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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와 다말의 계대 결혼에서 보게 되는 고엘 사상
창세기 38장
룻기서에서 보게 되는 계대 결혼에는 고엘 - 기업 무를 자 - 사상이 있습니다. 고엘이 언제 시작되었는가 하는 정확한 기원은 알 수가 없으나, 창세기 38장에서 처음 대하게 됩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서 넷째인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고 하는 사람의 딸을 만나서 결혼하여 엘, 오난, 셀라 세 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장자인 엘을 결혼시켰는데, 그 아내의 이름은 다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이셨습니다.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께서 엘을 악하게 보신 것은 창세기 38장의 내용 전개를 볼 때 그가 무슨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범하거나 범죄에 해당하는 어떤 죄를 짓거나 하는, 그래서 윤리와 법에 어긋나는 어떤 잘못된 행동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간에, 가령 원치 않은 여인과의 결혼에 있었다든가 하는 이유로 인해서 의도적으로 아내와의 동침을 통해서 자손 보기를 기뻐하지 않았던 데 있습니다. 그런 엘의 행동은‘땅의 약속’과 함께‘자손의 약속’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지 않는 불순종이요 불신앙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엘의 행동을 악하게 보셨으며, 그를 하나님께서 죽이심으로 엘은 후사를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둘째 아들인 오난을 죽은 형을 대신하여서 다말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계대 결혼(繼代 結婚)을 시킴으로써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형을 위하여 아들을 얻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죽은 형의 동생은 형을 대신하여 남편의 의무를 이행하는 고엘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다에 의해서 계대 결혼이 시행된 기록이 있었던 것을 보아 이것이 행해지기 이전에 이미 고엘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에 이 당시의 시대나 이전이라고 할지라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족장 시대의 시기가 고엘 제도의 기원이 되거나 또는 이 당시나 이전의 시기가 기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자손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엘 제도는 전통(傳統)으로 내려오던 것이 훗날 모세의 율법에서 성문화되었습니다(신 25:5-10).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적인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에 의해서 보게 되는 계대 결혼에서는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고엘 제도를 두셨는지를 알게 해주시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말에 의해서 드러내 주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유다는 장자인 엘이 죽자 그의 동생 오난이 후사가 없이 죽은 형을 대신하여 다말을 아내로 맞이하는 계대 결혼을 시켜서 남편의 의무를 이행하는 고엘에 있게 합니다만, 그마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므로 역시 후사가 없이 죽임을 당하였으며, 그러한 오난에 이어서 막내인 셋째 아들 셀라가 고엘이 되어 다말을 아내로 맞이하는 계대 결혼을 하여서 후사인 아들을 낳아 유다의 기업을 잇게 하여야 하는데, 유다가 의도적으로 셀라를 죽은 형을 대신하여 남편의 의무를 이행하는 고엘로 삼지 않습니다. 유다는 셀라를 계대 결혼을 시켜 고엘로 삼을 경우 앞서 죽은 형들처럼 그마저 후사가 없이 죽을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유다는 셀라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다말을 친정으로 보내 셀라가 다 성장할 때까지 수절하고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셀라가 성장하여 고엘의 의무를 이행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셀라에게 고엘의 의무를 이행시킬 마음을 전혀 갖고 있지 않자 다말은 그러한 유다의 마음을 읽고서 유다가 자신에게 계대 결혼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셀라로 하여금 고엘로서의 의무와 권리의 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유다에게서 그의 아내가 세상을 뜨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유다의 아내가 죽게 된 것은 유다의 셋째 아들 셀라가 고엘이 될 수 있는 시기에 있게 된 것과 관련하여서 있는 것입니다. 유다의 아들 셀라가 죽은 형을 대신하여 계대 결혼을 통해서 형수에게 들어가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서 고엘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유다가 이를 행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아내가 세상을 뜨게 되는 것을 통해서 유다가 자연스럽게 다말과 동침하는 자인 고엘의 의무를 지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해 나가신 것이었습니다. 이에 다말은 고엘이 되어야 할 셀라를 대신하게 될 위치에 있는 유다가 상을 치르고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 양털을 깎기 위해서 자신의 양떼가 있는 딤나로 올라가는 소식을 듣고는 수절하는 동안 입고 있는 과부의 옷을 벗어 던지고 창녀로 위장하여 유다와 동침하여 유다의 쌍둥이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가졌습니다.
혹자는 이 사건을 두고 유다가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는 불륜을 저지르는 패악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말을 시아버지와 불륜을 행한 패악녀로 봅니다. 그래서 이 일을 다말이 창녀 행위를 한 것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말은 결코 창녀가 아닙니다. 다말은 유다로 하여금 고엘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하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 창녀로 가장한 것일 뿐입니다.마태복음 1장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다루는데, 여기에는 다섯 명의 여인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다말과 보아스를 낳은 라합과 오벳을 낳은 룻과 솔로몬을 낳은 우리야의 아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입니다. 혹자는 이 중에서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하였고, 라합은 이방여인으로서 기생이며, 룻 또한 이방여인인 사실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죄인의 족보를 말해주고 있는데, 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구주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구주이시라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을 들어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왜냐하면요. 여기서의 여인들은 이들이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하나님의 언약에서 주시고 있는 약속의 씨<후사>가 이 여인들을 통해서 보존의 통로가 되어 함께 해 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다말과 동침한 사건은 이 둘이 불륜의 패악한 죄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의 아들인 엘과 오난이 후사가 없이 연이어 죽고 막내인 셋째 아들 셀라가 죽은 형들의 고엘이 되어서 대신 남편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하여 유다 족속의 기업을 잇는 후사를 낳아야 하지만 유다가 혹 있을 수 있는 셀라의 목숨을 염려하여 이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에 다말은 유다 족속에 며느리로 들어온 언약 백성에 있는 것으로서 계대 결혼을 통한 후사를 남기기 위해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함을 발휘하는 것으로서 노력하고 애를 쓰는 것으로 행동에 옮기는 것에서 유다와의 동침에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다말은 자신의 남편인 엘이 죽고, 그에 따른 고엘로서 죽은 남편을 대신하는 형제의 의무와 권리를 지닌 오난도 죽고, 이제 막내인 셀라가 그 고엘을 이어 받게 되었는데, 유다가 셀라에게 고엘의 자격을 주지 않아 다말과의 계대 결혼을 시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다말은 자신과의 계대 결혼을 통하여 후사를 남길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고엘이 되는 자격에 있는 사람은 죽은 남편의 친혈육으로서 아직 남아 있는 다름 아닌 시아버지 유다였기 때문에 다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계대 결혼 제도에 순종하는 것에서 있은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에서 다말이 셀라 다음 차례의 계대 결혼의 자격에 있는 고엘이 되는 유다와 동침을 한 것은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전통을 좇는 관습에 의한 사회법이었으며,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주시고 있는 ‘약속의 씨<후사>’에 의한‘자손의 약속’을 지켜나가시는 것에서 하나님이 갖게 하심으로 시작된 고엘에 의한 계대 결혼 제도에 순종하는 믿음에 있는 것에서 행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말이 이 믿음에 있도록 다말의 마음을 지켜나가시는 의를 입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와 다말의 동침 사건은 윤리적인 비난을 받아 마땅한 패륜을 저지른 불륜의 사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다말은 결코 시아버지 유다를 미혹하는 패악을 저지른 나쁜 여인이 아닙니다. 다말은요. 유다의 집에서 그의 후사를 볼 수 있는 아직 남아 있는 고엘이 유다인 것을 알고는 자신이 유다를 고엘로 삼음으로써 다말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경우 겪을 수 있는 비난과 멸시와 생명의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두를 감수하면서 하나님이 내신 계대 결혼을 감행하는 의에 있은 여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다와 다말 사이에 있은 사건을 가지고 다말을 창녀로 매도하여서는 안 됩니다. 다말이 준비한 계획에 의해서 유다는 다말과의 동침을 요구함으로써 유다는 자신이 계대 결혼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에서 스스로 돌이켜 그 자신이 고엘이 되어서 계대 결혼에 따른 고엘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해서, 다말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주어진 계대 결혼의 순서에 따라 유다가 고엘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유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지혜에 있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동안 유다의 후사를 잇는 아들을 보지 못했던 다말에게서 비로소 태를 여셨습니다. 그래서 다말이 베레스를 낳게 하였습니다. 이 베레스의 후손에서 라합과 결혼한 살몬이 나왔으며, 살몬과 라합은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기서에서의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과 연결되어서 룻에게서 오벳을 낳으니,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습니다(마 1:3-60).
하나님께서 유다의 장자인 엘과 오난에게, 그리고 셀라에게 유다의 후사를 주지 않는 것에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다말의 태를 닫아 두셨었습니다. 그리고 유다를 고엘로 삼으셔서 다말의 태를 열어 그의 후사를 주셨습니다. 유다의 장자인 엘과 오난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손의 약속’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엘은 자신의 아내인 다말을 통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자손의 씨’를 보는 것에 있어야 하는데 엘이 그렇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이를 악하게 여기시고 그를 죽였는데, 죽은 형을 대신하여 고엘의 의무를 진 오난도 의도적으로 자손을 보는 것을 피하므로 하나님은 그 또한 죽이셨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셀라에게 고엘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하지 않게 하므로 하나님은 다말이 지혜를 발휘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유다가 고엘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와 다말에게서 보게 되는 고엘 사건은 유다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에서 벗어나는 행동에 유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 대대로와 맺은‘자손의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분의 자비를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유다의 집에서 그의 후사를 보존해 가시는 일을 하신 것은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열 두 아들을 위해 복을 비는 중에 유다에게 하신 예언적인 기도를 성취해 가실 것에서입니다.
49: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야곱의 예언적 기도는 유다에게서 나온 홀, 곧 왕권이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로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며, 그에 따라서 유다의 모든 형제들 곧 백성들이 유다에게 복종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실로’는 내용상으로는‘샬롬’과 관계된 것으로‘평화를 가져오시는 분’, 곧‘평화의 왕’이라고 해석되는 것으로 교회는 이를 약속된 메시야의 예언으로 이해하여 왔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유다에게 축복하는 기도를 통해서 유다(지파)에게서 왕이 나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다윗 왕에게서 성취가 되어 영구히 지속됩니다. 이것의 약속과 그 성취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에게 전하시는 것을 통하여 다윗과 맺은 언약, 곧‘다윗언약’입니다(삼하 7:1-17). 따라서 유다에게 있은 야곱의 예언은 유다에게서 나온 왕에 의하여 그 통치가 그가 다스리는 백성에게서 떠나지 않고 항상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다와 다말에게서 보게 되는 계대 결혼에 의한 고엘 사상에서, 그리고 야곱이 유다에게 하고 있는 기도에서 이 모두는 하나님이‘약속의 씨<후사>’를 통해서 오게 하실 메시야가 약속되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메시야가 어떻게 우리에게 오시게 되었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믿음이 이 모두를 보는 눈이 되고 있으며, 이 이야기를 듣는 귀가 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