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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앞서 동창 형제자매들께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대우전자를 2002년에 퇴직했다.
사무직 사원들의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수석부위원장직을 끝으로 정리해고에 동참했다.
정리해고를 당한 그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의를 했지만, 미안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퇴직을 선택했다.
이 수석이 없으면 조직이 와해된다. 당신이 무슨 죄가 있느냐라며 만류했지만, 나 혼자만이라도 정리해고를 당한 사우들께 사죄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멕시코 법인장의 요구와 감사담당 임원의 요구도 묵살했다.
당시 대우전자는 해외 50여개 법인이 있었다.
감사담당 임원은 감사실로 오면 해외사업장 감사만 해도 몇 년이 걸리니 마음속의 부담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달콤한 제안이었지만 사우들의 권익을 대변했던 공인으로서는 양지를 쫓아간다는 것이 양심상 허락되지 않았다.
동창 여운채가 종로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운채는 종로의 신흥재벌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20여개의 사업장이 있었다.
서울생활 3년 동안 운채에게 경제적 도움을 많이 받았다.
노동운동 시절 운채의 경제적 도움은 나의 의지를 불사르게 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광주에 내려왔는데 운채가 다급하게 부탁을 했다.
"서울로 올라와야 할 것 같다. 내가 신세 진 분이 있는데 종로구청장에 출마한다고 한다.
너가 유세팀장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다."
한 번도 선거운동을 한 경험이 없지만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의 이성호 후보는 40살의 젊고 유망한 정치인이었다.
이성호 후보 출정식이 있던 종묘 앞에서 노무현이라는 사람과 첫 조우를 했다.
수더분한 모습에 매료되었다.
향기로운 사람은 코를 통하지 않아도 그 향기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종로구청장 선거가 끝나고 광주로 내려왔다.
그런데 8월에 다시 운채에게서 연락이 왔다.
참여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했던 유인태 의원 선거를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종로에서 선거만 있으면 요청이 왔다.
노무현, 김홍신, 정동영, 손학규 등.
2009년 7월의 어느 날.
이용섭 의원이 연락을 주었다.
이주연 이사의 글을 보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경험도 많고, 글 내용을 보니 문제의식도 많은 것 같은데, 정치해 볼 생각을 없습니까?"
"연설 잘 하는 것으로 정치하면, 아나운서나 연설학원 원장들이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나 소나 정치를 하다 보니 대한민국 정치판이 개판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는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우리 시대의 고귀한 책무입니다.
저는 정치를 할 생각은 없지만, 좋은 정치인이 있으면 도우미 역할은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해 8월 민족의 고토 간도문제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신동민 학생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용섭 의원을 통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다.
인간시장의 저자 김홍신 교수를 통해 시민사회에 알리고,
미국 애틀란타 강이슬 시인을 통해 미국 교포에게 알렸다.
미국 뉴욕에 계시는 김태영 박사님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2009년 12월의 어느 날.
이용섭 의원이 다시 연락을 놓았다.
"광주시장에 출마하려고 하는데 도와 주셨으면 합니다."
"생계 때문에 곤란합니다. 미안합니다."
그 뒤로 일곱번의 연락이 있었고,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26회 선배가 "이용섭 의원은 집요한 사람이다. 필요하면 끝까지 요구할 것이다. 이왕이면 도와드려라."
미디어를 맡아 달라는 제의에 자원봉사로 하겠다고 했다.
이용섭 의원은 행정전문가였지만, 정치력이 다소 부족했다.
강운태 시장의 반칙에 동의할 수 없어 삭발을 하고 민주당 중앙당에 항의했다.
강운태,
임동성-강운태 정책부본부장,
김덕천-호남일보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들은 민주화의 성지 광주를 능멸하고 모욕했다.
검찰이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사법적 판단을 한다면 징치될 것이다.
임동성과 김덕천은 구속되었는데, 강운태 시장만 법적 처벌을 피해가고 있다.
2010년 5월 어느 날.
낯설은 전화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떴다.
"아름이님이시죠?
저는 무협고양이라고 합니다.
원조 서프앙-서프라이즈 회원 애칭-입니다.
한 번 만나고 싶은데요."
나는 대한민국 진보개혁세력의 담론장이라고 자처하는 정치포털칼럼뉴스 서프라이즈 홍보이사다.
흔쾌히 승낙하고 약속장소에 갔는데 낯설은 분이 한 분 더 계셨다.
현재 광주시교육감 장휘국 선생님이었다.
선거를 도와 달라고 하는데, 장휘국 후보의 인생 여정이 너무 아름다웠다.
미디어특보와 유세팀장으로 활동했다.
광주의 진보시민사회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무척 기뻤다.
선거운동 이틀이 지나갈 무렵 이금례 여성본부장이 연락을 놓았다.
"정찬용 광주시장 후보를 도와야 할 것 같은데..."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치를 먼저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휘국 후보의 양해를 구했다.
정찬용 후보와 장휘국 후보 양쪽을 번갈아 가며 유세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목이 쉬었다.
그러나 지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다.
장휘국 후보는 교육감에 당선되었고, 정찬용 후보는 광주시장에 낙선했다.
당선자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다. 이익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휘국 후보의 당선인사를 뒤로하고,
정찬용 후보와 함께 일주일을 목표로 낙선인사를 다녔다.
7.28남구 재보궐 선거가 있었다.
정찬용 수석이 말씀하셨다.
"시민후보 민주노동당 오병윤 사무총장을 도와야 할 것 같다."
다시 유세차에 탑승해서 남구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주월동 무등시장에서 연설을 했는데 시장 상인들의 앵콜이 들어오기도 했다.
5,000번을 넘는 연설과정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민후보 오병윤 후보는 44%의 지지를 받았다.
광주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0.27 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다시 정찬용 수석이 시민후보를 지원하자고 했다.
그리고 다시 유세차에 탑승해서 서구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다섯 번의 선거를 하다 보니 2010년이 지나가 버렸다.
과정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유시민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이 나라 정치에 꼭 필요한 분들이다.
그들이 국민의 사랑을 받아 국민이 염원하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2010년 9월 14일.
황소쟁기님과 55사단님이 연락을 주셨다.
"내일 문성근 씨가 광주에 온다는데 가야 하지 않겠느냐?"
"무슨 일로 오는데요?"
"국민의 명령 백만민란이라고 하는데 야권통합운동이라고 하던데."
다음날 충장로 광주우체국으로 향했다.
문성근 씨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의 인파가 모였다.
영화배우의 대중성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다음날 전대후문으로 향했다.
핸드마이크를 들고...
라디오21 양경숙 대표가 "아름이님 아이디어가 참 좋아요. 호객행위 짱인데요."
양 대표는 마음밭이 고운 선배다.
그리고 추석 전날까지 문성근 대표와 함께 국민의 명령 백만민란 홍보를 했다.
정찬용 수석 집무실이 있는 대인동 청우당에서 매주 화요일 모임이 있다.
광주발전을 위한 궁리를 하는 모임이다.
정찬용 수석은 3가지의 장점이 있다.
미소, 막걸리, 궁리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국민의 명령과 PRTV다.
2011년 1월 5일 다시 문성근 대표가 광주에 왔다.
정찬용 수석은 YMCA 사무총장 출신이다.
"어이 주연이, 광주전남 국민의 명령을 시민사회와 연결하세.
내가 광주전남 23개 시군 시민사회에 연락을 놓겠으니, 자네가 문성근 대표와 함께 순회를 하소."
광주, 목포, 광양, 순천, 여수를 순회했다.
가는 곳마다 폭발적인 반응이다.
특히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활동해주었다.
1월 9일 여수를 끝으로 광주에 올라왔다.
라디오21에서 합류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생계 때문에 곤란하다고 했다.
탐방기를 작성하고 게시했다.
언제부턴가 사진찍고 글쓰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광주인터넷 신문 광주in 이상현 대표기자의 요청으로 편집위원 활동도 하고 있다.
탐방기를 게시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데 어느 동영상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문성근 대표가 1월 2일 모란공원에 다녀온 동영상이다.
부친이신 문익환 목사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짧은 글을 썼다.
"아버지
못난 놈 자꾸 지칩니다.
지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저 할 수 있는 만큼 하겠습니다.
2012년 민주진보정부 수립해서 통일의 그 날을 앞당겨야죠."
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 임추섭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왕대 밭에 왕대 난다더니,
평생 우리 민족의 통일을 위해 헌신하셨던
문익환 목사님께서 훌륭한 사람을 남겨 놓고 가셨습니다."
고맙고, 안타까웠다.
광주 문빈정사에서 계곡을 휘감아 도는 동장군의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목포 하당 장미의 거리에서 휘몰아 치는 눈보라를 헤치고,
광양 사랑병원 앞에서 코를 베는 듯한 삭풍에도 주저하지 않고,
순천만의 을씨년스러운 손돌바람을 이겨내고,
여수 부영사거리의 혹한에도 의연했던 문성근 대표의 모습이 떠올랐다.
문성근 대표의 글을 보며 궁리를 했다.
그리고 정찬용 수석께 도움을 요청했다.
궁리하겠다고 하셨다.
도움이 오면 문성근 대표와 함께 찬조 연설자로 전국을 누빌 예정이다.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친 영국의 영웅 웰링턴 장군의 말에 의지를 다졌다.
"한 하사관의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한 내가 나폴레옹을 이겼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이었다."
요즘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선생님께 이렇게 푸념을 한다고 한다.
"저희는 천벌 받은 사람들입니다."
연설을 할 때 이 말을 인용하는데, 자꾸만 목이 매인다.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형님과 마누라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 아이들 자존심을 내팽개친 쥐새끼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작전명 발키리라는 영화대사를 보면서 다시 의지를 다졌다.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던 독일의 영웅 슈타펜버그 대령은 히틀러 암살 이유에 대해,
"모든 독일인이 히틀러 같진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라고 했다.
슈타펜버그 대령은 암울했던 그 시절에도 살아있는 독일의 양심이었다.
이명박과 쥐새끼들만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국민의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 시대의 양심들이 살아숨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명령 거리민란을 2010년 9월 15일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하고 있다.
며칠 전 동창 우영이가 집에 왔다.
"주연아, 차라리 시의원이라도 해라."
"이런 정치지형에서 정치를 하게 되면 내 양심을 속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돈을 벌지 않으면 정치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영이는 궁금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후보들을 선택해서 선거운동을 하는지...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나의 국민됨을 허락해주었고,
이 사회에 살아갈 수 있도록 연착륙을 시켜주었다.
존경과 감사는 당연한 것이고,
조금이라도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민은 개인의 이익을 뛰어 넘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다.
나도 시민이고 싶기 때문이다.
전대 사대에 다니다 특전사에 복무중인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아버지 때문에 엄마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하고 계시는 일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이 아이들과 이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고 싶다.
최소한 현재의 대한민국보다 더 희망찬 대한민국을...
내 기억에 극도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 우리 사회는 오늘날 처럼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우리는 천벌 받은 사람들입니다."라는 사회는 아니었다.
가난해도 희망은 있었고, 부지런히 노력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다시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무등산으로, 풍암저수지로, 충장로 우체국으로, 전대와 조대후문으로 달려간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마음의 상처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동창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나쁜 태도는 무관심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은 시민이라는 직책이다.
미국의 변화와 개혁의 희망 오바마가 탄생한 이유는,
20대, 30, 40대가 인터넷을 무대로 삼아 참여해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국민의 명령을 검색하면 홈페이지와 접속할 수 있다.
국민의 명령에 모여 함께 살자.
국민의 명령에 모여 같이 살자.
따로따로 살기 때문에 이명박과 쥐새끼들이 대포폰으로 우리를 감시하고 탄압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 아니라고 외면하면 언젠가는 그 현실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국민에 대한 명백한 도발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이명박과 쥐새끼들을 박멸하고,
조중동과 한나라당 정권의 영원한 종식을 알리고,
내년 4월에 의회권력 되찾아 오고,
12월에 민주정부 창출해서 장기집권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1월 19일.
국민의 명령 1차 정책토론회가 김대중도서관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최고위원들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그들 모두가 국민의 명령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희망을 보았다.
이제 동창 여러분이 앞장서 명령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야5당 하나가 되라, 야5당 하나로 합쳐라고...
배둘레힘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배의 둘레가 무척 큰 동생이다.
다섯개 단체 대표인데, 회원은 혼자다.
삼천궁녀 시신 찾기 대책위원장,
살수대첩 포로명단 찾기 운동 본부장,
서산대사 원형탈모 연구소장,
백제 의자왕 호남사투리 연구소장,
임진왜란 과부를 걱정하는 모임 대표^^
배둘레힘의 명함을 받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그를 잊지 않는다.
웃음이란 마력의 위대한 존재때문이다.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광주전남 조현옥 대표는 배둘레힘만 보면 웃는다.
"어, 삼천궁녀"
조현옥 대표는 민족문학작가회원이면서 시인이다.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이적단체로 규정되었다.
발전적 해체를 통해 민권연대로 출범한다.
민권연대 창립준비위원회에 갔는데,
연평도 포격 사건을 예언한 강사로부터,
한반도정세에 대한 귀중한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나름 공부한다고 하는데, 아직도 멀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지라고 그랬을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욕심에 글이 길어졌다.
탐독해 준 동창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신묘년 토끼의 해,
마음 속의 토끼 모두 잡아서 큰 웃음 지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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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생많이 했구나...그래도 더 고생해서 네가 하고자하는 세상을 만들어라.
음 팍팍.....앞으로도 팍팍 예정...하지만 팍아아아악팍(?)나가길 기원...
석운, 은호 예쁜 댓글 감사하이.
요번 주말에 문빈정사 앞에서 국민의 명령 거리민란을 했는데 1,000여 명이 가입했다네.
지금까지 합산하면 10,000여 명 정도 되는데,
광주시민이 7,000명, 외지인이 3,000명 정도 된다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지속되고 있다네.
그대들도 각별한 관심과 참여를 부탁하네.
영원한 울 노짱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서 멋진 대한민국 정치사 만들어 가 주길 바란다 친구야!!!^^ 설 명절 잘 보내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