속 써 나아가야지 ….
한국 사회의 지도자중 특히 한국의 군대 지휘자중 한 분이 작은 변화를 주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한국공군 작전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주한 미공군 기지에 갈 일이 많았습니다.
이 일을 말씀 드리기 전에 약간 배경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전 세계에서, NATO에서도, 외국군 장성에게 다른 나라 군인이 경례를 붙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해병대가 50키로로 질주하는 공군 사령관 차를 보고 경례를 붙이지 않습니다.
어느날 주한미군 기지에서 그 분이 차를 몰고 가는데 미군 보초가 그에게(그 차에) 경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차가 섰지요. 어떤 사람이 차에서 내리더니 … “매우 우호적인” 대화를 하고… 그 젊은 미군 보초와 그의 동료는 (땀을 흘리며 떨면서) 경례를 붙이고 … 그 차는 떠났습니다.
며칠 뒤 그 차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미군 보초는 100미터를 달려가서 차를 보고 경례를 하였습니다.(그는 차에 없었는데도)
미 국방부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 인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1) 그는 매우 뛰어난 군인거나
(2) “그” 주한 미공군 장교가 그와 동승했다.(?)
일 것이다.
이런 정도의 에피소드만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여러분 들이 어떻게 해야 미국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하는지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문화권이라도 이와 비슷한 생각은 통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길고 지루한 편지를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실하게,
화랑
추신: 이제 편지는 그만둘까 합니다. 아마 유기자님이 돌아오시면 KF-2015 계획에 대한 토론을 할 수있을 지도 모릅니다. 몇몇 설명위원회 멤버(비밀회원?)만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Opinion] Very Simple Americans --- “Geh-Se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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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I start this letter, I would like to thank those “Goh-Soo-Neem-Deul” for translating my letters so much better than I can ever translate them into Korean.
Secondly, I think I have picked a wrong time to rejoin the site…Yu Gee Jah Neem is away. It is not a good idea to start any discussions (or lack of) that may lead into heated arguments at this point. Nevertheless, it is truly sad to find that most young Koreans (including the Blue House staffs) do not understand how simple Americans are.
This letter is for them (the young) mostly. But if you are old enough to know what “Boh-Lee-Goh-Geh” is, then this letter may put some gentle smiles on your faces.
“Geh-Seh-Ggee” … this was one of the first words I had to hear from him. I was a “geh-seh-ggee” in his book, and I knew just enough Korean language to understand what this word meant. In return, while I was still completely dumbfound, I responded by calling him “Muhng-muhng-yee Gahck-Hah” (how I came up with that expression at the time was-and still is- total mistery to me…it was very shortly after having two or three extremely strong hard liquor on my empty stomach). That was how this “geh-seh-ggee” and “Muhng-muhng-Yee Gahck-Hah” started the conversation that night.
It took me awhile to realize that, in the Blue House at that time, “GSG” was not even a “Yock”…if it was, it was a Yahng-Bahn-eh Sohck-Hah-Neun-Yock.
During that 1970’s, his two main concerns were “hunger and military defense” of his beloved South Korea. You all know what kind of economical miracles he had orchestrated. So, I will focus on his “military relationship with some American commanders”.
His “geh-seh-ggee dah-loo-neun-buhb” ------
Many of you, most of you I hope, already know how rude and rough he was when it comes to talking to or dealing with Americans in Seoul then. No American politicians or any military commanders wanted to go to attend his late night dinner invitations. Most Americans, when they receive the invitations, usually started developing rather unusual stomach cramps almost instantly. Let me explain.
During these late night dinner gatherings, those Americans experience many things for the first time: such as…
Ashtrays (jeh-tuhl-yee) flying up to the ceiling
Spoons, Juht-Gah-Lahck, bowls, etc …being used for something other than eating food
Being called and named by every imaginable animal body parts
And we all developed new respect to the human (his) nature in inventing “yock”.
“Extremely well organized top-rated bruit torture chamber in the most civilized form” --- some retired USFK commander commented such after his own experience.
He did such things to many Americans back then…back then when Korea’s military ability was almost none compare to that of the North…when he had to rely on the USFK for almost all military aids and money…when Hahn-Mee Youn-Hahb Sah-Ryoung-Gwahn was given a power of a “small god”, he treated the Sah-Ryoung-Gwahn like he would treat a house dog ( more realistically, worse than that of a house dog).
Even more mysterious to everyone was the fact that no American could hate him…for what he was trying to accomplish…make Koreans escape from hunger, at the same time, defend Koreans freedom and avoid a war. Everyone saw his tiredless/endless pursuit of his seemingly impossible goals.
And even more shocking to everyone (especially to the White House) was that those USFK commanders, when they came back to Washington and appeared in front of the Congress, they repeated such comments as if they were under the Blue House order, not under the White House control. So many promising US generals had to end their brilliant military careers during (or shortly after) their times in Korea.
Oddly enough, when he was assassinated, I do not know why those “geh-seh-ggee-deul” cried most. ^^
As a leader of a small third world country, he was definitely one of a kind.
Tuhl-uh-doh Myon-Jee-Ahn-nah-neun sah-lahm
Throughout the 20th Century, he was the only known foreign leader who could yell at mighty US generals…no known American Presidents could had done the same.
…then, time flew…
President Kim Dae Jung …
Very friendly and well mannered to Americans…mostly sad “yes, yes” to the US (as Sah-jah neem here put before)…but he had a bank account in the US, his family had considerable estate interests in California. No wonder why he was very “nice” to the US.
To the Americans, he had never lost a smile and always very gentle and overly friendly. But, when there was no Americans around, he said something completely different about Americans.
… then, there came President Noh.
We all know his deep seeded anti-America sentiment that proliferated throughout his political career. But, first he sends his famous anti-America movement followers to Washington to tell that they “like America”. And he himself says how much a strong relationship is needed between two nations, when he was in Washington. Then, he went back to Seoul, told Koreans something very different.
I have a question to the young members.
In Korea these days, in general, what do you call those people who say two different things with one mouth? Or what do you call a man whose action is 180 degrees opposite of what he says?
…Now back to my letter again…
Among all the leaders of Korean society, especially among the Korean military society, one general was making a small difference.
When he was a RoKAF Jahck-Juhn-Sah-Ryoung-Gwahn, he had many occasions where he had to go to the USAF b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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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I say this, please let me give you some background information first.
Throughout the world, even in the NATO, it is not always that foreign military personnel salute to some other foreign military generals. Even in the US, not always though, say a Marine guard salutes to a passing by Air Force General in a car doing 50km.
One day when he was driving inside an USFK base, an US guard “forgot” to salute him (his car). His car stopped. Someone came out of the car…had a “very friendly” conversation…this young US guard and his friends saluted (sweating and trembling)…and the car drove away.
Some days later, his car appeared again…US guards ran from over 100 meters away…saluted his car (he was not even in the car).
Such (famous) stories in the Pentagon were possible only because …
(1) he was an exceptional military man
(2) he had “that” USAF captain
This is one of small episodes that I can share with you in the open.
From this letter, I hope you can read what makes Americans respect you. I do believe that the same idea works throughout any culture.
Thank you for reading long and boring letter.
Sincerely,
Hwa Lahng
P.S. I will stop writing for now. Maybe, just maybe, when Yu Gee Jah Neem comes back, we can start our discussion on the KF-2015 project. Those handful of expository committee members can surely use your help.
음 전 70년대를 겪지 못한 20대로써 박통을 평가하자면, 저희 유년기의 번영과 평화로움이 노태우,전두환의 치세라기때문보단, 앞서 길을 닦아놓은 박통이 있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여~~!또한 독재가 있었기에 자유를 알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우리민족개조도 성공하고요~!이시기만큼은 지역적 다툼이 없었지 않습니까~~
첫댓글 근데 뒷부분을 이해 못하겠네요....왜 공군장군이 대접을 받았다는 건지?
박 대통령... 개인적 자존심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박 대통령처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사람은 드물듯합니다. 아마도 이런주의가 아닐까요? 독재든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국민들 배부르게 하는게 장땡이라는.. -_-;;
음 전 70년대를 겪지 못한 20대로써 박통을 평가하자면, 저희 유년기의 번영과 평화로움이 노태우,전두환의 치세라기때문보단, 앞서 길을 닦아놓은 박통이 있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여~~!또한 독재가 있었기에 자유를 알게 되지 않았나 합니다.우리민족개조도 성공하고요~!이시기만큼은 지역적 다툼이 없었지 않습니까~~
한가지 다른 의견....그 시기만큼은 지역적 다툼이 없었습니다...한데 박통이 유신하면서 선거치르면서 김대중과 대결하면서 지역적 다툼이 생겼습니다...ㅡㅡ;...즉, 지역감정 없던것을 있게 만든 시초는 박통시절때부터라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음.. 유종원기자님 홈페이지에 올리신 원문에 보면 유종원기자님 홈페이지 이외의 다른 사이트에서 자신의 글이 다뤄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이 있던데..
쩝... 배를 굶주리게 하는 주의/체제는 당연히 문제겠지만... 무슨 일이 있든... 파이를 키워야한다는 주장은... 쩝... 글구... 지역 감정이란 건... 박통때 만들어진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