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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uel Castells, 「네트워크 경제와 정보 자본주의 」
Anthony Giddens, 외, 『기로에 선 자본주의』, 생각의 나무, 제2장 - 원문
1. 세계화된 네트워크 경제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새로운 경제가 등장했다. 그것은 분명히 자본주의경제였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국가이거나 자본주의 경제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자본주의로서 3가지 주요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생산성과 경쟁은 대체적으로 지식 창출과 정보 처리의 문제다. 둘째 기업들과 국가들은 생산 관리 유통의 네트워크로 조직되어 있다. 셋째 핵심적인 경제 활동은 전 지구적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실시간으로 혹은 원하는 시간에 전 지구적인 규모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전 지구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고용은 지역적 혹은 국지적이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필수적인 활동과 경제적 요인들은 투입과 산출의 전지구적인 시스템으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 모든 경제권과 대부분의 고용을 규정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필수적인 경제활동’이 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본 시장 국제적 네트워크의 생산과 관리를 통한 제조(산업화된 농업 포함) 그리고 발전된 서비스 미디어 커퓨니케이션(인터넷 포함) 여흥(스포츠 포함) 심지어는 전지구적인 범죄이다! .
컴퓨터와 장거리 통신 네트워크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새로운 정보 및 통신기술은 이 새로운 경제의 인프라를 제공했다 경제적 활동의 국제화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이와 같은 신기술인프라는 새로운 것이다. 네트워크 지향의 정보 및 통신기술은 경제 활동의 속도와 복합성을 전례 없이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이제는 경제적 거래 및 생산의 규모가 극적으로 증대되지만 상호 연관성은 약화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실시간으로 혹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기술 시스템의 탄력성은 이 새로운 경제가 전 세계에서 생산 요소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해준다. 이제는 무한대로 다양한 여러 지역에서 가치를 찾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제는 경제적으로 가치가 없거나 떨어지는 지역과 사람들은 소외된다. 이와 같이 전 지구적 경제는 사업 활동의 네트워크에서 가치가 있는 것! 은 무엇이든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특정 시점과 공간에서 관심이 없는 것은 거의 배제한다. 전자적 네트워크에서는 가치 판단이 전혀 없다. 다만 가치 평가가 있을 뿐인데 이것은 점점 더 수익률보다는 잠재적인 자본 성장의 관점에서 측정되고 있다. 사실 이제는 단기적인 수익이 가치의 올바른 지표가 아니며 우리는 이것을 수익은 없으면서도 주식의 가치는 높은 인터넷 기업들에서 볼 수 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기술 혁신으로 야기된 이 네트워크 중심의 전 지구적/정보적 자본주의는 막강한 힘과 역동성으로 무한대의 확장을 순조롭게 일궈낼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2. 자동인형 : 세계 금융시장
세계화가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특성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전 지구적인 금융시장의 등장 때문이다. 사실 자본이 실시간으로 세계화되어 있다) 혹은 더 정확히는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우발적인 일이 아니다. 금융적 세계화의 과정은 오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고 20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계속해서 확대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속화된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볼 수 있다. 다소 임의적으로 하나의 상징적 사건을 꼽는다면, 나는 이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 1987년 10월 27일에 일어난 런던의 ‘빅뱅(Big Bang)'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자본과 증권시장의 탈규제가 일어났다. 이 삭ㄴ의 뜻하는 바는 금융 거래의 탈규제가 일어났다. 이 사건이 뜻하는 바는 금융 거래의 탈규제와 자유화가 가속화되는 세계화의 핵심적인 요인들로서, 그로 인해 규제의 투자 기회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신기술은 사실상의 동시적인 전 세계 거래를 가능케 했고, 탈규제와 금융기술로 야기된 새로운 복합성의 관리를 가능케 했다. 오늘날 부자라면 거의 누구나 알고 있는 뮤추얼 펀드는 컴퓨터 기술로 촉발된 새로운 규칙과 금융적 모델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또 다른 예로는 파생상품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온갖 종류의 새롭고 통합적인 증권들을 아우르는 말이다.
파생상품은 주식, 채권, 옵션, 현불, 통화 혹은 그 밖의 (실재적이건 잠재적이건)금전적 가치의 표현물의 숨은 가치들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의 재결합은 공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고(전 세계의 시장들) 시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데(선물시장) 파생상품은 이런 방식으로 가치 거래의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이 과정에서 파생상품은 시장 가치는 360조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전 세계 GDP의 12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금융적 가치의 거래를 이처럼 높은 수준으로 가능케 한 것일까? 그것은 결국 발전된 수학적 모델들의 사용으로만 가능해진 것인데, 그 배경에는 컴퓨터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정보의 전 세계적인 투자 자원을 성공적으로 이동시켰다. 1995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뮤추얼 펀드, 연금기금, 그 밖의 기관투자가들에 의한 투자는 20조 달러에 달했다. 이것은 1980년 이후 10배나 늘어난 것이었고 그 후로도 이런 추세는 더 증대되기만 했다. 1997년에 처음으로 미국 가구들의 자산 비중은 부동산보다 증권이 더 컸다. 그 결과 1998년 미국의 주식 시가 대 GDP 비율은 기록적으로 140퍼센트에 달했다. 1970~96년에 국제적으로 거래된 채권과 주식의 규모를 국내 GDP에 대한 비율로 측정하면, 미국은 54, 일본은55, 독일은 거의 60의 인수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금융적 투자의 열풍은 세계적인 현상으로서, 이런 기회를 제공한 것은 특히 두 가지 서로 다른 상황이었다. 하나는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 성장인데, 이곳에 투자하면 돈을 벌 것으로 기대되었다. 다른 하나는 신흥 공업국들의 너무 좋은 가격에 관한 것으로서, 특히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페루, 브라질 같은)중남미가 그랬지만 1990년대 중반의 러시아도 그러했다. 미국에서는 연금기금들의 해외투자가, 1980년 자산의 1퍼센트 미만에서 1997년 17퍼센트로 증가했다. 1983~95년의 연산 평균 성장률을 보면, 전 세계 실질 GDP는 3.4퍼센트였고 전 세계 수출량은 6퍼센트였지만, 대출과 채권의 총 발행은 8.2퍼센트였고 대출과 채권의 주식 전환은 9.8퍼센트였다. 그 결과 1998년에 대출과 채권의 주식 전환은 7조 6,000억 달러에 달해 1998년도 영국의 GDP의 5.5배와 맞먹었다. 국제적 투자가들은 신흥 시장의 느슨한 금융 및 은행규제를 십분 활용했고, 그럼으로써 투기적인 활동이 가능해졌다. 투자가들은 또 금융 위기 시에 각국 정부의 예상되는 지원도 기대했다. 따라서 1997!98년의 신흥 시장 금융 위기를 초래한 것들로 평가되는 요인들(정부의 간섭과 금융 투명성의 부족)은 사실국제적인 금융 투자를 유발한 핵심요소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국 투자가들의 해외 주식매수는 1970~97년에 197의 인수로 증가해 전 세계의 금융시장들을 확실하게 연결시켰다. 통화시장들이 폭발하면서 경제 정책을 통제하는 각국 정부의 능력을 무력화 시켰다. 이제는 각국 통화의 가치가,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자율이 주로 금융시장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1998년에 전 세계의 통화시장들은 평균적으로 매일 1조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거래를 했다. 이것은 1998년도 영국GDP의 110퍼센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1986~98년에 전 세계 통화 거래의 가치가 8의 인수로 증가했음을 나타낸다.
금융시장들은 현재 몇몇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먼저 온라인 거래와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 시스템들로 인해 금융상품과 통화 그리고 국가들 사이에서 자본이 아주 빨리 이등하고 있다. (이런 일은 종종 초 단위로 일어난다.).
둘째, 새로운 금융상품들이 출현해 다양한 국가들의 여러 가치들이 다른 국가들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상품들의 어떤 요소가 어떤 시장의 갑작스런 가치 변화로 영향을 받으면, 그것은 해당 상품 전체와 많은 시장들에 파급된다. 이런 현상은 특히 1997년에 아시아 금융시장들의 파생상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셋째, 높은 금융적 보상을 원하는 투기적 투자가들이 하나의 시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예측 모델을 사용해 여러 변화의 여러 상품에서 일어나는 가격 변동을 잡아내려한다. 이와 같은 투기적 활동의 한 가지 중요한 원천은 헤지펀드이다. 이것 역시 채권, 주식 그리고 자금시장 펀드들에 의존하지 않는 비전통적 투자 펀드들을 아우르는 용어이다. 헤지 펀드는 대체로 규제를 받지 않으며 1990년대에 그 수와 자본력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1990~97년에 헤지 펀드들의 자산 규모는 12의 인수로 증가했고, 현재 3,500개가량의 헤지펀드가 2000억 달러의 자금을 굴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런 자금을 바탕으로 차입을 할 수도 있다. 헤지 펀드가 굴리는 돈의 주인은 은행, 연금기금 그리고 기관 투자가 같은 대형 투자가들로서, 이들은 헤지 펀드를 이용해 자신들이 받는 규제를 우회하려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투기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가입한 연금기금을 통해)적극적으로 혹은 (대부분의 소액 투자가들처럼 저축을 뮤추얼 펀드나 은퇴 계좌에 넣음으로써)소극적으로 그렇게 한다. 헤지 펀드 외에도 (크건 작건) 온갖 종류의 투자가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로 무장하고 실시간으로 정보를 받아 온갖 종류의 금융상품을 사고팔고, 유통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혼란을 야기시키고 스스로 영향을 받는다.
상호 연결성의 네 번째 주요 요인도 강조해야만 한다. 즉 정보제공자들과 여론 주도자들이다. S&P나 무디스 같은 시장 가치 평가 회사들 업계의 금융 천재들 그리고 주도적인 중앙 은행가들은 증권 통화 혹은 전체 국가 경제의 시장 가치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이들의 평가가 얼마나 객관적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이들의 보고서가 입증된 것은 안이다. 영향력 있는 의사 결정권자들의 언급과 정치적 사건들이 금융시장에 끼치는 영향까지 감안하면, 기본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정보의 홍수가 수요와 공급 못지않게 세계금융시장의 가격 및 흐름을 결정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인 금융기관들, 그중에서도 특히 IMF가 최후의 대출자로서 위기에 처한 각국 경제에 간섭한다. IMF의 기준들은 대체로 하나의 표준적인 처방으로서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인데, 이거들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통용되는 게임의 규칙을 통일하는 경향이 이따. 바로 이런 전제 조건이 있기 때문에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은 한층 더 통합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금융 세계화 과정의 결과 우리는 하나의 자동인형을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자동인형은 세계 경제의 핵심에 위치하면서 우리의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기계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인류의 악몽은 이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정부 컴퓨터나 일자리를 없애는 로봇이 아니라 전자적으로 이루어지는 금융거래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각국 정부와 국제 기관 등, 그리고 민간 금융회사들이 만든 규제와 규칙들을 압도한다. 따라서 개인 투자가들과 소비자들, 시민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어디에서 나온 소득이건 결국에는 금융시방으로 들어간다. 바로 이곳에서 가장 높은 자본성장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적 거래의 이 너트워크는 전 지구적 혹은 지역적 자본 흐름을 좌우하면서 스스로 하나의 집합적 자본가로 자리 잡았다. 이 시스템은 어떤 개인적 자본가나 대기업 혹은 공적인 기관조차도 통제할 수 없다. 물론 자본가들과 관리자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 그 자동인형의 통제를 받는다. 그리고 이 자동인형은 시장이 아니다. 이것은 시장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수요와 공급에 기반한 그런 종류의 규칙은 따르지 않는다.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초래하는 것은 시장 규칙, 경제 및 정치 전략, 군중심리, 합리적인 기대, 비합리적인 행태, 투기적인 작전 그리고 넘쳐나는 정보의 결합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해서 점점 더 예측이 불가능한 양상들을 만들어내며, 어떻게든 이것들을 모델화하는 것이 노벨상 지원자들과 중독된 금융 도박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자동인형은 얼마나 자동적인가?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화된 거래 시스템이 시장의 흐름을 증폭시켜 1987년 10월의 붕괴에 일조한 후 새로운 금융규제들을 추가했다. 인간 의사 결정권자들의 간섭 없이 완전히 자동화된 거래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류학자인 캐이틀린 자롬(Caitlin Zaloom)은 1998년에 시카고 거래소(CBT)에서 진행되는 거래를 보고 나서 이렇게 얘기했다. 즉 극히 중요한 시장에서 인간적인 간섭, 사업적인 지혜, 기업들의 개입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신기술이 인간들의 결정을 지원하고 시행하고는 있지만, 전통적인 증권거래는 사라지지 않았고 규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지만 주요한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다. 전자적인 거래 시스템인 유렉스는 현재 중요한 독일의 채권 선물시장을 통제하고 있다. 프랑스의 선물거래인 마티프는 1998년에 완전히 전자적인 시스템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런던의 리페 역시 그렇게 할 계획을 짜고 있다.
1998년 9월에 세계최대의 채권중개사인 캔터 피츠제럴드 브로커리지(CFB)는 켄터 익스체인지(Cantor Exchange)를 시작했다. 이것은 미 재무부 공채에 대한 선물계약을 거래하는 전자적인 시스템이다. 주식 거래의 주요 변화는 ECN이라 불리는 전자적 의사소통 네트워크의 발달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나스닥 거래의 산물로서 성장한 것이다. 뉴욕증권거래소처럼 비영리 조직인(이것은 아이로니컬한 얘기일 수도 있다.) 나스닥은 중앙의 거래 객장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컴퓨터 네트워크에 기반한 전자적 시장일 뿐이다. 전자적 거래를 촉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규정들로 인해서 ECN은 나스닥 시스템상의 고객들로부터 주문을 받고 주문이 체결되면 수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잠재적인 수익에 끌린 많은 회사들이(이 중에서 일부는 월가의 대규모 중개사들이다)사적인 전자적 거래 네트워크를 세웠는데, 이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로이터 그룹의 자회사인 이스티넷이다. 이런 네트워크들은 나스닥이나 뉴욕증권거래소를 속박하는 엄격한 규제들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투자가들은 익명으로 거래할 수도 있다. 이런 이점 때문에 기존의 거래 시장들도 같은 일을 하려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주식 거래는 한층 더 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실제로 1999년에 뉴욕증권거래소는 자체적으로 전자적인 거래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는지 연구했고 나스닥과 함께 통합 가능성을 조사했다. 그것이 현실화되면 앞으로 전자적인 거래의 역할은 극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금융적인 거래에서 나타나는 변화들은 1997년 이후 인터넷 중개사들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대부분이 개인 투자가인 일일 거애인(day-trader, 단타매매자)들은 종종 인터넷 관령 주식들에 투자하면서 그런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1999년 미국에서는 전자적인 거래가 개인 투자가들의 거래의 25퍼센트 가량을 차지했다. 우수한 중개업 회사들이 이런 거래에 참여했는데, 특히 찰스 슈왑은 온라인 거래 시장의 27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이를 주도했다. 1998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모든 자본금(equity) 거래의 14퍼센트는 온라인 거래였다. 이것은 1997년에 계좌수를 730만으로, 고객 자산을 4,200억 달러로 배가시켰다. 고객 자산이 4,200억 달러가 된 것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1998년12월의 독일 주식을 전체 가치의 35퍼센트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온라인 투자와 고객 자산의 규모는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까운 장래에 무시할 수 없는 자본의 원천이 될 것이다.
숨은 의미들은 무엇인가? 왜 투자분야의 신기술이 문제가 되는가? 첫째, 신기술은 능동적 거래와 관련된 거래 비용을 상당히 떨어뜨린다(온라인 거래 수수료는 미국에서 1997년에 50퍼센트나 떨어 졌다.) 그래서 훨씬 더 많은 개인 투자가들이 거래에 참여한다. 둘째, 신기술은 수백만의 개인들에게 투자기회들을 열어주면서 컴퓨터 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가치와 기회들을 열어주면서 컴퓨터 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가치와 기회들을 평가한다. 그렇게 되면, 한편으로 개인 투자가들이 직접 투입하는 엄청난 정보가 자본의 이동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투자의 변동성이 증가하는데, 이는 부자패턴들이 극히 탈 집중화되고, 투자가들이 증권사에 들락날락하고, 시장의 흐름들이 거의 즉각적인 반응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집중화된 시장의 쇠락과 전자적 거래에 대한 느슨한 규제는 자본 이동의 추적을 훨씬 더 어렵게 한다. 점증하는 투자의 비밀성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자본이 들어오지만 소액 투자가들은 어둠 속에서 투자하게 된다. 그 결과 투자는 점점 더 탈 집중화되고 개인 투자가들은 주식거래에 더 많이 참여하지만, 그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수준은 느슨한 규제로 가능해진 비밀성과 익명성 때문에 더 낮아지게 된다. 이와 같은 흐름은 전반적인 투자 패턴에 불확실성을 더한다. 투자하는 사람들은 늘지만 컴퓨터 화면에 핵심 정보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그렇게 해서 복합성과 변동성은 더 커지게 된다.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전자적인 거래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유럽에서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금융시장과 전 세계 금융시장의 상호 의존성을 감안할 때, 미국 시장의 움직임(예를 들어 인터넷 주식의 피할 수 없는 상증 혹은 하락)은 전 세계의 금융시장들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요컨대, 상호 의존적인 전 세계의 금융시장들은 자동항법(航法) 장치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흐름을 목격했다. 대규모 기관투자가들의 치열한 경쟁 외에도 수백만의 투자가들과 헤지 펀드 같은 투기적 투자가들의 게릴라 전술은 상충하는 신호들로써 시장 회로를 차단한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대 속에서 시장가치들에 대한 상호적이고 모순적인 평가에서 비롯되는 이와 같은 복합적 거래망은 정부와 금융기관 그리고 특정한 사업 집단들의 통제를 벗어난다.
경제적인 계산보다는 무작위적인 움직임이 시장의 흐름을 규정하는 기본적 동인인 것 같다. 그래서 그 무작위적인 자동인형은 번창하고, 성장과 부를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탈(脫)투자와 위기를 촉발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우리의 세상을 재규정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역동성에서 (극히 중요하기는 해도) 단지 하나의 요인일 뿐이다.
3. 생산성, 신기술 그리고 신경제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상호 의존성은 1997년~99년의 신흥 시장 위기에서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그 위기는(1994년의 멕시코 위기를 이어)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을 강타했고 (1997년) 러시아(1998년)와 브라질(1999년)을 때린 후 전 세계로 퍼졌다. 세계 경제는 그런 충격을 흡수했다. 신흥 시장에 대한 투자 때문에 곤경에 처한 대부분의 외국 은행들은 IMF 주도의 정책으로 지원을 받았다. 자본 흐름은 그냥 방향을 바꿔 유럽과 미국 시장으로 향했다. 예를 들어 1996년에 말레이시아·필리핀·한국·태국·인도네시아로 들어간 민간 자본 흐름은 930억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1997년에는 120억 달러가 빠져 나갔고 1998년에 다시 90억 달러가 빠져 나갔다. 이와 같은 1,140억 달러의 자본 흐름 변화는 그들 국가들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렸고 대부분의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에서 심각한 경기 불황을 초래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자본 투자는 계속 해서 늘어났고, 미국의 주식시장 가치는 1999년 역사적인 고점에 도달해 다우존스지수가 1만 1,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유럽의 주식시장들도 1999년 중반에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적 시스템은 탄력성이 있어 이와 같은 투자의 지리적 분배가 가능하고, 그래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대부분의 국제적 투자자들은 그렇지 않다. 일부 국제적 투자가들은 오히려 저평가에서 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런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하거나 그냥 운이 좋으면 말이다.
위기가 신흥시장이나 혹은 일본처럼 선진적이지만 위태로운 경제를 때릴 때, 투자 흐름은 서구의 앞선 경제들에서 새로운 기회들을 찾는다. 1997년~98년에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 브라질의 주식시장들이 상당히 저평가 되었을 때, 미국의 주식시장은 31퍼센트 상승했고 독일의 시장은 54퍼센트 상승했다. 신흥 시장들의 위기 기간 동안, EU에 속한 국가들은 유로화로의 순조로운 이행의 도움을 받아 실적이 좋았고, 호황을 맞은 미국 경제가 전 세계에서 투자와 수출을 흡수해 세계 경제는 성장과 역동적인 안정을 유지했다. 국내 소비와 주식 재평가가가 주도하는 신경제의 밝은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미국은 1998년에 3.9퍼센트의 성장을 달성하면서도(특히 1998년 4분기에는 6.1퍼센트의 놀라운 성장을 달성했다) 인플레이션은 낮았고, 사실상 완전 고용을 이루었으며(실업률은 1997년 8월에 4.2퍼센트에 불과했다), 연방 예산의 흑자를 기록했다(물론 경상수지 무역적자의 상당한 증가라는 대가를 치르기는 했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는 전 지구적인 불황에 빠지지 않았다. 실제로 1999년에 대부분의 아시아 경제들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섰는데, 여기에는 수출 경쟁력의 복원과 주식 및 자산의 매력적인 가격에 끌린 해외투자의 재유입이 큰 역할을 했다.
세계 경제의 회복에서 중심 역할을 한 것은 미국 경제의 실적이었는데. 이로 인해 직접투자와 주식투자 모두에서 해외자본을 끌어들이는 선순환이 나타났다.
유럽의 기업들은 1996년에 미국의 기업들을 인수하는데 585억 달러를 썼고 다시 1997년에 484억 달러를 썼는데 그와 같은 대서양 횡단 투자를 한층 강화해 1998년과 1999년의 처음 두 달 동안 무려 2,800억 달러를 지출했다. 예를 들어 다임러벤츠는 크라이슬러를 인수했고, 영국 석유는 아모코를 인수했으며, 보다폰은 에어터치 커뮤니케이션스를 인수했다. 미국의 기업들도 유럽에서 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가령 포드는 볼보의 자동차 사업을 인수했다). 레스터 서로(Lester Thurow)가 예측했듯이, 새로운 대서양 연결 축이 전 지구적인 경제 외 중심으로서 정립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시스템은 다소 더 복잡하다. 한편으로 지리적인 비유는 자본과 지역의 전 지구적인 흐름의 복합성과 속도를 설명할 수 없다.
국가나 경제적인 지역보다는 네트워크가 새로운 전 지구적, 경제의 진정한 설계사이다. 이런 식으로 아시아의 불황은 유럽과 미국의 기업들에 엄청난 투자 기회들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기회들을 태국, 한국 혹은 일본에서 잡았다. 일본의 금융시장은 마침내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들이 일본의 은행과 저축 조합들을 인수하거나 이에 참여함으로써 금이 가고 있다. 이것은 외부의 영향을 거의 막지 않던 거대한 저축시장에 대한 전 지구적인 접근을 나타낼 수도 있는데, 투자 기회만 있다면 수천억 달러의 자금이 세계 경제에 언제나 동원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기회들은 있는가? 그 답은 한편으로 우리가 미국의 신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 EU가 자신들의 사회적 모델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 ‘새로운 경제’에 참여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이 불가능 하다면 유럽인들은 그런 변화에 저항할 것이다.
미국 경제의 실적 뒤에 숨은 비밀은 무엇인가? 그리고 소위 말하는 ‘신경제’는 무엇인가? 신경제는 어떻게 1998년에 그랬던 것처럼 매월 22만 5000의 일자리를 (그리고 1997년 7월에는 31만의 일자리를) 늘리고 시간당 임금을 연간 4퍼센트 가량 높이는 성장을 이루면서도 1.6퍼센트의 인플레이션을 유지할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한 답은 생산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같은 일부 경제학자들은 예외이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정보기술과 주요한 조직 변화(무엇보다 네트워킹)가 생산성의 급격한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네크워크 사회의 부상(The Rise of Network Society)』이라는 내 책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가 상당한 생산성 증가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새로운 정보적/전 지구적 경제를 측정하는 우리의 통계적인 범주들의 심각한 부적절성이고 둘째는 생산성 증가가 실현되는 데 필요한 신기술 혁신과 조직 변화간의 시차이다. 첫 번째 장애는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의 새로운 세상을 이행하는 데 주요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지만 통계치들이 실제적이 생산성 증가를 저평가하는 오류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비단 첨단 기술과 발전된 사업 서비스 분야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미국 경제에서도 그러하다. 1992년 2월 23일의 미 의회의 증언에서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이렇게 얘기했다. 즉 비(非)금융적인 기업들의 생산성은 지금의 사업주기 에서 평균 2.2퍼센트 성장해 1980년 후반의 1.5퍼센트와 비교된다. 전체적으로 생산성은 1995년~98년에 평균 2퍼센트 증가해 1973~95년의 2배에 해당한다. 그린스펀은 생산성 증가의 기원을 1993년으로 보았는데, 그때 특히 정보기술 장비를 중심으로 자본 투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새로운 장비에 대한 사업적 지출은 미국에서 1994~98년에 60퍼센트나 증가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소프트웨어, 통신 그리고 컨설팅 같은) 정보 기반 산업으로서, 이들은 연간 3.7퍼센트의 비율로 고소득 일자리를 추가해 다른 산업들의 경우보다 2배나 앞섰다. 이와 같은 흐름은 1998~99년에도 계속되었다. 1998년 4분기의 전반적인 노동 생산성 증가는 4.6퍼센트에 달해 6년 만에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그리고 199년의 GDP 성장은 3퍼센트 내외가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1999년 9월에 미국의 유수한 경제 예측 기관인 MA(거시경제 조언가들)가 발표한 보고서는 정보기술에 대한 투자 붐이 계속되는 한 연간 생산성 증가율은 2.3퍼센트 내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정보기술은 여러 면에서 이 새로운 경제의 핵심에 있다. 이것은 컴퓨터와 VCR부터 일반적인 가정용품들에 이르기까지 장비와 소비재 모두의 가격을 낮춘다. 정보기술은 개인용 컴퓨터 중심의 운영 체계(OS) 기술에서 (협동적인 서버들이 움직이는 전자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탈 집중화되는) 정보 공유 기술로 전환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세대와 제품과 철자들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전례가 없는 속도로 일자리와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주식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면서 인터넷 주식들의 급등을 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인터넷 신기술로 인해 소액 투자가들이 자신들의 전략을 따르면서 전자적으로 거래하고 그럼으로써 이전의 흐름들에 기반한 합리적 기대와는 무관하게 주가를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인터넷 주식들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으며, 어쩌면 여러분이 이글을 읽을 때쯤 무너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투자가들은 계속해서 그것이 오늘이 아닌 내일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결전의 날을 계속 연기시키고 있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동안에 인터넷 산업에 모여든 엄청난 자본은 이미 전반적인 사업과 정보기술의 영역을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대부분 아직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인터넷 기업들의 시가 총액은 산업 시대의 거대 기업들에 비해 과도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1999년 1월에 직원이 1만 명인 아메리카 온라인(AOL)의 시가는 664억 달러였다. 이에 반해 직원이 60만 명인 GM의 시가는 524억 달러였다. 예를 하나 더 들면, 직원이 673명인 야후! 는 시장 가치가 339억 달러였다. 순전히 투기인가? 비현실적인 경제인가? 사실 이것은 흐름에 대한 기대이다. 1995~99년의 S&P 상위 5위 성장주들은 델컴퓨터(5년간 9.402퍼센트 상승) 시스코 시스템스(2.356퍼센트), 선 마이크로시스템스(2.304퍼센트), 퀄컴(1.646퍼센트), 찰스 슈왑(1.634퍼센트)이었는데 이들 모두가 인터넷이나 관련 분야의 기업들이다. 인터넷 주식 열풍은 사실 경제가 가치와 성장의 새로운 원천으로 이동하는 지표이다.
4. 정보성장은 지속적인 것인가?
이 용감한 새로운 경제적 세상에는 역설이 없지 않다. 1999년 초는 네트워크 경제가 미국에서 성장에 가속이 붙는 시기로서 주식시장들의 가치는 대서양 양쪽에서 증가하고 있었다.
그때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이 일어나 정보 기반의 세계자본주의가 비상과 동시에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널리 퍼져있었다.<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의 계산에 의하면 1999년에 조사 대상 15개 부유한 경제들 중 14개에서 생산자 가격이 떨어졌다. 1999년 2월 에 소비자 가격(물가)의 인플레이션은 부유한 경제들에서 평균 1퍼센트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유로 지역에서는 1998년에 소비자 가격이 0.8퍼센트 증가했다. 프랑스의 연간 인플레이션 비율은0.3퍼센트였고, 독일은 0.5퍼센트였다. 중국의 소비자 가격은 1.2퍼센트 포인트 떨어졌으며, 생산자 가격은 8퍼센트 포인트 떨어졌다. 그래서 중국정부는 가격 통제를 통해 그것들을 유지하려했다. 1998년에 대부분의 신흥 경제들은 자국 통화를 방어하기 위한 긴축정책으로 성장을 기록했고, 투자는 자본 유출 때문에 감소했으며 일본 경제는 불황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섬유, 조선, 화학 그리고 여러 제조업에서 과잉 시설이 초래되었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던 미국에서도 1998년 3월 사이에 33만 7,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자동차 업계는 세계적으로 30퍼센트의 미사용 시설을 갖고 있었다. 1990년대에 특히 아시아에서 생산 시설이 과도하게 증산된 탓으로 공산품의 공급 과잉이 초래된 것 같았으며, 그로 인해 제품가격은 때로 생산비 이하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이코노미스트>지수에 의하면, 현 물가 역시 1997~98년에 30퍼센트나 하락해 15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했다. 석유가격은 1973년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흥 시장들은 경제 위기로 비틀거리고 있었고, 일본은 정치적인 마비 때문에 경제적인 개혁이 부진했으며, 유럽중앙은행은 아직도 이자율을 통해 유럽 경제들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자본주의는 미국 경제의 실적에 의존하고 있었다.
디플레이션은 인체 속의 콜레스테롤과 비슷하다. 즉 그것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나쁠 때는, 아주 나쁠 때는, 그것이 경기침체의 결과로서 수요 감소를 나타낼 때이다. 좋을 때는, 아주 좋을 때는, 그것이 (대개는 기술 혁신으로 인한)생산성 증가를 나타내고(네트워킹과 탄력성 때문에) 기업들의 수준과 (유로의 출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시장 통합과 낮은 거래비용 때문에) 거시 경제적 측면의 양쪽모두에서 경제적 관리의 더 큰 효율성을 나타낼 때이다. 어느 모로 보나 금세기 말의 세계자본주의는 디플레이션의 두 가지 측면, 그러니깐 나쁜 측면과 좋은 측면 모두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들은 서로를 상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세계의 여러 지역들에서 고르게 분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미국 경제는 신기술과 네트워킹의 지원을 받아 빠른 속도의 정보-성장(info-growth)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에 많은 신흥 경제들은, 특히 남미와 침체된 아프리카의 경제들, 구소련 그리고 그밖에 많은 다른 국가들은, 낮은 현물가격과 긴축정책 때문에 불황과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1999년 여름에 일본은 경기 불황에서 벗어나는 듯했으며,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은 다시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1999년 전반의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성장세를 회복했다. 그들은 수출 증가의 덕을 보았는데, 그것은 주로 달러에 대한 유로의 약세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의 회복은 불안정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들은 부분적으로 미국의 강력한 수요에 기인한 것이었고, 일본과 동남아에서는 새로운 정부 지출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성장의 원천들을 유럽과 뒤를 이어 일본이 적용하거나 이에 적응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되면 주요 경제들은 정보 성장의 새로운 패턴 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세계자본주의는 그 중심부에서 번창할 것이고 훨씬 더 선택적이고 조심스런 방식으로 신흥 시장들의 경제를 다시 연결시킬 것이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이 그와 같은 정보-성장 모델에 합류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유럽의 국가들이 만든 그 제도적인 자동인형 [그러니깐 유럽중앙은행에 있는 빔 뒤젠베르크(wim dujsen-berg)와 그가 이끄는 반(反)인플레이션 전사들]이나, IMF의 신고전주의적인 세계여행자들이 계속해서 (경제적 역사에서 하나의 소음에 불과한) 인플레이션 시대의 두려움에만 얽매인다면, 그들은 잘못된 관리 때문에 자본주의라는 배를 난파시킬 수 있다. 이런 일은 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다. 게다가 일본과 유럽에서 네트워킹의 탄력성과 기술 혁신을 복지국가 해체와 노동자 권리의 축소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면, 사회적인 투쟁과 정치적인 반동의 역풍이 불어 개혁과 혁신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대치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이제는 전 지구적인 실적에 상호 의존적인 미국 경제의 성장 능력은 고갈될 것이다. 미국은 계속해서 자기혼자서만 전 세계 산출의 점점 더 많은 몫을 생산하고 소비할 수 없다(비율은 현재 전 세계 GDP의 4분의 1을 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국내 소비가 여전히 경제 성장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가계저축은 너무도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생산성 증가는 지출할 돈이 있는 누군가에게 산출을 판매해서 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이 그 확대에 동참하게 되든지, 아니면 미국이라는 기계가 작동을 멈추고 밑으로 곤두박질을 치게 될 것이다. 주식의 가치 하락은 기업과 가계들이 장부상으로 축적한 재산을 잠식할 것이고, 신기술이 주도하는 생산성 잠재력은 과잉 능력으로 변질되어 세계적인 규모의 나쁜 디플레이션이라는 침체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5. 실리콘밸리들의 세상?
이런 상상을 해보자.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어찌 수를 내서 뒤젠베로그를 꼬드기거나 설득하거나 협박한다. 그리고 유럽중앙은행이 마침내 EU에서 낮은 인플레이션의 성장이 일어나도록 허용하는데 동의한다. 상상력을 더 발휘해서 이런 경우를 가정해보자. 영국 노동당이 추구하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정보-자본주의에 대한 '제3의길' 접근법이 유럽의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그래서 그들은 양키들이, 더 심하게는 캘리포니아인 들이 되지 않고도 네트워크 사회에서 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다음에는, 허구적인 정치적 경제학의 신격화 속에서 IMF와 세계은행이 긴축을 강요하는 대신에 성장을 위한 대출을 시작하기를 희망하자. 그러면 신기술이 주도하는 생산성, 금융적으로 지원되는 성장 그리고 사회적 및 제도적 개혁으로 이뤄지는 선순환 속에서 세계 자본주의는 번창할 것이다. 우리는 비록 자본주의의 환생이기는 해도 정말로 새로운 정보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고려한 것들에는 아직도 인류의 상당 부분이 배제되어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세기말 폭풍우를 헤쳐 나간다는 이 희망적 가설이 실현되려면 미국! -NAFTA 경제권과 EU 그리고 일본의 역동적 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또 신흥 시장들의 선택적 통합도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1990년대의 전 지구적인 투자흐름들을 특징지었던 그 부주의성을 더 이상 갖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들의 역할이 커졌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투자가들이 더 조심성을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인데, 이들은 각국의 정부들과 국제적인 기관들의 대규모 지원에 의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흔히 말하는 투기적 투자는 계속해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야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요 금융적 선수들이 빠른 반응 시스템들을 개발해 자본 손실을 최소화 할 것이다. 일부 규제적 절차들은 이미 시행에 들어가 세계 금융시장의 핵심으로 번지는 파괴적 영향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 국제적인 투자가들의 이와 같은 새롭고 비교적 조심스런 전략은 (1997~98년의 위기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으로서) 신흥 시장들에 대한 훨씬 더 제한적인 침투, 주식과 직접투자 모두에서 최고의 기회들만 추구하는 것 그리고 투자 대상 국가들이 자율성을 길러 결국에는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국제적인 투자가들로 하여금 비합리적으로 위험한 조ㄶ 8;가 되지 않는 길을 찾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상당수의 기관들이 당분간은 세계 자본주의의 역동적인 네트워크들에서 떠나 있게 된다. 소위 신흥시장들은 1998년에 전 세계의 시장 가치에서 7퍼센트 가량만을 차지했지만 전체 인류에서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85퍼센트 가량이었다. 많이 잡아 신흥 경제권에서 인구의 20퍼센트가 이와 같은 역동적 네트워크들 속에서 경제 성장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게 된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전체 인류의 3분의 2이상은 세계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 살면서도 그 혜택의 대부분에서는 배제된다. 여기에다 선진국들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상당한 수의 사람들을 보태면,(그 네트워크들 안에 있거나 밖에 있다는 이분법적 노리에 의한) 소외 계층의 비율은 크게 늘어난다. 미국에는 전례가 없는 호황의 와중에도 또 다른 소외 계층이 존재한다. 즉 미국 인구의 15퍼센트 가량은 빈곤선 밑에서 살고 있으며(모든 아이들의 25퍼센트 포함), 550만의 인구가 형사적인 사법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감옥에 있는 200만 가량의 인구 포함) 나는 다른 곳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즉 세계자본주의의 현재의 특성들과 새로운 신기술 시스템사이에는 체계적인 관련성이 있다. 이것은 정보기술이 교육과 네트워킹 능력의 불균형을 초래해 불평등과 소에 증폭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신기술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다만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려는 의도적인 노력 속에서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교육적인 기회의 불평등은 내가 이곳에서 말하고자하는 논점이 아니다. 내 질문은 이것이다. 그런 흐름이 지속될 수 있는가? 내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기술이 주도하는 실리콘벨리 식의 사회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대한 환상, 금융적인 모험주의, 문화적인 개인주의, 빈곤의 지역들이 둘러싸고 있는 첨단기술의 다도해, 전 세계의 대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존을 위한 투쟁은 도덕적으로 의문시됨은 물론,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및 사회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근본주의의 출현, 새로운 전염병들의 전파, 전 지구적인 범죄적 경제의 확대, 생물적 및 핵적인 테리리즘에 대한 공포,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 인간성 상실들은 이와 같은 역동적이면서도 배타적인 세계 자본주의 모델의 잠재적인 결과들이다(그리고 많은 것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요컨대, 정보-자본주의가 지속될 수 없는(상호 연관되어 있지만) 서로 다른 세 가지 원천이 있다.
*세계 금융시장들의 내연(內然) 가능성
*기술 혁신, 조직 네트워킹, 자본의 이동성으로 촉발된 생산의 엄청난 증가에 비해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요로 야기되는 스태그네이션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인간성을 무시하거나 타락시키는 논리를 갖고 있는 자동인형을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거부함
6. 자동인형 길들이기?
아시아의 1997년 위기와 그 후유증(러시아, 브라질 그리고 그 너머에까지 파급된)은 국제적자본가들은 자신감과 전문성을 뒤흔들었다. 아프리카의 대학살과 에이즈의 만연, 아동과 여성의 국제적인 거래, 전 세계 산림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는 빠른 속도의 파괴 그리고 범죄적인 네트워크들의 공공기관들을 접수하는 흉측한 모습은 선의의 자선 사업가들로 하여금 정보적이고 전 지구적인 자본부의로 가는 덜 파괴적인 길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다보스에서 열린 1999년 세계경제포럼은 전 지구적인 자본의 흐름을 규제 및 통제하고 시장을 흔드는 투기적 이동을 막기 위한 여러 제안들을 토론에 부쳤다. 그곳에서는 물론이고 의사 결정권자들이 모인 다른 포럼들에서도 수많은 제안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들의 실행에는 주요한 기술적 장애들이 있다. 금융 시장들 간의 전 지구! 적인 전자적 연결을 감안 할 때, 자본의 대규모 이동을 막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와 같은 이동은 컴퓨터 명령으로 몇 초 만에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은 규제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국가들에 점점 더 많은 수의 해외기지들을 개설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은 자본이 마음대로 이동하면서 원한다면 그 출처와 행선지를 숨기는 것도 가능케 한다. 많은 금융상품들은 여러 시장에서 비롯되는 가치들의 인공적인 결합이기 때문에, 그것들의 요동은 자본의 실제적인 이동과 무관하게 전 세계의 시장들에 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주제들이 국제적으로 합의되고 국제적으로 시행되지 않는 한, 자본의 이동을 지속적으로 규제하는 국가들은 자본흐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네트워크 경제의 주요특성 으로서 금융적인 측면에 압축되어있다, 그러니까 과도한 혼란 없이도 지리적인 영역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능력인데 투자와 교역의 네트워크들을 잘 활용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끝없는 흐름 속 순환 속에서 순식간에 일어난다. 자본 통제를 효과적으로 시행하는 정보들이 예는 모두 토론해서 등장하고 있다.
자본통제에 대한 반대의견은 세 가지의 주요논점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무제한적 자본에 대한 재본의 근본적 권리에 관한 시장 근본주의자의 논점이다. 이런 주장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피해에 대한 많은 증거들을 앞에 놓고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와 같은 피해는 이제 네트워크 기술과 전 지구적 전염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두 번째 논점은 국제적 인공조의 필요성을 지적하는데 적어도 G7국가들과 그들의 관련 네트워크들은 새로운 규제적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제안들은 아주 많고 그중에서 일부는 이 체계에서 다뤄지고 있다. 셋째는 그와 같은 통제들이 전자적 네트워크의 시대에서 기술적으로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컴퓨터공학자인 내 동료들은 이런 의견을 개시한다. 전 지구적인 규제적 환경은 기술적으로 실행이 가능한데 그것은! 바로 전자적 신기술의 뛰어난 보편성과 정확성 때문이다. 장부기장은 이제 전자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그래서 전 지구적인 금융적 검사는 사실상 해독이 불가능한 패스워드를 사용해 법적으로 검사의대상이 되는 모든 거래에 접근할 수 있다.(이와 같은 패스워드는 이미 존재 하는데 겨우 4.096비트의 코드만 있으면 된다.)속도와 복합성은 새로운 신 기술적 환경에서 모드 작용하고 있다. 그 자동인형은 그 녀석(이것은 분명이 여성이 아니다.)을 계속 움직이게 하면서도 붙잡아 둘 수 있는 전자적인 코드들과 명령들로 점철될 수 있다.
이모든 논쟁은, 그리고 그것들의 연장으로서 다양한 포럼들에서 행해지는 금융규제에 관한 논쟁은 당분간 전적으로 항구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들은 미국정부에 반대에 직면해 있다.[미국정부의 입장은 최근에 로버트 루빈(Robert Rubin)과 래리서머스(Larry Summers)가대변하고 있는데, 가까운 장래에 그들의 사고방식이 변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부속기구인 IMF의 반대에도 직면해 있다[IMF는 공식적으로는 존경받는 프랑스의 기술 관료가 의장직을 맡음으로써 그 독립성을 과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명석한 MIT출신의 스탠리 피셔(Staniey Fisher)가 좌우하고 있다]. 미국의 협조 없이는 루빈과 그의 동창생인 월가의 제안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인 금융 규제가 불가능하다. 그들이 제안하는 것은 더 좋은 전 지구적 정보 시스템들과 정부, 은행, 기업들의 회계 절차와 장부 기장에서의 더 많은(투명성) 그리고 더 안정적이고, 신속한 파산법들이다. 아울러 IMF에 더 많은 돈을 넣을 것도 제안하는데, 그렇게 하면 최후의 대출자인(혹은 금융적인 기동타격대인) IMF가 금융적인 혼란의 위험에 처한 국가들에 간섭하거나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그 대가로 IMF는 안전한 전 지구적 투자환경이 회복 될 때 까지 그런 국가들에서 경제적인 통제력을 행사 한다.) 왜 미국은 전 지구적인 금융규제에 그렇게도 완강하게 반대하는가? 그리고 왜 미국은 미래에도 그렇게 할 것 인가? 그 답은 간단하다. 현재의 시스템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와 미국 기업들에 큰 이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지구적 투자에 점점 더 많은 몫을 유통시키는 미국의 금융 회사들에 그러하다. 미국의 경제는 신기술과 네트워킹, 정보 그리고 경영에서 엄청남 경제력을 갖고 번창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특히 클린턴 행정부는 신흥 시장들의 개방시키고 전 세계에서 규제들과 정부의 통제들이 해체 되도록 요구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의 확대 노력에서 선봉에 섰다는 증거가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노력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 했다. 금융적인 흐름들의 역류가 초래하는 고통을 다른 국가? 湧?경험 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위기들은 미국과 나토의 군사적인 우월성을 감안할 때 즉각적인 지정학적 위험들을 초래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영역 안에서 억제 될 수 있다. 미국경제는 전 지구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경제에서 혼자서 성장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 정부와 IMF는 일본과 유럽의 리플레이션의 대한 압력을 가하면서, 전 지구적인 금융적 평형을 위협할 수도 있는 브라질 같은 신흥 시장들을 안정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금융적인 위기가 일어나려고 할 때, 그것의 현실적인 관심을 보이며 모든 것은 괜찮을 것이고, 세계자본주의는 계속 번창할 것이며, 미국의 자본주의는 다시 그 핵심에 설 것이라고 믿는다.(설사 그 핵심이 이제는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의 한 꼭지에 불과 하더라도),세계의 빈국들에 대해서는 밑으로 퍼지는(Irickled - down)경제적 혜택과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특정한 프로그램들, 국제적인 자선단체들이 돕는 민초들의 생존노력 그리고 인구 증가를 안정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계획을 결합해서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숨을 가다듬고 전 지구적인 금융규제의 진지한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그런 일은 극적인 금융적 위기나 사회적 요동의 정보 -자본주의를 때릴 때 만 일어날 것이다.
7. 위대한 탈선?
자본 흐름과 컴퓨터 네트워크가 실현시키는 포괄적이고 통합적
인 전 지구적 경제가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가선다는 순진한 환상을 1997년 7월 2일에 경제적인 위기가 아시아를 강타하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새천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우리는 대신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고 전 세계의 대부분의 지역들이 전 지구적인 정보 자본주의의 성장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본다.
주유한 경제들, 이를테면 (인류의 3분의1일상을 차지하는)중국과 인도는, 전 지구적인 자본 흐름의 관점에서 아직도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고 있다. 금융적인 변동성의 충격으로 고통을 겪은 국가들, 이를테면 인도네시아나 러시아는 자국 경제의 시장 부분을 축소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농촌 지역으로 상당한 회귀를 목격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면서 무너져가는 대도시 지역을 떠나고 있다. 1998년 12월에 러시아 주식들의 총 가치는 미국의 온라인 서적 판매상인 아마존 시가 총액의 절반가량이었다.(러시아의 가치는 120억 달러였고 아마존의 가치는 254억 달러였다). 하지만 삶의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경제의 절반가량은 물물교환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때문이고, 외국에서 상품을 수입할 수 가 없어 러시아의 국내 생산의 촉진되었기 때문이다.(이것은 개발 전략으로서의 수입 대체가 재현되는 흥미로운 상황이다.)1999년 3월에 브라질은 긴축정책을 실시하라는 IMF의 압력을 굴복했다. 그래야만 마지막으로 남은 통화 보유고를 유지하고 추가적인 평가절하와 뒤를 잇는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사회적 및 정치적 대가는 아주 높아서 사회 불안의 위험이 가중되며 그에 따라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이 증가했다.(일본)은 고집스럽게 자신들의 방식대로 경제를 재건하려 하면서, IMF와 미국에서 분리되는 아시아 지역과 아시아 투자 펀드를 제안하기도 했다. EU는 프랑스가 지배하는 카리브 해 식민지들의 이익을 대변했고, 미국은 에콰도르와 중미에서 바나나를 수확하는 과거 식민지적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했다. 그것은 비틀린 세계화의 새로운 역설이었다. 그와 동시에 EU 집행위원회는 부패스캔들에 휩싸이면서 결국에는 집행위원들 모두가 사퇴하고 말았다.
이처럼 고르지 않고 연결된 전 지구적 시스템은 아주 취약한 것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금융적인 불안정(아마도 인터넷 주식들의 붕괴나 전자적인 거래 네트워크들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런 공황 때문에 야기될 것이다)이 또 다시 출구로 달아가는 대규모 탈출을 촉발할 수도 있다. 이번에는 정부들과 사회들 혹은 전체 사회를 구성하는 상당한 부문들이 세계 자본주의에서 탈퇴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반드시 대안적인 시스템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삶과 특정한 이해들 그리고 가치들에 대한 나름의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9년 8월에 미국에 많은 원유를 공급하는 베네수엘라는 민족주의적 개혁의 민주적인 과정을 시작하면서, IMF가 부과하는 긴축정책 같은 것은 반아들이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 위대한 탈선( the great disconnection)은 단순한 정치적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씨앗들은 이미 세계 자본주의의 사회적 구조 속에 뿌려졌다. 그것들은 앞으로의 역사 전개에 따라 자랄 수도 있고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현재의 지배적인 국가들과 기업들을 관찰함으로써 그런 흐름들에 대한 대응 방법을 알 수 있다. 자본과 신기술, 정보 그리고 교역의 네트워크들은 재편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추릴 수 있는 것은 추리고 그럴 수 없는 것은 나무에 썩은 인간의 살점을 버릴 것이다. 나는 그런 대응이 다음번에 그렇게 쉽게 통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보 시대는 이와 다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유방임적인 정보적-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공통체적인 퇴행 사이에서 선택 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정보기술(이를테면 윤리적으로 통제되는 유전공학)은 마음의 힘과 사회의 복지 사이의 선순환적인 상호작용의 약속을 실현시킬 수도 있다. 굳이 미래를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그냥 주위를 보면 핀란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용감한 시도들을 볼 수 있다. 핀란드는 자기 나라의 최초의 진정한 정보 사회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조용히 추진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웹 사이트를 주고, 모든 학교에서 인터넷 접속을 가능케 하고, 성인들은 대상으로 컴맹 퇴치 운동을 벌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컴퓨터와 이동정화를 보급하고 노키아를 필두로 전 지구적으로 경쟁적인 정보기술 산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서도 그들은 약간의 조정을 거쳐 복지국가 모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핀란드사회는 시민의 참여를 촉진하고 시민권을 보호한다. 어쩌면 그래서 리누스 토잘즈(Linus Torvalds)가 핀란드 사람인지도 모른다. 토잘즈는 소프트웨어 혁신가로서 헬싱키 대학에 다니던 21세의 학생시절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보다 훨씬 더 좋은 운영체계인 리눅스를 개발해 인터넷에서 무료로 배포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개방형 접근 소프트웨어 코드 운동의 확산에 기여했고 그 결과 수천 명의 리눅스 사용자들이 온라인에서 그 코드의 개선에 기여했다. 현재 1000만 명에 이르는 리눅스 사용자들은 그것이 어떤 유닉스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들의 집합적인 마음이 그것을 계속해서 개선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개방형 정보기술은 훨씬 더 좋은 정보기술에 공헌하면선 전 세계의 마음들이 삶을 위해 신기술을 사용하도록 힘을 주고 있다. 그 일에는 자신들의 삶을 주식에 매지 않고도 돈을 버는 것이 포함된다.
특이할 점은 리누스 토발즈는 현재 실리콘벨리에서 살고 있다.
2006년 11월 12일
경제적자유와평등 제 1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