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삽니다. 하기야 우리 모두 태어날 때부터 상처를 안고 옵니다. 웃으며 시작하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 후 사는 것은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만들고 그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부모도 다 알지 못합니다. 물론 그럴 능력도 시간도 없습니다. 더구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끼리 상처를 입히며 산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장 큰 상처가 무엇일까요? 어린 자식으로서는 부모가 없다는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상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다른 부모를 만나게 됩니다. 소위 양부모지요. 좋은 사람을 만나도 스스로 이겨내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 텐데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남자와 여자의 경우가 다를 것이고 타고난 성품이 또한 매우 다르게 인생을 만들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잠재의식 속에는 그 아픔과 상처가 남아있게 마련입니다. 언제 어떻게 무엇으로 나타날지는 모릅니다. 평생 순풍에 돛단배처럼 가는 인생이 아닐진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겠지요. 무인도에서 사는 것이 아닐 테니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나타날 테고 사회적 문제로 확장될 수도 있습니다.
데려다 키워준 아비는 주벽이 고약한 사람입니다. 술만 먹으면 폭력을 행사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양녀입니다. 술 마신 밤에는 으레 그러려니 기다리는 꼴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어미 된 할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아예 정이 없다고 판단됩니다. 왜 저런 계집아이를 데려다 키우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쳐다보는 것이지요. 자기 집안에 쓸모없는 존재, 마치 몸에 붙어있는 혹처럼 여깁니다. 그러니 두들겨 패든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이만 맞다가 도망 다니고 아비가 지쳐 쓰러져 잘 때를 기다려 돌아와 잡니다.
밖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집에서 하찮은 존재이니 밖에서도 또래들로부터 그렇게 다뤄집니다. 안팎으로 폭력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학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고 있는데 웬 경찰관이 와서 쫓아줍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경고와 주의를 줍니다. 또 어느 날 밤엔 자기 집에까지 와서 폭행하는 아비를 수갑 채워 잡아갑니다. 여태 살아왔지만 이런 일은 꿈꿔보지도 못했습니다. 구원자가 생긴 셈입니다. 처음에는 관심도 없었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이어집니다. 의지할 만한 사람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더구나 파출소장이고 여성입니다. 힘도 있고 자기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꽤나 높은 지위에까지 올라 있습니다. 엘리트 경찰관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아직은 인정되지 않는 일이 노출되어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냥 내쫓기는 아깝다 싶었는지 일단 외지로 보내 근신시키기로 합니다. 그래서 외딴 어촌에 파출소장으로 발령받습니다. 그런데 그곳 조그만 마을에 휘젓고 다니는 남자가 있습니다. 젊은 일꾼들이 없는 마을에서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으니 모두들 두둔해줍니다. 그런데 불법체류 노동자를 마구 다루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술만 들어가면 가리지 않고 위아래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입니다. 특히 힘없는 양녀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좋은 대상이지요.
닳고 닳은 파출소 직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동네 어른들이 의지하는 일꾼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사정이야 어떠하든 파출소장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어린 소녀까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양부에게 매질을 당하는 어린 소녀가 안 됐다 싶어 방학 동안만 자기 집에 함께 거하는 것을 허락해줍니다. 그리고 찾으러 온 양부를 밀쳐냅니다. 그러니 둘 사이는 앙숙이 됩니다. ‘나는 엄마 필요 없어요. 아무도 필요 없어요. 소장님만 있으면 돼요.’ 아이에게는 난생 처음 맛보는 따뜻함과 평안함일 것입니다. 파출소장으로서는 의지할 곳 없는 아이를 잠깐 보호해주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빌미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타난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객관적 사실을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다를 뿐이지요. 그것을 주관적으로 보아달라고 사정을 해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꼼짝없이 걸려든 셈입니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희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똑같은 사태를 만들어서 양부를 끌어넣습니다. 죄인이 바뀝니다. 하기야 그것이 정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법은 석연치 않습니다. 파출소장은 눈치를 챕니다. 그렇다면 이전의 할머니 사고도 혹시 도희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의 특징은 약자의 처참한 상황입니다. 대부분 은밀하게 또는 남들 무시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약자는 도움 받을 길도 찾지 못하고 비참하게 당합니다. 그것이 드러나서 피의자가 붙잡혀 처벌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상처가 곧바로 아무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을 따라다니며 시시때때로 고통을 줍니다. 그런 사정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요. 어쩌면 스스로 복수하는 것이 그래도 치유를 빠르게 하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용납되지 않지요. 때문에 그런 불행을 당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런 세상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영화 ‘도희야’를 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실 정당방위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 소녀가 나름 자기 살 길을 찾아야만 했으니까요. 아무튼 아픈 결말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상처를 지닌 두 여자의 앞으로의 삶에 희망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나왔습니다.
첫댓글 ◎용서가 만든 지우개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욕심이 여러분을 화나게 할 땐
너그러운 웃음으로 되 갚아 주세요
상대방의 거친 말투가 여러분을 화나게 할 땐
부드러운 말씨로 되 갚아 주세요
상대방의 오만불손함이 여러분을 화나게 할 땐
예의 바른 공손함으로 되 갚아 주세요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가치가 있는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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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그리움을 어찌 해야 하겠는지요
이십사시간 동안
우리 보통 하는 일 알지만 씹지는 않는데
초침 분침 사이마다 혀를 내미는
이 우라질 넋을 어찌 해야 하겠는지요
당신
내 그리움을 어찌 생각하시겠는지요
하루는 점점 짧아지고
당신의 숨소리는 천리만리 멀어지는데
속절없이 두텁게 쌓여가는 것은 세월의 분변이라
이 떠그랄 미련을 어찌 해야 하겠는지요
알지요
알다마다요
그러나 안다는 것이 두려워 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요
피고지고 시들어지는 일은 고스란하게 우리 몫이겠으니요
-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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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