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77-1-1.zip
離色離相分 第二十 (색을 여의고 상을 여읨)
圭峰:第十七은 斷無爲何有相好疑니라 論에 云하되 若諸佛이 以無爲로 得名이면 云何諸佛이 成就相好하며 而名爲佛인가하니 此는 約法身佛이니 故以爲疑니라 斷之文이 二니 一은 由無身故로 現身이라
규봉:17.(疑斷) ‘無爲가 어찌 相好가 있겠는가’하는 의심을 끊은 것이다. 논에 이르되 “만약 제불이 무위로써 이름을 얻었으면 어떻게 모든 부처가 좋은 相(32상 80종호)을 성취하며 부처님이라 이름하는가?” 했으니 이것은 법신불에 잡힘(국집함)이니 그러므로 의심하는 것이다. 끊는 글에 두 가지니
(1)은 無身(몸이 없음)을 말미암은 것이므로 몸을 나타낸 것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인가 佛을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하느냐 不也이니다 世尊이시여 如來를 不應以具足色身見이나이다 何以故하면 如來說具足色身이 卽非具足色身이요 是名具足色身이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두 갖춘 몸매로써 부처를 볼 수 있다 하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마땅히 모두 갖춘 몸매로써 볼 수 없사옵니다. 왜냐하면, 여래가 말씀하신 모두 갖춘 몸매라 하는 것은 곧 모두 갖춘 몸매가 아니고 이름이 모두 갖춘 몸매이옵니다.”
淸峯:모두 갖춘(具足) 몸은 육신이 아니며 일체를 구족한 우주 근본체인 형상 없는 법신을 일컫는 것이다. 법신 즉, 법성은 공적하고 적적묵묵(진공묘유)하여 갖추어도 갖춘 바 없는 것이니 곧 형상이 없으므로 색신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없이 존재” 하는 것이다.
무명 중생은 부처를 구함에 지혜의 눈으로 법신을 보아 둘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32상호와 80종호만 보려 하여 상을 쫓고 생각으로 헤아려 밖으로 찾으려고 하여 부처님의 말씀이나 상호를 쫓아 진신(眞身)으로 삼으려 하나 참 부처는 상이 없으며, 없이 있는 것이며 또한 나의 자성인 것이다.
부처는 청정함이니 32상호가 32청정행이요, 반야바라밀을 닦아 정혜를 쌍수하여 증득해야 구족색신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색신이라 할지라도 이름 붙여 그렇게 칭한 것일 뿐이요, 본래 이름이 없는 것이다.
圭峰:卽隨形好也이니 如鏡中無物方能現物故이니라 論에 云하되 法身은 畢竟에 非色身이며 非諸相이니라 然이나 相好二種도 亦非不佛이니 此二가 不離法身故니라 是故로 此二를 亦得言無이니라 故說非身이며 亦得言有故로 說成就라하다
규봉:곧 형상인 상호(32상 80종호)를 따르니 거울 가운데는 사물이 없으나 바야흐로 능히 사물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논에 이르되 “法身은 필경에 색신이 아니며 모든 상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상호의 두 종류(32상, 80종호)도 또한 부처가 아님도 아닌 것이니 이 두 가지가 법신을 여의지 않은 때문이다. 이러므로 이 두 가지를 또한'없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몸이 아니라 말씀하며 또한'있다’고도 말하게 되므로 성취라 말씀하는 것이다”했다.
六祖:佛意는 恐衆生不見法身하고 但見三十二相八十種好의 紫磨金軀하여 以爲如來眞身하시어 爲遣此迷故로 問須菩提하시되 佛을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라하다 三十二相은 卽非具足色身이요 內具三十二淸淨行하여 是名具足色身이니 淸淨行者는 卽六波羅蜜이 是也니라 於五根中에 修六波羅蜜하고 於意根中에 定慧雙修하여야 是名具足色身이니 徒愛如來의 三十二相하고 內不行三十二淸淨行하면 卽非具足色身이요 不愛如來色相하고 能自持淸淨行하면 亦得名具足色身이니라.
육조:부처님의 뜻은 중생들이 法身을 보지 못하고 다만 三十二상, 八十종호의 자주색 황금 빛(紫磨金)의 몸만 보아서 이것으로 여래의 참 몸으로 삼을까 염려하시어, 이런 미혹을 없애기 위한 까닭으로 수보리에게 물으시되 “부처를 가히 색신이 구족한 것으로써 보느냐” 하셨다. 三十二상은 곧 색신이 구족한 것이 아니고 안으로 三十二청정한 행을 갖춰야 이를 색신을 구족했다고 하는 것이니 청정한 행이란 곧 육바라밀이 이것이니라. 五根가운데에서 육바라밀을 닦고 意根 가운데서 정과 혜를 쌍으로 닦아야 이를 색신을 구족했다고 말하는 것이니 다만 여래의 三十二상을 쫓아 좋아하고 안으로 三十二청정행을 행하지 않으면 곧 구족색신이 아니요, 여래의 色相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능히 스스로 청정한 행을 가지면 또한 색신을 구족했다고 이름하게 되는 것이다.
( 五根 × 육바라밀 + 정과 혜 = 三十二청정행)
圭峰:二는 由無相故로 現相이라
규봉:(2)는 상이 없음을 말미암은 까닭으로 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인가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하느냐 不也이니다 世尊이시여 如來를 不應以具足諸相見이니다 何以故하면 如來說諸相具足이 卽非具足으로 是名諸相具足이나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를 모두 갖춘 모든 모습으로써 볼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를 마땅히 모두 갖춘 모든 모습으로써 볼 수 없사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두 갖춘 모습은 곧 모두 갖춤이 아니고 그 이름이 모든 모습을 모두 갖춘 것이라 하옵니다.”
淸峯:형상으로 보이는 부처는 참 부처(眞佛)가 아닌 화신이요, 여래(眞佛)는 무형의 법신인 것이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 인, 중생, 수자상을 여읜 혜안으로만이 무상의 진신법신불을 둘 아니게 볼(觀) 수 있는 것이다. 청정법신이란 곧 일체법계로써 자체를 삼는 것이며 장육금신?삼십이상의 색신에 국한하지 않는다. 따라서 장육금신?삼십이상, 팔십종호를 차별상으로 따로 관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하나 또한 차별상인 유의 세계와 공적한 일심(一心)이 둘 아닌 일심 중도의 공(空)이 바르게 드러나지 못하고 모든 존재를 허무단멸의 공으로 잘못 이해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중생이 일체 차별법을 실제인양 집착하고 그에 대한 분별 망념을 일으키는 것일 뿐 그러나 실상은 분별하는 번뇌 망상도 반야 지혜로 보면 공적한 것이다. 공이라는 말을 삿되게 인용하여 불, 조의 말씀을 부질없는 것으로 무더기로 쓸어버리고 거침없는 막행 막식을 공으로 합리화해서는 지옥 가기를 화살 같이 하게 됨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說誼:體虛不見一絲毫이나 對緣垂示萬般形이로다
설의:體가 텅 비어서 실 한 터럭도 볼 수 없으나 인연(緣)을 대하면 만가지 형상을 드리워 보이도다.
청봉착어:체란 본래의 근본 바탕이니
일체법이 본래 텅 비어 청정하나
묘한 있음은 묘하게도 인연에 응하여
일체를 나투어(妙用) 보이니라.
圭峰:卽三十二相也니 一一如前色身中說이니라
규봉:곧 삼십이상이니 낱낱이 앞의 색신 가운데 설함과 같은 것이다.
六祖:如來者는 卽無相法身이 是也라 非肉眼所見이요 慧眼乃能見之이니 慧眼이 未明하여 具足我人等相한 以觀三十二相爲如來者는 卽不名爲具足也니라 慧眼이 明徹하여 我人等相이 不生하고 正智光明이 常照하면 是名諸相具足이니라 三毒이 未泯하고 言見如來眞身者는 固無此理이니 縱有見者라도 ?是化身이요 非眞實無相之法身也니라
육조:여래란 곧 상이 없는 법신이 이것이라. 육안으로써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혜안이라야 이에 능히 볼 수 있으니 혜안이 밝지 못하여 我人等의 相을 갖춘 三十二상을 보아 여래를 삼는 것은 곧 구족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 혜안이 밝게 통하여 我人等의 相이 나지 않고 바른 지혜의 광명이 항상 비추면 이를 모든 相을 구족 했다고 이름하는 것이다. 삼독이 없어지지 않고 여래의 진신(法身)을 본다고 말하는 것은 반드시 이런 이치가 없는 것이니 비록 본다 하더라도 다만 이것은 화신일 뿐이요 진실한 무상의 법신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