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친구들
지난 주중에 이해은 작가 부부가 식사를 대접한다고 멀리까지 가서 불고기를 먹었습니다. 전농감리교회에 대형 배너 제작을 소개해 주었다고 인사한 것입니다. 재작년 일인데 그때 약속시간을 잡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늦게 ‘사례 밥’을 먹은 셈입니다. 새로 건축한 예배당에 일곱 절기 별로 바느질 작품을 꾸몄으니, 꼬박 일 년 프로젝트였습니다.
후일담을 들으니 대형 작품을 교회력 일정에 맞추어 완성하느라 큰 수고를 했더군요. 고맙게도 올해 ‘강단과 목회’ 표지모델로 내내 등장하게 되었으니 흐믓합니다. 이해은 작가는 2005년 그에게 조각보 십자가를 주문 구입하면서 관계를 맺은 사이입니다. 과묵한 남편 권정구 선생은 작곡가 겸 연주자인데, 얼마 전 부부가 다녀온 몽골 이야기로 더 들떠있었습니다.
권산 사진작가가 드디어 개인전을 연다고 합니다. 작년 사순절에 ‘세계의 십자가 전’을 열었던 서초성결교회 내 아트원 갤러리(2.26-4.4)입니다. 주제가 ‘언제 어디서나 숨 쉬는 십자가’라고 합니다. 벌써 3년 전 쯤, 불쑥 교회로 찾아와 처음 만났는데, 외모에서 풍기는 낯설음과 달리 매우 섬세한 속마음을 가졌습니다. 짧은 글들은 영감의 거미줄처럼 눈부십니다.
그는 하루 종일 십자가 사진을 찍습니다. 거리, 광장, 골목, 하늘, 나무와 숲, 시위현장, 다리 아래, 도랑 속, 도시 풍경에서 십자가를 찾습니다. 그런 십자가 이미지들을 추리고 또 추려내어 첫 개인전을 연다니 기대가 큽니다. 종종 만나 십자가 작업을 한껏 추켜 주고, 번번이 자랑했더니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스승의 날에 나를 기억하고 선물하는 과분한 동료입니다. 오히려 그의 응원 덕분에 내 십자가 사랑이 깊어 갑니다.
김명원 목장(木匠)은 목수인생 40년입니다. 귀찮을 만큼 전화를 자주하는 두 살 터울의 ‘멘토와 멘티’ 사이입니다.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곁에 있는 것은 내겐 홍복(洪福)입니다. 십자가 제작에 까탈스러운 내게 전적으로 마음을 맞춰주는 거의 유일한 제작자입니다. 천성적인 그의 겸손함과 평생 ‘을’(乙)의 입장에서 살아 온 삶의 이력이 가난한 마음을 지니게 한 듯합니다. 때로는 값을 후려치고, 때론 넉넉히 보상하면서 십자가의 길에서 동행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주 엄살을 부립니다. 40년 목수 노릇을 했지만 변변치 못한 살림과 불안정한 관계가 여전히 마음의 지반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귀가 엷은 그는 남의 유혹에 쉽게 이용당하고, 제 몫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일편단심, 이제는 십자가와 교회 성물만 제작하려는 마음 덕분에 십자가 친구가 되었으나, 나 역시 갑-을 관계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가난한 그이지만, 나무욕심 만큼은 큰 부자입니다.
김영득 사장은 1인사업장인 ‘기쁨공방’의 대표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열심이 그를 십자가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30년 전 문수산성교회에서 만난 학생인데, 돌아가신 그의 외할머니가 첫 목회의 동반자셨습니다. 올해 김영득 권사가 되었다니, 외할머니의 신앙연륜이 믿음의 뿌리가 된 셈입니다. 고등부 시절부터 내 비서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주일 아침마다 십 여리 밖 면소재지에 나가 주보를 복사하는 일, 교회 안팎 청소하는 일, 교회학교 어린이를 돌보는 일은 모두 자발적으로 하던 수고입니다.
두 번째 목회지 독일에 다녀오니 붉은 벽돌의 문수산성교회 외형이 바뀌었더군요. 리모델링을 하면서 옛스러움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김영득 군이 초창기의 물푸레나무십자가와 천정 농민화 5점, 그리고 교회의 소소한 옛 물건들을 자기 집 창고에 소중히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가 전시해 둔 기억과 함께 십자가에 대한 그의 유난한 사랑 때문에 ‘손 십자가’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나도 십자가의 지경을 넓혔습니다.
십자가 덕분에 만나고, 사귄 사람은 이들만이 아닙니다. 십자가 사랑의 든든한 지지자 국민일보 염성덕 국장, 액자를 도맡아 만들고 전시회 준비마다 손발이 되어 준 제천사람 이정섭 화백, 본부 선교국 시절부터 나를 디자인 해준 하헌철 실장, 새로 신축한 교회의 사랑방 같은 공간을 전시실로 내준 박정훈 목사, 10년 넘게 십자가 책을 만들고 자랑해준 KMC, 성안당, 신앙과지성사는 고마운 십자가 친구들입니다.
게다가 온 세상 방방곡곡 너른 수집을 위해 내 마음이 되어 십자가를 찾고, 선물한 이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그런 십자가의 은혜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