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파묘>
1. ‘명당, 굿, 조상의 음덕’,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은밀한 형태로 작동된다. 과거의 낡은 유물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부하지만 최상위의 한국인들은 자신의 성공 및 가문의 영광을 위해 무덤을 옮기고 남몰래 굿을 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하려 한다. 현재의 대통령도 이러한 ‘명당’과 관련된 논란에 휩쓸리지 않았던가?
2. 영화 <파묘>는 한국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무속적 세계를 펼쳐내면서 현재에도 전혀 낯설지 않은 현장으로 안내한다. 부유한 한 집안의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병에 걸렸고 병원에서의 온갖 치료에도 회복되지 않자 하게 된 굿을 통해 조상의 원혼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파묘’, 무덤 속에 관을 꺼내 태워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결정된 것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무당과 지관 그리고 장의사가 합류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관 속에 원혼이 밖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해를 입히고 파묘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도 위협을 가하는 괴기스러운 상황이 발생한다. 조상의 묘자리가 편치 않을 때 후손들에게 해를 입힌다는 전통적인 사고가 현실에서 흥미롭게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3. 영화는 문제를 한층 더 깊은 방향으로 전개시킨다. 가족들에게 해를 입힌 관은 불태워지고 문제가 종결되는 듯싶지만 새로운 사건이 등장하는 것이다. 관 밑에 또 다른 관이 발견되었고 새로운 관은 일본의 음양사에 의해 시행된 조선의 정기를 끊기 위해 은밀하게 숨겨진 일본 신사를 지키던 ‘장군’의 관이었던 것이다. 가족의 불행과 공포를 다루던 전반부는 후반부에서는 조선의 정기를 막기 위한 일제의 간악한 시도를 막기 위한 소위 파묘 어벤저스(지관, 장의사, 무당)의 분투로 급격하게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4. 가족의 불행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거의 영향은 아직까지 많은 한국인들의 정서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요소이다. 그런 이유로 제사가 여전히 진행되며 조상들의 죽음 이후가 편안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단지 조상들을 위한다는 관례적 전통을 넘어 조상들의 해코지가 발생하지 않으려 하는 인간이 지닌 죽은 자에 대한 공포심리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본 귀신은 한 편의 모험드라마이다. 거대한 힘을 가진 장군귀신에 의해 위협에 빠졌을 때 벌이는 파묘 어벤져스의 노력은 평소 그들이 해왔던 작업적 성격을 넘어선 민족적 투쟁의 성격까지 가미된다. 최후에 일격을 가하는 지관의 행위는 과거 나에게는 익숙한 <요괴인간>에서 사악한 유령에 일격을 가하는 뱀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야기는 무겁고 공포스런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조금은 위트스럽고 조금은 흥미로운 장면과 등장인물들로 인해 잘짜여진 굿판을 보는 느낌이다. 한국적 무속과 풍수 전통에 일본의 무속까지 가미하여 흥미로운 모험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첫댓글 - 음양의 원리가 있다고 했다. 양기와 음기가 있으니, 양택과 음택이 있다고 했다. 죽은자를 위한 묘지 선택은 산자를 위한 것이라 했다. 풍수지리학이 발달(?)하고 수천년을 그 속에서 살아왔다. 이것을 풍습이라고, 문화라고도 했다. 또 누군가는 민족정신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라져 가고 있다. 과학 혁명과 교육 그리고 현대화의 물질문명 속에서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 남아 있다. 모든 것이 다 변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