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사헌(일명 大憲)
가. 내용 : 교지 이해 위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자. 가정23년 12월 29일(1544년, 중종39년, 11월 15일 중종 흉거.
11월20일 세자 傳位 경종)
나. 해제 : 종2품 가선대부 이해를 사헌부 대사헌(관리의 규찰 및 서경, 풍속을 바로잡는 기관장)에 제수한 교지다.
※ 이해 公은 경종에 의해 두번째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됨.
다. 이해 대사헌 교지
라. 행장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보, 자는 景明이고, 호는 溫溪다. 증조부는 선산도호부사 李禎이며, 조부는 진사
李繼陽, 부는 진사 李埴이고 母는 司正 朴緇의 딸이다. 이황의 친형이며, 숙부 李堣 문하에서 수학했다.
중종 20년에 진사가 되고 식년시 문과 병과로 급제 하여 사간원 正言 겸 춘수관 記事官, 성균관 典籍, 사간원 정언
겸 춘추관 기사관, 경상도 경차관, 이조 佐郞 겸 춘추관 기사관, 공조 正郞 겸 승문원 校理, 이조 正郞 겸 춘추관 기
사관 승문원 교리 世子侍講院 文學, 종친부 典籤 겸 승문원 校勘, 종부시 檢正 겸 춘추관 編修官 승문원 교감, 堂上
官인 通政大夫로 加資되어 승정원 左副承旨 겸 경연 參贊官 춘추관 修撰官, 승정원 都承旨 겸 尙瑞院 正(옥새 관리)
종2품 가선대부로 가자되어 僉知 中樞府事, 同知 중추부사, 忠武衛 大護軍, 사헌부 大司憲, 사간원 大司諫, 예조
參判, 사헌부 대사헌, 동지 충추부사, 한성부 右尹 겸 同知 義禁府事, 淸洪도(충청도) 觀察使 등을 역임했다.
대사헌때 이기의 우의정 탁용을 반대하고 부정을 탄핵했다. 명종이 즉위하고 소윤이 집권하자 이기의 심복 이무강
의 탄핵을 받고 무고사건에 연좌된 구수담의 일파로 몰리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권세에 거짓으로 굴복하면 모면
할 수 있다고 권했으나 모두 거절하고 모진 고문에도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명종이 그의 결백함을 알고 특별히 무산으로 귀양 보내는 것으로 그쳤으나 귀양 도중 고문의 휴유증으로 양주에서
작고했다. 명종 22년에 복관되고, 숙종 17년에 이조판서로 증직 "明宗朝 名臣 被誣寃死 贈職事承"(명종조 명신 무고
를 당해 원통하게 죽어 이조판서로 증직함) 하게 되고,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영주 삼봉서원, 예안 청계서원에 제향
되고 있다.
※ 이해公이 종2품이 되어 3대 추존법에 따라 부 이식은 증 가선대부, 조부 이계양은 증 통정대부, 증조부 李禎은 증 통훈
대부로 증직되어야 하나 이정은 현직 통훈대부의 품계를 받았기 때문에 내직의 청요직에 贈補되었을 것이고, 아우인
이황이 종1품까지 승차되어, 3대가 이에 상응하는 증직교지를 받는 것이 원칙인데 무슨 연유인지 증직 교지가 보이지
않고, 각종 기록에도 증직 내용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2. 대사간(일명 大諫)
가. 내용 : 교지 김영조 위 가선대부 행 사간원 대사간자. 신사 2월 11일(1641년, 인조19년)
* 병자호란 후 청나라 년호를 쓰지 않으려고 간지를 사용한 교지가 더러 있음.
나. 해제 : 김영조를 종2품 가선대부에 임명하고 행직으로 사간원 대사간(국왕의 일거수 일투적을 공식적으로
논박하고, 서경하는 기관장)에 보임한 교지다.
다. 김영조 대사간 교지
라. 행장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 호는 망와 현감 대현의 아들이고, 김성일의 사위다. 선조34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증광시 문과 병과로 급제 승문원 부정자를 거쳐 정자로 승진했으나 광해군의 혼란한 정치를 보고
은거 했다.
인조반정 후 기용되어 예조좌랑 형조좌랑 사헌부지평 및 장령 성균관직강 세자시강원문학 강원도 관찰사
대사간 대사헌 세자책봉 주청부사로 청나라 다녀온 공으로 노비 3구와 토지 10결을 하사받고, 이조참판 예
조참판 병조참판을 역임했으며, 대간에 오래 근무하여 임행어사를 여섯번 나갔다. 영천구산정사에 제향.