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나는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친척 중 한 명이 서울의 한 결혼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일찍 출발을 해야했다. 마침 결혼식장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그리 멀리 않아 기차를 이용하는 것 보다 버스가 더 나을 것 같아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참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형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계시고 또 농촌에 사시기에 같이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주 찾아뵙는 것도 아니고 전화도 자주 하지 못하는 불효자이다.
버스 좌석에 앉자 잠시 후 버스는 터미널을 벗어나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차창엔 전형적인 가을이 수채화처럼 다가왔다. 길 양옆으로 황금들판이 다가왔고 코스모스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고 바람이 불 때 마다 흔들리는 모습에서 만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버스가 고속도로 위를 달릴 때 나의 몸에 남아있던 전날 만들어진 피곤이 나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머리를 기대고 의자를 조금 눕혔고 이내 잠이 들었다. 서울 요금소를 빠져나갈 때 버스가 정거를 해서 나는 눈이 떴다. 얼른 어머니를 바라다보았는데 어머니는 내가 잠에서 깨어나자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아주셨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촌놈 그 자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서울에만 오면 주눅이 든다. 지하철을 타는 것이 몸에 익숙하지 않지만 예식장에 지하철 정거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기에 한 정거장을 지하철을 이용해서 갔다. 지하의 답답함이 달려들었다. 시골에서 좋은 공기만을 마시던 어머니께서 답답해하시는 것 같았다. 지하철을 벗어나 예식장을 찾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결혼식이 있기까지 한 시간 삼십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데 다행이 우리보다도 일찍 도착한 친척들이 있어서 인사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외삼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나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예식장 주위를 걸어다니면서 아름다운 부분은 카메라에 담았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식사를 하고 나는 친척들에게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고 어머니 손을 잡고 지하철역으로 갔다. 내가 출발하기 전부터 생각했던 일을 하기 위해서 였다. 역시 지하철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어머니 걱정이 되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을 지나면서 어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더구나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강북인데 내가 지하철을 탄 곳이 강남이었기에 한참을 지하철을 타야만 했다.
문제는 지하철을 바꿔 탈 때 많은 부분을 걸어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소풍을 나선 초등학생들처럼 설레는 모습을 보이셨다. 한참 동안 지하에 갇혀 있다가 우리들이 탈출한 곳은 경복궁 역이었다. 역 구내에서 직접 연결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어머니께서 서울에 가끔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서울 구경은 한번도 하지 못했기에 나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한 두 군데 둘러보기로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입구에는 수문장들이 옛 복장을 하고 서 있었고 그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마침 수문장 교대의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벤트가 진행 중이었고 관광객들이 옛 복장을 입고 기념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국내외 관광객들이 고궁에서 가을을 느끼고 역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철재각연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나무에 음각과 양각으로 글자를 판 작품이 출품되어 있었다. 많은 가훈이나 그림 그리고 시까지 새겨져 있었는데 구상 선생님의 '꽃자리'라는 시(詩)가 눈에 들어왔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근정전을 관람하고 경회루에 닿았다. 많은 사람들이 경회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비둘기들이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을 가지 않는 것은 사람들과 친해져서 라고 생각을 했다. 경복궁을 나와서 나는 다음 장소를 택해야 했는데 그 곳은 바로 인사동이었다. 문학모임이 있어서 몇 번 가 본적이 있기에 그 곳에 가는 것은 자신이 있었는데 사실 서울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 봐야만 했다. 경복궁을 나와 가까스로 출판문화회관을 찾았고 인사동으로 향했다. 시위에 대비하기 위해서 인지 경찰인력들이 버스 안에서 대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동안 걸어서 인사동에 닿았다.
인사동에는 주말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인사동에 갈 때마다 만나는 퍼포먼스는 그 날도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거리의 악사였는데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앞에 놓인 모자에 돈을 받고 있었다. 얼굴엔 세월을 조각 낸 주름이 자리잡고 있었고 우수에 깃들인 눈빛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 다음에 만난 것은 일본인의 악기연주 였는데 한 젊은 일본인이 북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자유라는 이름의 리듬이 거리에 울려 퍼지면서 지구촌시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 여자 여행가의 퍼포먼스가 나의 발길을 묶었다.
한참동안 거리를 돌아보면서 어머니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길을 잃어버리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나의 손을 잡았고 손에서 땀이 감지되었다. 인사동을 돌아보면서 어머니께서는 옛날 사용했던 물건들을 보면서 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대부분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자세히 말씀을 해 주셨고 나는 귀를 기울이며 들었다.
그 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거리 행진이었다. 이벤트의 하나로 진행이 되고 있었는데 거리 축제화 되고 있는 듯했다. 포도대장을 선두로 포졸들이 뒤를 따랐고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었다. 행렬 중간에 두 여자아이가 탄 마차가 있었는데 너무 귀엽다고 생각이 되어서 사진을 찍으려 하자 포즈까지 취해주었다. 행진이 이어지다가 중간 중간에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국악 한 마당의 자리가 있었고 우리 풍물의 행진이 있어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정해진 시간이 있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용산역에 닿았다.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한 시간의 여유가 있어 식사를 하기 위해 역사를 뒤지다가 같은 건물에 전자상가의 오픈을 열리는 이벤트를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전자상가에 들렸다. 디지털카메라의 케이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가격을 물어보니 2만원이라고 말한다. 기가 막혔으나 할 수 없이 돈을 지불하고 케이스를 샀다. 카메라를 케이스에 넣으니 느낌이 좋았다.
기차에 오르면서 나는 눈치를 봐야만 했다. 그것은 좌석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려던 계획이었기에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용산역을 출발해서 영등포와 수원을 지날 때까지 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으니 평택이 지나자 나의 자리와 어머니께서 앉았던 자리는 원 주인에게 넘어갔다. 나야 서서가도 문제가 되지 못했지만 칠순의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만약 중년의 남자나 여자가 그 자리에 앉았더라면 양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도 기차 여행을 하면서 가끔 겪는 일이기는 한데 요즘 젊은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실하게 주장하는 것이 좋기는 해도 노인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잠시 양보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해 보았다.
천안을 지나 온양 그리고 예산에 도착을 했다. 역 구내를 빠져 나오면서 나의 뱃속에서 소리가 났다. 순간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을 했고 어머니와 함께 해장국을 먹기로 했다. 내가 가끔 들르는 곳인데 그 곳에서 선지해장국을 먹었다. 집에 닿자 온 몸에 퍼져드는 피곤함이 몸에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께서도 피곤한지 일찍 잠자리에 드셨고 나도 간단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어머니와 함께 했던 하루가 흑백영화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첫댓글수필을 읽으며 공감과 눈에 보이는듯 회화적인 묘사, 또한 효도 하시는 선생님의 어머님에 대한 애정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역시 그저깨 인사동가서 술만 진탕먹고 왔지만 그거리가 함께 다닌듯이 눈에 선합니다 지하철을 타면서 계단을 오르면서 또 연결된 먼거리를 걸으면서 느끼던 불편함도 함께 느꼈습니
서영님 오랜만입니다. 그 날 어머니와의 오랜만의 데이트는 아마 생생하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고 고궁을 거닐면서 옛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어머니에겐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들처럼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어머니의 손이 참 따스했지요. 서영님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필을 읽으며 공감과 눈에 보이는듯 회화적인 묘사, 또한 효도 하시는 선생님의 어머님에 대한 애정에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역시 그저깨 인사동가서 술만 진탕먹고 왔지만 그거리가 함께 다닌듯이 눈에 선합니다 지하철을 타면서 계단을 오르면서 또 연결된 먼거리를 걸으면서 느끼던 불편함도 함께 느꼈습니
저도 서울에 살면서 가야지 가야지 벼르기만 하고 가지못했던 경복궁도 이제 다카 가지고 가야지, 하고생각했습니다. 요즘 경복궁 너무 아름답지요? 다시 읽고 싶도록 좋은 소재의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서영님 오랜만입니다. 그 날 어머니와의 오랜만의 데이트는 아마 생생하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고 고궁을 거닐면서 옛 이야기도 나누었지요 어머니에겐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들처럼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어머니의 손이 참 따스했지요. 서영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