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세상이다. 어떤 일이건 시간을 절약함으로써 경제적으로 해야 한다. 말과 글도 마찬가지. 실용주의 (pragmatism) 생활 철학으로 유명한 영미인들은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말과 글 가운데 약자(abbreviation)를 아주 많이 쓴다. UN (the United Nations, 국제연합), WHO (World Health Organisation, 세계보건기구), UK (United Kingdom, 영국), LA (Los Angeles)의 예에서처럼 기구, 지명, 인명 등 고유 명사를 머리 철자로만 줄여 쓰는 것은 우리가 다 안다.
고유 명사뿐만 아니다. 이런 예는 어떤가. e.g. (for example, 예컨대), etc (등등), NIMBY (Not In My Backyard), MP (Member of Parliament), PM (Prime Minister), MC (master of ceremony), VD (venereal disease), 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 상표에 의한 생산), OA 신드롬(office automation syndrome, 자동화에 따른 사무실 근무자들에게 발생하는 심신의 중상), BOD (biochemical oxygen demand,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 NTP (Treaty on Non-Nuclear Proliferation), CTS (computerised typesetting system 전자식자 시스템), NGO (Non-governmental organisation), POW (prisoners of war), LIBOR (London Inter-bank offered rate, 런던 은행간에 적용되는 이자율).
영어에서 국제조약, 신기술, 신제품, 신제도, 음악 용어, 전문 용어 등 대중적으로 쓰이는 이름은 이런 식으로 표기된다. 이게 한국어에서보다 더 가능한 것은 영어 단어가 단 24자의 알파벳으로 되어 있어 단어의 머리 철자만 써 약자를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니버시티는 유니로
이런 약자들은 문장 영어(literary English, written English)에서도 그대로 쓰이는 추세다. 변칙을 허용하는 구어체 영어(spoken English)에서는 약자와 준말이 더 많이 쓰인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호주 사람들은 말을 줄여 쓰는 데 명수다.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사느라 돈을 꺼내주면, 저쪽에서 받으면서 Ta!하고 대답하는 일이 매우 흔하다. 처음 호주에 온 한국인은 이 간단한 표현에 머리를 쓰게 된다. Ta는 Thank you 또는 OK, good의 뜻인데 영어 교과서나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호주 사람들 특유의 약식 말이다.
미국 조종사들은 교신을 할 때 “알겠습니다”, “좋습니다”의 뜻으로 roger란 짧은 말을 쓴다. 이처럼 말은 부호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합의만 있다면 약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호주 사람들이 즐겨 쓰는 Aussie는 물론 Australian의 준말이다. 나는 호주인들이 이런 식으로 줄여서 쓰는 말들을 모아봤다. 이들은 또 handkerchiefs를 hankies, television은 telly, vegetables는 veggies, university는 uni, just a second는 justsec, a cup of tea는 a cuppa로 쓴다.
그 외 sickie (sick leave, 병가) flexi (flexible time, 유동 시간 근무제), rego (registration), worker compo (compensation), COD (cash on delivery), RDO (roster
day-off)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호주 사람들도 그렇지만, 앵글로 색손들은 직업이나 취미에 따른 사람 집단 명사 끝에 y나 ie를 붙여 약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예컨대 bookie (bookmaker, 호주에서는 책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경마장에서 마권 파는 물주를 말함), bikie (motorcycle타고 다니는 갱), Junkie (drug addict, 마약상습자), cabbie (cab driver, 택시기사), truckie (truck driver트럭기사).
브래들리(Bradley, David and Maya Bradley 1984, Problems of Asian Students in Australia--language, Culture and Education)에 따르면 호주 사람들은 다른 영미인들보다 퍼스트 네임 (first name)으로 상대를 부르기를 즐긴다는데 이들의 ‘마이트’ 정신 (mateship) 말고도 약자를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영어 글쓰기의 필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대학진학 시험에서 영작문의 비중이 높아졌고, 사회에 나가서도 상급직에 올라 갈수록 영어로 글을 잘 쓸 수 있어야 한다.
영어 사용 국가에 사는 여기 한인과 한인 단체들 또한 마찬가지다. 대외 관계 일을 잘 하자면 잘 쓴 편지나 문서로 해야 한다. 영어로 글 쓰는 게 지금의 내 분야가 아니지만 호주에 오기 전 오래 국내외 영어 매체에 글을 쓰느라 이 문제에 대하여 늘 생각해봤다.
나는 힘있고 효과적인 문장의 조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경제’ (the economy of words)를 잘 활용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20개 단어를 써야 할 내용을 10개로 줄여 했다면 ‘말의 경제’를 실행한 예다. 바쁜 수용자 (독자, 청취자,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고 매체 공간의 제약을 받는 저널리즘에서는 이 조건이 매우 중요시된다.
나는 ‘말의 경제’를 위한 몇 가지 기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기존의 영문작법 책에서도 취급됐겠지만 나 나름대로 착안한 것들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소개해보고자 한다. 다른 여러 가지는 다른 기회에 다뤄보겠다.
짧은 단어
같은 의미지만 짧은 단어를 쓰면 문장은 힘있게 (powerful) 된다. 수동 (passive)보다 능동 (active)형의 문체로 짧은 동사를 사용하면 문장은 간결하고 힘있게 된다. Production hits a record 25 million tons (생산이 기록적인 2천5백만 톤에 달했다)라는 문장에서 hit는 글자 셋으로 되어 있다. 이때 hit 대신 reach, amount to 등이 가능하지만 더 짧은 단어를 택한 것이다.
같은 식으로 avert crash (충돌을 피하다), curb ( curb demand), cut ( cut costs), fuel (inflation), spark (speculation, controversy), forgo (freedom), veto (the proposal)와 같은 동사, entry, inquiry, role, (a rise to) power, status, rivarly, surge와 같은 명사, shy, brief, short, key 같은 형용사를 들 수 있다.
이번 주에 동남아 여러 국가의 해안들이 지진 해일로 쑥밭이 됐다. 이때 The beach areas flattened by a Stunami란 영어 문장이 가능하다. Flattened (펀펀한 평지가 돼버리다) 대신 devastated (파괴되다), ravaged (할퀴다) 등 뉘앙스는 다르지만 비슷한 말이 가능하다..
하이픈 (hyphenation)
영어에서는 구두점(punctuation)의 효과적인 사용이 경제적인 글 쓰기를 크게 돕는다. 통계를 댈 수는 없으나 영어 문장을 쓸 때 가장 많이 다루게 되는 부분이 사물과 현상의 수식이 아닌가 한다. 이때 수식 부분이 단어 하나로 될 수 있는 단순한 것이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설명이 길어지게 된다.
이 몫을 영어에서는 대개 관계대명사로 된 형용사절(adjective clause)이 담당한다. 이때 형용사절 대신 하이픈을 써 복합어가 된 형용사를 사용하면 문장은 대폭 준다. 이 용법은 극히 흔하다. 복합 형용사는 다음 몇 가지 유형으로 되어 있다.
* 명사 다음에 형용사 역할을 하는 분사 (과거분사와 현재분사)를 써서 만들어지는 복합 형용사. 가령 An economy that is based on exports (수출에 기반을 둔 경제, An economy that is supported by exports/수출로 떠받드는 경제, An economy that is heavily dependent on exports/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와 같은 절) 대신 Export-oriented economy (수출지향적 경제)란 말을 써 단어 몇 개를 절약할 수 있다. 동사가 바뀌어 분사가 되는 것인데 이렇게 쓰일 수 있는 동사는 orient, base, center 등 많다. 예컨대:
President Clinton's commerce-oriented foreign policy (상업위주의 외교정책)
Trade finance-related corporate business (무역금융 관련 회사영업)
Korea's traditional rice-based diet (쌀을 원료로 한 식단)
Fee-based banking business (수수료로 버는 은행)
Petroleum-based products (석유화학 원료로 된 제품)
Cash-strapped(현금이 궁핍한)
state-owned factories (국가소유의)
Home-grown magazines (국내 자본으로 성장한 잡지)
Rice-exporting firms (쌀 수출회사)
High-paying jobs (높은 급료를 받는 직업, 고소득 직)
Money-losing business proposition (손해 볼 사업제안)
* 형용사 노릇을 하는 분사를 써 위와 같은 복합형용사가 가능하다면 이것을 일반 형용사로 대치해도 같은 결과가 된다.
Cost-conscious management (비용에 민감한)
Product (또는industry, country)-specific (상품별/또는 산업별 또는 국가별)로 명시된 (구별된)
Housing and other interest rate-sensitive industries (주택 등 이자율에 민감한 산업)
Proliferation (또는 flood)-prone (확산되기 쉬운/또는 홍수/ 피해를 입기 쉬운)
Labor (또는 capital)-intenstive (노동 /또는 자본/집약적인)
Environmentally (user)-friendly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사용자의 편리를 도모하는)
* 이들 복합어들은 형용사 역할을 하므로 보어로 쓰여질 수 있으며 그 경우 문장 술부의 길이가 줄어든다. 예컨대
The company is very much cost-conscious (이 회사는 매우 비용에 민감하다.)
This product is user-friendly (이 상품은 사용자에게 편하게 되어 있다).
This job is high-paying (이 자리는 보수가 높다)
* 때로는 명사가 형용사 노릇을 하므로 다음과 같은 용법이 가능하다.
Collective farm-style management system (집단농장식 경영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