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한국민 모두의 붉은 악마화와 애국적인 응원 열정을 제외하고-
FIFA 랭킹 수위 국가들의 연이은 탈락이다.
1위인 프랑스, 2위인 아르헨티나, 5위인 포르투갈이 줄줄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4위인 콜롬비아, 9위인 네덜란드는 아예 월드컵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지역예선에서 떨어졌다.
피파 랭킹 산정 방식의 잘 잘못을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제 축구 연맹에서는 국가간 경기인 A 매치 대결 결과를 분석, 종합해서 공정하게 순위를 정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공이 둥글다 하지만, 왜 높은 순위의 국가들이 줄줄이 떨어졌을까?
유럽 리그가 늦게 끝났다든가 하는 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필자는 축구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므로, 일반론만을 제기하기로 한다.
피파 랭킹 수위 국가들의 패배를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자만'일 것이다.
자만이란, 스스로에 대한 과대 평가와 상대에 대한 과소 평가를 의미한다. 스스로에 대한 과대 평가는 나태와 방관을 조장한다. 상대에 대한 과소 평가는 무시와 간과를 잉태한다. 결국 이 둘은 상황에 대한 적확한 판단을 흐리게 하고, 스스로에 대해서나 상대에 대해서나 철저한 준비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자만하는 팀이 패배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공은 둥글지만, 결코 이변은 없는 것이다.
세네갈이 프랑스를 누른 것이나, 한국이 포르투갈에 승리한 것은 실력대 실력의 대결이 만든 결과였다.
살사는 어떨까?
우리는 살사를 '즐기기 위해서' 추는 것이므로, 결코 누구와 대결을 하거나 누가 누구보다 잘 춘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며 살 필요는 없다.
살사 바에서 잘 추는 사람은 잘 추는 대로, 못 추는 사람은 못 추는 대로 스스로의 춤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살사 실력에 대해 FIFA가 그렇게 하듯이, 순위를 매긴다면, 분명 우열은 가려질 수 있을 것이다.
오래 동안 살사를 춘 친구들은 이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한다.
"그때는 춤 출 곳이라곤 마콘도 밖에 없었다."
"내가 화려하게 춤추고 있을 때, 걔는 베이직 밟고 있었는데, 어느 새 플로어에서 날라 다니기 시작한다."
"3년 전만 해도, 살사 추는 사람들 손으로 꼽았다."
"그때 누구누구는 다 나한테 배웠다. 지금은 그 사람들이 나보다 잘 추는 것 같다...."
누구나 옛날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고 누구나 '그때가 좋았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 정말 5년 전에는 살사 출 곳이라고는 이태원의 문나이트와 홍대 앞 마콘도 밖에 없었으며, 3년 전만 해도 살사로 공연하는 사람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 살사가, 지금은 눈 부시게 발전했다.
한국 살사의 발전은 마치, 한국 축구의 발전과도 같이 경이롭고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 축구에는 히딩크라는 탁월한 감독이 있었지만, 한국 살사는 히딩크 없이도 스스로 발전해 왔다.
물론 이 발전에는 제임스나 매직킴, 이은주, 지승준-하나비, 양진혁, 일레인, 토니(?) 등 여러 훌륭한 살사 선생들의 공로가 컸다.
지금은 수백개의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고 수십명의 인스트럭터들이 레슨을 하고 있다. 공연을 위한 리스트를 짜려 한다면, 어느 팀을 선택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셀 수 없이 많은 팀들이 줄을 서 있다.
한국 살사는 세계 축구의 흐름보다도 더 빨리, 더 다양하게 발전해 나가고 있다.
왜 몇 달 전만해도 허접이었던 친구가 지금은 플로어에서 날라다니게 됐을까?
왜 살사 잘 추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을까?
왜 남들은 다 살사 실력이 느는 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 일까?
피파가 순위를 매기듯이,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순위를 매겨 보면 어떨까?
'난 우리 동호회에서 아마 꼴찌일거야, 하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10등 쯤 할 수도 있겠지.....'
'오늘은 이 살사 바에서 내가 1위 인거 같은데?'
'아, 저 사람은 분명 나보다 한 수 위다....'
당연히, 위와 같은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말기 바란다. 살사는 경쟁하는 춤이 아니요, 누굴 물리치기 위해 추는 것도 아니므로.
단지 혼자 즐기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이런 '당돌한' 생각들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이야기다.
아니면, 스스로 '1년 전 쯤엔 내가 100위의 실력이었지만, 지금은 한 50위쯤 되는 것 같다'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물론 살사는 즐기기 위한 춤이지만,
약간의 경쟁적인 마인드를 도입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동네의 베드민턴 동호회도 즐기기 위해 하는 거지만,
대회를 열고 순위를 정하고 트로피를 준다.
하다못해 아이들끼리 하는 골목 축구에서도
서로 점수를 챙긴다.
'경쟁'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동호회 내에서는, 서로에 대한 선의의 경쟁 자체가 곧 즐거움이요 발전이다. 드러내 놓고든, 마음 속으로든, 춤 실력의 순위를 매긴다고 해서 누가 죽거나 다치는 것도 아니다. 경쟁이 없는 동호회는 도태되고 마는 것이다.
한달 전 두달 전과 다를 바 없는 베이직과 패턴을 고수하기 보다는
조금 더 새롭고 조금 더 흥미로운 콤비네이션을 자기의 춤에 도입하는 건 어떨까?
서로 다른 스타일의 춤을 추는 동호회와 어울려 보는 건 어떨까?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장점을 가진 댄서에게 허심탄회하게 배움을 요청하면 안되는 것일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 동호회, 한 살사바만 고집하지 말고 가끔은 혼자서 용기를 내서 다른 지역, 다른 동호회의 모임에도 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
주말에는 외국인들, 특히 라티노들이 많이 모이는 이태원 문나이트를 기습 방문해서 색다른 분위기를 느껴 보는 것은?
항상 만만하고, 내 패턴을 다 받아들이고, 내 리드와 팔로우의 공습(?)을 예상할 수 있는 낮은 순위의 파트너들만 상대하지 말고, 강자와 고수들을 상대해 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두말 할 나위도 없이 위의 행동들은 우리의 살사 랭킹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상승시킬 것이다. 춤 실력이 나아졌다고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건 문제 되지 않는다.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신이 춤추는 공간들에 점을 찍고, 그 점들을 선으로 연결해서, 그 면적이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당신의 춤 실력은 훨씬 풍요로와 진다는 것이다.
"....세계 일류의 팀이 되길 원한다면 더욱 강력한 팀과 싸워 나가야 한다. 질 때 지더라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그들과 일대일로 부딪쳐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그러한 준비에서 나오는 패배로 인해 실망할지 모르겠지만...결국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패배 뒤에 오는 값진 월드컵에서의 영광이다."
(히딩크,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히딩크가 유럽의 강팀들을 상대로 평가전을 치루었듯이, 그래서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듯이, 우리도 살사의 강자들과 맞서 춤을 추도록 하자.
실수 할 때 실수 하더라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그들과 부딪치자. 그런 과정에서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수많은 경험 뒤에 오는 플로어에서의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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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로진씨의 칼럼인데........
읽어보니 많은 도전이 되네여.....
늘 고여있는 물처럼 한곳에 머물러있는 나의 춤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서로 손잡고 추는 교감스런 살세로와 살세라를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