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중 만나는 가우디 작품… 알아야 보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인문학’ 강의, 홍사영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
한국인 즐겨찾는 ‘프랑스길’ 곳곳
성당 300여개 등 문화유산 널려
길의 역사 알면 순례길 풍성해져
스페인 도시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 홍사영 신부 제공
많은 사람이 인생의 버킷리스트로 꼽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걷기.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800km에 이르는 여정은 한국에서도 한 해 5000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인기 있다. 올해 2월부터 ‘산티아고 순례길 인문학’ 강의를 열고 있는 홍사영 신부(63·천주교 서울대교구 청년순례사목담당)는 6일 서울 마포구 카페 산티아고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로 가는 방법, 숙박 등에 대한 자료는 넘치지만 그 길에 담긴 의미와 인문학적 이야기에 대한 정보는 적어 강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의 신청은 카페 산티아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가능하다.
―순례길의 의미를 모르고 걷는 분들이 많은가요?
홍사영 신부는 “신앙이 있든 없든, 길을 걸으며 얻은 경험은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스페인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산티아고길’을 찾아 걷는 도전 정신을 많은 이들이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2014년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많은 한국인을 만났어요. 한 청년이 제게 ‘신부님, 그런데 산티아고가 뭐예요?’라고 묻더라고요.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도시까지 걷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 길의 역사나 의미, 길의 주인공인 산티아고란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거죠. 걷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있겠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면 더 풍성한 순례길이 될 것 같아 책(‘산티아고 길의 마을과 성당’)도 내고 강의를 시작했죠. 1년에 두 번씩 순례단과 함께 다녀오고 있어요.”
―길의 주인공이 야고보가 아니라 산티아고입니까?
“야고보를 스페인어로 이야고라고 불러요. 거기에 ‘성스러운’이란 ‘산토(santo)’가 붙은 거죠. 야고보는 예수의 뜻에 따라 스페인에서 복음을 전파한 인물이에요. 잠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처형됐는데 그의 제자들이 유해를 스페인으로 옮겨 매장했고, 수백 년간 잊혔죠. 그러다 813년 한 수도자가 기도 중에 신비로운 별빛에 이끌려 나간 들판에서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해요. 그곳을 ‘별(estella)이 비추는 들판(campo)’으로 부른 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지명의 유래가 됐다고 해요.”
―인문학 이야기도 풍성한 길이라고요.
아스토르가에 있는 ‘카미노 박물관’으로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했다. 홍사영 신부 제공
“순례란 각종 성지, 유물, 예수와 성인의 발자취 등을 찾아 방문하며 걷는 여정이에요.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개지만 우리나라에서 보통 산티아고길이라고 하는 ‘프랑스길’(생 장 피에드포르∼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는 170개가 넘는 마을과 300여 개 성당,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어요.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도 뭔지 몰라서 그냥 지나친다면 아깝지 않나요.”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한 안토니 가우디를 말하는 겁니까?
“네, 순례길 중간쯤 레온과 아스토르가란 도시가 있어요. 레온에 있는 ‘카사 보티네스’란 중세풍의 현대적 건물이, 아스토르가에 자리한 네오고딕 양식의 ‘카미노 박물관’이 모두 그의 작품이죠. 나바레테란 도시에는 큰 성당이 있는데, 그 안에 성모 승천을 묘사한 거대한 바로크 주제단화도 정말 볼만합니다.”
―그 많은 문화유산을 다 볼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산티아고 순례길도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길이기 때문에 어떤 구간은 공장지대를 지나기도 해요. 저는 그런 구간은 대중교통 등을 이용해서 시간을 단축하고 좀 더 의미 있는 곳을 방문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어요.”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굉장히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궁극적인 순례의 목표는 변화된 나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에요. 새로 태어나는 일은 늘 고통을 수반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목표에 더 충실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걷고, 그 과정에서 큰 힘을 얻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신앙이 있든 없든 상관없죠.”
이진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