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단식 테니스 매니아
 
 
 
카페 게시글
■ 김석환 칼럼 ■ 스크랩 설악산을 다녀와서
김석환 추천 0 조회 74 06.10.31 12:2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오늘은 친구와 설악산에 가기로 한 날.


이런 저런 짐을 챙겨 조금 늦게 차를 달려 약속 장소인 하남을 향해 악세레리터를 밟았다.

하남 톨게이트에 거의 도착할 즈음 갑자기 앞의 차들이 급정거를 하고 “퉁!”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아뿔싸! 교통사고닷!”


나는 무사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바로 뒤 따라오던 트럭은 미처 브레이크를 못 밟고 나를 피해 이 차선으로 방향을 틀다 내 차 꽁무니를 받아 버린 것이다.

갓길에 차를 대고 보니 내 차의 귀퉁이가 깨지고 트럭도 조금 상한 상태다.

한참을 기다려 보험사 직원이 와서 수습을 하는데 내차를 받은 운전수는 처음에는 오리발을 내밀다가 마침 이 차선에 달리던 트럭을 또다시 이차추돌을 한 상태라 그 운전수의 응원으로 오리발이 묵사발이 되 버렸다. 그런 통에 나는 겨우 무사히 수습을 하고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한 시간이나 늦게 달려가서 설악산을 향했다.


양평과 홍천을 지나 인제에 들려 저녁을 해결하려는데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침낭을 챙겨오는 것을 잊어서 침낭을 한 개 사고, 친구가 양구에 더덕 캐러 올 때마다 간다는 식당에 들려 염소탕을 먹었다.

약간 질긴 것이 보신탕 맛도 나는 것이 생전처음 먹어 보는 국답게 기기묘묘한 맛이다.

그 ‘구리구리한’ 색과 함께 커다란 뚝배기의 느낌도 그렇고 참으로 두 번 먹어보기 힘든 맛이다.


식당을 나와 두 끼 분으로 김밥 여덟 덩어리를 사고 다시 우리는 어두운 길을 달려 설악산으로 향했다.

원래 우리는 장수대에서 야영을 하고 장수대를 기점으로 해서 한계령을 비껴서 대청봉에 오르고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후 백담사로 내려 올 계획이었다.

마침 장수대에 도착하니 관리사무소에 아직 불이 켜져 있고 직원이 있는지라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다.


우선 장수대 야영장은 여름 홍수로 다 날라 가서 잘 수가 없단다.

“어디 주차장 근처에서라도 자면 안 되나요?” 하니 차에 깔려 죽으려면 그러란다.

그리고 장수대에서 한계령 쪽으로 오르는 코스는 물도 없고 험해서 산악인들도 기피하는 코스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수대에서 봉정암이 15시간 코스로 도저히 밤 8시 이전에 봉정암에 도착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우리의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는 한계령을 넘어 설악동으로 향했다.

설악동 야영장에 도착해서 그 한가운데 복판에 텐트를 치고 대충 이를 닦고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4시쯤 일어나 짐을 챙겼다.

귀마개를 한 나도 밤사이에 좀 시끄러운 소리가 간간히 들렸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는 밤새 선잠을 잔 모양이다.

이 늦은 시기에 텐트장에 텐트를 치는 인간이 우리 말고 더 있었던 것이 신기했었지만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그 시끄러운 목소리를 폼 내는 것은 역시 질색이다.


야영장 한 복판에 텐트를 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나야 완전무장을 했지만 무장해제를 한 친구는 잠자리가 괴로웠던 모양이다.

여행 중에 귀마개는 필수품이다.


새벽 5시인데도 사람들이 붐빈다.

주차비는 사천 원 정도인데 입장료는 둘이 근 칠천 원 정도다.

차를 대고 입구에 도착하니 가계가 성업 중이다. 이른 새벽의 풍경치고는 진풍경이다.

나도 혹시 몰라서 헤드렘프의 밧데리 여유분을 사고 난 후 어두운 길을 밟혀 비선사에 오르고 또 다시 마등령을 향해 오르니 날은 조금씩 밝아 오며 사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가파른 고갯길과 돌길은 숨이 턱에 차오르게 한다.


마등령에 오르려면 아직 한 참을 더 올라야 할 즈음 해가 우리들 등 뒤로 그 붉은 색 물감을 뿌린다.

아주 그럴 듯한 일출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대 밖으로 건지는 행운이라 즐겁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돌길을 차고 오르다 우리는 적당한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어제 산 김밥을 풀어 아침을 하니 하루 지나서 돌돌하기만 한 김밥이 그런대로 맛나다.

두 개씩 가뿐히 해치우고 다시 엉덩이를 들어 마등령을 향하니 군데군데서 바라보는 천불동계곡의 능선과 저 멀리 보이는 속초시내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동해바다의 시원함이 우리의 땀을 식혀준다.


드디어 마등령에 오르니 거의 아홉시가 다 된 시간이다.

사실 우리는 여기서 공룡능선을 탈까도 했지만 워낙 사람들의 물결이 넘쳐서 내려오면서 밟기로 하고 친구가 가지고 온 배를 한 개 깎아 먹은 후에 오세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갔다.

오세암을 향하는 계곡은 그런대로 단풍이 물들어서 우리들 마음을 흥분으로 적시기에 충분하다.


사진을 찍으며 내려가 드디어 오세암에 도착하니 암자는 작기만 하고 특별히 보잘 것은 없다. 대웅전을 빼고는 여기저기 맨 빈방과 이부자리뿐인 것을 보면 여기서도 사람들이 산행 중에 잠을 자나 보다. 마침 아직 아침 공양이 안 끝나서 누군가 권하는 대로 식당에 가니 막 밥솥을 들고 나간다. 밥이 끝났단다. 참으로 간발의 차이로 우리는 미역국 밥을 놓치고 만 것이다.

여간 분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다 부처의 뜻이라는데 할 말이 있겠는가?


오세암의 아침 공양이 열시 너머서 까지였다면 부지런히 걸으면 한시 전에 봉정암에 도착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12시에 시작한 점심공양은 그때까지는 최소한 계속될 것이고 우리의 점심은 간단히 해결이 될 터이다. 점심은 꼭 봉정암에서 얻어먹을 심산으로 그 곳을 향해 다시 열심히 오르기 시작했다.


봉정암 가는 길은 의외로 어렵기만 하다.

여러 개의 능선을 옆으로 질러가는 길인지라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깔닥고개”로 그냥 내쳐 오르막길이라서 간단한 생각과는 달리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길이다. 저번 주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지리산에서 사전 연습이 충분히 된 우리의 발길은 그래도 가볍다.


드디어 마지막 고개를 넘으니 봉정암이 보인다.

배낭을 풀러 놓고 바로 옆길로 가니 바로 밑에는 조그만 탑이 외로이 산을 굽어보며 서 있고 그 아래 왼쪽으로 쭉 이어지는 ‘용아장성’이 그 위용을 폼 낸다.

탑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신 절을 해 댄다.

모두가 빌 일이 많은 가보다. 아마 저 들은 잘못을 빌기 보다는 소원을 빌 것이다.

하나님이나 부처는 인간들의 소원 때문에 골치 꽤나 아플 것이다.

나는 그냥 소원을 배낭에 구겨 넣고는 봉정암을 향해 내려가니 막 설거지통에 밥통을 부어 넣는 것이 아닌가?


또 다시 허전한 맘을 달랠 길이 없다. 그 놈의 절 밥 한번 얻어먹기가 이처럼 죽기보다 힘들어서야 어디 부처의 광영이 세상을 비치겠는가?

친구와 나는 햇빛이 잘 드는 길쭉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는 어제의 그 조금은 모래 같기만 한 김밥을 꺼내 들었다.


마침 친구가 가지고 온 조그만 김치 상자를 꺼내 드니 옆에 앉았던 선머슴 같기만 한 여자가 “앗! 김치다!”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니 맘씨 좋은 친구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같이 드시죠”한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약간은 ‘쭈글탕한’ 모습의 사내에게도 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부부냐니까 부부는 아니고 말하자면 도반이란다.


자기들은 광주 무슨 선원에서 버스 타고 단체로 올라온 순례객들이란다.

아니 부처는 마음에 있는 것이거늘 별로 산을 좋아 하게 생기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처럼 멀리 그리고 높이까지 와서 꼭 그 부처를 찾아야만 한단 말인가?

나야 어차피 신도도 아니라 그들 마음을 이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니 그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던지며 김치를 같이 먹는데 자기들이 먹던 주먹밥도 같이 먹잔다.


어린 애 주먹보다는 크고 어른 주먹보다는 작은 둥그스름하면서도 약간은 삼각형의 모습을 한 밥을 김으로 쌓은 그런 김밥인데 모래 비슷한 것만 씹던 입이 대뜸 알아본다.

점심 공양 밥은 다 떨어졌어도 신도들을 위한 주먹밥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맛있다는 말을 연발 해 대는 우리들을 보더니 그 여자가 부엌에 가서 더 갖다 주겠단다.


이미 우리가 가지고 온 김밥도 다 먹고 그녀가 건넨 주먹밥도 받아먹어서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우리는 주저함 없이 그러라고 했다.

그녀가 가지고 온 주먹밥을 받아 들고 우리는 두 번의 절밥공양을 놓친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이 또다시 우걱우걱 구겨 넣으니 부른 배에도 불구하고 역시 맛나기만 하다.

너털웃음과 함께 부른 배를 부여잡고 일어나면서 맘씨 좋은 친구는 또 다시 그 녀에게 선물이라며 마지막 남은 내가 좋아 하는 샌드 과자를 그녀에게 건넨다.

친구의 맘씨가 내 배를 아프게 했지만 거기서 어찌 ‘쪼잘하게’ 친구의 미덕을 막을 수가 있겠는가?


놀랜 그녀가 자기도 뭔가를 줘야 한다면서 가방에서 시커멓고 길쭉한 것을 꺼내는데 그것은 한 오십 센티는 충분히 될 법한 오이였다.

나는 태어나서 그처럼 긴 오이를 본 적이 없다. 선머슴 같다손 치더라도 여자가 분명하고 처녀가 분명한데 그런 물건을 가방에서 불쑥 꺼낼 때의 미묘함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 친구와 나의 눈은 묘한 느낌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받기를 주저하는데 얼른 받으란다.


별난 여자의 별난 선물을 가방에 구겨 넣고 또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청봉에 올라 나는 회운각으로 내려가서 공룡능선을 타고 싶었지만 친구의 생각은 대청봉에 올라가 있는 통에 우리는 중청에 배낭을 풀어 놓고 대청에 올랐다.

대청은 사람들로 발 디디기가 힘들 정도고 사진 찍는 포인트는 줄을 서서 난리 법석이다.


결국 눈치 없는 친구가 대청봉 표시 팻말 앞에 서서 사진을 찍다 다 순서가 있다는 어떤 사람의 핀잔을 먹었다.

나는 대충 그 언저리에 서는 둥 마는 둥하면서 사진을 찍고 사방을 둘러보니 흐린 날씨로 말미암아 전에 올라 왔을 때의 그 웅장함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바다를 한쪽에 품으면서 남북으로 내 달리던 백두대간의 그 웅장함은 희뿌연 안개 속에 아스란 하기만 하다.


대충 서서 얼쩡거리다 우리는 다시 중청으로 내려와 소청을 지나 회운각으로 향하니 여름 홍수로 여기 저기 등산로가 무너져 공사가 한창이다.

소청을 지나서 부터는 그 많던 사람들이 그림자도 없고 오로지 올라오는 사람들만 간간히 눈에 띌 뿐이다.

네 시가 넘은 시간이니 내려가기에는 무리고 모두가 중청 산장이나 봉정암에서 자려고 그리로 간 모양이다. 봉정암에만 들어가면 잠도 해결이 되고 저녁과 아침도 해결이 되니 “꿩 먹고 알 먹고” 인 셈이다.


사실 우리도 처음에는 봉정암에서 하루를 묵은 후 대청에 올라 일출을 보고 공룡능선으로 내려 올 생각이었지만 너무 일찍 봉정암에 도착하는 바람에 그냥 하루 산행으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 참이다.

아침에 괜 실히 부지런 떨어서 오른 것이 오히려 화근이라면 화근이다. 산사의 밤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쉽고 그 험하다는 공룡능선을 한번 타봄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인내의 한계와 생각의 꼬리를 자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나는 왠지 갑자기 하루라도 빨리 작업실로 가고만 싶은 마음이었다.


회운각으로 향하면서 힘들게 올라오는 사람들마다 나는 한마디씩 건넨다.

“어이구! 이 늦은 시간에 올라 온데요?”

“봉정암에서 자려고요?”

“오늘 거기 한 팔천 명 쯤 잔데요?”

낮에 절간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겁을 주는 맛이 괜찮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 말을 건네니 모두 기겁을 한다.


오늘 내일이 설악산 단풍 산행의 피크타임이라니 사실 오천 명까지 수용을 한 적이 있다는 봉정암이고 보면 팔천 명까지야 아니겠지만 비슷한 숫자는 되리라.

회운각울 지나 드디어 천불동 계곡에 들어서니 사방이 조금씩 흐려지는데 계곡의 능선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단풍들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오로지 눈으로만 담을 수 있을 뿐 이미 내 자동카메라로는 어림도 없다.

그저 감탄만 하고 내려 갈 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다 결국 날이 꼴깍 넘어 가니 속절없이 램프를 다시 켜고 산을 내려 갈 수밖에 없다.


결국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온 우리의 산행은 절묘한 타이밍으로 인해 그 좋다는 설악의 단풍을 다 놓친 셈이다.

단풍은 계곡이 제 맛이련만 오를 때도 어두웠고 내려 갈 때도 어두운 상황이니 말이다.

아쉬움으로 보는 아름다움은 더 날 미치도록 만들기만 한다.


갑작스런 일정의 변경으로 인해 생긴 야간 산행은 내가 평생 처음으로 만난 설악의 가을 단풍을 못 보도록 만들었다.

내년이나 후년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하루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거늘 어찌 몇 년 뒤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여기까지 50년이 넘게 걸려서 온 마당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저 아까울 뿐이다.


밤길을 부지런히 더듬어 산을 내려오니 밤 여덟시다.

우리는 미시령의 새로 뚫린 터널을 통과하는 지름길을 택해 인제를 향해 가다 막 문을 닫으려는 어느 휴게소에 들려 국수를 한 개씩 시켜서 먹는데 그 쫄깃한 맛이 절묘하리만큼 우리들 사이의 우정을 더 돈독하게 할 만하다.

밤길을 달려 하남의 주차장에 들려 서로 헤어져 나는 안성의 작업실에 열두시쯤 도착을 하니 아쉽기만 한 설악의 미련은 꿈속에서나 다시 만날까 싶다.


 

 

 

 

 

 

 

 친구인지 난지 약간 햇갈림.

 요게 나.크하하!

 

 

 묵직한 슬픔.

 

 

 

 

 

 

 오세암.

 빌 것이 많은 사람들 1

 오세암에서 바라다 본.

 

 오세암서 봉정암 가는 길 중 친구.

 

 

 

 친구. 물도 탐스럽게 먹어 번지네!

 

 

 공중에 뜬 뿌리.

 소나무 먹선이 아주 굿입니다요.

 용아장성.

 

 빌것이 많은 사람들 2

 

 

  저 돌머리 떨어지면?

 

 흐려서......

 정상이라네!

 머시기여? 사기꾼처럼 보이네!

 

 우리나라 좋은 나라! 환자 나르는 119헬기. 그냥 아프다고 하면 탈 수 있슴.

 여름 홍수의 상처.

 천불동에 들어 섰지만 어두워 지기 시작하고.....

 

 

 

 

막판으로 실루엣만 겨우 잡히고.......

 

 
다음검색
댓글
  • 첫댓글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김석환교수님 칼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정말 멋있는 인생을 사시고 계십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