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영화는 ‘팩션(faction)’이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이 결합돼 있어 역사 공부에 혼동을 준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영상에 익숙한 중학생들에게는 지루한 암기식 공부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단, 흥미를 넘어 지식까지 얻고 싶다면 책·다큐·기사 등을 활용한 영화 속 팩트 체크가 필수다. 영화 속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고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사 내공을 다질 수 있는 방법을 단계별로 살펴봤다.
취재 백정은 리포터 bibibibi22@naeil.com
도움말 김정미 작가(<한국사영화관>지은이)·이정현 교사(울산 남목중학교) 참고 <한국사 영화관>
편집부가 독자에게 ... 한국사 ‘공부’하지 마세요~ 이번 기사를 맡고 내심 후회했습니다. 학창 시절 국사 성적이 유독 나빴던 기억 때문이죠. 나름 공부를 못하지 않았는데 그땐 국사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요. 세월이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역사에 대한 울렁증이 남아 있을 정도죠. 그런데 취재를 위해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내 머릿속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역사는 예전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울산 남목중 이정현 선생님의 조언 덕분이었죠. 학생 여러분들도 한국사 책을 대할 땐 전투적인 자세를 버리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따라가보길 권합니다. _백정은 리포터 |
흥미와 지식 잡는
한국사 단계별 학습법
STEP 1 천만 영화 속 역사적 배경, 책에서 찾아보기
역사를 알고 보면 영화가 더욱 풍성하고 재미있어 진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권력 다툼과 붕당 정치가 극에 달했던 조선시대 광해군 8년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사 영화관>을 지은 김정미 작가는 “영화는 광해군을 재조명하는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고뇌하고 백성을 위했던 왕의 모습을 재발견해 사람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부각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는데, 분량이 한 페이지밖에 되지 않아 영화 감상 전후에 쉽게 읽어볼 만하다. 더 자세한 역사가 알고 싶다면 청소년용 역사책을 찾아보면 된다. 예를 들어 강홍립이 왕의 밀지를 받고 출병해 후금에 항복한 사건을 교과서에서는 10줄에 담고 있지만,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에서는 몇 배의 분량으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교과서보다 두껍지만 관심있는 시대만 부분적으로 찾아 읽어도 되니 겁먹지 말자.
STEP 2 영화 속 팩트 찾기
영화를 통해 역사에 대한 흥미와 지식을 모두 얻으려면 영화 속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고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도움으로 <광해, 왕이 된 남자> 속 팩트를 찾아봤다.
김 작가는 “당시는 임진왜란 후 붕당이 분열되고 광해군과 영창대군을 둘러싼 정쟁이 시작된 시기였다. 명·청이 교체되면서 외교 노선의 변화를 도모해야 할 시점이었으나, 명분과 의를 중시하는 성리학의 기본 이념에 배치돼 광해군을 고뇌하게 했다”며, 영화에서는 이런 국내외의 정치적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정적들에게 암살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공포에 빠져있는 왕의 모습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홍길동>의 지은이로 알려진 허균은 영화에서 도승지로 나오지만 이는 팩트가 아니다. 김 작가는 “왕과 밀접한, 정치적 동반 관계에 있었던 사람은 실제론 허균이 아니라 이이첨이었고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 해도 영화에서처럼 왕과 독대하거나 사생활에 관여할 수는 없었다. 또 관료들을 왕에 맞서며 적대시하는 세력으로 그린 것도 재미를 위한 설정”이라며 실제로는 왕의 신임하에 정치를 펼친 세력이었다고 말했다.
STEP 3 독서로 역사적 사고력 기르기
역사 영화와 교과서, 역사책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을 갖췄다면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주는 책으로 단계를 높여보자. 팩트를 바탕으로 역사 속 쟁점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를 보는 안목이 생기고 생각의 지평도 넓힐 수 있다. 책 <역사저널, 그날>을 예로 들면, ‘광해, 왕이 되지 못한 남자’에서 조선 중기의 역사적 상황을 다루는 동시에 광해군이 현대인들에게는 현명한 외교를 펼친 군주로, 조선 역사에서는 쫓겨난 폐주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를 다각도로 살피고 있다. 동명의 TV 토크쇼를 그대로 책으로 엮은 터라 대화체로 구성돼 있어 독서력이 낮은 청소년도 쉽게 접근해볼 만하다.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을 다룬 다른 작품들을 비교·분석하며 보는 것도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예를 들어 <명량>과 <칼의 노래> 그리고 <난중일기>처럼 이순신이라는 한 인물을 다룬 영화·소설·역사서를 모두 읽고 비교해보면 역사를 보는 안목을 한층 높일 수 있다.
중학교 <역사>는 만만한 과목이 아니다. 두 권의 교과서에 선사 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가 모두 담겼다. 이름·지명·제도 등 암기해야 할 내용도 빼곡하다.
울산 남목중 이정현 교사는 “학생들에게 외우라고 하는 내용은 한 단원에서 한두 개 정도다. 그 외에는 영상 자료 등을 보면서 역사 속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고대 역사를 배울 때도 토속 신앙·애니미즘 등 설명하는 것보다 그와 관련된 <삼국유사>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렇게하면 학생들이 더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며 결국 역사는 옛날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학생들도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 영화는 역사를 어려워하는 학생에게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역사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이 교사는 “역사 영화는 사실과 허구가 섞인 창작물이기에 수업에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책에서 보던 역사적 사건들을 실감나게 느끼고 자신의 일처럼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는 장점도 있다. 역사적 상상력과 판단력을 길러주는 만큼 학생들에게 역사 영화를 추천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영화 <남한산성>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병자호란 당시 인조·김상헌·최명길 등의 고뇌와 시대적 상황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역사 영화로 한국사 내공을 다지려면 감상 전후에 교과서·책·다큐멘터리·기사 등을 활용해 팩트를 걸러내면 좋다. 이 교사는 “교과서나 중학생 수준의 책·자료에서 영화 속 팩트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려우므로 영화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유튜브 동영상·기사 등을 다양하게 활용해보라”고 권했다.
김 작가는 “팩트를 체크를 할 때 교과서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전문가가 쓴 공신력 있는 자료를 활용하면 좋다”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온라인(http://encykorea.aks.ac.kr/)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어 학생들에게 유익하다고 조언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