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을 하면 음료수를 주어야 한다는 벌칙으로 제가 홍익회카트를 세워서 음료수를 쏘게 됩니다.
풍기역까지 가는 동안 창 밖으로 펼쳐진 가을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레일로드에 연재된 한산모시와 갈대밭 기사를 읽으면서 지난 정모의 기억을 떠올리고, 유덕상님이 가져오신 '산사'라는 책에 실린 부석사에 관한 글을 읽고, 이런 저런 이야기(개인적인 여행담, 기차역 스템프, 각자 업무에 관한 이야기 등)를 했습니다.
원주역을 지나서 구불구불 산을 오른다음 지나가는 치악 또아리굴(높은 철교를 지날때 오른쪽을 보시면 모텔이 보이고 약 2분 지나서 굴을 나오면 모텔이 다시 보이게 됩니다. 아랫쪽으로 지나온 철길, 철교도 보이구요.)
단성역을 지나서 죽령또아리굴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특별히 표시될 만한 건물이 없지만 들어가기 전과 나왔을때 우측의 고속도로를 유심히 살펴보면...)
단양역을 지났을때 유덕상님은 이구간에 덕상터널이 있다고 자랑을 하시는군요.
(실제로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긴 죽령터널(4,500미터)을 지나고 희방사역을 통과하면 우리가 내릴곳인 풍기역에 도착합니다.
먼저 와계시는 정지수님과 인사를 하고, 역앞 광장에서 단체사진을 찍습니다.
소수서원을 가기위해 역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할머니께서 파는 감자떡을 먹어보고... 주위풍경(상점 대부분이 인삼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인삼이 유명하다보니... 서울차량도 보이고 대구차량도 잘 띄는군요.)을 바라보다가 버스에 오릅니다.
가는동안 어느 대학교가 보이는데 어느드라마의 실제주인공 차 아무개씨가 광고하는 대학교이군요.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알게 되네요.
10분정도 더 달려서 소수서원 앞에 우리를 내려줍니다. 관광버스와 자가용을 이용해서 온 사람들이 제법 보이는군요.
의상이 당나라에 유학가면서 독실한 불교신도 집에서 잠시 머물렀는데 그 집의 선묘라는 딸이 의상에게 반해서 마음을 전하려 했으나 의상이 여자를 멀리하므로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상이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기 위해 항구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은 선묘는 자기가 손수 지은 법복을 전해주고자 바닷가로 갔으나 이미 의상을 태운 배는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선묘는 의상에게 법복이 무사히 전달되도록 빌면서 배를 향하여 던지니 법복은 무사히 의상 품안으로 떨어졌다. 선묘는 의상을 따라 갈 수 없게 되자 용이 되게 해달라고 빌면서 바다에 몸을 던졌고 용이 된 선묘는 의상이 탄 배를 호위하면서 신라까지 무사히 가도록 보살폈다고 한다.
그후 의상은 지금의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으나 이미 이곳에 살고있는 다른 종파의 무리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의상이 난처해하자 바위로 변한 선묘의 용이 나타나 공중에 머물면서 반대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내리칠듯 위협하니 그들은 두려워서 달아나고 새 절을 지을수 있었다.
무량수전과 선묘각을 둘러보고 오솔길을 따라 조사당으로 오릅니다.
조사당에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잎이 나오며 자랐다는 조그만 나무가 있는데 그 잎을 사람들이 떼어간다고 해서 닭장처럼 둘러쳤군요. 그래서 건물의 정면을 제대로 볼수 없는 피해만...
그리고 응진전과 자인당을 둘러보고 간단히 휴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유덕상님 카메라는 아직도 작동이 안되는군요.
첫댓글 ㅋㅋㅋ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박준규 올림
후기잘읽었습니다..무량수전에서바라본풍경지금도눈앞에서아른거린답니다.단아한무량수전과멋스럽고 우아한??풍경이정말잘어울리는부석사였던것 같아요..그리고기차안에서바라본단양역쪽풍경이참좋았던것같아요.왠지웅장한느낌도들고..울긋불긋단풍진산이랑.살짝지나친도담삼봉참좋았습니다^^아!!사진잘봤어요^^
오늘의 명언이라...ㅋㅋㅋ 나두 담엔 엽기사진 대신 명언을 남겨볼까나..ㅋㅋㅋ
안돼!! 명언은 내꺼야!! "엽기사진은 계속되어야 한다..ㅋㅋㅋ" 이 말을 벌써 잊었느뇨??
글 구성이 좋아서 직접 가본 부석사보다 더 실감나게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듭니다..^^
아..어쨋든 부석사와 내 카메라는 인연이 없나보군...저번에는 유모양이 내 필름을 가지고 가서는 사진을 안주더니..ㅠ.ㅠ
유모양이 아니라 우리 까페의 최고 악당이라고 하는 표현이 정확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