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20. < 고창 두암초당 –병바위 –미당시문학관 -구시포항>
오랜만에 혼자 나섰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약간의 스릴도 즐길 수 있으며 설레임도 배가된다. 그해 혼자서 전국을 누비던 한 겨울의 여행은 날씨도 물론 추웠지만 꽃도 없고 풀도 없었으니 온천지가 그지없이 삭막했지만 그 나름대로 겪었던 고생스러움까지 늘 아련하고 달콤하다. 남쪽에서부터 홍매가 피었다는 소문과 함께 산수유 소식이 파다하지만 가장 옹색한 여행이 아마도 요즘, 3월 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주로 겨울부터 이 계절까지는 유서 깊은 역사적 장소랄지 유적지을 찾아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이거나 주변 정서를 돌아보는 여행을 선택하기도 한다. 오늘은 고창으로 향하여 두암초당부터 둘러보기로 한다. 고창이라 하면 가장 잘 알려진 선운사와 청보리밭이 떠오를뿐더러 그 이 외에 볼거리가 있을까했는데 굽이굽이 둘러보니 너무 아름답고 다양한 체험과 의외로 문화가 숨 쉬는 곳이었다. 이곳 두암초당은 시묘살이를 했던 변성온•변성진 형제의 효심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지은 정자로 전좌바위 밑을 움푹 파서 지은 누정이다. 변성온•변성진 형제가 두암초당에서 학문을 연구하면서 병바위 일원이 명승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김소희 명창이 득음한 곳이기도 하단다. 절벽을 올려다보면 그지없이 신기하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기암절벽 사이의 정자는 아름답다 못해 기이함마저 드는가하면 절벽과 누정의 완벽한 조화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한편 두암초당 뒤로 나 있는 트래킹 길이 있어서 병바위와 이어져 있다. 병바위 일원은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과 응회암이 오랜 시간 동안 침식과 풍화되어 형성된 화석암체란다. 병바위와 그 옆의 소반바위 표면에는 '풍화혈'인 '타포니'가 발달해 있어 특이한 지질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초행길이고 병바위의 위치를 잘 몰라 온전히 산의 정상까지 찍고 내려갔다. 사실 사람이 없고 스산한 분위기여서 혼자서 산을 넘자니 살짝 무서움도 느껴졌지만 조금만 더 올라보자는 희망으로 완주를 하였다. 병바위는 잔칫집에서 몹시 취한 신선이 쓰러지면서 술상을 걷어차 술병이 땅에 거꾸로 꽂혀 병바위가 되었고 술상인 소반이 굴러와 소반바위가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길이 잘 조성돼 있고 빽빽하게 채운 나무들 사이로 이른 봄 햇살이 적당하게 들면서 걷기에는 참 좋았다. 경제적인 노선을 계획한대로 해리 책마을을 향해 가는 길에 마치 선운사 입구를 지나고 있었다. 나선 김에 선운사 동백꽃을 만나고 싶었으나 오늘의 계획이 빠듯하여 그냥 지나치는데 신호등 아래 <미당시문학관>이라는 관광 안내판이 보인다. 지체할 이유 없이 미당시문학관으로 향했다. 이래서 혼자는 좋다. 그 곳에서 약 3km쯤 달려가면 되는 곳이니 마치 횡제를 한 기분이었다. 생전에 15권의 시집을 출간한 미당 서정주는 약 70년의 창작 활동기간 동안 1,000여 편의 시들을 발표한 시인으로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받는 분 중 한 분이 아니던가. <국화 옆에서>라는 가을꽃으로 가슴 시리게 해주는 서정주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미당시문학관은 20세기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인 미당 서정주 업적을 보존하고 선양하기 위하여 고창군과 제자 및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개관되었다. 옛 선운초등학교를 개조하여 지은 미당시문학관은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자랑한다. 산과 바다와 질마재 마을까지 거느려서 그 한가운데 시문학관이 자리하며 미당의 유품 5천여 점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질마재 시인마을로 골목마다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시인이 태어나 시를 쓰고 살아온 정서의 그 이웃은 대대로 모두가 시인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한편 「다섯살 때」라는 시의 조형물과 함께 서 있는 미당의 생가인 고택에도 미당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미당의 외가 터에는 예전 바닷가의 외가를 재현하기 위하여 도랑 옆에 있는 현 방앗간에 시 「해일」을 벽화로 재현했으며 시 「외할머니네 툇마루」「자화상」·「다섯살 때」 등과 함께 선운리의 어부들이 띄웠던 폐선이 옛 외가 주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질마재 시인마을로 들어서면 미당의 외가와 친가가 있으며 양지바른 곳에 미당의 묘소가 있어 반갑게 맞이한다. 이렇게 이모저모 일상 중에 해찰부리 듯 잔잔한 봄볕 내리는 고창에서 고요한 사치를 누리면서 구시포항으로 향했다. 구시포로 가는 길은 드라이브하기에 좋았다. 예전에 남편과 운곡 람사르 습지를 트레킹 했던 기억까지 낯설은데 낯익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약 13km를 달려 구시포항에 달았다. 여름은 뜨겁겠고 가을 쯤 다시오면 좋을 만한 곳이었다. 오늘따라 바람이 많아 걷기에는 무리인 듯 하여 구시포에서 바라보이는 가막도까지 들러 나왔다. 미세먼지로 인하여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을 감추고 있는 고창투어를 접고 돌아오는 길이 마냥 행복이다. 자칫 혼자의 여행이 불안하고 쓸쓸할 수 있겠으나 현장에서 생소한 것들과 생경한 사람들을 마주하는 스릴이 흥미롭다. 자연을 바라보다가 문학을 느끼다가 섬을 바라보는 것은 나의 성향과 욕망을 탐구할 수 있어서 좋다. 아울러 이번 여행에서도 절대적 고요와 침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스스로에게 선택된 선물을 선사하는 귀한 기회였다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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