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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에 써보는 대회 후기~ ^^
사실 이번 대회는 제한 시간내 완주를 걱정했을 만큼 힘들었던 대회라, 대회 중 사진 찍을 여유도, 시간도 없어, 후기를 쓰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었는데...
힘들었던 것 만큼 나름 감동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번 참가가 Korea 50K 대회의 마지막 참가가 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아님 각오인가? ㅎ)이 있어, 두서없는 몇 줄 기록으로 남겨 봅니다.
Korea 50K 트레일러닝 대회
매년 봄 철쭉 필 무렵, 경기도 동두천시 종합 운동장에서 출발하여 왕방산(736m), 국사봉(754m) 등을 돌아오는 대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이 벌써 3번째 참가 (3번 모두 혼자 다녀왔다는 건 안비밀 ㅋㅋㅠㅜ).
대회 공식명은 Korea 50K 지만, 처음으로 참가했던 2018년 50K 코스 실제 거리는 58km, 두번째 2019년 대회때는 80K 코스가 신설, 참가했었습니다. 비록 60K에서 DNF 했지만...^^;;
2018년 참가 후기 목포마라톤클럽 | 2018년 4월 21일 KOREA 50K 국제트레일러닝 대회 58km - 1 - Daum 카페,
목포마라톤클럽 | 2018년 4월 21일 KOREA 50K 국제트레일러닝 대회 58km - 2 - Daum 카페
2019년 참가 후기 목포마라톤클럽 | 2019년 4월 20일 KOREA 50K 국제 트레일러닝 80km 실패담 - Daum 카페
서울에서 접근 용이한, 몇 안 되는 50km 대회이자, 비교적 "짧은" 거리임에도 총획득고도가 3300m 이상인 높은 난이도의 코스가 단점이자 장점이 되어, 매년 전국의 트레일러닝 매니아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실제로 총고도는 화대종주 고도와 비슷하지만, 대회 중 수없이 마주치는 오르내리막과 깍아지르는 듯한 경사도로 인해, 매년 완주율이 50~60%인 난코스 대회.
안그래도 힘든 코스인데, 2023년 올해에는 아주 특별한 매운 맛(?)이 추가되었습니다.ㅋㅋ
토요일 대회라 금요일 오후 기차로 용산행, 용산에서 동두천까지 다시 전철로 1시간 30여분. 종합 운동장과 가까운 동두천 중앙역 인근 숙소에 짐을 풀고, 나홀로 저녁 식사. 벌써 3번째 반복하는 미친 짓(ㅋㅋ)이라 그런지 혼밥, 혼술, 혼잠 너무 자연스럽다ㅎ. (예전에는 대회 전날 대회장에서 장비 검사 및 배번등을 나눠줬는데, 올해는 우편으로 사전 발송해서 대회 전날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더 심심.)
새벽 4시,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챙겨간 떡으로 아침 식사. 역시 시간이 남아 대회장까지는 1.7km 걸어서...
그런데, 새벽부터 비가 온다... 아니 사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다... 하루 종일....
방수 자켓위에 다시 일회용 비옷을 겹쳐 입고, 어떻게든 신발만은 뽀송한 상태로 출발할 수 있도록 조심조심 걸어서 대회장 도착.
정각 6시. 점점 흩어지는 비구름에 우중주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어버리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출발. 눈에 익은 도로를 따라 1km를 달려 산 속으로 진입한다. 제발 미끄러지지만 말자~!!!
Start - F1 "첫 묻지마 산행"
대회 몇 일 전, 2018년 코스와 비교해 보니, 왕방산에서 내려오는 코스만 다를 뿐 40km까진 거의 같은 코스.
총 거리는 오히려 5km 줄었다. 18년 58K를 11시간 조금 넘게 걸렸으니, 53K는 빗길을 감안하더라도 써브-11은 하지 않을까 (제한 시간은 13시간)... 라는 미친 자신감으로 출발부터 천천히, 몸 가는데로 간다.
오는 9월 큰 대회를 앞두고, 이번 대회의 목표는 단 하나, "안 다치고" "제한 시간 안에" "완주"하기. 회암사로 내려가는 급경사 암벽길에서는, 첫 묻지마 산행, 기지 바지에 구두 신고 나온 아저씨 마냥 최대한 조신하게 내려왔다. 기록은 의미가 없고 제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는 듯 했으니. 첫 CP에 도착했을 때 랩타임도 확인하지 않고 찹쌀떡 3개만 꾸역꾸역 밀어 넣고 출발.
F1 - F2 "아는 맛, 아니 아는 길이 무섭다!"
CP1를 출발, 바로 시작되는 오르막에 들어서니 빗줄기가 굵어진다.
배낭에서 다시 방수 자켓을 꺼내 입었는데, 이 자켓이 요물이다. 그 동안 즐겨 입었던 방수 자켓(콜*비*)은 5~6년 입었더니 방수 기능이 떨어져, 이번 대회를 앞두고 10,000 schmerber (방수 단위) 살*몬 제품을 하나 구입했는데 돈 값을 한다. 홀랑 젖은 반팔 위에 얇은 방수 바람막이 하나 걸쳐 입었는데, 훈훈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주로 상태. 새벽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흙 속으로 점점 스며드니, 조금씩 진흙탕이 되어 간다. 오르막을 오를때도 문제지만, 내리막이 더 문제. F1~F2는 300m 야산을 하나 넘어 달리기 좋은 산악 자전거 코스로 연결되어, 왕방산과 국사봉에서 까먹을 시간을 이번 구간에서 미리 벌어 놔야 하는데, 주로가 대부분 진창으로 변해 예전만큼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나중에 기록 보니, 다들 잘 달렸더라 ㅋㅋ 나만 못 달림 ;;)
CP2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장대비로 바뀐다. 자원봉사요원도 주자들도 멘붕.
나 바로 앞에서 달리던 2명의 젊은 주자들이 자봉 요원에게 배번을 반납한다. 이 빗 속을 뚫고 왕방산의 길고 급한 오르막을 오를 생각을 하니... 몇 번이고 그 주자들을 따라 회수차를 탈까 고민했다. 텐트를 떠나기 전, 오늘 대회 처음으로 시계를 봤다. 10시40분. 첫 참가땐 9시 30분에 이 곳을 통과했으니 1시간이나 늦었다. 심각한 건 이 곳 컷 오프 시간이 11시 30분이니 고작 50분 차이 ㅠㅜ. 다음 구간에서 50분을 또 까먹으면, 더 뛰고 싶어도 회수차를 타야 한다.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F2 - F3 "시속 1km"
마음을 다잡고, CP2 출발, 이제부터가 본 게임이다.
CP2가 있는 오지재에서 출발하면, 왕방산 오르기 전 날카로운 600m 고지 하나를 넘어가야 한다. 그 오르막에서 본격적인 진흙밭을 만났다. 45도 경사길에 초콜렛 무스를 잔뜩 발라놓은 듯한... 아직 경기 중반이라 발 앞꿈치에 힘 꽉 주고 잘 올랐다. 문제는 비슷한 경사도의 내리막. ;; 처음으로 미끄러졌다.
미끄러져 옷 좀 버리고 긁히는 거야 뭐 대수겠냐만은, 철심 때문에 부자연스러운 오른팔이 꺽이기라도 하는 날엔...ㅠㅜ
돌계단으로 시작되는 왕방산 오르막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미끄러지지 않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쓴 탓인지, 그만큼 천천히 오른 덕인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왕방산 정상을 넘었다. 산 능선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다 이정표를 보니 CP3가 있는 깊이울 유원지까지는 1.1km 남았단다. 컷 오프 시간까지는 1시간 10여분 남았으니 CP3에서도 50분 여유는 있겠구나 했다... 바로 앞 주자 2명이 동시에 넘어지는 것을 보기 전까진... ㅠㅜ
트레일러닝 인생(ㅋ) 최대의 난코스를 만났다.
안 미끄러지려고 몸 앞쪽으로 스틱을 짚으니 거의 절반 이상이 진흙속으로 쑤욱 들어간다. 그런 뻘밭을 피하자니 나머지 주로에는 밟으면 미끄러질께 뻔한, 앞선 주자들이 만들어 놓은 스키드마크들이 지뢰처럼 깔려 있다. 한 번은 심하게 미끄러졌는데, 마치 스키장처럼 스틱은 저 위에 꽂혀 있고, 몸은 한참 아래까지 내려와버린 웃픈 상황이...ㅋㅋㅠㅜ (뒷 주자가 역시 미끄러져 내려오며 가져다 주었다.)
영혼까지 탈탈 털려가며 진흙길 1km를 내려와 깊이울 저수지에 도착하니, 뒷 주자가 뛰자고 한다. 컷 오프 10분 남았다고...
F3 - F4 "컷오프 20분전 입니다~!!!"
CP3가 있는 깊이울 유원지는 국사봉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계곡과 그 물을 머금은 푸른 저수지를 배경으로, 멋드러진 카페들과 식당들이 자리잡은, 말 그대로 유원지이다.
궂은 날씨에도 주말을 맞아 연인, 가족들이 삼삼오오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을 즐기고 있는 그 앞을, 온 몸을 진흙으로 범벅을 한 채, 혹시나 컷오프 시간에 걸릴까 헉헉대며 달려갔다. 국사봉 등산로 초입에 자리한 CP3에 도착하니 오후 2시 52분. 컷오프까진 고작 8분 남은 시간이다. 원래는 이 곳에서 따뜻한 죽과 토스트로 점심을 든든히 먹고 정비를 해서, 마지막 관문 국사봉을 가벼웁게 넘을 계획이였으나.... 그건 예전처럼 컷오프 시간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들어왔을 때 이야기이고..ㅠㅜ 지금은 물 담을 시간도 빠듯하다.
결정을 해야 했다. 계속 진행을 할지, 아님 DNF를 할지...
다음 CP까지는 11.5km. 제한 시간은 2시간 30분. 월출산 천황사에서 천황봉을 거쳐, 도갑사까지 가는 것과 비슷한 거리와 난이도 이다. 평소라면 해 볼만한 시간이지만, 아까와 같은 진창 내리막을 또 만나다면?? 본전 생각이였을까 아님 오기였을까? 일단 계속 가기로 하고, 진흙 범벅 손으로 토스트 몇 개를 급하게 집어 먹었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진흙과 작은 돌맹이로 가득찬 신발을 벗어 인근 수돗가에서 물로 헹궈냈다. 그리고 출발.
물이 불어난 계곡을 몇 개 건너는데, 무릎까지 빠져도 오히려 시원한 기분이다. 등산로 초입에서 만난 여성 주자를 뒤따르는데... 와, 이 분 고수다! 나랑 똑같은 코스를 지나왔을텐데, 신발과 양말에만 조금 진흙이 묻었을 뿐 옷이 깨끗하고 전혀 지친 기색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국사봉 정상까지 10여명을 추월하더니 이후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분만 쫓아 올라온 덕에 조금 수월하게 국사봉을 넘어 다시 내리막. 또다시 가파른 산비탈 진흙길을 만났지만, 이젠 무념무상. 다치지만 말자!
마지막 산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데, CP4 자봉요원이 1km 전방 지점까지 마중을 나왔다.
" 컷오프 20분전 입니다~! 힘내세요~!!!"
무슨 소리? CP4 제한 시간은 벌써 10분이나 지났는데.. 앞 주자들 얘길 들어보니, 주최측에서 날씨 사정을 고려, 마지막 CP 컷오프 시간을 30분 연장한듯 하단다. 아...! 이 때부터 정말 미친듯이 뛰었다. 넘어지든 말든...ㅋㅋ 제한 시간 6분 남기고 CP4 통과.
F4 - Goal "눈물 한 방울"
올해도 어김없이 골인지점 2km를 남기고, 종합 경기장 옆, 남악 오룡산 높이의, 어등산을 넘는다.
다 왔다는 안도감과 미끄러질 염려없는 야자매트 덕분에 힘들지만 기분 좋게 산에 오른다. 그리고 몇 계단 내려가니, 발 밑으로 눈에 익은 동두천 경기장과 앞서 골인하는 주자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는 친구,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UTMB 포인트를 따 보겠다고 6년 전 첨으로 홀홀단신 참가했던 대회.
벌써 3번째 참가이니 이제 쉬울만도 한데, 점점 더 힘들어지는구나... 앞으로 이 산, 저 경기장을 또 볼 일이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가슴에선 뭔가 울컥, 눈에선 눈물 한 방울이 찔끔.....하다 빠듯한 기차 시간이 떠올라서 경기장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골인. 12시간 31분. 제한 시간 13시간 안에 들어왔다.
기차 시간이 빠듯해서,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고 바로 동두천 중앙역으로, 용산역으로 그리고 목포 도착하니 밤12시.
역시 트레일러닝의 찐 매력은 "사.서...개.고.생."이다. ㅋㅋ
아마 마지막이 될(될까?되겠지?) "Korea 50K" 후기 끝.
첫댓글 우와
대단하십니다👍👍👍👍👍도전은 나에게 빛이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늘 꾸준하게 운동하시는 모습, 큰 동기 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에는 좀 더 많은 대회 함께 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2부는 ...
진짜 멋지십니다
자네는 슈퍼울트라초특급짱 멋지네~~~!! ^^
올 가을 일 한 번 내불소~!!! ^^
늘 응원하네~!
멋진 후기 잘 읽었어요.. 달리기는 그 자체가 모험이죠,, 수현이는 멋진 트레일러너...찐 멋짐과 감동입니다
요즘 운동 열심히 하시는 모습, 너무 보기 좋고 귀감이 됩니다~!
조만간 한 번 뵙고, 조언 부탁 드립니다~!
늘 큰 응원 감사합니다~!!!
@채수현(11) 수현이는 utmb에서 지치지않고 즐기면서 러닝하는 모습이 그려지네.. 멋짐..
고생하셨어요~ 그 힘들고 험한걸 또 해내셨군요 대단하십니다~~ 멋지세요
빗길, 13시간, 한라산을 넘어, 웃으면서 골인하시던 감사님 모습이 진짜 찐 감동, 멋짐이였습니다~^^
또 한 번 가셔야죠? ^^
생생한 후기잘 읽었습니다. 장대비에 몸을 맡긴 생각을 하니 저절로~기분이 좋아지네요 ^^
부상은 괜찮지? 올 여름 열심히 운동해서 꼭 가을의 전설 만드시길~! 항상 응원합니다~!!!
부회장님 아주 홀쭉해지셨어요. 진흙팩까지 ㅎㅎ 지도가 땅따먹기한 것처럼 아주 예쁩니다. 고생많으셨어요~^^
여성분들이 왜 뒷 모습을 찍어서 SNS에 올리나 했더니.... 뒷모습이 실물보다 더 날씬하게 나오는 효과가 ㅋㅋ
트랜스 제주 대회때 장대비 속에서 완주하셨는데, 그 때 그 심정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갑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올 가을에는 여성부장님도 꼭 원하는 목표 이루시길~!!!
다시 읽고 감동합니다. 사서개고생‘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