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받은 월급으로 냉장고를 채워놓을 심산인지 퇴근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다소 가벼워보인다.
수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는 노란 바구니를 짚어든다.
그것을 가는 팔뚝에 끼워 먼저 찾아간 곳은 정육 코너이다.
청결한 위생을 상징하는 듯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의 왼쪽 가슴에는 이름표가 매달려있다.
남자 종업원이 힘차고 친절하게 그녀를 맞이한다.
그녀는 돼지 삼겹살 오천원어치와 수육이나 찌개를 할 때 쓰는 아롱사태, 목살, 국거리용 쇠고기 만원어치와 돈까스용 돼지 등심, 두툼하게 잘려진 스테이크용 쇠등심과 포장되어 있는 쇠뼈를 달라고 했다.
한꺼번에 많은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생글한 미소를 띠며 오늘 무슨 날이신가봐요 하고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종업원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사람들이 빽빽하게 채워진 수퍼 이 곳 저 곳을 고개 짓으로 둘러볼 뿐이다.
종업원이 싸준 고기들을 노란 바구니 안에 넣고 거스름돈을 받은 그녀가 이번에 찾아 간 곳은 생선코너였다.
통통하게 물이 잘 오른 고등어 두 두름과 은빛 비늘이 선명하게 번들거리는 갈치 두 두름, 청어 네 두름을 사서 노란 바구니 안에 고기들 위에 넣어버린다.
생선을 다듬느라 물마를 세 없는 빨간 고무장갑을 쥔 손으로 거스름돈을 건네 준 종업원은 그녀에게 오래 눈을 두지 않고, 다른 손님을 맞이하게 바빴다.
그녀가 돈을 얌전히 구겨 바지 주머니 안에 밀어 넣고 있을 동안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는 깍쟁이 아줌마의 등장으로 종업원의 얼굴이 좀 전과는 다르게 많이 구겨져 버렸다.
제법 묵직하게 채워진 바구니를 들고 찾아간 곳은 햄 코너이다.
모양과 성분별로 구분되어 늘어서 있는 햄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망설였다.
어느 햄으로 고를까 고민하던 그녀는 100%돼지 뒷다리를 써서 고소하고 쫄깃하다는 햄과 기름기가 쪽 빠져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 권한다는 햄 두 종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 더 싼 쪽을 택해 바구니 안에 던져 놓듯 집어넣는다.
햄 코너 옆에 있는 생면 코너에서 냉면과 냉면 육수를 짚어들었고, 우동 한 봉지를 짚어들고, 수타식으로 면을 뽑았다는 칼국수 한 봉지도 한 손으로 짚어 넣는다.
길쭉하고 통통하게 다듬어져 있는 고추 한 봉지와 파를 짚어들었고, 고구마 다섯 개와 감자 다섯 개, 밑반찬용으로 쓰이는 고소하고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인 해초튀각을, 시큼해서 밥반찬으로 잘 어울리는 마늘 짱아지와 세 개로 나란히 랩에 싸여져 있는 새 송이버섯 한 팩, 삼겹살을 먹을 때 싸먹는 상추 한 봉지, 자두 1kg과 나란히 세 개로 싸여져 있는 백오이, 냉동만두와 그녀가 간식으로 즐겨먹는 치즈스틱, 새빨갛게 잘 여문 방울토마토 1kg, 과자 한 봉지, 세탁용 세제, 다섯 봉지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는 라면 한 봉지, 인스턴트용 카레와 탕수완자 각각 한 개씩, 리필용 샴푸 린스. 작은 체구의 그녀가 들고 가기에는 바구니 안에 든 물건들이 너무 버거워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 하나 뺄 생각도 않고 계산대위로 힘겹게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너무도 많은 양의 물건을 산 탓인지 계산을 하러 온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그녀의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 종업원도 이 많은 물건을 계산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한 사람이 너무도 많은 양의 물건을 사는 것이 대단해 보이는 것인지 모를 눈빛으로 카운터에 쏟아 부운 물건들을 하나하나 바코드 기계에 찍어 내리며 물었다.
비닐봉지 드릴까요? 50원입니다.
양 손에 물건을 빵빵하게 넣은 비닐봉지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수퍼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눈길에는 여자를 향한 약간의 측은함이 묻어나온다.
어쩌면 그냥 고기를 먹고 싶은 마음에 수퍼로 향했는데 월급도 타고, 텅 비어 있는 냉장고가 생각나 견물생심(見物生心)의 마음으로 많은 물건들을 구입한 것인지도 모른다.
수퍼에서 도보 5분쯤 되는 거리가 그녀에게 오늘만큼은 10분정도의 거리로 느껴질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사놓으면 당분간 먹을 것을 사러 수퍼에 일부러 들릴 필요는 없겠지.
손에 들려진 물건들은 버거웠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방으로 가는 입구에 푸른색 줄무늬 남방을 입은 육중한 사내 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여자는 집 근처에서 누굴 만나기로 한 사람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물건들을 들고 힘겨운 숨을 몰아내고 있을 때 남자는 계단으로 올라서려는 그녀를 가로 막으며 여자의 이름 석자 물어보았다.
낯선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의아스러운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대답했고,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친 후 뒷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펼쳐 여자의 눈앞에 들이댔다.
신분증을 끼워두는 곳에 위치한 것은 다름 아닌 종로 경찰서 소속의 형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경찰 신분증이다.
여자는 고개를 올려 자세히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탄탄하고 육중한 몸매를 지닌 남자는 형사라는 직업이 의심스럽지 않게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현종인씨를 아십니까?”
“네.”
현종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바쁜 직장 생활 하면서 잊고 지냈던 이름을 형사가 각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더욱더 여자의 마음 한 구석을 긁어내고 있었다.
왠지 말이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자취방으로 형사를 우선 안내를 했다.
여자의 키보다 더 큰 무게의 짐을 지고 있다는 사살이 형사를 안쓰럽게 했는데 여자가 가지고 있던 짐 하나를 지고 좁은 계단을 올랐다.
꽉 잠긴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자 어둡고 좁은 부엌이 눈에 들어왔고, 습습한 물 냄새와 함께 제대로 정리 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뒤집어져 있는 냄비나 그릇 같은 주방도구들이 을씨년스럽게 진열이 되어 있다.
여자는 형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하고 비닐봉지를 건네받아 냉장고 앞에 놓았다.
형사에게 앉을 것을 권유하고 방금 사온 1.5리터 오렌지 주스를 봉지에서 꺼내 앞에 놓은 다음 부엌으로 재빨리 건너가 잘 씻어 말려진 유리컵 두 개를 작은 쟁반에 받친 채 들고 왔다.
컵에 주스가 채워지자 형사는 갈증이 많이 났었다는 듯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컵을 비워버렸다.
비닐봉지를 쥐고 있던 손마디들이 손금을 긋는 작업이라도 하 듯 선명한 붉은색으로 선을 그었고, 화끈거리는 아픔이 전달되어 왔다.
주스를 마시고나자 형사는 미리 준비한 문제지를 여자 앞에 놓듯 현종인에 관한 여러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현종인을 마지막으로 본 날은 언제이며 시각은 언제인지, 현종인과 왜 동거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는지, 현종인이 자주 가는 장소 등 형사의 질문을 받으면서 그녀의 표정은 서서히 구겨지고 있다.
왜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 것인지, 자신은 옛날에 현종인이라는 사람을 잊었는데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찾아와 그 따위 질문에 답해야 하는 이유를 다소 거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형사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현종인이 실종되었다며 일주일 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서 그의 부모들이 실종 신고를 냈다고 대답했다.
실로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을 들었기 때문인지 그녀는 약간 놀란 얼굴로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형사를 한동안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현종인이라는 남자는 그녀의 지난 애인이며 3년 동안을 사귀어 왔던 존재이다.
명문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4년제 대학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고, 컴퓨터 공학 쪽을 연구하는 벤처 기업 대리로 있다가 해외 마케팅 건을 잘 해결하고 돌아온 덕에 과장이라는 직책을 단지 얼마 되지 않은 전도유망한 젊은 남자이다.
그녀는 그 남자와 3년 간 사귀고, 1년 정도를 동거 생활을 했는데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해에 어떤 일을 계기로 그는 여자의 도덕성은 물론이고, 사생활까지도 의심하거나 관섭하려 들어 참다못한 여자는 결국 그와의 관계를 사귄지 3년 만에 청산하게 된 것이다.
일이 있어 밖으로 잠시 나갔을 때 전화를 걸어온 그는 항상 그녀에게 ‘어디냐?’ ‘누구랑 같이 있느냐?’ ‘집에 빨리 올 것이냐?’ 등의 경찰 수갑같이 답답한 질문들을 하면서 그녀를 한 시라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너무 사랑해서 내 걱정을 하는 구나 그녀를 그를 이해하려고 생각했다.
최대한 그의 불똥이 튀지 않게 조심하면서 생활해왔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어느 정도 자중하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일도 없도록 하려 노력했고, 만나자는 친구의 부탁도 거짓 핑계를 대면서까지 만나는 것을 자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싶은 한심한 생각이 들어 답답한 마음에 대학 재학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밖으로 불러내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결혼을 한 것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 짓을 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그 사람의 사랑을 유지해야 하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이런 한심한 짓을 자청하고 다니는 건지 그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친구와 술을 마신다는 것을 미리 알리지 않았던 탓인지 그 날 전화를 건 그는 잔뜩 화를 내고 있었다.
여자가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에서 들여오는 날카롭게 갈려진 신경질이 귓전을 파고든다는 것을 느꼈다.
포장마차 주변에는 그들 말고도 술을 마시러 온 사람들이 상당했는데 술에 취해 유난히 목소리가 큰 남자 이인조가 옆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옆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여자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에 대한 트집인지, 정말로 남자와 같이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물음인지 수화기에 대고 그는 물었다.
“옆에 어느 놈이야? 어느 놈하고 같이 있는 거야?”
여자는 형사에게 그와 헤어지게 된 경위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왜 자신이 그와 지냈던 시간을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소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형사를 바라본다.
형사는 조금 전 질문했던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이 언제였냐고 물었다.
여자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은 채 마지못해 대답하는 것 인양 신경질 적인 한 숨을 크게 몰아쉬고 나서 대답했다.
“일주일 쯤요.”
“무엇 때문에 찾아왔었지요? 이미 헤어진 사이라면서.”
“무엇 때문이긴요. 헤어진 여자의 자취방으로 찾아왔다면 단 하나의 이유 때문 아니겠어요?”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지 않았지만 제법 당돌한 품세로 대답한다.
현종인 쪽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찾아 왔구나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지고 온 수첩에다 날친 글씨로 그녀가 말한 의도를 써내려간다.
형사가 묻기도 전에 그녀는 그 날 현종인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으며 말다툼을 했다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여전히 내켜하지 않는 목소리와 표정이지만 어서 빨리 형사를 보내야겠다는 의지에서 형사가 질문할 내용들을 미리 선수 치 듯 말하기 시작했다.
“빗자루로 그의 뺨을 두 대 정도 때렸어요. 그러자 그 사람 역시 주먹으로 제 얼굴을 두 번 정도 쳤죠. 얼굴에 아직도 욱신거리는데 여기 멍든 거 보이시죠? 이게 맞은 증거예요. 그는 다시 시작하자고 울면서 부탁하는데 제가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그를 설득시켰죠. 그러자 그는 예전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나에게 자기 말고 더 좋은 조건의 남자를 찾았냐며 그 남자와 어디까지 갔으며 얼마나 많은 다리를 벌려주었느냐고 실성한 놈처럼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죠. 화가 났지만 술에 취한 사람을 붙들고 무슨 소리를 하겠어요.“
여자는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맞았다는 광대뼈 부분을 힘 있게 가리켰다.
목소리에 실린 분노의 흔적만큼이나 멍 자국은 크지는 않았지만 선명한 푸른색을 띠며 형사의 눈에 박혔다.
그 후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냈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려 할 때 형사는 택시 넘버를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새벽이라 그 당시 상당히 어두웠고,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한 것도 아닌데 뭐 하러 쓸데없이 기억하겠어요.”
여자의 말에 형사는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추궁을 하던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선 채 주머니 안에 있는 명함 한 부를 꺼내 여자 손에 쥐어준다.
무슨 일이 있거나 혹은 현종인이 다시 찾아오게 된다면 자신에게 곧장 연락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겠노라고 한 대답과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과 작은 목소리에서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을 역력히 볼 수 있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에게 인사를 하 듯 허리를 숙이는 둥 마는 둥한 자세로 인사를 했고, 형사 역시도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한 행동으로 뒤돌아 서 천천히 발을 땠다.
형사가 돌아가고 나자 여자는 광대뼈에 진하게 찍힌 푸른 멍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사온 물건들을 집어넣어야 했다.
혼자 사는 집에 뭐 그렇게 거창하게 해 먹을 것이라고 많이 샀는지 여자는 상호가 새겨진 푸른색의 비닐봉지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약간은 후회를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와 결별을 선언하고 자취할 작고, 아담한 방을 구할 때 푼푼이 모아둔 돈으로 우선 장만한 중고 냉장고는 반 평도 채 안되는 자취방에 있을 물건이라 듯 작고, 볼품없이 서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출시하는 신제품 냉장고에 비하면 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커 밤에 잠을 이룰 때 혹시나 이 방에 또 다른 인물이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느끼곤 한다.
여자는 우선 위에 위치한 냉동고 문을 열었다.
냉동고에 있는 것이라곤 냉수들이 얼려져 있는 얼음 틀과 한꺼번에 썰어놓곤 하는 대파조각들을 담은 비닐봉지, 맛있는 부산 오뎅이라는 붉은 글씨가 박혀져 있는 개봉된 오뎅과 근처 반찬가게에서 산 청국장이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다.
그것들 근처에 놓여져 있는 제일 부피가 크고 무거울 것 같은 검정 비닐봉지 하나가 그것들과 어울리지 않게 뎅그러니 놓여져 있다.
여자는 한숨을 깊이 내쉰다.
저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라는 고민이 얼굴을 지배하고 있다.
여자는 형사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할 때 의도적으로 핵심을 빼버렸다.
여자는 알고 있다.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현종인이 어떻게 실종이 되었는지, 지금 그는 어떤 모습을 한 채 어디에 있는지 여자는 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았다.
땅거미가 깊숙이 깔려진 어둠이 찾아오자 그녀는 냉동고 속에 있는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검정 비닐봉지와 큰 덩치에 맞지 않게 냉장고 안 쪽 깊숙이 자리한 냉동고를 차지하고 있던 부피의 비닐봉지보다 약간 더 부피가 큰 비닐봉지 세 개를 더 꺼냈다.
냉장고 안에 있는 비닐봉지, 그 안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그의 토막 난 몸뚱이들이 빨리 부패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냉장고의 온도를 냉동고의 온도와 같이 맞추었다.
여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 일을 착수하기 위해 일부러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토막 난 그의 시체를 들여다보게 된다면 상한 비위를 달래지 못해 구토를 심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쯤 돌진하다시피 자취방을 찾아온 남자와 큰 실랑이를 벌였다.
술에 잔뜩 절여져 있던 그는 다시 시작하자는 그의 애원을 무시하고 뒤돌아 앉은 채 집으로 돌아가라고만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느꼈던 탓인지 남자는 분노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채 여자를 덮쳤다.
여자는 욕설을 퍼부으며 반항의 한 행동으로 그를 떼 내려 했다.
사력을 다해 이로 남자의 귓불을 물어 뜯어버렸다.
여자의 이 사이로 붉은 피와 함께 살점이 물렸고, 여자는 무서움에 울음을 터트렸다.
피가 철철 흐르는 귓불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그는 다짜고짜 주먹으로 여자의 얼굴을 후려쳤고, 여자는 그의 주먹세례에 보답이라도 하 듯 구석에 쓰레기봉투와 함께 놓여 있는 빗자루로 그의 얼굴을 두 차례 정도 때렸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하는 말이 이 때 들어맞는 말일 것이다.
체구도 작고, 동글동글 제법 귀여운 인상을 지닌 여자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해 터트린 분노였다.
여자가 잡았던 빗자루를 남자가 빼앗았다.
어디 너도 맛 좀 보라는 듯 빗자루로 여자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일말의 비명을 지르며 뛰어 든 곳이 부엌이었다.
왜 그곳으로 가게 되었는지 여자 자신은 아직까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밖에서 소란을 피우면 경찰들이 달려올 것이 분명했고, 깐깐한 주인 여자가 다음 날 당장 방을 빼라고 성화를 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순간 그런 계산까지 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는 자신의 등 뒤로 다가오는 남자에게 대항할 만큼 물건을 찾았다.
그러다 손에 쥐게 된 것이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식칼이었다.
처음에 위협정도만 하고 돌려보낼 생각으로 칼을 들었지만 집요하게 자신을 따라 잡는 남자가 무서워져 여자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돌격하는 남자를 찔러버렸다.
정확히 어딜 찔렀으며, 왜 찔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기 확실한 사실은 그녀가 그 남자를 죽이지 않았으면 그 남자가 여자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토막 난 고기조각들의 무게는 생각보다 양도 무게도 많이 나갔다.
그것들을 한꺼번에 파묻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차 없이 그 놈의 조각한 몸뚱이들을 들고 야산으로 돌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비닐봉지 하나를 천천히 뜯었다.
그리 꽉 묶여있지 않는 비닐봉지를 푸는 것은 간단했다.
잘게 썰어진 그의 몸뚱이를 육안으로 보지 않고 손 가는대로 하나 꺼내 작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신체 어느 부위였는지도 모를 정도로 잘게 잘려진 토막 하나가 작은 비닐봉지에 담겨졌다.
여자는 어린 시절 돈 50원을 내면서 하던 문구점의 뽑기를 하 듯 손가는 대로 또 하나 골라냈다.
총 다섯 토막을 비닐봉지에 담은 그녀는 나머지가 담겨져 있는 비닐봉지는 다시 냉장고와 냉동고에 넣었다.
냉장고는 냉동고와 비슷하게 온도 조절이 잘되어 있다.
고깃덩어리 다섯 토막을 싼 비닐봉지를 쇼핑백 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나갈 채비를 하였다.
수퍼에서 사온 물건들을 들 때보다 덜 무거울 것이다.
여자는 그를 죽였다는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언젠가를 그를 죽일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신이 남을 죽이는 행위보다 남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죽은 그의 몸뚱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토막 냈다는 사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자는 토막 난 그의 시체를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고 먹을 생각까지 했다.
여자가 무서워 한 것은 토막 난 그의 몸뚱이였다.
여자는 토막 나기 전 그의 몸뚱이와 수차례 섹스를 해왔다.
여자는 그 기억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오늘 묻을 다섯 토막의 그의 몸뚱이를 그 기억과 함께 묻을 것이다.
10분 도보로 있는 전철역으로 달려갔다.
걸음을 걷는 여자의 발걸음이 가볍다못해 날아갈 것 같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 눈에는 그녀가 더없이 행복한 일을 경험한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몸뚱이 조각을 묻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 허기와 피곤에 지치겠지.
그러면 그 때 냉동고 안에 있는 돼지 등심을 꺼내 먹는 거야.
튀김옷을 입히고, 빵가루를 고슬고슬하게 묻혀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두르고 돈까스를 튀겨 내는 거야.
고소하고 바삭바삭하게 다 튀겨지면 약간 시큼한 맛이 감도는 돈까스용 소스를 위에 뿌리고 먹어야지.
첫댓글살인의 동기가 미약하지 않나요? 살인을 한 사람치고는 형사에게 너무 당당한 것은 아닐까요? 결말을 극적으로 꾸미기 위해서 일부러 시침을 떼고 있다고 보이는데 정도가 심하지요.장황하게 물건을 구입하는 장면들이야 심리적인 부담감으로도 읽히지만 그렇게 필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다면 한결
더 나은 글이 되리라고 봅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으로 보기에는 현실성이 떨어 집니다. 좀 더 그럴듯하게 심리와 상황을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짚다]는 [집다]가 옳은 표기이며, 생선을 세는 단위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어차피 거짓말인 소설이 거짓말임이 쉽게 드러난다면 치명적이지 않겠습니까?
첫댓글 살인의 동기가 미약하지 않나요? 살인을 한 사람치고는 형사에게 너무 당당한 것은 아닐까요? 결말을 극적으로 꾸미기 위해서 일부러 시침을 떼고 있다고 보이는데 정도가 심하지요.장황하게 물건을 구입하는 장면들이야 심리적인 부담감으로도 읽히지만 그렇게 필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다면 한결
더 나은 글이 되리라고 봅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으로 보기에는 현실성이 떨어 집니다. 좀 더 그럴듯하게 심리와 상황을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짚다]는 [집다]가 옳은 표기이며, 생선을 세는 단위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어차피 거짓말인 소설이 거짓말임이 쉽게 드러난다면 치명적이지 않겠습니까?
미조님의 소설을 처음대하는 심정으로 감개무량하게 잘읽었습니다.
고기가 그 고기였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