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문화전쟁을 하고 있다. 이라크전같은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문화전쟁이다. 아프카니스탄전 당시 낮에는 미군을 향해 총을 쏘던 아프카니스탄 민병대들이 밤에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휴식을 취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문화의 잠식력은 무서운 것이어서 총칼을 앞세운 무력적 침략보다 훨씬 더 뿌리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미통상협정 체결을 앞두고 6월 21일 현재, 재정경제부와 문화관광부가 첨예한 대립을 보이며 다시 한 번 스크린 쿼터제가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한미통상협정이 체결되기 위해서는 미국측의 요구대로 현재의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해야 한다는 재정경제부의 주장과, 우리나라 영화의 보호를 위해 단 하루도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할 수 없다는 문화관광부의 대립은 그러나 지난 6월 17일 청와대 이정우 정책기획실장이 재정경제부의 주장을 지지함에 따라, 정부 내에서는 청와대와 재정경제부를 주축으로 한 스크린 쿼터제 축소 쪽으로 힘이 기울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1998년에서 1999년, 그 혹독했던 IMF가 막 시작하던 무렵, 한미통상협정을 맺기 위해 경제관료들은 현재의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친 영화인들의 주장에 많은 국민들이 동참해서, 끝내 한미통상협정 체결이 무력화되고 스크린 쿼터가 지켜진 전례가 있다. 문화주권을 내세우며 다른 어느 정부보다도 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국민의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선 당시 스크린 쿼터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왜 그럴까? 한국영화 보호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스크린 쿼터제가 이제는 폐지되어도 한국영화산업이 잘 발달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 쪽에서 양보를 조금 함으로써 경제 쪽에서 더 큰 것을 얻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현실적 계산을 했기 때문일까? 그리고 스크린 쿼터제란 도대체 무엇이며, 미국이 통상협정을 체결하기 전에 왜 이 문제를 그렇게 중요하게 들고 나오는걸까?
스크린 쿼터Screen Quata제란, 극장에서 자국의 영화를 일정기준의 일수 이상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국 영화의 지나친 시장 잠식을 방지하고 동시에 자국 영화의 시장 확보가 용이하도록 함으로써, 자국 영화의 보호와 육성을 의무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위력에 놀라 영국에서 처음 실시되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일부 국가와 남아메리카, 아시아 국가 일부가 이 제도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전세계에서 한국을 비롯해 그리스 아르헨티나 등 8개국이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실시해서 자국의 영화를 보호하는 나라들도 멕시코 이집트 등 4개국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으로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스크린 쿼터제는 특히 미국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영화시장의 85%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주로 미국 영화로부터 자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미국과 통상 협정을 맺는 나라들에서 스크린 쿼터제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 미국은 GDP의 5%인 5000억 달러(약 600조원)를 영상 소프트웨어가 차지하고 있고 그중에서 절반을 해외에서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것은 굉장히 거대한 수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스크린 쿼터제라는 다른 나라의 보호 장벽을 뚫고, 멀티미디어 콘텐츠 산업기반의 핵심인 영화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영상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세계 시장에 판매함으로써 더 큰 수익을 거두어들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산업이면서 동시에 예술인 독특한 영역을 갖고 있다.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영상 위주의 정보화 사회가 재편되고 있는 현실에서, 영상 소프트웨어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영화는 문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자국의 영화를 보호한다는 것은 단순히 영화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은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한 민족의 영혼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영화인들이 스크린 쿼터 축소를 목숨 걸고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크린 쿼터제가 처음 실시된 것은 1966년이다. 한국영화 보호를 위해 지난 1966년 8월 3일 개정된 영화법 제 19조 3항은, 외국영화 전문 상영관에 대해 최초로 국산영화의 상영을 의무화했다. 이것이 스크린 쿼터의 시작이다. 우리 영화법은 일제하인 1926년 제정된 영화검열법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펴왔었다.
그러나 스크린 쿼터제는 의무적으로 연간 한국영화 상영일수의 하한선을 정함으로써 우리 영화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사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극장망을 잡지 못해서 제대로 배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객들이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되는 것이다. 스크린 쿼터제는 적극적인 영화진흥책이라기보다는 압도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위력으로부터 한국 영화 보호를 위한 수동적 방어적 측면이 강하다.
생산-유통-소비의 영화산업 시스템 중에서 유통 단계에 놓여 있는 전국의 극장들에게 한국 영화 상영 일수를 법적으로 의무화한 것은, 특히 전지구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로부터 우리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 단계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1. 스크린 쿼터제와 관련된 한국의 영화정책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스크린 쿼터제가 처음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크게 5단계에 걸쳐 스크린 쿼터제가 변모했다. 첫 번째 단계는 스크린 쿼터제 도입기로서 1966년부터 1969년까지이다. 이때는 각 극장들이 연간 6편 이상의 한국영화 상영을 의무화하도록 했으며 한국 영화를 연간 90일 이상 상영하도록 했다. 영화법 19조 3항은 [영화를 상영하는 공연장의 경영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외국영화와의 상영 비율에 따라 국산영화를 상영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고, 영화법 19조 4항은 [외국영화 수입편수는 당해연도의 국산영화 상영편수의1/3을 초과할 수 없다]로 되어 있다. 또 동법 시행령 제 25조에 의하면 [국산영화의 상영기준을 연간 6편 이상으로 하되 2월마다 1편 이상으로 하고 총 상영일수는 90일 이상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스크린 쿼터제가 일시 축소되었던 시기로서, 1970년부터 1972년까지가 해당된다. 국산 영화의 상영기준을 [국산 극영화 및 이에 준하여 상영할 수 있는 문화영화로 하며 연간 3편 이상, 4월마다 1편 이상으로 하고 총 상영 일수는 30일 이상이어야 한다]로 규정하였다. 연간 한국영화 의무상영 편수를 3편으로, 그리고 의무상영 일수는 30일 이상으로 후퇴하는데 이유가 있다. 당시는 TV가 막 대량보급되던 시기로서 영화 관객이 전체적으로 급격하게 감소하던 시기였다. 한국영화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이었던 1960년대가 최고의 황금기였다. 국민 1인당 영화 관람 편수는 연간 5편 이상이었으며 1969년의 관객은 1억 7천 3백만명을 기록했다. 굳이 스크린 쿼터제를 강제조항으로 넣지 않아도 한국영화산업이 전체적으로 잘 될거라는 환상을 갖기에 충분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1970년 스크린 쿼터제가 완화된다. 그러나 영화 관람객은 1970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고 영화 산업은 TV에 밀려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세 번째 단계는 다시 스크린 쿼터제를 강화하던 시기로서 1973년부터 1984년까지가 해당된다. 이때는 연간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1/3로 이상, 그러니까 126일 이상으로 대폭 올리고 스크린 쿼터제의 시행을 독려했었다.
1973년의 영화시책을 보면, 모든 공연장의 경영자는 연간 영화상영일수의 1/3(4개월) 이상 우리 영화를 상영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 우리 영화의 상영 의무기간은 반드시 전기간을 4등분하여 분기별로 1개월 이상씩 균배 상영하여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훨씬 까다로운 조건으로 스크린 쿼터제가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4년에는 위의 조항에다 교호상영제가 실시된다. 교호상영제라는 것은, 외국영화 상영일수를 2로 했을 때, 한국 영화 상영일수 1을 반드시 순차적으로 상영하는 것이다. 만약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2달동안 상영했으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한국영화를 1달 이상 상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5년에는 다시 이 교호상영제에다 외국영화 1편의 상영기간이 20일 미만일 때에는 편수에 구애됨이 없이 외국 영화를 20일까지 상영하고 이에 대한 2:1의 비율로 국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다는 조항이 붙는다. 1974년 실시한 2:1 상영기간의 교호상영제가 가져다준 부작용을 보완하는 정책이다.
1976년에는 스크린 쿼터제를 연간 단위에서 분기별로 더 세분화하여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시방법과 조정은 영화배급협회에 일임하여 영화인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선회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크린쿼터제를 이행하지 않은 공연장에 대하여는 영화배급 확인서를 발행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만약 스크린 쿼터제를 지키지 않는다면 영화산업의 젖줄인 배급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1977년 당시의 국내/국외 영화의 배급을 비교해 보면, 외국 영화의 수입편수는 연간 40편 내외로 제한되어 있고, 국산 영화의 제작편수는 120편 이상으로 되어 있다. 국산 영화는 외화 수입권을 갖고 있는 업자로 선정된 제작자들에게 8편씩 할당되었다. 제작자들은 한국 영화를 연간 의무적으로 8편 이상씩 만드는 대신, 외화 수입권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변모해가던 스크린 쿼터제는 1985년부터 다시 강화되어
1996년 6월까지 시행된다. 네 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 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연간 2/5 이상으로 조정했고, 인구 30만 이상의 시 지역에서는 외국영화와 한국영화의 교호상영을 각각 의무화하는 조항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외화 수입 쿼터가 철폐되고 외화수입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시장개방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정부로서는, 그동안 철저하게 연간 수입 편수를 통제해왔던 외화 수입 억제책에서 벗어나 전면 개방을 선언했는데, 영화인들의 직배 반대 투쟁이 격렬하게 이어졌지만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한국 내 직배가 UIP를 필두로 시작되었고 현재는 UIP를 비롯해서, 워너 브러더스,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브에나비스타 코리아, 20세기 폭스 등 할리우드의 5개 회사가 직배를 실시하고 있다.
다섯 번째 단계는 1996년 7월부터 현재까지인데, 연간 상영 일수의 2/5 이상을 한국 영화 의무상영 일수로 했으며 필요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20일 단축할 수 있고(군 및 10만 이하의 시는 40일) 또 각 지자체인 시,군,구에서 각각 20일 감경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극장 측에서는 연간 106일만 한국영화 상영을 의무화하면 된다. 만약 위반시에는 의무상영일수 위반 20일까지는 미달일수 1일마다 영업정지 1일을, 의무상영일수 20일 초과시에는 미달일수 1일마다 영업정지 2일을 행정처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한국 영화의 기업화와 활성화를 법적, 제도적으로 유도하겠다는 취지 아래 실시된 한국 영화정책은 특히 스크린 쿼터제를 중심으로 변모해 왔는데, 그러나 근래에 이르기까지 상대적으로 관객들의 호감도가 훨씬 높은 외국 영화 상영일수를 더 늘이기 위한 극장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왔다.
지난 1998년에서 1999년 사이 한미통상협정이 불거지면서 극장업계에서 스크린 쿼터제의 축소나 폐지를 요구한 배경에는 탄력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운영되어 온 스크린 쿼터제의 제도적 미비점도 분명히 도사리고 있다. 정부에서 스크린 쿼터제의 시행을 강제적 의무규정으로 극장에 요구했지만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영화산업 내에서도 제작업계와 흥행업계가 스크린 쿼터제에 대한 상반된 입장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작업/흥행업, 즉 영화사/극장의 대치는 90년대 중반 이후 급상승한 한국영화 호황과 맞물리면서 씻은 듯이 자취를 감춘다. 그장 최고의 성수기인 여름 영화시장이나 겨울 크리스마스에서 설날로 이어지는 황금기에도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흥행면에서 밀리지 않고 때로는 우위를 차지하게 되자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는 사실상 의미없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판단까지 있을 정도로 극장주들이 한국 영화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하거나 폐지해도 여전히 한국영화는 지금처럼 호황을 맞이할 것인가?
2. 외국의 스크린 쿼터 정책
영화가 중요한 문화산업이며 자국민의 정서를 표현하는 핵심 매체로 인식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미국적 사고방식을 국민들에게 침투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의 위력에 맞서, 자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끈질긴 통상압력에 굴복해서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하거 폐지하여 지금은 스크린 쿼터제가 제대로 실시되는 나라들은 극히 드물다.
전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고, 외국의 압력에 맞서 자국의 문화를 지켜낸 훌륭한 사례로 한국의 스크린 쿼터제가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6월 중순 한,불 영화제를 위해 내한한 프랑스 영화인들이 자청해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의 스크린 쿼터제를 강력하게 지지한데서도 알 수 있다.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사례를 보면, 먼너 남미의 경우, 아르헨티나는 분기별 1편 이상 자국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두고 있다. 상영 기간은 최소 1주에서 4주까지이다. 따라서 연간 최저 의무상영 일수는 28일이다. 또 콜럼비아는 연간 30일 이상 자국 영화 의무 상영일수를 두고 있지만 현재 콜럼비아 영화의 연간 제작편수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밀려 초토화되어 있어서 법률적 스크린 쿼터 조항은 사문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베네주엘라에서는 연간 상영 일수의 15%인 55일을 자국 영화를 상영하게 되어 있고, 브라질에서는 한때 연간 18주, 즉 126일을 의무 상영 일수로 했으며 1개 스크린에서는 연간 상영 일수의 25%를, 멀티스크린에서는 20%를 실시했지만 지금은 연간 49일로 후퇴한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극장 개봉된 [중앙역] 등 남미권에서도 유독 브라질 영화가 각종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것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멕시코에서는 93년 이전까지만 해도 연간 50%인 182일을 자국 영화를 상영하게 했지만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한 97년말 스크린 쿼터제를 폐지했었다. 그후 점차적으로 자국 영화 산업이 기울어지자 스크린 쿠터제를 99년 1월 부활시켰으나 의무조항이 아니라 각 극장들이 자율적으로 가급적 자국영화를 상영하도록 권장함에 따라, 강제 조항이 아니어서 상영일수도 줄고 점유율도 줄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 멕시코 영화인들은 한국의 스크린 쿼터제 사수를 참고 삼아 다시 옛날같은 스크린 쿼터제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또 유럽의 경우를 보면 그리스는 분기별 1주 또는 1편 이상씩 자국 영화를 상영하게 되어 있으니까 역시 연간으로 하면 최저 의무상영 일수가 28일이 된다. 스페인은 수입허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연간 상영되는 영화 중에서 자국영화 편수가 58%를 유지하게 하고 있으며 자국영화 상영일수는 연간 18주 즉 126일을 실시했었지만 EU에 가입한 후, 1986년부터는 EU영화 의무상영제로 바뀌었다. 현재는 2개 이상 소유한 멀티플렉스는 연간 73일, 단독상영관은 연간 91일을 의무 상영 일수로 하고 있다. 프랑스는 분기별 5주, 즉 연간 140일을 자국 영화 의무 상영일수로 하고 있으며 1편의 프랑스 단편영화 상영시 112일로 축소할 수 있다. 67년부터 역시 프랑스 자국 영화뿐만이 아니라 EU영화 의무상영제로 바뀌었다.
아시아의 경우에는 연간 48일을 자국 영화 의무 상영 일수로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있다. 이 제도를 어기면 4천배의 벌금을 부과한다. 수입쿼터제로 연간 160편 이상을 외화 수입하지 못하게 막았었지만 지난 1990년대 후반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해서 스크린 쿠터제를 후퇴한 이후 현재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은 급격하게 기울어지고 있고 연간 영화제작 편수도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98년까지 연간 상영일수의 10%를 의무 상영일수로 했지만 2001년부터는 30%로 올려서 자국 영화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다. 스리랑카 역시 연차적으로 스크린 쿼터제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스크린 쿼터제를 일종의 무역장벽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GATT 규정 중 스크린 쿼터에 관련된 특별조항이 있다. <GATT 4조 : 영화에 관한 특별규정>을 보면,
체약국이 영화상영과 관련된 국내의 물량규제를 신설하거나 유지하려면, 그 규제는 다음과 같은 필요조건을 따르는 스크린 쿼터 형태를 취해야 한다.
a) 스크린 쿼터는 적어도 1년의 특정기간에 모든 국가의 상업영화가 실제로 상영된 총 시간중 자국 영화상영이 최소한의 비율로 운영되어야 하며, 각 극장별 1년 단위(또는 그에 준한 기간)의 상영기간에 기초하여 계산되어야 한다.
b)스크린 쿼터 제하의 자국영화 상영시간의 예외에도 불구하고, 자국영화 상영에 유보된 상영시간과 행정조치로 면제된 시간(외화 상영시간)을 포함한 총 상영시간이 공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공급원을 할당 [제약] 받아서는 안된다.
c) b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체약국은 스크린 쿼터를 부과하는 체약국의 영화(자국영화)가 아닌 특정국가의 영화상영 시간에 최소한의 비율을 규정함으로써 a)항의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스크린 쿼터를 유지할 수 있다. 단, 그러한 최소한의 비율이 1947.4.10에 발효한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서는 안된다.
d) 스크린 쿼터는 제한범위, 자유화 및 배제를 위한 협상에 따라야 한다.
즉, 우리나라의 스크린 쿼터제는 국제적 효력이 있는 GATT 조항에도 위배되지 않는 합법적 제도이다. OECD 자유화 규약에서도 1년 이상의 특정기간 중 국내 생산 영화의 최소 상영시간을 규제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OECD에 가입한 이후, OECD 영화관련 리스트에 한국문화 정체성 보호를 위한 스크린 쿼터를 명시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도 영상산업의 세계시장 독점화 전략을 위해 문화상품의 국제간 자유무역을 끈질기게 주장했지만, 가장 큰 대항세력인 유럽 국가들의 문화논리에 입각한 방어조치에 밀려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미국은 전략을 바꿔 각국과의 개별적인 상호협상을 통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50여개 국과의 양자투자협정(BIT)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스크린 쿼터제와 같은 자국의 문화상품 보호 논리를 일체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막강한 자본의 힘 앞에서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협상국들은 경제적으로 더 많은 것을 미국측으로부터 받아들이기 위해 문화상품 보호를 양보했지만 양자투자협정 체결 이후 실질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적 이득에 도움이 되었는지 증명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관료들이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면 40조원 이상의 기대 경제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수치에 불과한 것이다. 정말 우리가 스크린 쿼터제를 축소하고 양보하면, 미국에 대한 우리의 전자, 반도체, 자동차 등의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또 만약 그런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해도 일시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우리의 문화를 양보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다. 문화는 한 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어렵고 힘든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
3. 스크린 쿼터제의 미래
우리나라에서 스크린 쿼터제가 실제적으로 집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3년부터이다. 스크린 쿠터 감시단이 조직되면서 자체적으로 전국의 극장들을 조사해서 의무상영 일수를 지키지 않은 극장을 행정당국에 고발 조치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스크린 쿼터제를 위반해도 특별한 제한 조치 없이 지내던 극장들은 스크린 쿼터 감시단의 활동 때문에 강제적으로 스크린 쿼터제를 지키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갖가지 편법이 동원되었다. 당국에 신고만 국산 영화를 상영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극장 매표구에서는 외화 입장권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1997년의 경우, 스크린 쿼터를 위반한 날수가 전국평균 20.5일에 달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줄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것은 스크린 쿼터 감시단의 활동도 있지만 한국 영화가 상업적으로 좋은 흥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스크린 쿼터제의 축소를 지지하는 쪽의 명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문화논리로서 한국 영화가 온실 속의 화초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스크린 쿼터라는 정부의 과보호 정책 때문에 한국 영화는 자나치게 안일하게 제작되었고 저질 조폭영화만 양산되었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등과 공정한 경쟁을 거쳐 질적 우수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제 논리다.
이미 스크린 쿼터제를 연간 2/5, 즉 146일 이상 한국 영화 의무상영 일수를 마련하면서 두었던 시장점유율 40%를 달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한국 영화를 보호하지 않아도 되고,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는 대신 믹구 측으로부터 경제적 반대급부를 훨씬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더 국익에 도움이 되는데, 영화인들이 일종의 님비 현상으로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해서 국익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첫 번째 논리는 무서운 허점을 갖고 있다. 영화는 거대 자본을 먹고 사는 자본의 예술이다. 아무리 감독이나 제작자의 예술 창조의지가 뜨겁다 하더라도 자본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고 실현할 수 없다. 자본의 규모에서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될 수 없다. 결국 완전 시장개방을 한다면 우리 영화산업은 빠른 속도로 초토화 될 것이다. 관객들은 재미있는 영화를 원한다고? 그것이 한국 영화든 미국 영화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한 편의 영화 속에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 세계관이 깃들어 있다. 영화는 그것에 열광하는 관객들의 머리 속으로 그 속에 들어있는 이데올로기를 보이지 않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침투시킨다.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하며 자란 세대들은 미국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영상이 압도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영상정보화 사회에서 우리 영화가 무너지면 우리 민족의 영혼이 무너진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두 번째 경제 논리 역시 허점이 있다. 한미투자협정이라는 것 자체가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주장은 시민단체 등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일부 경제 통상관료들이 밀실에서 우리의 문화주권과 정체성을 담보로 흥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미투자협정이 가져올 수 있는 기대 수치는 숫자놀음에 불과할 수 있다. 경제논리의 허황된 망상에 빠져 다시는 씻을 수 없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현재의 스크린 쿼터제는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종다양성이 거부되고 일부 거대한 한국의 상업영화들이 극장을 점령하는 것은 스크린 쿼터제 실시의 올바른 목적이 아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과한 좋은 예술영화들이 각 극장에서 연간 최소 2주일 이내 상영될 수 있는 의무조항을 두는 것이 좋다. 이것이 진정으로 한국영화 발전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쾌락적이고 말초적인 상업영화의 범람을 막고 한국 영화를 산업적으로 지키면서 동시에 예술적 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