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고인돌공원 고인돌유적구역 전경 |
전북 고창군은 천년고찰 선운사의 꽃무릇과 동백 그리고 풍천장어 등 눈요기와 먹거리가 풍부한 지역인데, 고창읍에서 북서쪽으로 약 9.5㎞쯤 떨어진 죽림리 일대에는 약 6천 년 전 이 땅에서 살았던 선사시대(pre-historic era)인들이 남긴 고인돌 테마 공원도 있다(2014. 06.04. 고창 선운사 참조).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출현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이라고 하지만, 문자가 발명되어서 당시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시기는 고작 5천 년 남짓하다. 따라서 문자기록이 없는 장구한 기간은 선사시대인들이 사용하던 돌, 쇠붙이 같은 도구로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추정하는데, 도구에 따라서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로 나눈다.
석기시대는 대체로 300만 년 전~약 3만 년 전으로서 다시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로 나누며, 석기시대는 평등한 공동체 사회였으나, 청동기시대는 청동기 무기의 발명으로 공동체사회가 해체되고 계급사회가 형성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것은 무기와 생활도구로 청동기를 사용한 것과 달리 고인돌(支石墓)을 비롯하여 부족의 영역을 구분 짓거나 고인을 추모하는 기념물인 선돌(立石; menhir) 등 거석문화(巨石文化)와 청동검, 청동 활촉과 민무늬 토기 등의 부장품 등은 공동체사회의 모습이라기보다 고대국가 발생 직전의 계급사회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인돌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고인돌 밑에 무덤방이 있어서 지석묘, 중국에서는 ‘돌집’이라는 의미에서 석붕(石棚), 유럽에서는 돌멘(Dolmen)이라고 한다.
한반도의 고인돌 조성 시기는 유럽에 비해서 약간 늦지만, 전 세계 고인돌의 40%나 되는 약 4만여 기가 발견되어서 ‘고인돌 왕국’이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넓은 평야지대보다는 산과 언덕이 가까운 곳이나 해안지대 등지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당시 인간의 주거지가 동굴이나 움집에서 벗어난 것으로서 고인돌이 수 십기 혹은 수 백기씩 무리를 이루고 분포되어 있는 것은 부족공동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또, 학자들은 고인돌을 한강을 중심으로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나누는데, 북방식은 탁자처럼 큰 돌을 굄돌로 받친 모양이고, 남방식은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작은 받침돌을 놓은 뒤 거대한 덮개돌을 마치 바둑판처럼 올려놓은 형태로서 기반식(碁盤式)이라고도 한다. 탁자식의 대표적인 것은 강화도 고인돌이고, 기반식은 고창 고인돌이 대표적인데, 전남 화순에서는 두 가지 유형이 모두 발견되고 있다.
고창군에서는 전북 지역의 약 3000기가 있는 고인돌 중 절반이 넘는 1600여 기가 밀집되어 있는 것을 관광자원으로 삼기 위하여 1994년 죽림리 일대 약 1.8㎢의 447기를 사적 제391호로 지정받고, 2004년부터 정비에 나서 2008년 7월 31일 고인돌공원을 개장했다. 고창고인돌 유적은 2000년 12월 강화도 일대의 약 120여기, 전남 화순의 약 500여 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2014. 05.28. 화순 고인돌 유적 참조).
고인돌박물관 전경 |
모로모로 열차 |
열차주행도로 |
지상 석곽고인돌 |
계산리 고인돌 |
두꺼비 고인돌 |
고창고인돌 공원을 찾아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고창나들목을 빠져나와 아산 방면 주곡교차로에서 고인돌 교차로로 직진하면 바로 고인돌공원이다. 호남고속도로 정읍나들목을 빠져나와서 고창 방면으로 좌회전해도 마찬가지다. 고인돌공원은 크게 고인돌박물관, 선사 체험마을, 고인돌 유적 등 3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주차장에서 오른편 건물이 고인돌박물관이고, 그 안쪽에 선사 체험마을, 고창천 건너 산기슭에 고인돌유적이 있다. 선사 체험마을과 고인돌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은 무료이고, 고인돌박물관 입장료만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을 받는다.
총면적 3952.8㎡의 대지에 지상 3층으로 지은 고인돌박물관은 투박한 메주 모양이지만, 사실 바둑판 고인돌을 형상화한 것이다. 화순 고인돌공원에도 박물관이 있지만, 자료나 시설은 매우 엉성하고 빈약한데 비해서 고창고인돌 박물관은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과 야외전시실로 나뉘며 매우 알차다.
로비에는 선사시대인들이 고인돌을 옮기는 장면을 1: 1 크기의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으며, 1층에는 기획전시실과 3D입체 영상실, 다목적 강당이, 2층 상설전시실에는 청동기시대의 무기와 토기류, 생활도구 등을 전시하는 이외에 고인돌의 기원과 고인돌의 구조, 축조방법 그리고 전국적인 고인돌의 분포현황을 자료화면으로 보여준다.
전시실에서는 무엇보다도 고인돌의 채석하는 과정부터 고인돌을 세우는 과정을 알기 쉽게 자세히 그림과 설명으로 보여주는 것이 실감난다. 3층은 선사시대의 불 피우기, 암각화 그려 보기 등 선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로 꾸며졌으며, 쉼터로 활용되는 옥상에는 대형 망원경을 설치하여 인근의 고인돌 유적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고인돌박물관 앞에는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쉽게 고인돌 유적을 볼 수 있도록 ‘모로모로 열차’라고 하는 탐방열차를 운행하고 있는데, 탑승료는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이다. 매시 30분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지만, 비가 내려서 길이 미끄러운 여름철이나 빙판이 많은 겨울철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고창천 위를 가로지른 고인돌 교를 건너면 고인돌 탐방이 시작되는데, 맞은편 완만한 산기슭에 산재한 고인돌은 맨 오른쪽 제1코스에서부터 맨 왼쪽 제6코스로 나뉜다. 나지막한 산 능선을 따라 조성된 고인돌 유적지 앞에 펼쳐진 고창천과 넓은 평야를 바라보면, 당시 청동기인들은 농사에 필수적인 개천 가까이에 집단거주지를 형성하여 농경생활을 하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고인돌은 1코스에 53기, 2코스 41기, 3코스 285기, 4코스 채석장, 5코스 220기가 있는데,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거대한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는 것은 당시 이 지역이 오랫동안 상당히 세력이 강력한 부족장이 지배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혹시라도 이들이 이후 마한 54국 중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의 주민이 되었다가 백제의 모량부리현(牟良夫里縣)을 이룬 것은 아닐까?(2015.06.17. 고창읍성 참조).
참고로 단군임금이 BC 2333년에 고조선을 세웠다고 하니, 지금부터 4300여 년 전인 셈이다
탐방열차는 4코스와 6코스를 제외한 4개 코스만 순회하며 고인돌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3코스에서는 포토타임으로 약 5분정도 쉬는데도, 운행시간은 약 25분정도에 불과해서 보다 상세히 관람하려면 탐방열차를 타는 대신 걷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또, 고인돌유적마다 모두 나무울타리를 세워서 관람객들은 울타리 밖에서 관람해야 한다는 점도 직접 살펴보고 실감할 수 있게 한 전남 화순군의 고인돌 유적과 달라서 조금 아쉽다.
선사 체험마을 전경 |
장방형 움집 |
원형움집 |
가죽 마름질 재현 모형 |
석기도구제작 모형 |
고인돌 유적을 둘러보는 탐방열차가 출발하는 승차장 옆에는 선사시대의 마을을 재현한 선사 체험마을이 있다. 선사 체험마을에는 원형, 장방형 등 다양한 형태의 움집이 있는데, 움집은 선사시대인들이 생활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야외전시장에는 동물을 사냥하여 고기를 먹은 뒤 그 가죽을 가공하고, 석기를 제작하는 모습 등을 마네킹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고인돌 끌기 체험마당에서는 무거운 고인돌을 운반하는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선사시대인들이 다른 부족의 침입을 경계하여 나무로 세운 현대식 망루와 같은 초소는 상상을 빗나간 것 같다. 탐방열차 승차장 옆에 약 90톤가량 되는 커다란 고인돌 1기는 탐방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에서 옮겨온 것으로서 ‘계산리 고인돌’이라고도 하지만, 방치하듯 놓아두기보다는 보다 자세한 설명문을 세웠으면 싶다.
- 정승열 약력-
▲법무사
▲한국공무원 문학협회장
▲대전시 임대차 상담관, 대전시 옥회광고협회 자문위원
▲한국토지공사, 한국수자원공사연수원 외래 강사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외부인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