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독일연수 소감문- 성금자]
첫째날(3월 26일)
사실 처음에 원장님께서 독일연수를 보낼 예정이니 여권을 가져오라고 하셨을때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내 스스로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다 나보다 일도 잘하고 내위로 몇몇 선배들이 아직 연수를 다녀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많이 부담스러웠다. 출발하기 전까지도 그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감과 미안함이 있었지만 살짝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춘천 집에서 출발하여 독일 쾰른교당에 도착하는 시간이 무려 24시간이 걸렸다. 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하는 과정에서 알수 없는 약간의 문제가 생겨 조금 늦게 나가게 되었다. 밖에서 마중나오신 쾰른교당 교무님들께서 많이 걱정하시고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현지시각으로 밤8시쯤 쾰른교당에 도착하여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를 나누고 숙소생활중 몇가지 주의사항을 들은후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와 취침하는 걸로 첫째날을 마무리 했다.
둘째날(3월 27일)
두분 교무님께서 정성스럽게 차려주신 아침식사를 하면서 150년된 버려진 건물을 직접 개조하여 보도블럭을 깔고 주변 산책로를 정비하여 주민들에게 개방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 해 주시며 한국인의 저력을 보며 독일인들이 매우 놀라워 했다는 이야기와, 물과 전기세가 우리나라의 10배가 되므로 생활하는 동안 아껴서 써주길 바란다는 말씀을 강조하셨다.
독일인이 3명 모여야 성냥개비에 불을 붙인다는 엣말이 실감 날정도로 어느새 현지인들 처럼 절약정신이 몸에 배신 교무님들을 보면서 물 부족국가인 우리나라도 본받아야 할 점이 아니가 하는 반성을 해 보았다.
아침식사를 마친후 마리타님의 소개로 일정에는 없었던 1950년대부터 개신교에서 운영하고 적십자사에서 지원하고 있는 소규모 요양원인 “에판겔리쉬” 라는 시설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의 특징은 14가구의 주간보호 시설이 있고 상황이 맞으면 일년에 한달정도 입소자가 아니더라도 체험할 수 있는 특레입소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둘이 살다가 한쪽의 배우자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혼자남게 되면 그동안에 입소하여 생활할 수 있고 보험적용으로 혜택을 받을수 있다고 한다. 집에 있으면서 응급상황이 오면 지원도 해주고 열두명 단위로 같이 밥도 해먹으며 생활할 수 있고 프로그램도 준비하여 운영하기도 하고 우울증,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로 독일에서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우울증으로 인해 충동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가운데 센터를 두고 배회를 하다기 반드시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도록 건물을 설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최대한 집엣 생활하는 것처럼 다림질이나 바느질, 수예 등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3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이용하여 방치하지 않고 보호를 하도록 노력하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고 했다.
자원봉사자를 일대일로 묶어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이 매우 이색적이 었고 생활공간은 원룸식이고 14개방 주에서 1개만 2인실(부부가 생활한다)이고 모두 1인실 이라고 한다. 우리시설처럼 4인 1실이 되어 같이 생활하시면서 다투실 일은 없겠다 생각하며 질문을 하였더니, 이곳에서도 종종 다투는 일이 생기는데 그럴때는 일단 받아들이고 수용을 한다고 한다. 신뢰의 분위기로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직원과 입소자, 봉사자들이 한가족 이라는 느낌으로 운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후에는 화천 원광보은의집과 자매결연을 맺은 “귀퍼피어트” 노인요양시설을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마리타님이 시설장으로 계셨던 곳이라고 했다.
이곳은 우리시설과 비교적 비슷한 점이 있는것 같아 좀도 관심이 많았지만 그곳에서 보여주는 곳만 볼 수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 시설은 일반요양시설과 치매시설을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었고, 시설식당을 오픈하여 주변에 시시는 지역주민 분들이 오셔서 이용하기도 한다. 일반 주택가 속에 시설이 있다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지역주민 분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시설을 이용하신다는 것이 우리나라 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인것 같아 많이 부러웠다.
시설 요양비는 4단계로 나누는데 등급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등급이 높으면(4등급) 우리나라 돈으로 300만원 정도는 보험에서 내주고 나머지는 본인부담금 이라고 한다. 매월 합한 금액이 600만원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실버타운 수준이다. 이곳은 경종을 가지고 노인들이 심리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프로그램을 하고 배회를 하거나 안저잉 안되는 사람들은 카페처럼 만들어 놓은 공간에 모아놓고 음악도 듣고 인형놀이도 하다가 안정이 되면 방으로 들여 보낸다고 한다. 요양보호 중에 치매는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에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42 침상중 80%가 1인실로 하라는 정부 법령에 따라 최신건물은 모두 1인실로 바꾸고 있으며 치매병동은 따로 분리하여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시설은 일반과 치매어르신드링 함께 생활하고 계셔서 그에 따른 케어의 어려움이 많고 입소 어르신들도 스트레스가 많으 s편이라 안타까울 때가 많아 더욱 비교가 되었고, 앞으로는 우리시설도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조에서도 심리치료를 목적으로 조명과 함께 욕조에서 음악이 나온다는 설명에 대상자들을 위한 최대한의 배려을 한는 것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셋째날(3월 28일)
새벽 5시에 한시간 정도의 기도를 시작으로 아침식사를 마친후 독일적십자사 산하가 운영하는 이슬람과 터키인, 그 외 외국인들이 모여사는 다문화 시설을 방문하게 되었다.
단일민족 이라는 말이 업어지고 다문화 가정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긴 우리나라가 받아드여야 할 미래의 시설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질문도 많이 하고 관찰도 많이 하게 되었다.
이곳은 96 침상이 있으며, 그중의 반이 1인실이고, 나머지는 2인실이며 층마다 주방이 있고 중앙을 중심으로 돌게 되어 있었다.
봉사자들이 정기적으로 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정식 요리사가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프로그램도 다양하여 매일 하고 있으며 요가, 체조, 조잉접기, 빙고 등 개인프로그램과 합동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합동프로그램을 할 수 없는 분들에게는 본인에게 물어봐서 원하는 것을 해드린다고 하며, 대상자들이 원하는 물건이나 물품은 혼자 가실수 있는 사람은 혼자 기시고 못가시는 분들은 대신 사다드리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허요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열린공간 이며 심각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훈련을 통해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며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다문화 시설을 운영하면서 어려운점은, 첫째= 언어, 두 번째는= 문화, 세 번째는= 종교적인 문제, 네 번째는= 음식이라고 한다.
입소자중 76명은 독일인, 20명은 다른나라 사람이고, 10명은 터키인이며, 6∼7개 나라에서 오신분들이 모여있고 터키에서 오신분들이 독일어를 못하며 우울증이 걸리면 그나마 알던 독일어도 못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의 모국어로 이야기를 해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직원들도 여러 가지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한다고 한다.
독일적십자사는 종교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이라고 하면서 각 나라별로 기도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해 놓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며 기독교적인 독일인을 위해서는 한달에 두 번정도 성직자가 와서 해준다고 한다. 이밖에도 음식과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상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에 깊은 감명을 받은 곳이었다.
넷째날(3월 29일)부터 문화탐방에 나서 하이델베르크 시내와 성, 다음날은 쾰른 성당을 돌아 보았다.
우리나라 면적의 8배나 되는 넓은나라 여서인지 아파트 같은 건물은 찾아볼수 없었으며, 사람드의 옷차림은 비교적 검소하고 조용한나라 라는 인상을 주었다. 전기세가 비싸서인지 화려한 입간판이나 네온싸인도 볼 수 없었다. 화물을 실어 나르는 라인강을 바라보며 열차를 타고 세시간이 지나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여 학생감옥, 박물관, 시청 건물들을 지나치며 성에 도착하였다. 700년이나 되었다는 이 성은 매우 크고 웅장하여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었고 성안에서 바라본 라인강가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 같았다.
철학자가 많이 나왔다는 시내와 산책로를 내려다 보면서 마음이 가라앉아 차분해 지는 느낌이 들면서 춘천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다.
1200년동안 아직도 건축이 진행중이라는 쾰른성당의 내부는 물론이거니와 외부에 새겨진 조각품 하나하나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 그 자체였다.
유럽 경제국가 1위이여, 복지의 선진국인 독일을 다녀오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수 있었다. 교당에서 선체험에 참여도 하고 매일 새벽 기도에 참여하면서 “원불교” 라는 종교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명희 교무님께서 비록 지금 요양보호사 라는 직업이 3D 업종으로 힘들고 또 힘들겠지만 조금만 내려놓고 양보하여 그 자리를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동료들에게도 꼭 전해달라는 당부말씀을 하셨다.
한국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신 마리타님, 독일 쾰른교당 교무님 두분, 고생하신 국장님, 연수를 보내주신 원장님, 마지막으로 시설에 남아 고생하신 동료 선생님들께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