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켠이 서럽고 가난한 마음일제
도회지에 갇혀 지내는 친구 불러내 수만리 가는 길
차창 사이로 분주히 반듯한 세상이 심어지고
행복이 무어냐고 묻는 벗에게
발아하지 않는 꿈의 갈피를 더듬어
“희망을 연장하되 그 근거를 끊임없이 감시하는
정신의 필요성“이란 정현종의 시를 들려주고
피할 수 없는 외길을 만나면
먼저 가라고 뒷걸음치며 웃음 짓는 넉넉한 사람들
잘 발라진 생선가시모양 허옇게 드러난 나무뿌리와
거북 등처럼 갈라진 저수지 바닥을 보며
초봄의 풍성함을 되묻는, 계절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왜 빨갛게 나뭇잎이 타들어 가는지?
가슴앓이 하는 대지에 사랑의 강물이 왜 흘러야하는지?
오뉴월 농부들의 목마름을 누가 알 수 있을까?
한 시각으론 숨겨진 역설을 알 수 없듯이
사물은 늘 낯설게 나타나
장모네1의 그림과 中流의 砥柱2에 대해 논하다
만연폭포 가느다란 물줄기 보며 그 옛날 전설3을 떠올린다
바람 많은 시대의 아픈 옹이들을 아우르며 서있는
만연사 대웅전 옆 배롱 나무는 말이 없고
그 시절 시퍼렇게 살아있는 물찬내(水冷川)
어우러진 물소리 그리며
마른 마음으로 기울면 안돼 물기 있는 삶을 살자고
길은 왜 가야만 하는지 묻는 벗에게
배시시 웃으며
물촌(水村)마을 느티나무아래
아직 발아하지 않는
꿈의 풀씨(뿌리) 하나 심어 두었다.
반드시 가야하는 길에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1 장모네: Monet, Claude. 1840-1926, 프랑스의 인상파화가.
2 중류의 지주: 중국 땅 복판을 흐르는 황하는 중류지점인 장안 옆의 동관에 이를 때 까지는 격류이지만 이곳에서 동쪽으로 꺾여 화북평원을 흘러 들어갈 때는 수세가 완만해져 천천히 흐르게 된다. 그것은 왜일까? 동관근처 격류 속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 바위의 기상과 모습을 말할 때 중류의 지주라고 말한다. 시류에 따라 아부곡세 하지 않고 신념대로 살아가며 남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나 그런 사람을 두고 비유해서 말할 때 쓰이게 되는 것이다.
3 옛날 만석이와 연순이는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만석이가 전쟁터에 나가게 되어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연순이는 돌아오지 않는 만석이를 기다리다가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다른 이와 혼인하던 날 그 자리에서 몰골이 상한 만석이를 보게 되었다.
초야에 연순이는 신방을 뛰쳐나와 만석이를 몰래 만나 여기 폭포에 이르게 되었고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 저승에서 해 보자며 폭포 아래로 떨어져 사람들로 하여금 애틋함을 갖게 하였다. 이로부터 이 폭포의 이름을 만연폭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詩) 상처(傷處)
-------병찬이 에게
그 해 겨울 헤어지며 찢긴
상한 감정의 해일 덮쳐와
가슴 한 가운데 바람 들이차 윙윙거리던
그 포말의 진군 위력 시위를 벌이는 점령군을
모두 떠난 빈집에서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어
눈발 휘날리는 봉선동 5번 버스 종점 국밥집
갓 데쳐 넨 고막에 막걸리 사발 부딪혀
마음 한 구석 소용돌이치는
상처와의 씨름 아직 힘겹지만
더러는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바람 많은 세상살이 쓸쓸하고 억울해도
시린 하늘을 이고 사는 이웃들을 기억하자
우린 언제나 한번쯤 주눅 들지 않고
반듯하게 서 있을 수 있는지
우린 언제나 한번쯤 사심 없이
우리의 전부를 남에게 준적이 있는지
우리도 언제나 한번쯤 세상에 대하여
기꺼이 바닥부터 정렬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지
살아 있음으로 견뎌야 하는 것
오래 기다려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세상의 가장 낮고 좁은 길을 말없이 걷으며
환한 세상을 향한 한 점 소리 없음이 되자
때론 그것이 거칠고 황량하나
한결같음으로 한결 넉넉한 바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